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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강의

박현숙

"스승님의 마음까지 이어받으려 노력했습니다"

소        개 가야금 선율을 대중 곁으로 품은 가야금 명인
활동분야 연주, 강의
활동지역 충북 청주, 전국
주요활동 연주, 강의, 공연
해시태그 #국악 #국악인 #가야금 #박현숙
인물소개

국악과 대중을 보다 가까이 가야금 명인 박현숙

 

가야금과 예인(藝人), 서로의 영혼을 비추다

 

열두 줄 가야금 현이 노래한다. 빠르고 경쾌하게 음과 음이 휘어 도는가 하면 때로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그 울림이 애절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전수자인 박현숙 교수(서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의 연주에는 희로애락을 길어낸 인간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마법처럼 다가온 가야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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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에 가야금을 시작한 박 교수는 <김죽파류>가야금 산조 연주자로 이름을 알린데 이어, <정남희제 황병기류>가야금 산조 전바탕을 사사받은 국악인이다. 그가 국악에 처음 입문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선견지명(先見之明) 덕분이었다. 아버지께서 우연히 찾아간 산사에서 흘러나오던 가야금의 선율에 감동받아 어린 여식에게 가르칠 것을 결심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에게 가야금을 타는 여인의 자태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여러 번의 설득 끝에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랐지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가야금은 한시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악기가 되었다. 가야금 뜯는 소리는 항상 귀에 맴돌았고 가야금의 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에도 마음속으로 가야금 한바탕을 연주하곤 했었다며 하루 중 여유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야금 연주만 생각하면서 보냈다고 회상했다.

 

 

구전심수(口傳心授), 그 깊은 가르침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진학한 그는 당시 스승이었던 김정자 교수의 권유로 김죽파 명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 당시의 수업은 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치는 구전심수(口傳心授) 방식이었다며 그는 선생님의 말씀, 표정, 손짓 하나라도 놓칠세라 시각, 청각 등 온 몸의 감각을 열고 마음에 아로새겼다고 전했다.

가야금 한바탕을 판소리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암기하고 다녔어요. 당시 고수를 맡아주었던 김동준 선생님께서 제 발이 떠다니는 것 같다며 실력이 겁나게늘어난다고 칭찬해주셨지요.”

이어, 그는 가장 행복한 기억중 하나로 대학 졸업 후 국립국악원에 보낸 시간을 꼽았다. 오전에 정악을 배우고 오후에는 판소리와 궁중무용 등 하루를 온전히 국악 속에서 보내면서 우리 음악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넓게 배우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에서 전국을 다니며 공연했던 기억은 즐거운 음악여행이기도 했어요. 국악공연을 마치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셔서 무척 감사했고요. 그때 청주에 처음 왔었는데 청주 초입에 있는 풍성한 가로수길이 인상 깊어서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고 기억에 남았지요.”

 

 

아름다운 가시밭길, ‘예술을 묵묵히 걷다


가야금을 통한 예술인의 길은 아름다운 가시밭길이었다
. 국내 최초로 서울 새울 가야금 삼중주단을 창단하여 보다 친숙하게 가야금을 알리고,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전국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 발전을 위해 분주히 활동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또다시 배움에 대한 갈망이 피어올랐다.

죽파선생님이 돌아가시고 10여 년간 스승의 발자취를 좇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음반 녹음을 앞두고 황병기 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께 조언을 듣고 그때부터 사사 받기 시작했습니다.”

15년간 <김죽파류>가야금 산조를 사사받았고, 17년 동안 <정남희제 황병기류>가야금 산조 전바탕을 사사받은 그는 ‘KBS 국악대상 수상’(2005·현악부문)을 비롯해 프랑스 샤를 크로 아카데미 월드뮤직상’(2013)을 수상하는 등 가야금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명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50여 년의 국악 인생을 뒤돌아보며


교육자이자 예인
(藝人)인 박 교수는 23년간 몸담았던 교단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30여회 이상 가야금 독주회를 개최하여 국악의 위상을 빛냈고, 프랑스·오스트리아·독일 등 해외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교육자로서 국악 발전을 위해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것을 비롯해 <서원가야금연주단>을 창단해 7회의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서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22년간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가르쳤다.

대학에서 국악인을 양성한 것뿐만 아니라 평생교육원에서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가르친 것 모두 뿌듯한 일입니다. 먼 지역에서도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수강생들의 열정을 보면서 깜짝 놀랐었지요.”

그는 대학에 남아 부전공 과목을 가르치고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가야금 수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서원대학교와 청주 아울러 충북의 국악 발전을 위해 남은 힘을 아끼지 않고 쏟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끝으로 덧붙였다. ‘가야금이었기에 그의 예술은 더 행복했노라고.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윤정미 염종현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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