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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 연주, 지휘

김기무

“비올라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조율하듯 음악과 사람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소        개 악기와 사람을 잇는 비올리스트
활동분야 비올라 연주, 지휘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대학 출강, 비올라 연주
해시태그 #비올라 #지휘 #비올리스트 #김기무
인물소개

악기와 사람을 잇는 비올리스트 김기무

 

비올라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조율하듯 음악과 사람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비올리스트 김기무. 그는 비올라라는 악기 그 자체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가출을 할 만큼 정열적이면서도, 중간 음역대에서 조율하듯 음악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 듣는 것과 악기 다루는 것이 좋았어요. , 어린이합창단 시절에는 무대에서 주목 받는 걸 굉장히 즐겼어요. 무대에 서는 게 전혀 긴장되지 않고, 재미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적어 내면 다른 친구들은 대통령이 되겠다,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나는 음악가가 되겠다고 썼어요.”

 

시향이나 예술단 연주를 많이 들으러 다니다가 비올라를 선택했어요. 처음에 부모님은 남자가 무슨 음악을 하냐고 반대를 심하게 하셨죠. 두 분 다 교육자이셔서 남자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는 가출도 했었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악기 사놨다고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어렵게 음악을 시작했어요.”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듯하다. 소중한 만큼 늦게 시작해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 그는 말 그대로 음악에 미쳐 살았고 연습벌레로 살았다. 음악 선생님께서 너는 음악을 해야 한다며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실 정도였다.

 

청주에서 비올라를 제가 처음 했을 거예요. 처음부터 비올라로 시작하여 계속 하고 있는 것도 저 하나일 거예요. 당시에도 그랬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는 알아도 비올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비올라가 부는 악기인 줄 알고 있어요. 비올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악기예요. 지금도 비올리스트라고 하면 다들 무슨 악기냐고 물어봐요. ‘바이올린보다 조금 더 큰 악기라고 대답하곤 하죠. 보기에는 바이올린과 비슷하지만 소리부터가 달라요. 비올라는 중음을 내요. 알토 역할을 해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죠.”

 

 

진정한 비올리스트로서

 

그는 2002년에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뮌헨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 아우구스부르크 시립교향악단과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해외 무대에서 전문연주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비올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있는 테아터 오케스트라 시립교향악단에서 오디션을 보고 동양인 최초로 2백 년 된 오케스트라에 들어갔어요. 외국인에게 그런 좋은 자리가 주어지기는 어렵거든요. 귀국해서는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으로 활동도 했어요.”

자부심이다. 큰 규모의 협연에서나 보이는 비올라는 뒤늦게 용재 오닐이라는 한국계 연주자 덕분에 인기가 많아졌다.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이 늘어나면서 그만비올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었고, 그에 따라 비올라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악기와 사람을 잇다

 

비올라는 앙상블에 맞는 악기여서 현악 4중주에서 빛을 발한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비올리스트인 그도 악기를 닮아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금 제가 충청필 수석과 충주시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있으면서 중점을 두는 것은 청주에서 자리를 잡고 연주 활동을 하는 제자들을 길러내고 이끌어주는 역할이에요. 관객들이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음악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도 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앞서 가신 선생님들도 그러셨고요. 그래야만 청주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비올라만큼이나 그도 따뜻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부드럽고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비올라처럼 그가 걸어가는 인생 또한 그런 듯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매력 있는 비올라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열심히 갈고 닦아야만 하듯이 그의 연주자로서의 인생과 비올라는 많이 닮아 있었다.

 

연주자로서의 절실함


그는 절실함이 있어야만 음악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절실함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지금 학생들은 그게 부족해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모든 걸 지원해주니 음악에 절실함이 없는 거죠. 그러니 제가 몸소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만 제자들도 절실함을 갖는 것 같아요. 비올라는 다른 악기에다 맞춰야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절대음감보다는 상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유리해요. 바이올린이 음정을 높게 잡으면 높게, 낮으면 낮게 맞춰야 하니 자기 음을 고집하기보다 양보하면서 연주해야 하죠.”

 

그래서 그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비올라를 좋아하지 않고 절실함이 없으면 레슨조차 해주지 않는다. 섣불리 전공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비올라라는 악기 자체가 되려는 절실함이 있어야 가르친다고 한다. 스스로 비올라는 선택했다는 소중함을 받아들이고 악기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는 말한다.

 

그는 아직도 음악을 사랑하던 유년 시절처럼 비올라가 좋다. 비올라를 가르치고 연주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 그에게 고향 청주에서 활동하며 제자를 키워내고, 비올리스트로서의 고독한 열정을 키워나가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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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염종현 2019.03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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