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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 풍물

최효민

“전통예술과 현대를 아우르며 스승과 제자를 잇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소        개 풍물하는 까불이
활동분야 전통예술, 풍물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풍물, 교육, 전통타악원 솔옷
해시태그 #풍물 #전통예술 #솔옷 #까불이 #최효민
인물소개

풍물하는 까불이, 최효민

전통예술과 현대를 아우르며 스승과 제자를 잇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그는 20대 젊은 나이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청주농악보존회 단원으로 들어와 활동하며 청주국악협회 농악분과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짐을 지고 있는 국악인이다. 청주농악을 이끌어 온 기능보유자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국악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들에는 교육을 하기도 하며 우리 지역의 전통예술을 지켜가고 있다.

 

정식으로 풍물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였어요. 취미로만 할 생각이었는데 주위에서 잘한다고 칭찬해 주니까 욕심이 생겨서 이 길로 접어든 것 같아요. 사실 풍물동아리에서 동기들에게 지는 게 싫어서 따라잡으려고 더 열심히 했어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인 청주농악 장구 전수조교이신 정환철 선생님께 배웠어요. 꽹과리와 상모를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청주농악 이수자가 되었어요.”

 

 
과감한 도전정신과 패기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풍물을 그만두려고까지 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획기적인 작전을 짰다. 동기와 후배들을 모아 한때 인기절정이었던 SBS 프로그램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 풍물 비보이라는 팀을 꾸려 출연을 결심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해 왔던 춤과 풍물을 접목한 일생일대의 기획이었다. 당연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부모님도 흔쾌히 풍물의 길을 허락해주셨다.

 

스무 살 때였어요. 방송에 나가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절실한 바람 때문이었어요. 부모님이 승낙을 받고 나서 정말 열정적으로 했어요. 당시 정환철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선생님 대신해서 학교나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수업도 하고, 공연에도 참여하면서 실력을 키웠어요.”

어느덧 그에게 많은 제자들이 생겨났다. 스무 살에 청주국악협회에 들어와 12년이 지난 2018년에는 농악분과위원장 선거에 나와 당당히 당선이 되었다. 전통예술 특성상 30대의 나이에 한 분과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환철 선생님 곁을 떠나 전통타악원 솔옷의 단원으로 들어와서 전통예술과 현대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보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과 활동도 해보고 싶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매년 열리는 충북민속예술축제에 대표로 나가면서 제 기량을 많이 닦을 수 있었어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단체이지만 다른 단체들이 무시할 수 없는 기량을 갖춘 전통타악원 솔옷을 대표하는 연주자로서 열심히 공연에 임하고 있지만 그의 근간은 여전히 청주농악이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고자

풍물 세계에 빠져들수록 내가 할 줄 아는 음악과 바꿔보려고 했다가 선생님들께 많이 혼났어요. 젊은 동료들과 함께 현대에 맞게 새롭게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지금까지 전통예술을 지켜온 선생님들도 바꾸지 않은 걸 네가 왜 바꾸려고 하느냐고 혼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는 제가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의 집념이 있으시다는 걸 알았어요. 다른 지역과 달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청주농악만의 소박하고 끈적끈적한 매력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면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뒤통수에 버꾸(상모)를 쓰고 고개를 구부정하게 앞으로 숙이고 어깨를 많이 돌리는 기술만 보아도 청주농악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그 역시 청주농악의 가치를 알기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많은 공부를 한다. 청주농악만의 가락과 진법을 가르쳐 주고 청주농악만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께서 각자 평생을 바쳐 배워온 것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청주농악만의 변별력을 갖춰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날이 갈수록 젊은 혈기를 누르고 진중해지려고 한다.

 

어르신들의 가르침대로 청주농악을 있는 그대로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가르칠 때나 공연을 할 때는 되도록 청주농악을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해요.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청주농악만의 구수한 맛을 지켜가려고 해요.”

 

그가 농악분과위원장이 된 첫해인 2018년에 청주농악 기능보유자였던 이종환 선생님을 추모하면서 청주농악 전국대회를 연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청주농악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보존되어온 것은 모두 앞서 간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임을 알기에 해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그만큼 젊고 열성적인 그에게 청주국악협회의 거는 기대가 크다. 위원장으로서 그가 갖는 포부도 크다. 스승들의 발자취와 노고는 크지만 국악협회만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짐을 떠안은 셈이다. 전통예술 분야도 이제 젊은 사람이 앞장설 때가 되었다는 안팎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과감하게 가장 어린 위원장으로서 화합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예술의 화합을 꿈꾸다

물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겠죠. 여러 선생님의 의견을 조율해서 잘해나가야 하겠죠. 그동안 행사를 많이 했어요. 해마다 하는 단오제, 망월제, 농자놀이를 비롯하여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문화활동도 많이 했어요. 직지코리아페스티벌 행사 때 오픈공연도 했었죠. 그러다 보니 저보다 오래 풍물을 하셨던 분들도 젊은 사람이 시원시원하게 잘 끌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힘이 납니다. 처음에는 풍물하는 까불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좀 더 진중해지면서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해야 하겠지요. 국악협회에 맞는 색깔을 갖추고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주기적으로 모여서 연습도 많이 하면서 나날이 바뀌어가는 협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 전통예술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그가 있는 한 전통예술의 미래는 밝다. 청주농악보존회와 전통타악원을 넘나들며 우리 문화를 지켜가고자 하는 그의 곁에 청주농악을 이끌어 온 많은 선생님과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젊은 연주자로서 전통예술을 지켜온 선생님들의 발자취를 다시 밟아간다고 말하는 데는 그가 계승 발전시키고 보존하려는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이종수 정상민 2019.03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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