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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가야금

송정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        개 강단 있는 가야금 연주자
활동분야 국악, 가야금
활동지역 청주, 충북, 서울
주요활동 공연, 강의
해시태그 #송정언 #국악 #가야금 #공연 #연주 #문화예술 #퓨전국악
인물소개

고집으로 쟁취한 가야금

 

송정언 씨는 고등학교 때 처음 가야금을 시작했다. 예고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일반고에서 가야금을 시작한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야금을 하는 선배도 늦게 국악을 시작한 경우였는데, 그 선배에게서 그녀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학교 오가는 길에 있던 국악 학원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를 것을 좋아했고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도 수업 시간에 노래할 기회가 있으면 아이들이 그녀를 지목할 정도로 노래 실력이 있었다. 

 

증조부와 함께 4대가 사는 집안에서 자랐고, 현재도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외아들인 아버지는 괴산 출신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어려서는 천자문을 썼고 가족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과제를 해야만 했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가야금을 하면 기생이 되는 줄 아는 분들이셨다.  방학 한 달만 배우겠다고 약속하고 국악 학원에 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방학이 끝나도 계속 학원에 다녔다. 집안의 반대가 더 심했다. 워낙 고집이 센 그녀는 허락을 듣기까지 한 달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손녀 죽겠다고 어른들을 설득시켰고 결국 가야금을 쟁취하고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세상물정 모르던 음대생

 

일반고등학교에서 국악 공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해야 하고 학교가 끝나야 가야금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난생처음 접하는 악기이고 분야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대학 입시에 필요한 연주곡 위주로 연습해야 했다. 대학에 가보니 다른 학생보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났다. 예고 출신도 아니고 남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그녀는 친구들과도 선생님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선배들도 악기 안 하는 학생으로 알 정도로 그녀는 대학 생활에 대해 무관심했다. 왜 친구들과 선배들과 선생님과 어울려야 하는지 몰랐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내력이기도 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직이 되는 줄 알았다. 세상물정을 참 몰랐다. 졸업을 하고 몇 개월 집에 있으면서 세상에 대한 놀람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당시 친구들은 강의와 특기적성 같은 수업에 나가고 있었다. 송정언 씨의 첫 사회진출은 세종국악관현악단 인턴이었다. 일 년 동안 청주와 서울을 오갔다. 본격적으로 수업과 강사 일을 시작한 것은 26살 무렵이었다. 아는 지인의 소개로 청주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연주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학교 수업을 나갈 정도로 열심히 했다. 

 

 

가야금 연주자 송정언으로 다시 태어나다

 

송정언 씨의 연주 활동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30대에 접어들 무렵이다. ‘십 년 후의 너의 모습을 생각해 봐라,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너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봐라’ 지인의 이 말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서른 나이에 인생 첫 스승인 백인영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과의 연이 시작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생님과 함께 지냈다. 선생님의 마실에 동행하기도 하고 여러 연주자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여러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공연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출연한 KBS국악한마당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그렇게 삼 년 반 넘는 시간 선생님과 함께했다. 그 시간이 가야금 연주자 송정언을 만들었다. 

 

첫 독주회는 대학원 졸업 연주회였다. 그다음 해 충북문화재단 신진예술인에 선정되어 독주회를 했고 충북민예총 젊은작가창작페스티벌 선정 공연 그리고 2016년 그녀의 연주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한 독주회를 연이어 열었다. 네 번째 독주회 ‘인연’은 청주아트홀 700석을 모두 채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러수교 20주년 모스크바 초청공연, 독일·드레스덴 KOREA 페스티벌,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초청공연, 카자흐스탄 세계무형문화엑스포에 초청 공연 등 다수의 해외 공연과 뮤직&갤러리 아트홀 인·가야금 앙상블 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전성기는 마흔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7년에는 충주시와 진천군에 초청되어 송정언 가야금 콘서트를 열었다. 이제 날개를 펴기 시작한 그녀는 충북을 대표하는 가야금 연주자, 송정언이란 이름의 브랜드가 되어 후배와 제자, 예술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김영범 서근원 2017.1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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