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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가, 5.18유공자

김창규

보인다는 건, 가고자 하는 열망

소        개 목사, 시인
활동분야 시민운동가, 5.18유공자
활동지역 청주, 전국
주요활동 민주화투쟁, 약자와 소외자 대변자, 목회
해시태그 #민족작가회 #나눔교회 #촛불을 든 아들에게 #북한문학기
인물소개

목사 시인 김창규, 그는 누구인가.
중학교 때부터 문학에 빠져서 릴케, 바이런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시인으로는 신동엽, 김남조 신경림, 등을 좋아했던 평범한 문학 소년이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대학생 때부터다. 전공은 신학을 했다. 그러나 시가 좋아 문학이 좋아 후에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신학을 한 이들이 거의 그러하듯, 75년부터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교단인 나눔교회담임목사로 45년 넘게 목회를 하며 성도를 돌보고 있다.

그의 여정은 험난함과 가시밭길 자체였다. 남들은 목회자의 길만으로도 험난하다고 말하는데, 그는 목회자의 길에 상상할 수도 없는 가시밭길을 덤으로 택하여 걷게 된다. 보인다는 건 가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의 시 세계는 남달랐다. 리얼리즘에 관심을 가지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시, 김지하 시에 빠져 졌던 대학생 시절부터 험난의 길은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때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했다. 그 후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집회현장에서 평생 살게 된다.

김창규 시인의 시 세게는 민중적 서정성을 포함한 리얼리즘이다. 참여시인으로 5.18 유공자들을 위한 저항시를 썼다. 고은, 백낙청 등이 1974년도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만들었는데,(민족문학작가회 전신) 이름이 바뀌는 83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한다. 그때 도종환을 만나 분단시대라는 동인지 만들었다. 그리고 8455, 그의 결혼기념일에 분단시대 시집 제1하나 됨을 향하여를 출간한다.
 

그는 조용하나 적극적인 사람이다.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며 연설을 했고, 노무현 정권 때는 신행정수도 추진위원장을 했다. 그러나 정치가 아닌 가난한 이들 곁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마치 연상되는 분이 있다. 청년 예수가 그랬다. 사람들은 예수를 현실 정치가로 추앙했으나, 하늘 백성을 돌보는 영적 정치가였다. 그런 예수를 많은 사람이 믿고 그분을 따르며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에 모시고 복음을 전하며 삶에 적용한다. 그렇듯 문학도 매한가지다. 많은 이들이 시를 쓰나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말한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민중 목회를 하며 그들의 주권을 위해 싸우는 목회를 택했고, 시 세계 또한 개인의 서정과 행복보다는 참여시를 택하여 피를 토하며 수많은 시어들을 쏟아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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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에 벽초 홍명희 손자 홍석준 소설가와 일주일간 매일 만나 도래할 세상에 대해 담론했다. 그 후 6.15 공동선언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에서 열렸는데, 충북에서는 김승환, 도종환과 셋이 다녀왔다. 유신정권에 대항하며 해직 교수들과 교류하며 안병묵 문익환목사 등과 그런 일 하다 보니 개인시집을 여러 권 펴내지는 못했다. 써 놓은 분량이 산더미지만 개인시집은 2019년도에 한 권, 2020년에 한 권 냈다. 첫 시집 촛불을 든 아들에게는 자신의 역사를 썼고, 두 번째 시집 별 하나를 사랑하여는 민족과 통일에 관해 썼다.

예수님처럼 사도바울처럼 살다 보니 자신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여 세 번째 시집은 나로 인해 고난받은 이들 이야기를 모아 펴낼 계획이다. 동생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고생을 했는데, 막내의 경우 형 때문에 군대 가서도 고난을 많이 받았다. 막내는 2년 넘게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도래할까.

 

평생 목회현장에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살다 보니 몸을 돌보지 않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급성간농양으로 복수가 차고 간에 고름이 가득 차서 의사가 포기했으나 그는 한 달 만에 병원을 나왔다. 가난하고 억눌리고 고통받는 이들에 관하여 써야 할 말들이 너무 많다. 독재정권 시절 이야기도 이제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서전, 수필집도 낼 생각이다. 그의 민중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좋은 일을 많이 한다. 성도들의 열과 성을 목사인 자신이 못 따라간다고 말한다.

그는 시인 목사다. 누가 예수님의 이웃이었나.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내가 편리한 대로 예수를 소환하여 믿는 건 아닐까.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감옥에 갔을 때 돌봐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혀주었다.’ 하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가 예수님 말씀처럼 소외된 이들의 이웃으로 사는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기를, 눌린 자를 자유케 하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는 누가복음 말씀을 그는 실천하는 목사다.

김창규 하면 데모꾼 목사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그랬다. 그는 수많은 사건들에 참여하면서 평생을 걸어가고 있다. 노동자와 약자를 위해, 민중들을 대신해 싸운 횟수가 800가지가 넘는다. 그 많은 싸움을 하며 평생 보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싸움이었으나 모두 진 건 아니다.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졌다. 그렇게도 간절히 살았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도래할까. 이에 대해 그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해마다 오월이면 시인 김창규는 광주로 간다. 19805월 이후 단 한차례를 빠지지 않고 40년을 광주 망월동에 온 유일한 사람으로 전한다. 그 자신이 5·18 광주민주항쟁 국가유공자이기도 하지만 그는 광주에 갈 때면 한 시대를 겪어온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 시대의 진실을 증언하는 혁명의 시인으로서 간다.


문학의 진실은 꼭 전하자

 

분단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통한 통일의 길은 멀지도 모른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여정은 길기만 하다. 그러나 문학의 진실만은 꼬 전해야 한다. 식민지를 청산하고 외세를 극복하여, 남과 북이 화해하여 평화롭게 통일로 나가는 작품을 남겨야 한다. 문학의 진실은 곡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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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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