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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

이옥란

날고 싶은 아기 새

소        개 새처럼 부드럽게 독수리처럼 힘차게
활동분야 현대무용
활동지역 청주, 전국
주요활동 작품창작, 무대공연, 강의
해시태그 # #이옥란 댄스시어터
인물소개


세상에 많은 예술이 있지만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처럼 매력적인 것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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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언어가 있지만, 무용처럼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 되어지는 예술도 드물다. 무용은 국경이 없다.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앉아서 무용수들의 몸짓과 춤사위만으로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무용부에서 아기새 역할에 뽑혔다. 뽑힌 이유가 덩치가 작아서였는데, 잘했다고 칭찬받은 것이 무용을 좋아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6학년까지 군 대회, 도 대회에 참가하면서 무용을 꾸준히 했다. 중학교 진학 후 1학년 때 부채춤을 추었고, 청주로 나와 중앙여고에 다닐 때 박정자 선생님을 만났다. 

키가 작았던 아기새는 창공을 날고 싶었다. 윤승희 선생님과 류명옥 선생님께 실기를 배워 서원대학교에 들어갔다. ‘아브락삭스 무용단에서 류명옥 선생님과, 송인숙 선생님 공연을 하면서 활동을 하게 됐다. 졸업 후 충북무용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작품을 무대에 올릴 기회가 생기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실기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단국대학교에서 석사를 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모교인 서원대학교에서 현대 무용 실기를 수업하면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새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독수리처럼 힘차게

 

무용이 잘 맞는 것 같다. 무용할 때 너무 즐겁다. 단원들이나 제자들과 작품을 할 때나 강의를 할 때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어야 하므로 많은 힘이 든다. 그러나 본인이 즐거워야 학생들도 즐거울 것이므로 수시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기억에 남는 큰 공연은 전국무용제 출연을 꼽는다. 삼십 중반에 팀을 꾸려 전국무용제에 나갔다. 비록 상은 못 탔으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안무를 제작해서 팀을 꾸리고 기획도 하고 음악도 정했다. 옵니버스 형테 15분짜리 공연 만도 대단한 일로 여긴다. 그런데 하나의 작품으로 50분 정도 공연했던 작품이라 뿌듯했다. 스승도 없이 스스로 힘들게 진행했으나 힘든지도 모르고 했다.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옥란 무용가가 있다고 술회한다. 세월이 흘러 무용전문가가 되어 돌아보니 그때 내 작품을 더 사랑해 주면서 더 보듬어 주었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용도 시대의 흐름을 탄다. 미국풍, 유럽풍, 그런 흐름 따라 변천해 오나 각각 자신의 안무로 자리 잡게 된다. 과거에는 추상적이던 이미지가 요즘은 사실적이며 대중적인 작업을 한다. 

중간에 연극적인 요소도 넣어 대화를 가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관객들과 공감하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리만 들고 하는 게 아닌, 이쁘긴 한데 무슨 의미지? 하는 것보다는 내면을 표현보다는 타인들을 위한 작품으로 스타일이 바꾸고 있다. 더러는 대중가요에 맞추기도 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의상도 굳이 비싸게 맞추려 하지 않고 현대인을 표현할 때는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편하게 다가가기도 한다. 한동안 안무만 하고 무대에 서지 않다가 2018년도에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재미있게 수다 떨 듯, 가볍게 안무했다.

 

이옥란 무용 작품의 변천사

 

1999년 충북무용협회 정기공연 젊은 춤 작가 3인전에 참여하여 비밀의 문을 무대에 올렸다. 2001년 충북무용제에 이옥란 무용단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이옥란 무용단이름으로 활동했다. 2005년도에는 불안정를 올렸고, 2007년에는 잃어버린 성좌를 올렸다. 잃어버린 성좌는 삶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것에 집착하며, 항상 변증의 이상을 꿈꾼다는 내용이다. 최고의 자리라 생각하는 성좌에 앉기 위해 달려가는 인간들의 고뇌, 갈등, 경쟁, 불안 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해 2007년도에 전국무용제에 끝없는 슬픔을 올렸다. 슬픔을 인정하고 극복해 가는 내용이다. ‘알리움이 슬픔에 빠진 누군가에게 잔잔한 꽃향기로 다가가길 바라며 작품을 구성했다. 2008년도에는 알리움작품을 재구성하여 활동했다.

 

2009년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Blue Dance Theater’ 무용단에서도 활동했다. 2009년도 작품은 어느덧 중년 되어 있는 나를 표현했다. 문득 돌아보니 중년이 되었고 무용이라는 틀 안에서만 살았는데,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음에 답답한 나를, 틀 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나를 표현했다. 검은 상자 안에서 밖으로 나온다. 검은 상자는 틀 안에서 살고 있는 나다. 마지막에 풍선을 날리며 무대 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풍선을 통해 답답함을 풀고 자유롭게 새로운 삶을 향해 자유롭고 싶은 나를 표현했다. 

2010년은 작품 표현이 달라진다. 이제까지 추상적인 이미지 표현 작품이 많았고, 현대 테크닉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2010년도 부터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일반인이 작품을 감상하기가 쉬워졌다. 작품 내용도 무게감 보다,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관객을 찾아가는 무용으로 거듭나다

 

2011년부터는 찾아가는 문화 활동을 통해 작품은 일반인이 더 이해하기 쉽고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2011년부터 이옥란 댄스시어터로 무용단 이름을 변경했다. ‘이옥란 댄스시어터는 대중과 함께 하는 무용 예술 패턴을 지향하고자 무용과 연기가 절충된 퓨전 예술로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느낄 수 있는 공연 무대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2001년에 이옥란 무용단을 시작하여 충북지역에 현대 무용공연 대중화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 동안 찾아가는 문화 활동을 통해 소외지역 시민의 문화예술 갈증을 해소하고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괴산 등 벽지 초등학교로 찾아가 공연을 하며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2008년도 신인 예술상과 2014년도에 충북무용제 안무상을 수상했다. 20년 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은 수십 편이다. 서원대학교 무용학과, 임상건강운동학과 강사를 역임했다. KBS 청주방송국 어린이합창단 안무를 했다. 청주 교육대학교 체육교육과,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서 강사를 했고, 푸른 청주 푸른 꿈 키우기 무용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무용강사를 하며 청주교육대학교에 출강한다. 수상은 청주 신인예술상’ ‘충북무용제 안무상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상 10여 차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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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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