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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성악, 테너

김태훈

"음악을 좋아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        개 음악 인생 30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테너
활동분야 음악, 성악, 테너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오페라 및 다양한 연주 활동, 청주대학교 음악과 명예교수
해시태그 #김태훈 #음악 #성악 #오페라 #연주 #성가 #청주대학교음악과
인물소개

33년 6개월. 테너 김태훈이 지난 해 정년퇴임까지 청주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던 기간이자 그가 감사하는 세월의 수치이기도 하다. 고향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주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고 말하는 김태훈 테너.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중학생 때 음악 콩쿨에 나가 상도 몇 번 받았고요. 변성기가 와서 쉬다가 청주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선생님 눈에 띄어 다시 노래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청주교대에 계시던 채완병 교수님을 소개받고 찾아 갔을 때 중학교 시절 노래하던 제 모습을 기억하시어 받아 주셨어요. 어려운 시절에 노래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채교수님의 적극적인 지도가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그때 당시만 해도 남자라면 일반대학이나 사관학교 진학을 기대하는 현실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힘들었다. 또 가정환경도 음악 활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일들이 순탄하게 일어났다. 서울음대 성악과에 합격하자 어려운 가정환경을 눈여겨 보아준 라이온스클럽(고등학교 레오클럽에서 음악활동을 한 인연)에서 4년 동안 장학금을 주었고, 지인의 도움으로 집까지 해결, 학업에만 몰두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임관했을 때에는 육군합창대 3대 지휘자로 발탁되어 2년 동안 음악 활동에 매진했다.

 

 

1974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페사로에 있는 롯시니 음악원을 거쳐, 러시아 성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청주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17년에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쉼 없이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의 길을 돕기라도 작정한 것 같을 만큼 모든 일이 짜임새 있게 이어졌다.

 

 

 

청주대학교에 들어와 재직하는 동안 그가 한 연주 활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오페라 공연이 전무하던 시절에 충북오페라단을 창단하고 첫 무대로 올린 오페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그때는 전공한 사람도 별로 없고 유학 다녀온 사람도 없던 때라 복잡했어요. 73년에 음악교육과가 생겼지만 오페라 한 번 무대에 올리는 게 힘들었어요. 87년부터 청주 시립합창단을 지휘하며, 88년에 충북오페라단을 만들었어요. 장소가 없어서 이곳저곳 쫓아다니며 연습했어요. 오페라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데 보람을 느껴요. 지금 청주아트홀 자리인 구 시민회관, 열악했지요. 서로 주머니 털어서 연습하고 홍보해서 무대에 올렸어요. 그래도 열기만은 대단했어요. 1,200석을 꽉 채웠어요.” 시민들과 학생들이 순수한 관객들이었고, 지금도 그때 오페라를 기억한다고 말할 때 감회가 깊다고 한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발전한 오늘날 오히려 관중 동원에 고심해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좋아서 해야 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큰 딸이 바이올린을 했었어요.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음악은 취미로 하는 것도 어떠냐고 했어요. 그 때는 마음이 좀 상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음악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유럽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유학 온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가 없다고 할 정도니까요.”

 

 

 

지휘자 정명훈이 누구나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지 말고 음악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서 음악적인 환경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 말과도 비슷하다. 뼈아픈 현실이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그들이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생계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졌다. 가르치는 선생으로서도 조심스럽다고 한다. 학생들이 부족하니 자꾸 전공과 연결시켜서 음악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구조조정의 여파로 음악교육과가 폐과되고 예술대학 학부로 줄어든다는 모순도 있다.

 

 

 

“음악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됩니다. 즐기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봐요. 연주 자체가 고통스럽다면 안 된다고 봐요. 무엇을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능력치가 다섯이면 그 선에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고음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가진 음역에서 최선을 다 하면 자신도 좋고 관중도 좋아해요.”

 

 

 

연주활동을 거듭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한 기억보다 잘 해주지 못한 아쉬운 부분이 더 생각난다고 한다. 비판과 꾸지람보다 칭찬이 더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명예교수로 학교 현장에 나와 가르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비평가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만 하면 잘한 거야!’ 하고 젊은 후배들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박수 칠 때 떠나고, 박수 치며 인생의 뒤안길을 걷는 테너 김태훈의 미덕이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이종수 서근원 2017.1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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