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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회화, 드로잉

조송주

힘들더라도 넘어져 봐야 수평을 꿈꿀 수 있다.

소        개 드로잉 및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 펼치는 동네예술가
활동분야 미술, 회화, 드로잉
활동지역 충청북도 청주
주요활동 회화, 드로잉, 예술기획
해시태그 #동네예술가 #예술기획자 #회화 #드로잉
인물소개

“현직 작가들은 한 가지 틀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힘들더라도 넘어져 봐야 수평을 꿈꿀 수 있습니다. 제 모토입니다.”


조송주, 그는 누구인가

 

조송주 작가의 미학은 ‘개혁’이다. 그는 지나치게 서양에만 의존하는 국내 미학의 틀을 깨려고 한다. 조 작가는 변두리 벽화 그림을 좋아한다. 벽화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란다. 여기서 그는 ‘드로잉’이라는 포괄적 측면의 미학에 접근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의 길을 관철하려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개인 공간을 작가와 주민에게 제공해 함께 교류하는 등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드로잉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는 조송주 작가를 만나기 위해 불볕더위가 한창인 여름날 오후 그의 개인 미술 공간을 찾았다. 입구에서 그를 부르자 중년 남성이 나왔다. 2017청주공예비엔날레 11인의 공동감독 중 ‘축제 미술 총감독’을 맡은 조송주 작가다. 동그란 안경에 목에는 노란 수건을 두르며 연신 땀을 닦고 있는 모습. 

조 작가와의 첫 만남이다.

 

조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시작했단다. 청주대학교에 진학해 회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학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충남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서류를 투척했다. 10여 년 만에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그로부터 2년 후 고향인 청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드로잉의 발견을 통해 ‘현대 드로잉의 의미 확장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근 10여 년 만에 석사 과정을 마쳤다며 웃었다. 어쩌면 드로잉이라는 미학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그는 작품을 했음에도 방황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포괄적 측면, 드로잉의 발견

 

어느 날 우연히 골목 화장실벽에 그려진 낙서를 보면서 조 작가는 문득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여기 파고들기 시작한 그는 포괄적 개념의 ‘드로잉’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드로잉이란 일반적으로 채색을 쓰지 않고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표현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의 이상향이 이것과 접목된 것에 기뻤다. 총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를 모두 수용하는 드로잉의 신선함에 매료된 것이다. 이후부터 드로잉에 빠져 마구잡이로 그리기 시작한 조 작가는 “그때부터 진정 살아 있음을 느꼈다”라며 회상했다. 2002년 월드컵 열기로 한창 뜨거울 때 그는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순수 드로잉으로만 개인전을 연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첫 개인전을 마친 그해 겨울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을 통해 미학에 대한 한층 높은 도약을 이뤘다. “인도 신들이 멋있고 근엄하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신들의 동상을 숭배하고 동경하며,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 작품의 또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인도의 종교를 통해 내면적 깨달음 같은 것을 느꼈다는 그는 국내 복귀 후 더욱 드로잉 세계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확대 예술의 진출...삶의 터닝 포인트 시기

 

당시 조 작가가 드로잉 외에 또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 것이 있다. 청주민족예술총연합회에서 주최하던 ‘문화예술경영아카데미’다. 이 아카데미는 작가부터 미술사, 고고 미술을 전공한 발굴자들, 미학을 전공한 미학자들 등을 대상으로 한정된 자원을 통해 목적을 효율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하고, 문화·예술과 관련된 이들을 육성하는 곳이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이후부터 예술과 경영 등이 혼합되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이 자체로 새로운 발견이라 굉장한 매력을 느꼈죠.” 약 6개월에 걸친 아카데미 과정은 그의 인생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전국 예술 점거프로젝트 이슈...그러나 청주지역은 준비 단계 무산

 

그렇게 아카데미의 여파가 점차 주목받으면서 예술인들의 진출도 다양해져 갈 때쯤 청주에서는 또 다른 이슈가 있었다. “그 당시 전국에서는 예술 점거 프로젝트가 가장 큰 이슈 몰이를 했어요. 유휴공간을 예술가들이 점거해 다양한 예술작품을 지역 시민에게 제공하는 곳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러나 청주에서는 이 점거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했다. 추진위원회까지 구성됐지만, 중도에 완화되고 말았다. 당시 예술인들은 충북도지사 관사를 점거해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실행준비 단계에서 지역 언론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도지사의 관사를 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게 적절치 않다는 부정적 시각들이 나타난 것이다. 조 작가는 “이 프로젝트야말로 활동의 큰 이유”였다며 “프로젝트는 완화되었지만, 씨앗을 뿌린 셈”이라고 앞으로를 기대했다.

 


아티스트(예술가) 레지던시 프로젝트, 청주 첫 도입

 

2006년 정부 지원으로 합법적 공간인 복합문화체험장이 조성됐다. 조 작가는 이곳에 첫 운영위원장으로 선임돼 청주에서 처음으로 아티스트(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이것이 ‘하이브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서양이 아닌 아시아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청주에 모여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조 작가는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며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달라진 부분에서 “이제는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주민과의 소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는 자신을 ‘동네예술가’로 불러달라고 한다. 이유를 묻자 요즘 전국적으로 밀고 있는 자기만의 신념’이란다. 그는 이러한 국내 미학이 서구식의 고전적 체계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정체된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만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개념 미학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꾸준히 자기만의 미학 세계를 펼치며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앞으로의 바람은?

 

조송주 작가 그가 다음으로 구상하는 예술작업은 도시와 농촌이 결합한 도·농복합 예술이다. 그는 이를 통칭해 ‘경작 DNA’라고 표현한다. 이는 많은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를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씨앗이 땅에 심어져 싹이 돋고 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러한 모든 부분을 예술로 승화시켜 시민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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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지 서근원 2017.08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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