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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성악, 테너

오종봉

"음악으로 배움, 나눔"

소        개 아름다운 테너
활동분야 음악, 성악, 테너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성악, 테너, 오페라
해시태그 #이태리 #로마 #국립음악원 #토레프랑카 #한국교통대 #우륵 #라보엠 #스페인 #충북음악협회 #예술가곡협회 #이솔리스트앙상블
인물소개

 

아름다운 테너 오종봉

 

테너 오종봉은 77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전문대 음대를 졸업한 후 다시 서원대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고 이후 이태리 로마로 건너가 국립음악원 토레 프랑카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유학비를 마련하려고 청주 농산물시장에서 새벽3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샌드위치 가게 아르바이트에서 일하느라 하루 두세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그에게 고된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2003년 겨울 4개월간 유학비를 겨우 마련해 이태리로 건너가서도 그의 주경야독은 계속된다. 한국식당, 여행사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인데 이때의 경험은 오히려 이태리 정착과 자신감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족을 위해 돌아오다.  

 

“로마에서 유학생이던 부인(메조소프라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졸업 후 아내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리세우극장의 단원이 되었고, 저는 로마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옥탑방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던 시기였어요. 당시 저는 생활고도 힘들고 성악공부도 잘 안되어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마드리드 국립합창단 오디션 기회가 생겨 로마로 갔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바르셀로나 사바델 극장에서 처음으로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실력도 점점 늘었지요. 연습도 많이 할 수 있어 다른 오디션도 보고 야외무대 등 여러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죠. 결혼 후 바르셀로나에 집도 사고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생활도 넉넉하고 여유로워졌죠. 로마와 바르셀로나에서 지낸 10여년은 참 행복했어요. 바다도 가깝고 날씨도 좋고 풍경들도 모두 아름다웠죠.”

그러다 아기가 생길 무렵 한국의 남은 가족들 상황이 어려워졌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난감하던 차에 귀국을 결심해 들어오게 되었다. 2014년 6월 귀국 했으니 한국 땅을 밟은지도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스페인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왜 저버리고 오느냐고 의아해 했지만, 한국의 가족들을 돌보고 함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덕에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낸다.

 

 

세 분의 스승과 아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은사가 세분 계셨으니 청주에 계신 분이 두분, 그리고 이태리에 한분이 계신다. 세분 모두 음악적으로도 중요했지만, 오랜 시간 공부를 해야하는 여건 속에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청주전문대를 다니던 당시 은사님인 전인근 교수와 이강희 교수이 제게 중요한 분들이세요. 두 분이 한국 교통대에 계셔서 귀국 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전인근 교수님은 유학을 권유해 주셨고 귀국 후도 많이 이끌어주고 도와주고 계세요. 로마에 오셨을 때는 용돈도 쥐어 주시며 격려해 주셨어요. 이강희 교수님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어요. 이 교수님 선친께서 제 아버님의 은사님이세요. 많이 공부를 격려해주셨죠. 두 분은 로마와 바르셀로나에서의 10년의 유학생활 동안 변화된 제 노래를 많이 칭찬해 주셨어요요. 전에는 제가 노래를 잘 못했거든요. 아내가 만류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태리의 선생님은 제게 ‘소리가 있으니 될 거다, 기다려라’고 늘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씀이 큰 힘이 되었지요. 이태리 음악교육은 기초부터 노래 하나라도 완성될 때까지 몇 년을 공부하죠. 음악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도 기초를 다지죠. 흔들림 없이 제 실력이 많이 늘었던 이유가 이태리 선생님과 공부하며 기초를 튼튼하게 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스승은 그녀의 아내. 가장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동료이자 스승이다.

“제 아내는 함께 유학했던 성악전공자이기에 연습 중 서로 감정을 거스를 정도로 날카롭게 지적을 해요. 싸우면서도 지적받은 부분은 다음에 꼭 고쳐가며 연습을 하죠. 도움이 많이 돼요.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역시 부부인 것 같아요. 우리는 긍정적으로 발전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귀국 후 한국에서의 근황과 계획 

 

2014년에는 귀국하자마자 오페라 ‘리콜레토’의 주연을 맡았다. 어려운 작품이라 고민도 했지만, 당시 지휘자인 이강희 교수님의 교수로 용기를 내어 완주할 수 있었다. 그 후 계속 주연만 맡고 있는데 2016년 12월엔 춘향전의 방자역을 맡기도 했다. “전인근 교수님이 이도령 역을 맡으셨으니 제가 당연히 방자를 맡아야지요.” 하며 웃는다. 그렇게 리콜레토, 춘향전, 라보엠, 우륵 등 5개의 큰 오페라를 해치웠다.

“처음 노래를 접하던 시기에 저는 노래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성악도 몇 개월 배우면 잘 될 줄 알고 시작했지요. 완전 바닥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못해도 나중에 언젠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던 것 같아요. 제 노력도 있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앞으로 그분들께 받은 것을 다 나눌 생각입니다.”

 

그는 현재 충북음악협회 기획이사이며 예술가곡협회 회원과 음악그룹 ‘예화’의 성악담당, 이솔리스트 앙상블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교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화팀과는 국악과 서양음악이 어울어진 퓨전 음반 작업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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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 이재복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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