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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정상수

“최소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은 꾸준히 작업할 수 있어야만 전업작가라 할 수 있죠”

소        개 재료에 대한 탐구로 변화를 꾀하는 작가
활동분야 동양화
활동지역 청주
주요활동 대학 출강, 전업작가
해시태그 #동양화 #재료탐구 #전업작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정상수
인물소개

재료에 대한 탐구로 변화를 꾀하는 작가, 정상수

 

최소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은 꾸준히 작업할 수 있어야만 전업작가라 할 수 있죠.”

 

그의 외삼촌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현실에 묻혀버린 외삼촌에게서 미술의 시작점을 발견했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이 그렇듯 어릴 적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감성이 전 생애를 뒤흔들게 마련이다. 외삼촌이 스케치하는 것을 보며 그림의 재미에 빠져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정상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만화책이나 잡지책에 있는 인물들을 따라 그렸어요. 워낙 연습을 많이 하니까 외삼촌이 많이 봐주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미술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도 거두었죠. 자신감도 생겼고 미술 선생님의 추천도 받아서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에서도 미술부 활동을 했었어요.”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결정이었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꿈과 계획이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작가도 좋지만 학생들에게 예술가의 꿈을 키워주고 미술이 더이상 소외된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재료를 쓰는 부분부터 선생님만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그림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다준 것은 중국 유학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미술 교사의 꿈을 접고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그때는 중국이 문호개방을 한 지 몇 해 되지 않은 때라 정보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었고 어떤 후회도 하지 않았다.

 

“1999, 대학원을 다닐 때 교수님이 중국 미술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북경에 있는 중앙미술학원 중국화학과였어요. 단과예술대학이지만 중국의 7대 미술학원 중에 으뜸으로 꼽을 만큼 수업 과정이 좋았어요. 학생 수도 2, 3천 명이나 되는 큰 대학이었어요. 여러 나라와 연계해서 장학생을 유치하고 매일 작업하는 방식으로 학생들 개개인이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에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시장이나 길거리에서도 크로키 연습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교수진도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크로키, 동양화, 인물, 창작 식으로 일주일 내내 시험을 볼 만큼 실기에도 힘을 실었어요. 수업도 한 달 동안 몰아서 진행해서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방학 때는 버스로 4, 50명을 태우고 유명 사찰이나 산으로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작가의 꿈을 지원하다

중국 유학 경험을 동력 삼아 그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지원했다. 작가로 성공하는 것 외에 레지던시 과정에 참여한 작가들을 지원해 주는 일에 눈을 뜬 것이다. 자신이 10년 동안 이루지 못한 작가의 꿈을 지원하는 일에 열중했다. 작가로서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옆에서 지원하면서 평론가들과 작가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했다.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시스템은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올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그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중국 유학 시절을 잊지 못한다.

 

중국화 안에는 파트가 다양해요. 인물화, 산수화도 있지만 풍경이나 재료 부분에서 또 나뉠 만큼 다양하죠. 대학원이 3년 과정인데 1년 과정까지는 교수님들이 평가를 잘 해주지 않으세요. 그림 한두 점 그려봐야 교수님 눈에 띄지 못하면 어렵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그렸어요. 그리고 여러 군데에 제 그림을 놓았어요.”

 

그때 교수님께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그는 재료를 쓸 때마다 사고적으로, 포괄적으로 쓴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기에 그에게는 최상의 칭찬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힘을 받아 재료를 얻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천이나 가죽, 단추처럼 다양한 재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담뱃갑으로 작업을 했어요. 백팔번뇌를 생각해서 1008개의 담뱃갑에 저의 모습이 마치 부처 형상처럼 보이는 자화상을 그렸어요. 금박, 은박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중점을 둔 거죠. 중국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낀 감정들도 들어가 있었어요.”

첫 개인전을 할 때의 주제가 인상이었는데 그때 집중해서 다룬 것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감정이었다. 버려진 신문지를 죽으로 해서 사람 형상을 만들고 칠지도 같은 청동기의 느낌을 주는 식으로 작업했던 것도 재료에 대한 탐구 정신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담뱃갑으로 작업했던 문양들이 중국의 둔황 고굴 안에서 스님들이 수도하며 그린 동굴의 부처상이었듯이 이질적인 재료를 통해 탐구하고 수도하는 자세로 임한 작가로서의 사명이 드러난 것이다.

 

노을 질 때의 연밭을 표현하기 위해 동박을 태워 작업한 것도 그런 의도였어요.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에 접목해 보기도 했어요. 당시 큰 이슈였던 타이거 우즈의 골프 치는 장면을 통해 타이거 우즈의 스캔들에 맞춰 별들이 새겨진 무늬에 검은 실루엣으로 여성의 몸을 그려 넣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금은 캔버스를 동그란 형태로 바꾸어서 작업해요. 저런 것들을 밝혀내고 인상을 보여주는 눈동자 형태로 해서 그 안에 다시 여성의 다리라든지, 다른 모습들, 총이나 개, 호랑이, 매를 넣어 또 다른 시각적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전업(UP)작가

그는 여전히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전업 작가로서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 그가 스스로 제시한 전업 작가의 기준은 명확하다. 최소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은 꾸준히 작업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생계 활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면 그림을 시작한 자체가 업보라며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뜻하는 (up)’이기도 하기에 그는 전업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이종수 정상민 2019.03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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