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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박현진

“나 스스로 절대 흔들리지 않게끔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를 거듭해야 해요”

소        개 공부를 거듭하는 가야금 병창의 일인자
활동분야 국악
활동지역 충북 청주, 전국
주요활동 연주 활동, 레슨
해시태그 #국악 #가야금병창 #박현진
인물소개

공부를 거듭하는 가야금 병창의 일인자, 박현진

“나 스스로 절대 흔들리지 않게끔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를 거듭해야 해요.”

  

 
가야금 병창을 하는 박현진은 예향 광주 출신이다. 대학까지 광주에서 마치고 순천에서 대학교 전임교수로 있다가 결혼 후 대전을 거쳐 청주로 오게 된 남다른 예술 경로를 갖고 있다. 청주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기에 청주를 배경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다.

 

남편이 진천에 근무를 하게 되어 대전과 진천을 오가다가 청주에 집을 얻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천안과 청주를 두고 고민을 조금 했는데 청주가 마음에 들었어요. 깨끗한 도시라는 인상이 들어 집을 사고 무작정 왔어요. 이제 5년차에 접어들었네요. 청주에 인맥도 없어서 할 줄 아는 건 연주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게 이어지더라고요. 가야금 하는 양민아 선생과 대금 하는 최연정 선생과의 인연 덕분에 이렇게 청주에 자리잡게 되었네요. 초등학교에서 강사를 뽑는 프로그램이 있기에 갔는데 면접실에서 양민아 선생을 만났어요. 얼굴은 모르고 이름만 알던 때였는데 한 번 보니 금방 알겠더라고요. 그 뒤로 청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와 예술인들을 소개받아 오늘의 인맥이 된 거죠. 첼로 하는 분도 만나고 조명하는 분, 연극하는 분도 만났죠.”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연주자의 운명

그는 광주에 있는 전문 예술단체 우리소리예술단 소속이었다. 청주에 정착하면서 충북지부를 만들었다. 두 연주자 모두 우리소리예술단 이사장님의 제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청주에 왔을 때는 아이도 어려서 연주 활동보다는 레슨과 기존에 하던 다른 지역 공연에만 했는데 두 연주자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저는 가야금 병창을 전공했어요. 가야금 연주를 하면서 판소리 한 대목이나 민요, 단가를 부르는 거예요. 판소리도 하시는 선생님마다 곡조가 다르듯이 병창도 차이점이 있어요. 가야금 병창은 국가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이 되어있어요. 가야금 병창에는 강정렬 선생님, 안숙선 선생님, 강정숙 선생님이 계시는데 저는 안숙선 선생님의 계보예요.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는 이수자예요. 전수 과정을 모두 마치고 문화재청에서 시험을 보는데 거기서 통과를 해야지 이수자가 될 수 있어요. 청주에서 가야금 병창 쪽으로 이수자는 저밖에 없어요.”

그는 이수자임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파이다. 자비를 털어서 전석 무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서울 가서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도 깊이를 더 하려면 선생님을 만나서 다시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악기 특성상 손으로 눌러서 소리를 만들어내다 보니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자신만의 절대음정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매번 하던 곡이라 디테일하게 의식을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넘어가다 보면 잘못된 연주법으로 연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숙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좋겠다. 선생님이 있으니까.’ 하셔요. 당신도 그게 가장 슬프다고 말씀하시죠. 그렇다 보니 조급할 때는 이틀씩 가기도 해요. 가야금 병창이 연주하면서 소리도 해야 하니 어려운 장르거든요. 가야금 병창을 잘 하려면 가야금 선생님과 판소리 선생님, 산조 선생님까지 따로 있어야 해요. 판소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조통달 선생님께 배웠어요. 수궁가와 흥부가는 조통달 선생님께 배웠고 김수현 선생님 전수관에 전수 조교로 계신 강경하 선생님한테 발성을, 가야금 산조는 강정숙 선생님 계보인 추정현 선생님께 배우고 있어요.”

끊임없이 배울 수밖에 없는 연주자의 운명인 것이다. 연주 활동과 레슨을 병행하면서 대중이 좋아해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는 늘 아쉽고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 무서운 것이 수업이라고 말한다. 연주자 한 사람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기에 그렇다. 배울 때만큼은 선생님한테 모든 걸 다 걸기에 늘 긴장하며 수업할 수밖에 없다. 어깨가 무겁다. 선생의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틀어져서 잘못된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면 제자에게는 죄인이 된다는 생각이 하루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담백함이 묻어나는 연주와 소리

내 스스로 절대 흔들리지 않게끔 긴장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가르쳐야 해요.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면 공부 안 하고 공연만 할 수도 있죠. 국악가요, 가벼운 노래들을 배에 힘주지 않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 연주를 할 땐 무조건 라이브 반주에다 전통 곡만 고집했어요. 그런데 그것마저 깨야 할 필요성은 있더라고요. 언제까지 우리가 도만 닦고 살 수는 없고 시대에 따라서 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 가야금 병창을 하시던 선생님이나 판소리를 하시는 선생님들 때도 알고보면 트로트 같은 가요들이 생겨날 시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트로트처럼 야들거리는 창법에 판소리가 접목이 되면서 대중이 바라는 화사함을 갖춘 소리로 변형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시대에 맞춰 가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도 가볍게 가고 싶진 않고 무게감이 있으면서 담백함이 묻어나는 연주와 소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요.”

이쯤에서 광주와 청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가 타고난 음악성을 꽃 피운 곳이 광주는 보수적이라고 평가한다. 남도소리로 대표되는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흔히 남도소리와 경기도 민요마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제쳐놓더라도 청주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는 청주라는 곳에서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남도소리로 무장한 광주가 치열할 수밖에 없지만 청주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깊이를 생각하다

청주에서는 조금 가볍게 하지만 광주에서는 전통 곡에다 화성을 넣어서 반주를 입힌다든지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노래만 할 수밖에 없어요. 장구 반주에 발림도 다 짜여져 있어요. 청주도 몇 년 사이에 달라진 것 같아요. 처음 청주에 왔을 때만 해도 추임새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더라고요. 광주에서 어릴 때 독주회를 하면 반주 없이 장구만 가지고 해도 관객들하고 한바탕 놀 거든요. 관객이 얼씨구, 잘한다, 옳지, 그랬는디, ~ 하면서 추임새가 오고 가니까요. 요즘에는 여기도 굉장히 많이 좋아졌어요.”

거의 청주 사람이 다 된 듯하다. 청주에서 공연이 많이 잡히다 보니 공연하고 레슨하면서 거의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데는 다시 한 번 강조해도 모자랄 그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직업이 무섭고 어려운 것을 실감할수록 5년 뒤, 10년 뒤를 넘겨다보면 연주와 소리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알기에 공부를 계속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오십에도 마흔 소리를 하고, 육십에도 마흔 소리를 하고 있을 거라는 깨달음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오십의 소리와 육십의 소리를 할 거란 음악의 깊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2014년 가야금 병창 이수를 받고 전주대사습놀이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경주 신라문화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던 그가 자신의 미래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길에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이에 걸맞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기 위한 포석이다. 기교로 아주 화사하게 노래 부르는 시기는 3,40대로 끝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공부, 또 공부하며 가는 절차탁마의 길만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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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염종현 2019.03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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