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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교육,

최연옥

한없이 비워야 채울 수 있는 화선지의 여백

소        개 서예문인화가, 수필가
활동분야 작품, 교육,
활동지역 청주, 전국
주요활동 서예, 문인화
해시태그 # #한국문인화협회 초대작가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초대작가& #40;서예문인화& #41; #한국서가협회충부지회초대작가
인물소개


아무것도 없는 공간
, 끝없이 비워야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화선지의 여백이 좋다.
하얗게 비워진 화선지 여백 안에서 주고받는 자신과의 대화, 여백은 텅 빈 충만을 경험하는 절정이다. 이것이 서예, 문인화가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주고 쉼 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서양의 시각예술이 채워가는 과정이라면 동양의 예술, 특히 우리 한민족의 서예 예술, 그것은 끊임없이 비워가는 작업이지요.”

사람의 삶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비우고 또 비워야 하는 작업의 연속이기에 붓으로 글씨를 써가는 과정은 화선지의 텅 빈 공간에서 들려오는 비움의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색 먹 빛, 티끌만 한 오염도 용납하지 않는 새하얀 화선지, 이 흑과 백에 내포한 철학적 의미를 배워가는 과정은 자신에 대한 통제와 절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붓을 놓지 않는 이유인지 모른다. 이 안에서 통제의 속박을 이겨낼 수 있었고 애면글면 살아온 날들을 통렬히 성찰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지나온 날들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간혹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정말 간혹. 그것은 이 비움의 철학 앞에서 끊임없이 버려지는 紙筆墨과 함께 나 자신도 버려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슬픈 여인

 

누가 바다를 아름답다고 하는가.

바다가 슬픈 사람들도 있다. 물이 없는 바위만 있는 곳, 바다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배를 타야만 먹고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최연옥 서예가의 고향 녹도에 가려면 대천항에서 서남쪽으로 뱃길 따라 50키로 정도 들어가야 한다. 102살이신 친정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계셔서인지 고향이란 말만 떠올려도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다.

섬 소녀는 어릴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서예를 접하게 된 건 대전으로 나와 상업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교에 서예반이 있었다. 사실은 글씨가 악필이라 를 받곤 해서 서예를 하면 글씨를 예쁘게 쓸 수 있을까 하여 서예반에 갔었다. 졸업 후 직장에서 글씨체가 안 좋아 장부를 안 줄 정도였으니 서예와 펜글씨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상사 글씨를 체본 삼아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 없느냐는 물음을 받는다. 이거다 할 때 잡지 못하고 살아왔다. 시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냥 보냈다. 목소리가 좋다고 성우를 하라는 권유도 있었으나 그렇게 못했다. 그런데 서예는 반생을 꾸준히 놓을 수 없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삶이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태어난 곳이 섬이라는 특수성이 그렇듯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억세게 살아야 했다. 궁핍했던 나의 유년이 그랬고 청소년 시절이 그랬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다. 타인은커녕 나 자신도 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살아야 했다.

서른을 넘기면서 조금씩 생활이 안정되어 갈 즈음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그 새벽은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쳤다. 어릴 적에 듣던 익숙한 소리였나,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왜 그랬는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그것은 기억에 없다. 다만 그냥 한없이 울었었다. 쉼 없이 눈물이 났다. 두어 시간 그렇게 울다 그쳤다 하며 새벽을 보냈다.

 

마음의 안정을 준 그윽한 묵향

 

그 새벽 이후 나의 삶은 변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나만을 위한 보람 있는 삶을 찾아야 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날 오후 학교를 다녀온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손을 잡고 서예학원을 찾았다. 아이랑 같이 등록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공부라는 생각과, 고등학교 때 가까이 했던 지필묵紙筆墨에 대한 추억도 있었다.

그날부터 큰아이를 등교시킨 후 작은아이를 업고 매일 서예학원에 갔다. 학원에는 조그만 방이 있어서 아기를 재울 수도 있고 간식을 먹일 수도 있었다. 큰아이는 학교 끝나면 학원으로 와서 서예와 함께 한자 공부를 했다. 다행히 아이는 서예와 한자 공부를 좋아했다. 큰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우리 셋은 서예학원에서 일주일 내내 살았다. 서예를 공부하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게 했다.

90년 년대 말 서예 교습소를 차렸다.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고 제자도 길러내는 보람을 느끼며 10여 년을 정도 지났다. 2천 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문화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복지관이나 평생교육원등에서 무료 서예 강습이 성행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서예 저변은 확대 됐으나 서예학원이나 교습소가 문을 닫게 됐다. 지금은 교습소 문을 닫고 개인 작업실에서 작품을 하고 초대전이나 동아리 전시에 참여하며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체득하며 살고 있다.

 

시인 정지용은 은 차라리 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 글로 표현되는 그림이라면 문인화는 그림으로 그리는 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붓을 잡고 지나온 30여 년, 지금까지 紙筆墨은 나와 반생을 같이 해왔다. 내 이름 석 자 앞에 서예가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감사한 일이다. 또 글씨를 배우며 평생 꿈꿔왔던 배움의 길도 걸어왔다.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방송통신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중앙문단에 수필가로 등단하는 꿈도 이루었다.

어느새 내 인생의 노트를 다시 써야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고 손이 떨려서 붓을 잡을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남은 날들도 지필묵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며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여백의 미학을 누리며 살 것이다. 서예라는 미련한 작업,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작업, 시와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쓰는 날들을 기대한다.

최연옥 서예가는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했고, 한국문인화협회 초대작가이며,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초대작가(서예문인화). 충북 대전 충남 서예전람회 초대작가이며 이사.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청주민예총 감사이고, 한국문인화협회 충북지회 이사로 활동한다. 개인전 1, 한중서화교류전, 한일인테리어서화전에 참여했다. 20193.1운동 100주년 기념 개막 퍼포먼스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가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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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유현덕 2021.0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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