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버려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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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회화
"예술은 전공자의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소 개 | 감각과 직관의 힘을 그리는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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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분야 | 미술, 회화 |
활동지역 | 충북 청주, 전국 |
주요활동 | 작품 활동, 전시 |
해시태그 | #회화 #청주여류작가회 #화가 #소영란 |
감각과 직관의 힘을 그리는 화가 소영란
명쾌하게, 때론 세밀하게… 그림으로 나를 읽다
“그림이요? 제 몸이 그림이에요. 눈에 보이고, 들리고, 피부에 와 닿는 느낌들이요.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바로 그림이죠.”
화가 소영란은 세상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봄이 보드랍고 화사했다면, 여름은 강렬했고, 가을은 깊었으며, 겨울은 단출해졌다. 매번 몸에 다르게 와 닿은 이 느낌들은 캔버스 앞에 선 그에게 뜨거운 에너지가 된다.
그림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그의 고향 강원도 영월은 틀이 없는 무한대 크기의 회화 작품이었다. 하늘과 산, 들과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고, 매일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강원도 안에서 여러 번 이사를 다녔던 그에게 자연은 감성을 일깨워주고 상상력을 심어주는 원천이었다.
“어릴 때는 제가 유난히 작고 말라서 몸이 약한 편이었어요. 여러 형제들 틈에서 자랐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지요. 그 때 보았던 자연들이 제 그림의 밑거름이 된 것 같기도 해요.”
학창시절,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항상 ‘영란이는 미술부에 들어가라’고 정해주셨고 그 말씀에 따랐다. 덕분에 한 번도 스스로 미술부를 찾아간 적이 없었지만 미술부 안에는 그의 자리가 있었고, 그 안에는 ‘그림 그리는 영란이’가 있었다.
“대학은 직업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사범대학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았죠.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왔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학교에 와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다. 쑥스러웠지만 이미 졸업한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세종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했다. 이어 세종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개인적인 그림 작업에 몰두하면서 민중 미술에도 참여하는 등 그림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예열하고 있었다.
그림, 하나보다 여럿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10회의 개인전을 치르고,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한 그는 크로키, 드로잉, 콜라주, 유화 등 다양한 방식의 회화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누드크로키이다. 30초 혹은 60초 안에 그리는 크로키는 가치관이나 인식의 판단이 들어올 틈이 없이 오로지 감각과 직관에 의존해 작품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크로키를 그릴 때도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그리지 않아요. 어떤 때는 먹으로 혹은 펜으로, 다음엔 판화지에, 그 다음엔 비구상으로... 항상 새로운 시도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 방법대로 그리다 보면 그 시간 속에 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가 보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바라보기’와 ‘들여다보기’가 소영란 화가에게 화두를 던진 것은
무심히 시각에 들어온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라보기라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들여다보기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달랐을 때 캔버스에 드러나는 작품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최근 들어 꽤 관심이 가는 주제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그림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그도 붓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과감히 붓을 놓고 거리로 나간다. 하염없이 거리를 걷다가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대청호반을 찾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문득 캔버스가 그리워진다고...
“그래서 저는 미리 개인전을 정해놓지 않아요. 날짜를 정해놓고 작품을 그릴 때는 어쩐지 쫓기는 것 같아서 완성도에 자신이 없어지거든요. 제 나름대로 작품이 모이고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여겨질 때 작품을 선보이는 편이에요.”
결혼을 계기로 청주에 정착하고, 현재 ‘청주여류작가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회원들이 보여주는 그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할 때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그림은 전공자의 것이 아니라 그림을 사랑하고 붓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화가’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그동안 청주에 사는 거주 작가라는 수식어에 만족하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 작가로서 소명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싶다며 작가로서 전환점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타 도시에서 전시를 하고나서도 청주에 와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더라고요. 그만큼 청주가 편해진 거겠죠? 앞으로는 거주 작가를 넘어 지역 작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고 싶습니다.”
글 | 사진 | 발행일 | 제작/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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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미 | 정상민 | 2019.03 |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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