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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 연주, 연희

윤순병

국악은 숙명 같은 것

소        개 전통음악인
활동분야 대금, 연주, 연희
활동지역 청주, 전국
주요활동 공연기획, 연주
해시태그 # #충북국악협회 #청주시립국악단 수석 #하늘소리국악단 지휘
인물소개

 

전통음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서일까.
표정까지 대금선율이 녹아 흐른다. 윤순병 국악인의 대금 연주를 들을 기회가 쉽지는 않다. 무대에 서는 기회를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기획이나 강의, 국악발전 관련한 일을 우선해서다. 서울시민회관에서 최근 연주한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장삼 차림의 남자가 무대 위에 홀연히 앉아 대금을 연주한다. 자태만으로도 몽환적이다. 흐느적거리는 대금 소리, 시냇물이 돌 사이로 흐르듯, 강물이 모였다 다시 헤어져 흘러가듯, 달빛이 흩어졌다가 모이듯, 쓸쓸하면서도 그윽한 소리가 심금을 울리며 사람을 매료시킨다.


윤순병 국악인은 준비된 국악인이다
. 모친은 남사당패 어름사니였다. 어머니 조송자 예능인은 연희보유자 1세대로 무형문화재 9호다. 윤순병 국악인 외가는 전통음악 명문이다. 그의 외조부 조길환 예능인은 경기 무악 장단 1인자였다. 그는 딸 조송자에게 남도창과 장고를 전수했다. 딸이 일곱 살이 되자 친구이면서 줄광대인 손만대에게 어름을 학습하게 했고, 승무와 검무까지 배우게 하였다.

윤순병 모친 조송자 예능인이 보유한 기예는 일반 서커스단에서 흔히 보는 평행 철심 줄이 아니다. 공중에서 상하로 너울너울 움직이는 외 밧줄이다. 해방 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남사당놀이 어름사니 줄타기는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송자 예능인은 기예 전수자를 찾지 못한 채 작고했다. 지금은 소수의 몇몇 예능인들이 외 밧줄 기예를 개발하여 연마 중이다. 50여 년 동안 외줄 위에서, 그 줄을 희롱하며 살다간 어름사니 조송자 예능인, 서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줄광대, 그는 소중한 우리의 전통음악인이었다.

 

무대 아래 검은 상자 속은 나의 놀이터

 

사 남매 중 막내인 윤순병 국악인은 늦둥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에게 젖을 먹인 후 무대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무대 아래 검은 상자 속은 그의 놀이터였다. 줄광대인 어머니가 어릿광대와 삼현육각 악사를 대동하고, 줄 위에서 여러 가지 기예, 재담, 가요를 연행하는 동안 어린 아들은 무대 아래 상자에서 놀다 잠들곤 했다. 그렇게 전통음악은 그의 일상이었고 삶이었다.


그의 전통악기 선생은 누구 한 분을 지칭하지 못하게 많다
. 종류 또한 섭렵하지 않은 게 없다. 숱한 어머니 제자들에게 안겨서 연주면 연주 기예나 연희 등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랐다. 서울에서 출생한 그가 어떻게 청주까지 흘러와서 청주 사람이 되었을까.

어느 날 선배에게 끌려 청주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국악의 길을 향해 청주 땅을 밟은 지 25년째다. 누나가 경기민요 전수자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듯, 그 역시 운명처럼 떠밀려와 청주에 표류하여 국악을 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는 청주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국악과를 졸업했다
. 전북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대금으로 학사과정을 마쳤고, 타악기 장고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어머니는 몸에 익힌 기능 자체가 학문 체계였다. 하지만 아들은 전통음악들을 몸으로 구현할 뿐만 아니라, 학문으로 체계를 세워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그는 현재 무형문화재 98호 이수자이며, 국가무형문화재 44호 삼현육각보존회 이사, 충북예총 부회장, 충북국악관현악단 지휘를 맡고 있다.

직지를 홍보하고 국악 인재 발굴을 위해 청주직지! 전국학생국악대제전을 해마다 열고 있다. 2006년도에는 국악과 찬송가가 만나는 이색 예배에 참석했다. 청주 한빛교회 초청으로 대금 연주를 하러 매주 예배에 참석했다. 신도들은 대금, 단소, 가야금, 피리, 해금 등 국악 연주에 맞춰 찬송을 부르고 국악 반주로 예배를 진행한다. 국악과 찬송가가 만나 국악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했다.

그 무렵 한 신도가 취미로 국악을 교육하고 있었는데 배우려는 사람들이 넘쳐 자신의 실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도움을 요청해 왔다. 청주시립국악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기꺼이 달려가 국악찬양단 하늘소리 지도를 맡았다. 그 일을 계기로 한빛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한빛국악교실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그리고 국악찬양단 하늘소리를 만들어 지휘를 맡았다.


2007
년도에 충북 최초로 대규모 민간 국악단이 창립됐다. 충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국악인들 100여 명이 모여 충북국악예술단을 발족했다. 당시 청주시립국악단 수석으로 있던 윤순병 국악인은 대표를 맡았다. 충북국악예술단은 기악, 무용, 성악이 어우러진 총체적인 종합예술을 지향하며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 활동하고 있다.

 

나와 닿은 인연의 끈, 인연의 줄

 

나에게 전통음악은 무언가. 수도 없이 많은 해외공연을 했고, 해마다 국내 정기공연을 해왔다. 25년 동안 수석 차석 단원 단장을 거쳐 셀 수 없는 직함을 가졌었고, 충북국악협회 지회장이라는 직함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전통음악의 목적지일까. 수시로 묻곤 합니다.”

그의 물음은 이어진다. 산다는 게 허공 위에 매달아 놓은 가느다란 줄을 타는 광대놀음이라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미래로 이어지는 그 흥에 어머니처럼 나는 모든 삶을 걸고 있는가. 삶의 행간에서 닿은 청주라는 나루터에서 만난 인연의 끈, 인연의 줄을 곱게 엮어 매듭짓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얼까. 각 지부가 화합하여 우리 지역의 전통음악을 발전시키고 잘 보전하여 후대에 전승하도록 하는데 역할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전통음악 저변 확대와 발전의 비전을 가지고 매년
전통음악 학술대회를 열고 있있지만, 청주시민의 국악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충북무형문화제 1호가 지동마을에서 시작한 청주농악이라는 것을 청주시민이 모두 알게 되는 그날까지 그의 국악 저변확대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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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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