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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김성심

"사람냄새가 나는 작품"

소        개 유화·설치·평면… 경계를 따지지 않는 작가
활동분야 미술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유화, 벽화, 평면, 설치, 바느질 등
해시태그 #김성심 #벽화 #설치 #수암골 #공공미술 #조각보
인물소개

유화·설치·평면… 경계를 따지지 않는 작품 세계

‘대목장’ 아버지와 ‘해녀’ 어머니의 딸… 뒤늦게 투신한 미술계


지난 2013년 9월 11일부터 10월 20일까지 열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전시동인 옛 연초제조창은 행사 기간 동안 높이 32m, 넓이 100m의 거대한 ‘조각보 옷’을 입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시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였다.
이 조각보는 비엔날레조직위원회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 결과물이었고 프로젝트는 지역 작가인 김성심 씨가 팀장을 맡아 진행했다.
“전공은 서양화이지만 설치나 평면 작품도 해요. 현대미술이 그렇듯 경계가 없어요. 유화를 하다가 아크릴 물감을 써보고 뜨개질을 이용한 설치 작품도 만들어봤어요. 민화도 그려봤고요. 비엔날레 조각보도 그 일환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인터뷰를 위해 자택에서 만난 그는 필자를 처음 보는 상황임에도 대화를 편하게 진행했다. 만난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사람 편하게 해 주는 게 제 특기인 것 같다”면서 웃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광양이다. 어머니는 해녀로 물질을 몇 해인가 했고 아버지는 사찰 등 큰 목조 건물의 건축을 담당하는 ‘대목장’이었다. 부친의 ‘전국구’ 직업 덕에 광양에서 광주, 경기도 하남 등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한다.
“하남에 있는 남한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어요. 학원은 안 다니고 그 때 작가이시자 은사이신 박수룡 선생님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엔 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작은 가게를 내 2년 정도 운영했고 어느 정도 돈도 벌었다. 그가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자신 스스로의 결심이라기보다는 작은 오빠 등 주위의 권유가 더 한 몫 했다고 한다.
“작은 오빠가 ‘너 그림 좋아하지 않냐, 그런데 포기하면 어쩌냐’ 그러는 거예요. 저도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싶기도 해서 대학에 갈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간 곳이 청주대학교 회화과였고 당시 김재관 교수님에게서 그림을 배웠어요.”
대학 졸업 후 그림 작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유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화 물감의 냄새와 독한 성분의 재료 등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 유화 작업은 접었다고 했다. 그가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작업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청주복합문화체험장인 하이브 캠프(HIVE CAMP)의 조송주 팀장이 작업 기회를 줬어요. 저를 민예총에 소개해주고 충북아트페어에 참가하게도 해주고 그랬죠. 뭐, ‘작가 하나 건사해주는 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레지던시 일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제게는 은인이나 다름없어요.
이후 충북민미협과 청주민미협, 충북아트페어 사무국장을 지내고 2014년까지 흥덕문화의 집에서 문화예술 강사 활동도 했다. 2010년에 들어선 1년 간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가경터미널 시장의 문화와 바람난 시장길 ‘있소’의 공공미술 팀장도 맡았다.
2016년에는 청주와 몽골의 현지 작가 교류전인 ‘Nomad & Nature Artist in Cheongju’에도 참여했으며 벽화 마을로 유명한 수동 수암골의 공공미술 참여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실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작품이 중요… 가격대 낮춰야


그는 작업을 할 때 ‘사람 냄새’를 중요시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너무 난해한 추상 작품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위 미술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기보다 ‘이거 괜찮다’, ‘집에 걸어두면 좋겠다’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어렸을 땐 ‘작품은 내 새끼’라는 생각이었어요. 아카데미에서도 그렇게 배웠고요. 하지만 귀한 자식일수록 내돌리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소품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설치는 크게 사갈 사람도 없고 말이죠. 하하”
김 씨는 우리나라 미술 시장에서의 작품 값이 비싼 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과의 벽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작년 비엔날레 페어전에서 보니까 제 작품이 제일 쌌어요. 갓 데뷔작도 400∼500만원이고 작은 소품조차도 100만원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미술 시장이 죽어간다고 할 게 아니라 작품을 실생활에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도 소품 위주로 싸게 값을 매겨요. 모든 집들에 작가의 작품 한 점 정도는 걸릴 수 있게 해야죠. 눈도 좋고 마음도 좋아지게요. 비싸게 할 필요가 없어요. 가만히 보면 아시아 쪽이 꼭 비싸요. 유럽의 경우 아주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싸게 살 수 있거든요.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이제 그는 청주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에게 청주는 어떤 곳으로 느껴지는지를 물었다.
“타지 사람들은 청주가 배타적이라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요. 거의 30년을 있다 보니 이젠 청주에 스며들었다는 느낌이에요. 작년에 증평군에서 공무원·주민 등과 함께 했던, 낙후되고 방치됐던 담장에 벽화를 그린 ‘통하는 마을’ 프로젝트 같은 공공미술 작업도 지역을 위해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고요. 심심풀이로 바느질 작업도 해봤는데 요즘은 옷이나 가방도 만들고 있어요. 딱히 어떤 방향을 정하진 않았지만 저만의 작품 활동은 계속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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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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