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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평면회화

이홍원

"가장 약한 꽃과 무서운 호랑이의 만남이 바로 상생이에요"

소        개 꽃을 사랑한 호랭이, 상생을 꿈꾸는 화가
활동분야 미술, 평면회화
활동지역 전국
주요활동 민미협 회장, 충북민예총 회장 역임
해시태그 #이홍원 #미술 #회화 #마동마을 #꽃을 사랑한 호랭이
인물소개

꽃을 사랑한 호랭이, 상생을 꿈꾸는 화가 이홍원

“가장 약한 꽃과 무서운 호랑이의 만남이 바로 상생이에요”

 

 

백두대간을 호령하는 사나운 호랑이가 화폭 속에 들어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도 아름다운 꽃을 들여다보고 있다. 호랑이의 눈에 담긴 꽃은 더할 나위 없이 곱고 예쁠 수밖에 없다. 꽃을 사랑한 호랭이는 이홍원 화가를 그대로 닮았다. 호랑이는 독립운동을 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쳤던 이홍원 화가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를 이어 용맹한 삶을 살았던 가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호랑이가 한지 부조의 도드라진 화폭 안에 들어앉아 이 땅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꽃을 어루고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미원 땅에서 알아주는 독립운동가이었고, 할아버지는 백성들의 우환을 낫게 하던 한의사(면허는 없었지만)였고, 아버지는 청렴한 공무원이어서 평생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7남매를 가르치느라 사과 한쪽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지붕에서 쥐가 떨어지는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가난하지만 나는 그게 좋아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너무 어렵게 살아서 어디 가서 말은 안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은 가계가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과도 같지만 그는 가난에 기죽지 않는 개구쟁이 화가였다. 만화를 보면 벽이나 마루, 흙바닥에 그리길 좋아했고, 중학교 미술부 시절에는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서 신아일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세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에게 말도 없이 고향 미원에 가 1년 동안 할머니집에서 누에 농사를 짓기도 했다. 놀기를 좋아해서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산으로 들도 돌아다니는 한량이었다. 충주고등학교에 편입하여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제천으로 단양으로 놀러다니며 싸움 구경, 세상 구경 실컷 한 괴짜이자 야생의 어린 호랑이였다. 그래서 학기 중에 1주일 휴가와 무기 휴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예비고사를 합격하고 동국대학교 미술과 실기에 최고점수를 받고 입학하여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 74년 대학교 1학년 때 청주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충북에서 활동하는 화가와 교사들과 함께 충북미술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84년도에 이철수 판화가와 김준권 판화가 등과 민족미술협회 창립에 가담하였고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미술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84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인간+삶>은 미술평론가들이 올해의 문제작으로 추천하면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하기도 했다. IMF 사태가 터질 때까지는 서울에서 아라리오 화랑 전속 화가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 개인전을 하기도 했다.

 

이후 95년 청주에 내려와 환경운동을 시작으로 청주민미협 회장과 청주민예총 회장을 거쳐 청원민예총 회장을 맡으며 지역 문화 전반에 걸쳐 활동하였다.

 

 

“내 그림 인생은 88년 화재로 그동안 모아두었던 작품들이 불타 없어진 전후로 나눌 수 있어요. 서울 하숙집 창고에 있던 작품들이 다 타고 하나도 못 건졌으니까.”

 

한동안 좌절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83년부터 국악과 한의학을 공부하며 우리 문화에 고민하던 시절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줄곧 ‘내 그림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의 지평을 폭넓게 가꾸어왔다. 86년 서울 아랍미술관에서 열었던 개인전 <삶의 노래>를 계기로 도올 김용옥 선생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마음의 스승으로 삼을 만큼 화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때 이후 등장한 그림이 한지 부조로 만들어낸 <꽃을 사랑한 호랭이> 시리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꽃과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호랑이의 만남이야말로 약자와 강자가 함께 하자는 큰 뜻이 담겨져 있다. 더불어 상생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상징임을, 무조건 서양의 흐름을 쫓기보다 우리 문화의 원형에서 찾아낸 정신세계임을. 평화와 조화, 화목과 상생, 동심의 세계를 꿈꾸는 화가의 철학을 담은 상징이 된 것이다.

 

<쏘나기>를 보라. 우리 민족의 삶을 정감 있게 그려내면서도 보는 이로 하며금 화폭 속으로 끌어들이는 개구쟁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순진무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호랑이의 또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 서로 다른 나무로 자라다가 얽히고 설켜 한몸이 되는 <연리지>처럼 살면서 누구나 느끼고 공감하는 이야기, 원래의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던지는 소탈한 물음이 담겨 있다. 호랑이와 토끼, 오리, 개구리, 잉어, 새, 닭, 나비, 여우, 소, 말, 사슴 들을 어우르는 꽃과 호랑이, 순박한 사람들이 해학과 풍자를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로 거듭 나고 있다. 2016년 선보인 ‘문신회화’는 그림에 그림을 더한 화화 위의 회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왜곡된 현실을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풍자하고 있다. 놀이와 유희,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한 신명 속에도 비판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작품 세계를 폭넓게 하고 있다.

 

 

2017년 <꽃을 사랑한 호랑이>는 동화작가 박윤규의 그림책 <<향기 나는 호랭이>>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화작가와의 협업을 통해서 그의 작품이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류재수 화가가 도올 김용옥 선생의 해설을 담은 <<백두산 이야기>>로 우리나라 그림책의 영역을 넓혔듯이 <꽃을 사랑한 호랑이>가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이홍원 화가는 젊은 시절 민중미술 작가로서 정치적 격변기였던 80년대의 폭력적인 사회현실 속에서 미술가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미술계의 세속적 세력 다툼을 타파하며, 사회현실을 직시하여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 발언으로 미술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던 미술인 가운데 위치했다. 화실을 벗어나 시대적 아픔과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현장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전 미술이 지닌 자기 안위적인 것에서 탈피해 정치사회적 흐름에 발맞추어 전개된 민중미술을 통해 자본주의의 소득분대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는 도시빈민, 농민, 노동자들의 어두운 삶을 조명하는 등의 활동들을 실천해 나가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홍경한)

 

그는 세상 한복판에 살아 있는 ‘꽃을 사랑한 호랑이’로 살고 있다. 젊은 시절 파리 유학을 꿈꾸며 프랑스어를 배우기도 했지만 그가 딛고 선 땅의 그림이 아니고는 직성에 풀리지 않았듯이 그는 마동창작마을 깊이 들어앉아 있다. 그러나 그를 찾아주는 손님들과 교유하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도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한달음에 뛰어나오기도 한다. 꽃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상생의 호모 루덴스(호이징하의 ‘놀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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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서근원 2017.08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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