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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전통타악

한용진

"광대로서의 꿈, 그 불은 꺼뜨리지 말아야"

소        개 천상 광대, 타악연주자
활동분야 타악, 전통타악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타악, 전통타악
해시태그 #타악 #전통타악 #사물 #풍물 #예술강사 #장산곶매
인물소개

사물‘놀이’로 ‘놀던’ 학창시절


미소가 선한 타악 연주자 한용진은 미소처럼 선한 삶을 살아 온 듬직한 젊은 타악 연주자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상계고등학교 시절 풍물동아리 활동을 통해 전통 타악의 길로 들어섰다.

 

“6학년때 아마 84년도쯤인데 처음으로 국립국악원에 가서 ‘사물놀이’란 것을 처음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저건 뭔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고등학생 때 성당에 다니면서 성당에 풍물을 치던 친구들과 풍물을 배워보자 해서 버스종점의 택시노조 아저씨들께 풍물을 조금 배웠어요. 학교에 악기가 없어서 가까운 고려대에 가 아무 풍물동아리나 찾아가 토요일에 연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거기서 친구들과 함께 늘 연습을 했어요. 고2때 시작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나서 고3때 근처 학교 풍물 선생님이 전근을 오면서 본격적으로 풍물동아리에서 ‘놀게’된다. 그 덕에 축제 공연도 하고 연주자로써의 꿈을 자연스럽게 키운다.



청주대 와우탈 놀이패


대학 진학으로 청주로 오게 되면서는 청주대 와우탈 놀이패 활동을 이어간다. 때마침 그가 활동하던 80년대 후반은 사회 전반적으로 사물놀이, 풍물패를 통한 공동체 문화를 찾던 시기였다. 전통문화가 대학, 고교, 주민센터 등으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대학 때는 시대에 대한 고민이 앞섰던 시기였죠. 전통 연희를 활용해 우리시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펼칠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예요. 씨알누리 라장흠과 같은 동문이예요. 89년~90년 전후로 청주에 고교울림 연합 동아리도 생기고 국악과 타악 파트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지요.”

 

그 시대 청주에서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지금 청주에서 타악 연주가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짧은 회사원 생활, 그러나 천상 광대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예술 전공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대학 졸업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주자로써의 길을 떠났던 시기도 있었다. 무역회사, 법무사 사무실, 중소기업 관리직을 떠돌면서 직장생활은 안정되어갔지만 이렇게 평생 사는건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평생해도 채워지지 않을 판이라는 판단이 섰죠.”

 

그즈음 형이 전통혼례를 올리게 되어 부탁을 받고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당일 툇마루에 앉아 공연준비를 하고 있을 때 느낀 감정이 “이렇게 좋은 걸 왜 놓고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과감히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짓을 선택한다.

 

“이 판(전통 타악) 언저리에 사는 것도 좋다하고 왔는데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선배와 후배, 동료들이 선생님이 되어 있는 현실을 맞아야 했죠.” 라고 껄껄 웃었다. 그가 떠났던 시기가 기량이 충만해질 시기였던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기량이 쳐지는 현실에 힘든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대는 천상 광대인지 다시 돌아온 그 ‘판’에서 불씨를 꺼드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앞섰다. 세계적인 예술가, 풍물쟁이는 안되더라도 관객이 감동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이길을 가겠다고 한다. “제 기량이 모자라도 광대로써의 꿈, 그 불은 꺼드리지 않을려구요. 연습하다보면 어제도 안됐던 게 아침에 되고, 내가 되면(내 기량이 늘면) 다른 사람이 보이고,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의 호흡을 나누는 즐거움이 있고 더 나아가 관객의 신명을 이끌어 낼 수 있겠죠.” 그렇게 신명나는 공연을 끝내고 나면 밀려오는 뿌듯함과 만족감에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에게 만족이란 광대로써의 역할을 다 해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이다.

 


예술강사 활동, 처우에 대한 고민들


타악 연주가이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문화공간 ‘장산곶매’에서 단원들과 공연도 기획하고 예술교육안도 개발하면서 충북, 청주의 예술강사로 활동중이다.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국악을 ‘재미있는 것’으로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무악(노래, 춤, 장단)을 풀어 학년 수준에 맞게 교육하고, 탈춤과 전통 놀이 등을 응용해 탄력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인들이 그렇듯, 그리고 그 역시 잠시 방황을 하다 돌아온 것처럼 예술강사들의 보수는 상당히 적다.

 

“예술강사들의 강사료는 지난 10년 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어요. 재능있는 젊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계를 떠나지 않고도 마음놓고 예술을 펼 수 있는 환경, 당당히 급여요구를 하고 조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예술인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인식과 합리적 변화가 있어야 해요.“

 

문화예술가들의 생활의 안정이 지역 문화예술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계획이다. 문화예술인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듬직한 타악 연주가 한용진의 발걸음이 북소리처럼 크고 힘차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정진 이재복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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