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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도자

김만수

"평면과 입체의 중간… 흙 속에 몸을 담아 빚다"

소        개 도림 공방 대표
활동분야 도예, 도자
활동지역 청주 수름재
주요활동 토우, 도예, 도자, 도림공방 운영
해시태그 #김만수 #도예 #도자 #토우 #청주 #수름재 #도림공방
인물소개

평면과 입체의 중간… 흙 속에 몸을 담아 빚다

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 생활 속 대중성이 도예의 매력

 

청주시 청원구 주성동 수름재 고개에서 나무가 우거진 구 도로로 진입하면 100m도 못 가서 오른쪽에 가배시광이라는 카페의 간판이 보인다. 모르는 사람은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있구나 하겠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카페 아래에 도자기 굽는 가마와 작업장이 보인다. 지역의 도예 작가들 가운데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인물 중 하나인 김만수 씨(55)가 운영하는 도림 공방이다. 추위가 다소 풀린 12월 초에 찾아간 김 씨는 작업장 정리에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그림으로 시작했어요. 제 고향이 단양인데 21살 때였나, 방곡에 우연히 갔다가 거기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충북대학교 임상묵 교수님을 만나게 됐죠. 당시 응용미술과에 몸담고 계시면서 그 분도 그림에서 도예로 전향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의 도예 작품들을 본 게 제가 그림에서 도예로 전향한 계기입니다. 며칠만 있으려고 했던 시간이 제 작품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됐죠.”지금까지 11회의 개인전을 열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던 김 씨는 청주대학교 공예과와 동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토우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토우 작가’로 구분지어지는 것을 그다지 반기진 않는 눈치였다.

 

“제가 토우를 전문으로 만드는 줄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데 제 공예 작업에서 토우는 절반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도자이고요.”그에게 도예 작업이 가지는 매력을 묻자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토우에 대한 논문도 썼지만 제가 생각하는 도예는 ‘몸을 담는다’입니다. 저 자신을 온전히 작품에 담는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림의 경우 완성시켜도 그저 시각적으로 보기만 할 수 있으나 그릇 같은 작품은 일단 흙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매력과 함께 대중성도 갖고 있어요. 보고 즐길 수 있거니와 실생활에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학교를 졸업한 김 씨는 지난 1988년 당시 수름재 가든 자리에 도림 공방을 차리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의 장소로 옮긴 시기는 1992년에서 1993년 사이 어디쯤이다. 장소를 옮겼다고는 하나 이동 거리가 100m도 안 되는 판이니 그의 작품 생활은 온전히 수름재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는 나무가 많은 곳에서 도자기를 빚고 싶었다는 바람을 담아 공방의 이름을 ‘도림(陶林)’으로 지었다고 한다. 공방 주변 풍경을 보면 그 바람대로 장소를 잘 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인식 버려야

 

토우 외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평면과 입체의 중간 쯤’이라고 말한다. 작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쓰임에도 문제가 없게 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병 하나를 만들어도 완전히 원으로 만들기보다 납작하게 눌린 모양으로 하면 한 쪽에서는 둥그런 모양이, 다른 쪽에서 보면 납작한 모양이 보이죠.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병으로서의 쓰임새도 유지하는 것이죠.” 그래서 김 씨는 도자 작품 주제를 2차원과 3차원의 사이라 해서 ‘2와 2분의 1’로 잡는다.

 

그는 고향인 단양에서 6·25 때 벌어진 영춘 곡계굴 사건을 모티브로 해 2007년 주민 400명의 토우를 만들어 당시 미군의 폭격에 희생된 영혼을 달랬다. “토우 작업이 어떤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합해요. 제 경우 처음엔 ‘흙의 소리', ‘자연’, ‘환경’ 등을 주제로 하다가 ‘사람의 고통’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곡계굴 토우는 그래서 만들게 된 것들 중 하나이고요.” 청주는 (외부에서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교육과 문화의 도시로 불렸다. 30년 이상 지역에서 그림과 도예 활동을 해 온 김 씨에게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청주는 문화가 약한 편이라고 봅니다. 살아보니까 그래요. 쓰임에 대한 문제인데 사람들이 먹는 데는 몇 만원을 써도 작품 한 점 구입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작가들이 살 수 있게 해야 하죠. 무작정 지원을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문화는 곧 생활이에요. 생활 속에서 작가들이 손수 만든 컵 소품 하나라도 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저희들도 모여서 만족할 만한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계속 토론해야 하고요.”그의 말에서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뒤섞인 듯한 뉘앙스가 풍겼다. 약 30평의 작업장에 단 둘이 있는데도 그의 말이 전하는 열기에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태어난 곳은 단양이지만 어릴 적엔 청주가 제일 좋은 곳인 줄 알았죠. 지금도 청주가 좋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작업 활동을 청주에서 하고 있으니 전 청주 출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고향’과 ‘출신’은 그런 의미에서 구분을 지을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단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아직도 지역에는 ‘작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요. 작가도 하나의 노동자입니다. 소위 ‘빵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청주시나 다른 기관도 작가와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줬으면 합니다. 시민들도 기계로 찍은 컵이나 접시가 아니라 작가의 숨결이 깃든 작품을 일상에서 쓰는 것이 문화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해요.”그가 데리고 있던 제자 이상원 씨는 올 봄에 분가, 벽화 골목으로 유명한 수암골 밑에 작업장을 열었다고 한다. 김 씨의 작업 활동도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방증이다.

그는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들끓는 현재의 시국 상황을 보고 새로운 토우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른바 ‘국민의 절규’이다.

 

“어떤 기획전 같은 것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그 때 그 때의 느낌을 담아서 한 점 한 점씩 만들어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려고요. ‘100만의 1’, ‘100만의 2’ 이런 식으로요. 지난달에 한 장을 올렸고 앞으로도 계속 올릴 생각입니다. 지금도 스케치는 계속 하고 있어요.”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자주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한 개비의 반을 피우고 끄더니 조금 있다가 남은 반을 마저 피우길 몇 번씩 반복했다. 전에는 하루 한 갑 반 가량 피웠는데 이제 담배를 줄이기 위해 그리 한다고. 인터뷰 말미에 향후의 작품 활동 계획을 물었다.

 

“청주예술의전당 뒤쪽에 넥스트 미술관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서 기획전 ‘2와 2분의 1’을 열 계획이에요. 시민들이 작품을 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게 가격대도 상대적으로 낮췄으니 많이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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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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