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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클래식

이영석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 러시아 유학 시절”

소        개 지휘자·음악감독
활동분야 음악, 클래식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지역 합창단 창단·지휘, 대학 출강 등
해시태그 #이영석 #라포르짜 #쉐키나 #청주음악협회 #충북음악협회 #러시아
인물소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 러시아 유학 시절”

지휘자 없던 시절 배움에 목말라 러시아行


지난 2013년 청주음악협회장에 선출된 이영석 지휘자 겸 음악감독은 지역에서 음악을 하거나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다. 운호고등학교를 나와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한 유학파다. 당시에는 지휘를 제대로 배운 이가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청주시립예술단이 처음 생긴 1993년에 합창단의 초대 단무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1996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국립음악원에서 5년 과정을 거치고 귀국했죠.”
음악교사였던 부친 덕에 당시엔 흔하지 않던 바이올린이 집에 있었고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게 됐다. 초등학교 땐 바이올린과 피아노, 중학교 땐 성악, 고교 땐 작곡을 공부했다.
“제가 증평초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때 전교생이 2500명이었는데 피아노를 치는 학생이 남학생 선배 한 명과 저까지 딱 두 명만 있었어요. 당시에 클래식 음악을, 그것도 남자애가 피아노를 치는 경우는 드물었죠. 그래서 애들이 저를 놀리기도 많이 놀렸습니다. 현악반에서 바이올린을 켜는데 놀림이야 어쨌건 재미는 있더군요.”
청주대 졸업 후 시립합창단의 단무장을 할 당시 국내엔 지휘자가 없었다. 시립예술단이 생기고 청주예술의전당 개관 기념 연주회를 준비하는데 러시아 지휘자가 객원 지휘를 하게 됐다. 그걸 보고 ‘지휘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에 눈이 뜨였다.


“그 분의 마스터 클래스를 듣고 제대로 배운 지휘자의 지휘를 보니 유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 전에 이미 어린이 합창단 등을 구성하고 음악 활동을 하다 보니 지휘에도 관심이 있던 중에 그 분의 지휘를 보고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던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유학 시절이 그에게는 가장 좋았던 때인 것 같다고 한다. 본인이 먼저 떠나고 피아노 치는 아내가 6개월 뒤에 뒤따라 러시아에 왔다. 현지에서는 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듣는 게 생활의 거의 전부였다.
“국립음악원 학생이면 연주·오페라 관람이 무료였어요. 전용 자리도 있었죠. 물론 유료 관객이 아니라서 관람하기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있는 한 거의 매일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만나며 음악적 꿈도 키울 수 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리허설만 봐도 무척 큰 공부가 됐거든요. 재산 전부 팔아 떠나온 유학이었기에 앞길이 불안해서 쫓기듯 공부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일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오로지 음악에만 파묻혀있던 시기였으니까요. 물론 다른 데 신경 쓸 여력도 없었지만.”

 

지역에 오케스트라 반주 붙은 합창을 선보이다


귀국 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하게 됐다. 지휘를 전공했다 보니까 이론이 강해서였다. 특히 지휘는 악기 하나만 다루면 되는 연주자를 넘어 음악을 전반적으로 봐야 하는 위치다. 화성학 등 모든 이론으로 완벽하게 무장하고 있어야 비로소 곡을 해석할 수 있다.
“쉐키나 남성합창단(쉐키나는 후광, 찬가의 뜻을 가진 영어 Gloria의 히브리어다)을 조직해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충북에선 최초로 공연했습니다. 그밖에도 충북에서 처음 선을 보인 곡이 많아요. 그때만 해도 합창단은 가곡 한 두 곡 등 소품 위주로 공연을 했는데 제가 지휘를 하면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은 곡을 제대로 무대에서 부르는 자리가 생기게 된 것이죠. 쉐키나를 통해 많은 곡을 선보이니까 주변에서 ‘들을 만한 합창단이 생겼다’는 호응을 얻었습니다. 레온카발로 오페라 ‘팔리아치’도 첫 작품이라 기억에 남고요.”
세월호 사건이 난지 150일이 되던 2014년 9월에는 라포르짜 오페라단과 함께 G.포레의 레퀴엠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도 했다.
쉐키나 남성합창단 외에도 이 씨의 이력은 무척이나 많고 다채롭다. 지휘한 공연은 발췌한 것만 50개에 달하고 그가 맡고 있거나 현재도 지휘 등을 맡고 있는 단체 역시 청주YWCA 여성합창단, CBS 합창단, 충북도청 합창단, 충북작곡가협회, 충북음악협회, 라포르짜 합창단, 라포르짜 오페라단, 파주시립합창단, 청주음악협회 등 다양하다.

 

“청주 대표하는 창작 오페라 만들고 싶어”


그는 귀국 후 목원대, 국립강원대 등에 출강을 나갔지만 정작 모교인 청주대에는 갈 수가 없었다. 청주대는 강의 경력이 2년 이상이어야 강사로 받아줬다고 한다. “모교에서도 안 받아주는데 누가 우릴 써주겠냐”는 자조가 절로 나오던 시기였다(다행히(?) 2004년 3월부터 2014년 2월 말까지 청주대에서 합창지도법 시간강사를 했다). 그만큼 지역은 그에게 있어 뭔가 막힌 곳이었다.
“전국에서 충북만 시립예술단이 하나입니다. 제주도만 해도 2개인데 말이죠. 그래서 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타지 사람들이나 다른 단체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시립이 존재하는 이유는 시민의 문화소양을 높여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합창단이 가요나 노래할 게 아니라 감동이 계속 남는 음악을 해야죠. 그래도 10여 년 전보다는 관객과 단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좋은 음악회를 찾는 관객도 많고요.
합창단을 넘어 그에겐 앞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창작 오페라 무대를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오페라를 가끔 하는데 이게 오케스트라, 솔로, 음향, 조명 등 대략 150명 정도가 움직여야 해요. 그러니 밥값만 해도 어디인가요. 못 해도 1억 원대는 들어가요. 한 작품 올리기가 쉽지 않죠. 1년에 한 편하기도 버거운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청주를 대표할 수 있는 창작 오페라 작품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예전에 청주 직지 오페라 창작품이 있었는데 사장됐어요. 등장하는 인물 중 스님이 여성 때문에 갈등하는 묘사를 놓고 불교계가 반발했거든요. 더구나 초대 관객으로 스님들을 모셔놓고 그런 장면을 보여줬으니 반발하는 게 일견 이해가 가죠. 그래서 지금은 음악만 발췌해 갈라 콘서트만 하고 있습니다. 아쉽죠. 어쨌든 그런 작업을 제가 해서 잘 되면 해외로 들고 나가 연주해보고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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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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