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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김영소

깊이가 있어야 오래간다

소        개 묵향에 취해 평생 살다
활동분야 서예
활동지역 청주, 전국
주요활동 작품활동, 서예지도
해시태그 # #김영소 서예학원 #
인물소개

  

옛날에 낙향한 선비들은 풍광이 수려한 곳에 정자나 누각을 세워 시회를 열고 후학을 양성하며 선비문화를 꽃피웠다.
조선 예원의 마지막 불꽃 같은 존재 추사, 그는 조선 고유문화를 꽃피운 진경 시대의 세계화에 성공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다. 지금도 추사 글씨를 흉내 내지는 못 한다고 많은 서예가들이 말한다. 조선 시대에 추사 김정희가 있었다면 현시대 청주지역에 김영소 서예가가 있다.

추사처럼 살지는 않았을지라도, 현시대가 요구하는 선비의 삶을 그의 삶에서 엿볼 수는 있다. 나주가 고향인 김영소 서예가는 82년도에 청주로 와서 정착했다. 당시 청주지역의 서예 문화는 불모지 자체였다. 김영소 작가는 서예 지도를 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여 60명의 지방작가를 배출해 냈고, 그중 15명 정도는 국전 작가로 키워냈다. 현대 사회가 풍광이 수려한 곳에 정자나 누각을 지을 환경은 못 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서예발전의 목표는 이미 이루고도 남음이 있다.

김영소서예가 서실에 부시 대통령과 둘이 찍은 사진이 있다. 2004년도부터 개인전을 해오고 있는데, 2005년도에는 개인전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AL에서 가졌다. 그때 관람하러 방문한 미국부시대통령과 함께 찍은 거다. 그의 글씨는 이 지역에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수준이라고 평한다.

김영소 서예가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고향 마을 어른들이 무료하게 지내는 걸 보고 나의 미래 나의 노년의 삶을 생각했다고 술회한다. 늙어서도 할 수 있는 건 서예라고 말한다. 추사 김정희 역시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까지 작품을 썼다고 전해오지 않던가. 광주에서 서예학원을 했고, 포항에서고 서예를 지도했다. 그러던 중, 포항 바람이 몸에 안 맞아 온화한 곳으로 오자 해서 찾은 곳이 청주였고, 그것이 이곳에 뿌리를 내린 이유다.

 

서예의 불꽃, 그 희망의 씨를 심다

 

청주에 온 지 5년 뒤, 87년도에 충북대학교 배대식교수와 같이 한국서예협회 충북지회를 창설했다. 당시만 해도 서예는 특정인 몇 분 정도만 향유 하는 문화였고, 학원은 전무全無한 상태였다. 그 후 김영소 서예가가 배출한 제자들이 나가서 또 다른 서예가들을 길러내면서 서예 인구를 넓혀 나갔다. 김영소 서예가로 인하여 충북지역 서예를 전국적 평준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쉬운 것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충북지역 서예학원에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영어나 컴퓨터는 열심히 하나 서예학원으로 는 몰리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서예다. 서예야말로 좋은 인성을 키우는 보고요, 인내와 배려심을 배우는 예술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서예가들의 책임도 있지만, 이 문제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화도 유행처럼 복고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도, 젊은 날 심었던 서예의 불꽃이 100년 전 그 시절처럼 특정인들만 공유하는 예술로 남겨 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또한 현실이라고 김서예가는 말한다. 한편에서는 캘리그라피나 문인화에 채색을 하는 등,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서예 문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 들을 많이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다.

 

깊이가 있어야 오래간다

 

깊이가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거다. 어릴 적부터 인성을 바로 잡는 오랜 훈련 끝에 좋은 서예가가 나와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반짝이는 기술이나 선호하는 것들로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으려고 하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는 3600년 전부터 서예가 있었다. 예술 장르 중 제일 길다. 갑골문자부터 이어져 온 것이 서예인지라 맥이 끊어지진 않겠으나, 대중화되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한국의 는 여백의 입니다. 소밀에 의한 소소밀밀 즉, 성긴 곳은 더욱 성기게 빽빽한 곳은 더욱 빽빽하게 하는, 소밀에 의한 여백의 미 이지요. 그 위에 해학이 있고 고졸한 메주 같은 그런 맛이 나와야 하는 게 한국적 미 의식입니다. 긍국적인 정착점은 그곳입니다.” 

전통글씨를 보면 변화된 글씨체와는 다르다. 서예의 가치는 국민성이 바른 인내심에서 나온다. 이만하면 후배들에게 맡기고 그만할 때가 됐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나를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이 보람이다.

 

마지막 삶을 묵향에 스미어 살고지고

 

최근 3, 4년간 김영소 서예가는직지심체요절하권 내용 전체를 쓰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 책은 고려 말에 백운화상(白雲和尙, 12991374)이 엮은 책으로 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直指心經)’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불교의 요체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여러 부처와 고승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누구라도 선법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13777월 청주의 흥덕사(興德寺)라는 옛 절에서 가동 금속활자를 이용해서 인쇄되었다.직지는 본래 상() () 2권으로 인쇄되었으나, 상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하권에 김영소 서예가가 도전했는데, 2미터 길이 작품 103개가 나오는 분량이다. 직지심체요절은 우리나라 최초로 김영소 서예가가 논문으로 썼는데 그 내용을 우리나라 최초로 작업하는 중이다. 마지막 삶을 묵향에 스미어 살고지고자 하는 김영소 서예가의 바람에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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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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