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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대중음악

전부성

“정통 성인가요의 길 계속 걸을 것”

소        개 운명을 선택한 트로트 가수
활동분야 연예, 대중음악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트로트 가수
해시태그 #전부성 #옛날애인 #운명처럼 #고향친구 #소중한당신
인물소개

“정통 성인가요의 길 계속 걸을 것”

평범한 삶 버리고 운명이었던 가수의 꿈 택해


사택 딸린 좋은 회사에 3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회사 생활하며 돈 버는 삶에 만족했을 테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을 아주 눌러버리지는 못 했고, 결심을 들려준 아내는 이혼하자고까지 했으나 끝내 그는 ‘가수’가 됐다. 지역의 트로트 가수 중 한 명인 전부성 씨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길 좋아했어요. 군대에 가서 사단 장기자랑에 나갔는데 거기서 입상하고 문선대로 차출됐죠. 그게 가수의 꿈을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그리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1990년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당시 목포가요제에서 입상하고 이어 충북예술제의 신인 가수 선발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발매한 앨범이 모두 12트랙이 수록된 ‘고향친구’였다.
“가수 데뷔하는 사람이 3만 명이라면 그 중 30명도 뜰 수 없어요. 사법고시 합격하면 플랜카드 내걸죠? 연수원에선 1년에 몇 백 명가량 된다던데 가수는 10년 걸려도 히트곡 하나 내기가 어렵죠. 돈, 조직, 실력, 인맥을 다 합쳐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스타’인 거죠. 그만큼 가수들이 ‘궤도’ 안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내 노래를 대중이 따라 부르고 어디 가든 나를 알아봐줄 때 가수로서 살아갈 수 있지, 그렇지 못 하면 생계가 안 돼요.”
음반 취입 후 방송 활동을 하다가 방송사 프로듀서들의 눈에 띄어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가요톱10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인으로서 얼마 되지 않는 방송 수입으로는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1993년부터 그는 방송을 접고 전국의 다운타운에서 노래를 불렀다. 소위 말하는 밤무대였다. 그래도 업소에서 받는 돈은 방송 수입보다 컸다. 당시 공무원 초임의 4∼5배였다고 한다.


“많았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거죠. 출연료라고 들어와 봤자 의상 등 준비하고 아이들 양육비 제하면 남는 것도 없었어요. 방송 초기였는데 공연장에 가면 사인 받으러 오는 팬들을 위해 가수 별로 줄을 세워요. 그런데 제 앞엔 아무도 안서더군요. 되게 머쓱했죠. 지금은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가수가 되긴 했지만 아내가 한 달에 100만원만 벌어다 달라고 할 정도로 생활이 힘들었다. 결국 그는 마이크를 놓고 법인택시를 2년 정도 운전하다 공장에 취업했다.
그러나 시쳇말로 운명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노래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2012년 ‘운명처럼’으로 다시금 가수로서 무대에 서게 됐다.
“밤업소 수입은 고정적이지가 않잖아요. 게다가 IMF가 터지면서 그나마도 거의 절반이 깎였어요. 그래도 꿈을 못 접은 건 운명이고 팔자 아니었을까 싶어요. 공장에 다니다가 2006년쯤 업장을 차리고 손님들에게 리메이크 CD를 돌렸는데 그게 서울 작곡가들 눈에 띈 겁니다. 그래서 ‘운명처럼’을 발표하게 됐죠. 그런데 주위 반응이 좋았어요. 결국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가 활동을 재개했죠. 반대하던 아내도 제가 옛날에 꿈을 접었던 게 내심 미안했던 터라 무리는 하지 말라며 동의해줬죠.”


‘운명처럼’의 노랫말은 그의 가정주부인 누나가 썼다. 처음부터 누나가 가사로 하라며 써준 것은 아니고 동생인 전 씨가 힘겨운 삶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로 인해 가정에 소홀했던 모습을 누나가 편지로 썼는데 그 글이 마음에 들어 전 씨가 노랫말로 옮겼고 그게 타이틀곡이 됐다.

 

“대중들이 오래 기억하는 노래 부르고 싶어”


그의 본명은 전태영이다. 본명도 나쁘지 않아 ‘왜 예명을 쓰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냈는데 거기 소속된 가수 중에 같은 이름이 많아서 바꿨다고 한다.
아들 3형제 중 쌍둥이인 전승현 씨와 전승호 씨도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서인지 서울에서 각각 세션과 인디 밴드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뮤지션으로 통한다.
전 씨는 가수로서 자리를 잡은 지금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주 공연을 한다. TBC에서 태진아 씨 등과 동행하거나 케이블 성인가요 채널인 inet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최근에는 ‘정의송 송년 디너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올라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요즘은 지방에 가도 알아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신인 때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어요. 지금도 많이 벌진 못 하지만 지출과 수입이 비슷한 수준이 됐습니다. 매니저 월급 주고 차량 유지는 할 수 있게 됐죠. 이젠 집에서 돈 갖다 쓰고 그러진 않아요. 전 노래를 히트시켜서 돈 벌 욕심은 없어요. 그저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모으면 좋겠네요.
그는 2017년에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운명처럼’ 발표를 기념, 지난해 CJB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콘서트에 우정 출연했던 가수 민지 씨(‘초혼’)와 함께 한다.
“전 이제 대표적인 저음 캐릭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정통’이 사라지는 게 요즘 성인가요계의 흐름이지만 저는 계속 정통 트로트를 부를 거예요. 그리고 대중들이 오래 기억하는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습니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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