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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천미선

운명이 된 도자기

소        개 불의 고통을 이겨낸 빛깔
활동분야 도예
활동지역 청주, 전국, 세계
주요활동 작품, 교육, 전시
해시태그 #“樂” 즐거운도자기
인물소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흙을 만지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온 길, 그리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어떤 삶이든 즐김에 이르는 단계가 최고의 경지라 했던가. 그 길 언저리에 서 있는 천미선 도예가, 바람처럼 자유로운 경지를 지나 흙을 만지며 즐거움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가 보다. 결기 어린 눈빛과 달리, 표정은 불의 고통 이겨내고 자연의 빛깔을 머금고 있는 작품들처럼 평화롭다.

 

운명 같은 도자기, 그리고 인도여행

 

도자기를 막 굽기 시작했을 때 인도로 떠났습니다. 왜 하필 인도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그곳이 인도였습니다.”

 

혼잣말처럼 낮은 소리로 말하며 차를 우린다. 그 태도가 제물祭物을 준비하는 손길처럼 엄숙하다. 차를 따르는 천미선 작가 손은 여인의 손이 아니라 흙을 만지고 살아온 장인의 손이다. 창 너머 단풍나무에 물이 들었다. 삶의 화두를 안고 떠난 인도 배낭여행에서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 소나 돼지가 아무렇게나 도심을 활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나라, 윤회의 순리 앞에 순응하며 현실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인도인들에게서 무한한 자유와 자연의 순리를 보았다고 말한다.

 

불의 고통 이겨내고 자연의 빛깔 머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걸 좋아했고 흙 만지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길을 평생 가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가까운 친척 중에 도자기 명장이 계셨다. 하지만 도자기 하면 무시당하고 배고프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셔서 그런가보다 그 정도였다. 결혼 후 우연히 인연이 닿아 취미로 청주도림공방김만수 선생님께 배웠다. 그곳에서의 육여년 동안 의 시간은 내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문경요에 서 차도구를 지금은 무형문화제 지정 받으신 천한봉선생을 찾아가 배웠다.

 

가마 때는 일부터 공부했다. 상상하며 흙을 빚고 상상한 대로 형태를 만들어 그림을 그린다.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는다. 하지만 불의 고통 이겨내고 자연의 빛깔 머금고 나와 작가를 웃게 하는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산산조각 부숴버리는 게 대다수다. 그중에서 더러는, 고통의 강을 넘어 자유의 경지를 지나서 불숨을 쉬면서 세상에 나온 작품을 만나는 그 희열감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작가의 혼이 그대로 녹아 흐르는 작품을 대하는 희열감에 미쳐서 평생을 걸게 된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세계적 도자기 천국인 중국 경덕진에서 이여년간 작업하고 작품으로 개인전 천국에서 꽃을 보다를 전시했다. 중국은 도자기작품이 나오기까지 세분화시켜 움직인다. 물레를 차는 이, 굽을 깎는 이, 그림을 그리는 이, 그리고 가마 때는 이, 유약 바르는 이가 따로 있다.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고 좋은 재료와 편리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작가가 작업하기에는 최적화되어 있어 도예가라면 한번은 와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 하겠다.

 

발상의 전환, 상과 퇴수기의 결합

 

중국에서 돌아와 천미선 작가의 작품세계가 달라졌다. 큰 작업을 했다. 중국에서 벽채 만한 작품을 하는 걸 보고 따라서 시도했다. 물레 돌리는 작업이 힘을 요하다 보니 많이 하기에는 버겁다. 뭔가 새로운 걸 해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걸 해야 한다. 판 작업을 시작했다. 도재, 찻상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주대학교 석사 논문을 찻상으로 했다. 생산성은 떨어지나 자급자족할 정도는 됐다.

 

2008년도에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천미선의 휴찻상을 했다. 그해 했던 전시회가 천미선 작가에게 커다란 획을 그은 계기가 되었다.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물레기법으로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국내에 여럿 있었다. 하지만 물레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두드리고 빚어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드물었다. 천미선 작가의 파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천미선 작가는 고민하는 작가다. 당시까지는 차애호가들 사이에서 찻상과 퇴수기가 분리되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천미선 작가는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당연시되는 것도 불편하면 바꿔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각종 차 도구와 찻상을 만들다 마음을 두드리는 생각이 있었다. 직접 차를 마셔봐야겠다고 작정하고 1년 동안 차를 배우러 다녔다. 찻상을 사용하다 보니 눈이 열렸다.

 

격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결국 다구(茶具)는 사람이 쓰는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찻상에 구멍을 뚫어 퇴수기를 찻상 안쪽에 놓아 물을 받는 방법을 착안했다. 쉽지 않은 발상이었다. 찻상과 퇴수기가 하나로 합체되는 순간이었다. 다구가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다. 둘을 하나로 합치니, 번잡함이 한결 줄어들었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면 쓰는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한다.

 

감상과 쓰임을 겸하는 작품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

 

 

천미선 작가는 물레가 아닌 판상 기법으로 도자 찻상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찻상 하나를 만드는데 한 달은 족히 걸렸다. 점토질이 강한 산청 흙과 중국 경덕진 백자토를 혼합해 도판을 만들어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적당히 건조된 도판과 받침대를 붙이고 찻상 중앙을 뚫어 멋스럽게 문양을 냈다.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통해 완성된 천미선 표 찻상은 마침내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매년 한 가지씩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한 가지씩 이루어가다 보면, 미래의 종착역은 알 수 없지만 삶의 방향은 잡힐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은 미술을 하는 아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 중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돌아온 아들은 도자기 도판을 화선지 삼아 산수화를 그려 넣는다. 작가는 최근 초대 작가로 네팔에 가서 한 달간 전시회를 했고, 프랑스에 가서 한 달 전시하면서 현지 작가들과 교류했다. 꽃살문을 넣어 화려하게 채색하여 서랍장 파티션을 만들었는데 도자기로 어떻게 섬세한 문양을 넣을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천미선 작가 작품은 일본으로 가 극찬을 받았고, 여러 전시에서도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요즘은 이라는 주제로 감상도 하면서 쓰임을 겸하는 작업을 한다. 걸어놓고 보관하면서 감상하고, 필요하면 내려서 편안하게 사용하도록 디자인하였다.

 

천미선 작가는 청주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대학원 공예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충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한다. 2006년도 청주한국공예관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국내 지방 초대 순회 전시를 무수하게 했다. 중국, 프랑스, 인도, 네팔 등 해외초대전도 여러 차례 했으며, 여전히 자연과 인간의 공존작업을 즐겁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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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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