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아카이빙

문화공간(공간)리스트

ⓒ2020.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All Rights Reserved. 작품이미지의 도용 및 무단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마동창작마을

주        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마동리 83-2
운영시간 매일 00:00~24:00
연  락  처 043-221-0793
해시태그
공간소개

마동창작마을 


+ 20년째, 마을과 함께하지 못하면 마동창작마을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디서 알고 오는지 하루가 멀다고 사람들이 찾아와요. 그림도 보고 꽃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알아서 돈내고 가요.” 마동은 마쟁이들이 살던 마을이다. 문의현에서 보은 회인현을 오가는 군사들이 중간에 들러 말을 바꾸어 가거나 말 먹이를 먹이던 마을로 깊고 깊은 산골이다. 문의로 들어온 소금배들이 소금을 부리면 보은, 상주로 소금을 나르던 소금꾼들이 염티재를 넘어가던 길에서도 한참을 들어와야 한다. 지금이야 대청댐 둘레길 2구간으로 남계3교와 구름고개를 잇는 곳이지만 차로 들어오려고 해도 쉽지 않은 곳이다. 깊은 마을이어도 한때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이곳에 창작마을이 생긴 건 1995년. 서울에서 활동하다 청주로 내려와 폐교된 문의초등학교 회서분교장을 6명의 작가들과 함께 구입하여 마동창작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야말로 전업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시작한 것이다.  “작업실은 꾸질꾸질하지만 그곳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그럴싸합니다. 원시적인듯 하면서 현대적이고 지역적인 듯 하면서 세계적입니다”

 

마동창작마을이 문을 열면서 만든 홈페이지에 있던 이홍원 화가의 인사말이다. ‘예술은 소통’이라고 믿음 아래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통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이홍원 촌장의 정신이 알알이 박힌 곳이기 때문이다. 

 

2014년 지역예술작가 박돈, 설치미술가 손영익, 조각가 송일상, 도예가 유재홍, 붓 공예가 유필무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작업하면서 창작마을의 형태를 유지했다. 해마다 오픈 스튜디오를 열기도 했다. 2007년 첫 시도한 오픈 스튜디어는 창작 과정과 작품 모두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새로운 문화 체험의 자리이기도 했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직접 작품까지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였다. 아울러 조동언 명창의 판소리와 전옥주의 가야금 연주, 민요와 난장, 춤극, 시낭송 등을 보여주는 등 찾아가는 예술 기행 또는 작은 마을축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홍원 화가만이 남았다.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묵묵히 창작에만 힘써온 못난 작가들이” 모였던 곳에 혼자만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마동창작마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를 지속적으로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치단체나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마동창작마을의 촌장으로서 언제까지나 자부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업실 한 동과 오픈갤러리로 쓰던 곳과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하고 커피나 차를 마시고 갈 수 있는 까페와 살림집,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듯 이홍원 화백의 사모님이 손길을 타 아름다운 들꽃들이 이홍원 화가의 화폭인 듯 펼쳐져있다. 

 

그가 이곳에서 그린 그림만도 4200여점이 넘는다. 작은 것이지만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화가의 바람처럼 지금은 그를 찾아오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과 지역 예술가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알고 찾아주는 손님들의 쉼터이다. 

 

그리고 8년을 떠돌던 故 노무현 대통령의 표지석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공간이기도 하다. 2011년 5월  ‘노 전 대통령 추모 청주시민위원회가 성금 400만원을 모아 만든 표지석이 여러 곳을 떠돌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다. ‘당신이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루어 가겠습니다’는 글귀가 마동창작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홍원 화가의 뜻처럼 비치는 가운데 2017년 6월 새로 조성한 조각공원 한켠을 지키고 있다.

 

마동마을에서 이홍원 화가는 이 선생으로 불린다. 마동창작마을 마당에 주차된 경운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을과 소통하지 못하면 아무리 유명한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을 대소사에 함께하며 그의 그림이 삶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듯이 그는 아직도 마동에서 물장구치고 발가벗고 놀던 때를 그리워하는 소년이자 마동창작마을 그 자체로 남아있다. 마동 달맞이축제에 숲속 작음 음악회를 열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마동창작마을이 지금까지 건재하는 까닭이다.      

관련이미지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