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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문인화

김재규

“저 사람이니까 저런 작품을 하는 구나, 라는 소리가 듣고 싶은 거죠.”

소        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김재규 서예가
활동분야 서예, 문인화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서예, 문인화, 강사
해시태그 #서예 #문인화 #김재규
인물소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김재규 서예가

저 사람이니까 저런 작품을 하는구나, 라는 소리가 듣고 싶은 거죠


늦깎이로 시작한 서예

 

내수읍 숲안골에서 태어난 김재규 서예가는 늦깎이로 서예의 길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시절 궁서체로 써놓은 친구의 글씨가 멋있어 보여 서예반에 들고 싶었으나 그 당시 서예반에서는 여학생들만 뽑은 탓에 일찍 시작할 수 없었다. 그의 꿈이 대학교에 와서 이루어지기까지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1986년도에 충북대학교 서도회 14기로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기본 획 하나씩 연습했어요. 가로, 세로, 갈고리 만들면서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는 것이니까요. 4학년 때 복학생 선배가 미술대전을 권하더군요. 그게 91년도였어요. 열 작품 내면 세 작품 정도 입선할 정도로 어려웠는데 입선하게 됐죠. 자신감이 생겨서 전국대학미전에도 냈더니 동상을 받았어요.”

 

지금처럼 족자로 만들어 간편하게 가져갈 수 있던 때가 아니다 보니 큰 액자를 직접 가져가야 했다. 너무 커서 버스에 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사님께 사정해서 출품했던 대회라 그에게는 아주 뜻깊은 일이었다. 두 번의 입상이 서예의 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열어준 셈이다.

 

졸업할 무렵 선생님께서 취직보다 서예를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시고는 청주향교에서 서예를 가르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죠. 막상 향교를 가보니 10년 이상 배운 분들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막막했는데 대학 동아리에서 후배들 가르치는 것처럼 하니 괜찮았어요. 1년 뒤 충북미술대전에서 특선이 되고 나서는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더 늘었죠.”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서예는 끊임없는 변화의 길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글씨를 무작정 따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제게 변화가 일어나더라고요. 2000년 초반에 농민신문사에서 주최한 전국농업인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도 변화의 결과죠. 그리고 2002년도에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초대 작가가 됐어요. 그 무렵 문인화도 시작했어요. 제 글씨 세계로 가는 과정이었죠. 문인화를 하다 보니 글씨에서 느끼지 못했던 매력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작년에 캘리그라피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방면에서 서체가 달라지고 있어요. 한 군데 머물지 않고 배우는 자세가 변화를 주는 것이죠. 붓글씨를 쓰면 김재규가 썼구나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바람이에요.”

 

서예가 김재규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변화

 

거듭 다짐하는 것은 그동안 다져온 역량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도 있는 준비 과정을 거쳐 시대를 대표하는, 김재규라는 이름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을 써내는 것이 목표다. ‘저 사람 글 잘 쓴다,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보다 저 사람이니까 저런 작품을 하는구나라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다.

 

콩나물에 물 주면 물이 다 새는 것 같아도 자라나듯이 보는 시야를 많이 넓히다 보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내 작품 세계가 변화하겠죠. 정통 서예를 하는 것이 수련의 과정이라면 거기에서 뭔가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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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이종수 문호영 2019.08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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