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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이동원

"성실하면서도 쉼 없는 정진… 온화함·열정이 혼재하는 묵향"

소        개 호가 위천(委川)인 서예가
활동분야 서예
활동지역 충북 청주
주요활동 서예, 민예총
해시태그 #이동원 #전서 #민예총 #대전대
인물소개

성실하면서도 쉼 없는 정진… 온화함·열정이 혼재하는 묵향

재능에 더해진 노력으로 입지 다져


호가 위천(委川)인 서예가 이동원 씨는 한 눈에 봐도 정갈한 품성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김승환 예술비평가는 몇 해 전 그를 가리켜 “단아하고 정연한 경지를 지향하는 서예가라면 그의 생활이나 정신 모두 단아하고 정연해야 한다. 이동원은 그런 경지를 지향하는 진정성과 성실성에 있어서 상당한 서예가다. 단정한 태도나 겸손한 언행도 그렇고 언제나 삼가며 쉼 없이 정진하는 자세 역시 정평이 나있다”고 극찬했다.
청주, 나아가 충북을 대표하는 서예가 이 씨를 그의 작업실이자 교육 장소인 분평동 서실 ‘먹내음’에서 만났다. 그는 2015년 들어간 대전대 서예학과 대학원 논문 최종 심사가 전날 끝난 터라 정신이 없었다며 자리를 정리했다.
“소년 문장가는 있어도 소년 문필은 없다고 했어요. 그만큼 서예는 어느 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분야라 쉽게 다가가기가 힘들죠. 그리고 요즘은 사람들이 동적인 활동을 추구하고요. 예전엔 서예가 아이들 인성교육 수단으로 좋았는데 지금은 영어 등에 밀려서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명박 정권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씨는 한글과 한문을 모두 다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서예를 시작한 그는 당시 하나밖에 없었던 교육청 주관 휘호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 곧잘 상을 받아와 선생님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서예가라고 했어요. 대회에서 상 받으면 수업료를 면제 받는 ‘서예 장학생’이 되다보니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려서 뿌듯했죠. 그래서 희망도 서예가로 굳혔나 봐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궁체·정자·흘림 등으로 한글만 썼다. 일중 김충현 선생의 책을 보며 ‘임서’(臨書)에 매진하던 시기다. 글씨본을 보면서 글씨를 쓰는 것, 즉 자습서를 곁에 놓고 보면서 따라 써보는 것을 임서라고 하는데 이것을 많이 해야 실력이 늘고 자신만의 글씨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고교 시절에도 그는 각종 서예대회를 휩쓸었고 약관 20세였던 1987년 충북미술대전에서 최연소로 특선을 차지했다.
“고교 졸업 후 배대규 선생의 구암 연서원에서 해서(정자체) 기초를 3개월 익히고는 거의 혼자 공부했어요.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됐거든요. 그러고서 상춘 안재전 선생께 행서를 배웠죠. 1년 후 군대에 다녀온 뒤 직장 생활을 2∼3년 하다가 서예를 못 잊어 그만두고 이 길에 다시 들어섰습니다.”


1996년부터 청주 모충동에서 13년 간 정파 서예학원을 운영했다. 당시 학생도 50∼60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지만 ‘언제까지 애들과 씨름해야 하나’, ‘서예학원 원장으로 끝나나’ 싶어 학원을 접고 지금의 공간으로 온지 7년째다.
“현재 한국서예협회 고문이신 효당 김훈곤 선생에게서 1998년부터 10여 년 간 서예를 제대로 배웠어요. 토요일마다 서울로 올라가서요. 그러면서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특선도 하고 초대작가도 해보고 젊은 나이에 심사도 해보고 서예협회 최연소 이사로 4년 간 지내기도 하고 그랬네요.”

 

문자가 아니라 선… ‘전서’로 서예의 정점을 꿈꾼다


예술가로서, 서예가로서 개인적인 욕심은 당연히 있지만 그는 서예의 앞날을 고민하며 지역에서 관련된 일을 많이 해왔다. 충북청년서화회 사무국장을 맡아 안재전 선생과 향천 안효열 선생 등 어르신들의 일을 7년 동안 도왔고 서예협회 청주지부를 창립하면서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며 실질적인 일을 했다. 1998년 12월 전국단재서예대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2002년 민예총 서예위원회를 창립해 여기서도 사무국장을 맡아 1년에 한 번 서예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 지역에서는 민예총 서예위원회가 처음 개최한 관련 세미나였다. 2014년 6월 청주시가 통합된 후 청주·청원민예총은 (사)충북민예총 통합 청주지부 초대 지부장에 청주민예총 지부장이었던 이 씨를 선출했고 그렇게 지역에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예술단체에서의 대외적 활동도 이 씨의 이력에서 중요하지만 그는 30여 년 묵향을 맡아가며 글씨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정의 내리는 서예란 무엇일까.
“지역을 위해 조직에서 뜻깊은 일들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 뿌리는 서예가죠. 서예라면 한글은 기본이고 말씀처럼 저는 한문 중에서도 전서에 관심이 있으며 또 많이 합니다. ‘서화동원’이라고 하죠. 전서는 그림 같은 글씨에요. 글자의 기원도 그림이잖아요. 글자의 형태에 담긴 의미를 보다 부각시키는 것이죠. 추상화도 원래의 형태를 잘 알고 있어야 그릴 수 있듯 전서도 원형을 잘 알수록 좋은 작품이 나와요. 사람들은 글자 많은 서예 작품을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전서는 한 글자나 두 글자가 전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와요. 문자가 아니라 선이 중요합니다. 작가의 감정이입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쓴 봉은사 판전 현판 글씨를 보면 얼핏 굉장히 서툴러 보이죠. ‘동자체’라고 하는데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기도 하지만 ‘잘 되고 못 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는 ‘불계공졸’(不計工拙)도 뛰어넘은 경지에요. 서예는 그래야 합니다.”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신홍균 염종현 2016.12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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