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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예술

손영익

“작품 농사를 짓는다, 그런 결심을 했어요.”

소        개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자세로 작업농사를 짓는 손영익 작가
활동분야 조형 예술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전시, 시민사회단체
해시태그 #조형예술 #작품농사 #조선혁명선언 #고드미마을 #예술혼 #손영익
인물소개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자세로 작업농사를 짓는 손영익 작가

작품 농사를 짓는다, 그런 결심을 했어요

 

방랑과 농사 그리고 예술의 사이에서

 

손영익 작가는 서른 살까지 서울살이를 하고 나서 농사와 예술, 여행이 뒤섞인 험난한 삶을 살았다. 2003년 청주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예술의 근간이 되는 대지와 인간의 삶시대에 대응하는 예술혼을 불 지피며 살았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 그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강렬한 에너지와 함께 새로운 작품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독재정권 아래 눈에 안 띄는 막걸리집에서 서울미술공동체를 조직한 것도 그런 전환기의 결과인 셈이다. 그러다가 이른바 3당 합당으로 뒤바뀐 정치 현실에 신물이 나 도망치듯 이 나라를 떠나기도 했다.

 

그때 돌아다닌 나라가 한 스물 몇 개는 되는 것 같은데, 죽을 고생했죠. 지금처럼 편안하게 관광 다니는 게 아니라 가이드북 하나 없이 무작정 비행기 타고 가고, 아무 데서나 먹고 자고, 발 닿는 데로 돌아다녔어요. 작품이고 뭐고 절망감이 컸어요. 가끔 스케치만 좀 하고 말았죠.”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방랑 아닌 방랑을 하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지인이 마련해 준 강원도 땅을 일구며 농사일에 매진했다. 그렇다고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망가진 호미나 삽, 낫으로 작업을 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는 작품 세계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술이 주업이고 농사가 부업인 삶

 

당시 예술에 대한 회의감과 정치·사회적 혐오감으로 강원도 산골로 들어갔었어요. 세상을 등지자고 택한 것이 농사였죠. 한참 농사를 짓던 중에 강원도를 떠나야 할 일이 생겨서 마동창작마을에 입주하게 되었어요. 마동에 와서는 예술이 주업이고 농사가 부업으로 바뀌었죠. 먹는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작품 농사를 짓자고 결심했어요. 민중예술의 연장 혹은 삶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죠.”

 

폐교를 인수해 만든 마동창작마을에서 예술가들이 뭉쳐 죽기 살기로 작품 농사를 지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작품 활동에만 몰입할 수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손영익 작가. 물론 막일도 했지만, 전업 작가라 여기니 신바람이 났던 시절이라고 한다.

 

조선혁명선언과 고드미마을의 예술혼
 

고드미마을에는 2010년에야 들어왔어요. 돈이 없어 빈집을 찾아다니다가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이 있는 고드미마을에 녹색체험마을이 만들어 질 때 들어오게 되었죠. 빈 방 하나가 나서 혼자 밥 해먹고 살았어요. 다시 농사가 주업이 되고 작품 활동을 부업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하루 여덟 시간 주 5일 근무를 해야 백만 원을 취할 수 있었으니까요. 작품 활동이 또 뜸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용접 교육을 받으며 그로서는 새로운 작업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일종의 직업교육처럼 기초 용접을 배우고 만든 첫 작품이 공교롭게도 조선혁명선언이었다. 목재에서 철로 작품 소재를 바꾸고자 마음먹었을 때 절절하게 다가온 것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이었던 것이다.

 

최근 쇠를 구하던 철공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절망에 빠졌어요.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도 없고, 65세란 나이도 나이지만 예술적 정열이 반으로 줄어든 게 가장 큰 문제죠. 어차피 해봐야 작품을 놔둘 데도 없고 놔둬봐야 먼지에 휩싸이고 비바람 치니까요. 그래도 꼭 해야 할 것은 하려고 해요.”

 

그는 고드미마을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떠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고드미마을에서 살다가 죽을 각오로 예술혼을 지필 생각이라는 그에게서 비통하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예술가의 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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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문호영 2019.08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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