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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색소폰

안태건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악기”

소        개 색소폰 대중화를 꿈꾸는 연주자
활동분야 음악, 색소폰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음악, 색소폰
해시태그 #안태건 #음악 #색소폰
인물소개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한 악기”

어릴 때부터 악기와 함께 해… 방송 무대 세션으로까지 활약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당시엔 시골에 기타가 있는 집이 드물었는데 청계천에서 원단 공장을 하던 부친의 취미가 기타 연주여서 집에 통기타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걸 튕기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지역의 색소폰 연주자 안태건 씨다.
“초등학교 때 고적대에서 드럼을 치며 음악을 시작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통기타 동아리와 합창단에 들어갔어요. 색소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했죠. 당시 그룹사운드 붐이 일 때였는데 선배들의 연주회를 보고 감명을 받아서 동급생들과 그룹을 결성해 드럼 주자로 있다가 기악부에 들어가 색소폰을 접했어요.”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비는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색소폰을 불게 됐지만 이내 색소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한 악기가 색소폰이라고 말한다.


“흔히 바이올린의 소리가 인간 목소리에 가깝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 음을 가지고 ‘올리고 내리고 떨고’를 사람 목소리처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악기가 색소폰입니다. 가수들이 목소리에 여러 기교를 싣는 것처럼 색소폰도 기술적인 게 많아요. 기타처럼 음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피치밴딩’, 소리를 긁어서 내는 ‘칼톤’,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는 ‘서브톤’ 등 다양하죠. 모든 악기의 기본이라는 피아노도 88개 건반이 음역의 전부이지만 색소폰은 연주자에 따라 3옥타브 파#의 진성 음역 대를 넘어 4옥타브까지도 낼 수 있어요. 사람으로 치면 가성을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그의 음악 학원에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색소폰은 종류도 많아요. 소프라노 색소폰 등 7가지나 되죠. 배우시는 분들은 주로 여성은 알토나 소프라노를 좋아하고 남성, 특히 중년층에선 테너 색소폰을 선호하고요.”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안 씨는 대학에 가려고 했으나 당시엔 색소폰이라고 하면 소위 카바레라고 부르던 밤무대 악기라는 인식이 강했고 관련 학과도 없었기에 전문적으로 배울 곳 역시 없었다.
“초·중학생 때는 어리니까 장래를 생각하기엔 이르다고 판단하셔서 부모님이 별 말씀 없으셨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음악 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그러다 약속을 하자고 하시더군요.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그래서 말씀대로 했어요. 학업과 음악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나중에는 아버지께서 교재를 사주시기도 하면서 응원해주셨죠. 그래서 당시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 한 게 아쉬웠어요.”
고교 졸업 후 군대에 가기 전까지 관광호텔 등 밤무대에서 연주를 했다. 당시 밤무대에는 카바레, 스탠드 바, 미드나잇 바 등 레벨이 존재했는데 지금의 카바레와 달리 그 때의 카바레 연주진은 제대로 진용을 갖추고 정식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전문 악단이었다.


필드에서 이어진 연주 활동은 그에게 악보 없이 제목만 듣고도 연주할 수 있는 실력과 감각을 갖추게 했다. 1990년까지 2년의 경험이 굉장한 도움이 됐다는 것이 안 씨의 설명이다.
1992년 제대 후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1997년에는 10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방송에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력파 가수들이 라이브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무대에 서게 된 것.
가수 이소라의 이름을 걸고 하던 프로였으니만큼 그 무대에선 MR(녹음된 반주)이나 AR(립싱크)이 허용되지 않았다. 거기서 안 씨는 색소폰으로 세션을 맡고 독주도 했으며 신인 가수의 음반 연주도 하게 된다.

 

체계적인 음악 공부 후 후진도 양성… 색소폰 대중화가 염원


그 즈음 찾아온 것이 공부의 필요성이었다. 일단 고졸이라는 학력이 문제였지만 감각적으로 하는 연주를 넘어 화성학 등 이론이 활동하면서 절실히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주 서원대 음악과에 입학해 졸업을 하고 동 대학 음악교육대학원에 들어가 2년 반 후 석사로 졸업한다.
“감각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버클리나 줄리어드엔 못 가더라도 이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후 충북보건과학대 실용음악공연과, 충청대 등에 출강하면서 청주예총의 16회 ‘신인 예술상’을 수상하고 청주예총 연예예술인협회 연주분과 위원장, 직지 팝스오케스트라 수석 단원, CJB 교향악단 단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실용음악 학원이 별로 없던 2008년 금천동에 학원을 차린 이래 현재까지 음악 선생으로도 이름을 명성을 높이며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가 말하는 색소폰의 장점은 무엇일까.
“색소폰이라는 게 몸체는 금관이지만 소리의 떨림이 시작되는 마우스피스에 대나무를 깎아 만든 ‘리드’를 끼운다고 해서 분류는 목관악기죠. 그 덕에 금관의 화려함과 목관의 부드러움이 오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우선 색소폰은 입문하기가 쉬워요. 목관악기다보니 소리를 내기가 쉽다는 거죠. 운지도 쉽습니다. 물론 한글처럼 갈수록 어려워지기는 하지만. 그리고 사람 감정을 표현하기가 수월해요. ‘댄서의 순정’이라는 노래에도 있잖아요? ‘울어라 색소폰아’라고요. 또 다른 악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하기도 편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평소에 배워뒀다가 모임에 나가서 색소폰을 꺼내 한 곡 멋들어지게 부는 모습을. 아쉬운 점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색소폰을 밤무대와 연결시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 편견이 없어지고 색소폰이 한층 더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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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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