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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정수현

“관객들과 울고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이면 언제까지고 하고 싶어요”

소        개 영원한 노력형으로 남고 싶은 배우
활동분야 연극
활동지역 충북
주요활동 극단 청사 배우
해시태그 #극단청사 #연극 #연극배우 #정수현
인물소개

영원한 노력형으로 남고 싶은 배우, 정수현

 

관객들과 울고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이면 언제까지고 하고 싶어요

 

우연히 배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친구 공연 관객으로 갔다가 용감하게도 극단부터 찾아가 배우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그때부터 지금껏 청주를 떠나지 않고 지역을 지키는 배우가 되었다.

“1989년이었을 거예요. 3 때 친구들하고 공연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전 무지 상태였는데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영화과를 가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담임선생님께서 극단을 하나 소개시켜 주셨어요.”

 

 

극단을 찾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상당극회였다. 그때만 해도 소극장을 중심으로 많은 극단이 있던 시기라 배우가 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극장마다 당연한 듯 관객으로 꽉 들어찼던 연극의 전성기였기에 그의 용기가 가상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대본을 나눠주면서 연기를 해보라는 거예요. 푼수 같은 아줌마 역할이었어요. 극단 선배님이 코치를 해주신 대로 하고 나서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갔죠. 면접 때는 내가 백만장자가 된다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냐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빌딩을 사서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그렇게 배우가 되었다. 3:1 경쟁률이었다.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무대는 그를 배우로 만들어줄 꽃길이자 흙길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그는 무대부터 오르고 본 것이다.

 
"극단 대표께서 저더러 끼는 없는데 노력하는 배우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확실히 있었어요. 하지만 첫 워크숍 공연을 했는데 엄청 혼났어요. 걷는 것부터 안 되었어요. 진짜 끼 있는 애들은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갖고 노는데 저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초부터 열심히 배웠어요. 발성과 걷는 연습부터 많이 했어요.”

 

 

현실을 딛고 연기하다

 

이후 그는 무대에서 완성체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을 배웠다. 다행히 집안의 반대 없이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생활에 있어서는 걸림돌이 많았다.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는 배우라는 현실이 그에게는 맞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가 보수적이어서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는 현실이었다. 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습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디자인 사무실을 다니면서 저녁에 틈틈이 연습하고 일찍 귀가하는 조건으로 극단 활동을 이어갔다.


일 년에 한두 작품 정도 밖에 못했어요. 그러니 전국연극제에도 못 나갔죠. 그리고 일찍 결혼했는데 남편도 연극 활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기 낳고는 7년 동안 살림만 했어요.”


그에게 7년은 오로지 가정에만 충실했던 시기였다. 배우가 아닌 인간 정수현으로서의 삶에 가장 열중했던 시절이었다. 배우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지체된 시간이 아니라 배우로 다시 섰을 때 연기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삶을 배운 시간이었다.

“2004년이었을 거예요. 직지축제 때 고려 퍼레이드라고 고려 의상을 입고 잠깐씩 공연하는 역할이 들어왔어요. 공민왕 부인 역할이었는데 마다하지 않고 했어요. 오래 쉬었는데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도 낮에만 연습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극단의 배려로 열심히 했죠. 찾아가는 문화 공연도 하면서 주어진 배역을 열심히 했어요. 그러던 중 첫 주역을 맡은 연극이 귀싸대기를 쳐라였어요. 다방 마담 역할이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이 모여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몰래 찾아가서 귀싸대기를 때린다는 이야기였어요. 블랙코미디였죠.”

 

다시 배우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항상 궁금했다. 7년 전과 후의 연기가 어떻게 다른지. 돌아온 대답은 역시 끼보다는 노력형 배우라는 타이틀이었다. 돌아보니 결혼 전 배역은 예쁘고 젊은 주인공들뿐이었다. 입으로만 연기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7년의 세월이 경험 아닌 경험으로 남아 배우라는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7년 전의 자신이라면 소화할 수 없었을 다방 마담과 불운한 아내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7년의 세월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대본만 외워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연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진짜 그 아내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거예요.”

 

 

배우로서의 2

 

배우로서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결혼합시다에 이어 2시간을 혼자 이끌어가는 모래여자를 거뜬히 소화해내며 배우로서의 절정을 맛보았다. 그 어떤 배역보다 힘들게 연기한 만큼 인생연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독 주연이다 보니까 제 역량에 부족한 점도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몸을 갖고 놀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두 달 가까이 모래여자에만 몰두하며 하루 종일 연습했어요. 모래여자에게서 벗어나고자 저를 넘어뜨리고 목 조르는 연기가 많아서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어요.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 없이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몸이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배우로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단역이지만 처음으로 충북연극제에 나가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치매 걸린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그로서는 가장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연기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청년극장 30주년 기념 공연 낡은 경운기의 젊은 여자 역할을 고사하고 주인공의 할머니 역할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남편이 사고사한 이후 극의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슬프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관객을 울려야 하는 역할이었다.

 

뒤늦게 새로운 벽을 만나면서 다시 배우고 있어요. 그게 재밌어요. 작년에는 전국연극제에 나가서 늦게나마 신인상을 받았어요. 마흔여섯에요. 감사하고 송구스럽기도 해요.”


그는 극단 늘품의 광명이라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작품에서 조연 역할로 신인상을 받았으며, 꾸준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다. 그의 꿈은 단순하다. 역할 그 자체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까지고 노력형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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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정상민 2019.03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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