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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설치미술

권준호

“즐거움이 기반… 재료·방법은 그 다음 문제”

소        개 모두가 인정한 설치미술가
활동분야 미술, 설치미술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미술, 설치미술, 서원대 교수
해시태그 #권준호 #설치 #미술 #사진 #그림 #서원대
인물소개

“즐거움이 기반… 재료·방법은 그 다음 문제”

‘내 길은 미술’ 생각에 유학… 모두가 인정한 수재

 

“저는 즐거우면서 쉽고 빨리 만드는 작품 활동을 추구해요. 그렇다고 해서 고민과 고뇌가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민과 고뇌가 있어야 빨리 만들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좋은 아이디어도 나온다고 생각해요.”

 

서원대학교 인문사회관에서 만난 이 대학 교수이자 설치미술가 권준호 씨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막 오전 수업을 끝낸 뒤 서원대 인문사회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권 씨는 목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 불편하다고 했다. 12월 초 대화를 위해 마주앉은 권 씨는 상당히 낯을 가리는 모습이었지만 필자가 그를 알기 위해 던지는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껏 답했다.

 

“보신 대로 제가 낯가림이 좀 있어요. 그래서 강의를 할 때도 첫 날엔 항상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요. 대중 앞에 서면 숨이 막히고 그러는 것 때문에 처음 1∼2번은 개인이든 단체든 대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청주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충북도청 맞은편 성안길에서 살았다. 청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던 중 할 줄 아는 게 미술뿐이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미술 공부를 심도 있게 하고 싶어서 미국 유학을 가길 원했던 그가 택한 길은 ‘군대’였다. 당시엔 군 미필자는 외국 유학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한 후 미국에 가서 1년은 어학 연수하는 시간으로 보냈어요. 가진 게 없으니 부모님 도움을 받던 시기였고요. 그러다가 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에 입학했어요. 미국 내 조각대학교 중 랭킹 1위의 학교입니다. 그런 명성답게 프로그램이 아주 좋았어요. 그때부터 작품 활동에 매진했어요. 굉장히 다작을 했죠. 열심히 하다 보니 교수님들께서 성적 장학금을 주시고 상도 많이 받게 되더군요. 2003년 졸업 땐 최고 졸업생 타이틀인 ‘베스트 시니어’ 자리에 올랐고요.”

 

권 씨는 학사 졸업 후 더 공부를 하고 싶어 미국 대학원 다섯 곳에 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다섯 곳 모두에서의 ‘콜’. 1년 간 휴식기를 가진 권 씨는 우리나라 모 연예인이 ‘우클라 대학’이라고 불렀던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것도 전액 장학생으로. 그곳에서 권 씨는 2000년도에 100대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찰스 레이 교수 밑에서 작업하며 배웠다. 이곳에서도 재능이 빛을 발한 덕인지 전체 3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Master of Fine Arts’(순수 미술 석사)로 졸업장을 따냈다.

 

“LA 시립미술관 전시도 해보기까지 했는데 너무 미국 생활을 오래 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엔 공부를 위해 온 곳인데 나중엔 미술이 일로 바뀌니 살기가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게다가 건강도 안 좋아지는데 아시다시피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잖아요. 그래서 2007년 1월엔가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권 씨는 청주에 미술창작스튜디오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예술가에게 거주 공간을 제공, 재정적 지원은 물론 다른 예술가나 미술계 인사와의 교류를 도와 창작 활동에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 시행 기관이 생기니 입주해보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듣고 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지역 연고 작가이자 권 씨의 고등학교 선배이며 서양화가인 사윤택 씨를 알게 된다.

 

“2007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이어 2009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인 창동레지던시에도 입주했었어요. 그 당시였나, 사윤택 선배님이 제게 ‘넌 지역에 연고도 기반도 없으니 여러 공모전에 나가봐라’라고 하시더군요. 창동레지던시에 입주한 해에 송은문화재단의 8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달의 자전거’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어요. 당시 부정 의혹을 받았던 현대미술관 공모전 사건이 있었는데 그 공모전 상금이 2천만 원으로 컸어요. 그런데 송은미술대전 대상 상금도 2천만 원이었죠. 그 때부터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그가 서원대에서 교편을 잡게 된 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스튜디오 생활을 하면서도 그 역시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서야 했다. 성남의 경원대에서 강사를 하던 중 충북대와 인맥이 닿아 양 쪽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 그렇게 경력을 쌓으면서 사윤택 씨와의 인연으로 서원대 연영애 교수를 만나 이 대학 미술학과에 강사로 서게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 학부에서 기초미술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강의를 이어가다가 현재의 교수직을 맡게 됐다.

 

 

그림·사진·종이에 메탈 페이퍼까지… 손에 닿는 건 모두가 소재


그의 작품을 설치미술이라고 하지만 딱히 정해진 형식이나 틀은 없다. 그는 생각이 갇혀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 그림으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현대미술의 경향이 그렇듯이 전 ‘경계’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형식에도, 시간·장소에도 구애 받지 않아요. 작품이 사진이 됐든 그림이 됐든 생각, 즉 표현 형식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사진으로 전시를 했다가 설치로 전시를 갖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작품 활동을 해요."

 

일례로 그는 지난 2011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주시 용암동 지하도 벽화 작업을 했다. 지하도 내부 10여 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은 플라타너스로 변신했고 그 나무기둥에는 나비, 풍뎅이, 매미, 다람쥐 등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대청호미술관에서 가진 11회 개인전 ‘잠수하는 갈매기’에서는 메탈 페이퍼를 레이저 커트해 정어리 3천 마리를 만들어 종잇조각으로 만든 갈매기들과 함께 꾸민 설치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잠수하는 갈매기’는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갈매기들의 영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했던 전시입니다. 저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소재를 가리지 않아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는 친구의 오토바이 매장에서 카울(오토바이의 경우 차체의 겉을 싸고 있는 외장을 의미. 장식의 용도도 있다)을 가져다가 재료로 쓰기도 했죠.”

 

그는 문화의 도시를 표방하는 청주에 대해 나름의 조언도 했다. 조언의 귀결은 옛 연초제조창의 활용이었다.

 

“제가 이해하는 청주는 소비의 도시에요. 대학이 많고 학생이 많아요. 이 소비층들이 찾을 문화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자체가 주관하는 작가 공모 등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청주가 비슷한 사이즈의 도시에 비해 문화를 얼마나 발전시키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전 박람회 같은 행사를 보러 서울 킨텍스나 부산 벡스코 등에 자주 갑니다. 현대에는 상업적 박람회에 예술이 끼어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전시를 크게 할 수 있는 곳이 연초제조창인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있는 세종시와 대전시의 사람들도 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어느덧 불혹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그에게 아직도 세상에는 궁금하고 신기한 것이 많단다. 그만큼 하고 싶은 작업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제가 2007년부터 ‘잠수하는 갈매기’ 전시회까지 9년 동안 개인전만 총 11회 열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논문을 쓰느라 전시회를 갖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라는 주제로 기획전을 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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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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