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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창

권혁만

“시조 하는 사람들끼리 앉아서 하면 하루종일 해도 재미나요”

소        개 시조창의 명맥을 이어가는 명창 권혁만
활동분야 시조창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대한시조협회 부회장, 충북지부장, 심사위원, 강습
해시태그 #시조창 #대한시조협회부회장 #느림의미학 #명창 #권혁만
인물소개

시조창의 명맥을 이어가는 명창 권혁만

시조 하는 사람들끼리 앉아서 하면 하루종일 해도 재미나요


나이 오십에 시조를 만나다

 

그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만났다는 연극처럼 오십에 시조창을 만났다. 현재 대한시조협회 부이사장과 충북지회장으로서 시조창의 명맥을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조 하면 할아버지나 부르는 여흥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조창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는 일이 평생의 과제라고 한다.

 

시조창이라 하면 옛날 할아버지들이 목욕탕에서 청산~’하고 시작하는 느려터진 소리로 알고 있는데 사실 그건 느려터진 것이 아니에요. 느림의 미학인 것이죠. 시조창의 단계는 평시조로 시작하여 사설 시조를 배우고, 그것이 끝나면 지름시조로 넘어가요. 지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소리를 지른다고 할 때의 그 말이에요. 한 옥타브 이상 올려서 소리를 질러서 부르는 것을 지름 시조라고 하죠.

초등학교로 말하면 1학년은 평시조, 2학년은 사설시조, 3학년은 지름 시조, 4학년은 명인보, 5학년은 국창부, 6학년은 대상부로 나눌 수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전국 각 시지회에서 대회를 하는데 1등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어요. 6학년까지 다 마친 사람은 대상부를 졸업했다고 하는 거죠. 대상부를 졸업하면 심사를 할 수 있어요. 빠르면 4~5, 어떤 사람은 10년씩 걸리기도 해요.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일가를 이루려면 10년 정도가 필요한 거죠.”

 

까치내 전역에 울려퍼졌던 시조창

 

일제강점기에도 시우회라고 해서 시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조를 했어요.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동네별로 시조창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할아버님이 남주동 까치내에서 시조 모임을 하셨어요. 동네마다 시조하는 양반들이 모여서 노는데 보통 나흘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계속 되었어요. 까치내 모래밭에 차양을 치고 잔치를 벌이듯이 노셨어요. 차양 아래 양반들이 쭉 앉아서 변사또 생일잔치하듯 했죠. 청주에서 오고 옥산, 오창에서도 모였어요. 한쪽에서는 거문고, 가야금 켜고 대금 부르는 사람도 모여서 시조창을 하며 며칠이고 노시는 거예요.”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요즘 랩하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배틀을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까. 유유자적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조창과 어우러진 까치내의 풍광을 상상해보라.

 

느림의 미학 속 유장한 미래

 

서민들이나 머슴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야 추임새를 넣어가면서 하니까 흥이 나잖아요. 그런데 시조창은 추임새가 없어요. 양반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중하게 부르는 것이 시조창이니 재미가 없다고 여기죠. 시조창은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지켜야 할 것도 있으니 말이죠. 듣는 사람은 기대어 앉는다거나 다리를 흔들고 추임새를 해서는 안 돼요. 한마디로 잘 한다 못 한다 평을 해서는 안 되는 거죠. 정중하게 조용히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재미가 없고 돈도 안 되는 거죠. 경기 민요 같은 것은 전승도 하고 문화재다 해서 학원을 차려서 배우는 사람도 많지만 시조창은 많이 오지를 않아요. 전국에 다 해봐야(우리는 백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4~5만 명이 안 될 거예요.”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느림의 미학이야말로 정적이면서도 품위가 있는 시조창만의 매력을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시조창을 배우겠다고 오십의 나이에 동사무소를 찾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60~70 연배의 여자 일곱 분이 시조창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오래 전에는 남자들이 대세였는데 오히려 남자가 배우겠다고 오니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시대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옛날 까치내에서 일주일씩 동네 잔치하듯 열었던 시조창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하는 뜻이 강하다. 그래서 전국 조직을 통해 경창대회는 물론이고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에게 자격증을 줘서 저변을 넓이는 일도 하고 있다.

 

민요 하시던 분이 우리한테 많이 와요. 그러니까 민요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시조창인 줄 아는 거죠. 한마디로 민요의 끝은 시조창이에요.”

 

이 말끝에 시조창의 느리면서도 유장한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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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문호영 2019.08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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