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아카이빙

문화사이다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시민들의 일상이 기록되고 하나의 문화가 됩니다.

People342

ⓒ2019.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All Rights Reserved. 작품이미지의 도용 및 무단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연기, 연극, 뮤지컬

한명일

"작품 속 인물의 삶과 연기가 어느 순간 완전히 하나가 됐을 때"

소        개 진실 된 순간, 그 한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명일 대표
활동분야 연기, 연극, 뮤지컬
활동지역 청주, 서울
주요활동 연극, 뮤지컬, 연기, 연기지도, 온몸뮤지컬컴퍼니 대표
해시태그 #한명일 #연기 #연극 #연극배우 #뮤지컬 #연기지도 #온몸뮤지컬컴퍼니
인물소개

“연기자들은 공연 도중 작품 속 인물의 삶과 자신의 연기가 어느 순간 완전히 하나가 됐을 때 ‘신의 은총’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어느 유명한 연출자의 말입니다.” 온몸뮤지컬컴퍼니 대표 한명일(42) 씨는 연기는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연출자들과 감독, 적절한 시기 모든 것이 제대로 맞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난 한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해 서울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청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MBC 마당놀이’를 하면서다. 2008년 한 씨의 안무 스승이었던 극단 예술공장 두레의 대표가 그를 눈여겨 지켜보다 청주에 한번 내려올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연극무대 활동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오디션이 있는 곳이라면 수 없이 쫓아다니며 도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미련만 남긴 탈락의 연속이었다. 오디션 최종 3차까지 올라가 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마지노선에 서 있던 상황이었지만 희망은 존재했다. 탈락의 고배를 연거푸 마시던 차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오디션에 붙. 한 씨는 굉장히 기뻤다. 큰 비중은 아니더라도 그만의 진지한 연기를 펼친 한 씨는 “1m 남짓 거리에 배우 이병헌 씨가 서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며 “작은 비중이었지만 열심히 내 연기를 펼쳤다”고 회상했다.

 

수 개월간 촬영한 영화는 완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흥행을 향해 드디어 전국 영화관에 개봉했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에서 한 씨가 펼친 연기는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영화 속 장면에서 배우들에게 모든 게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 씨는 아쉬웠지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당시, 중앙대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만든 ‘중앙음악극단’도 운영상에 여러 문제가 겹쳐 더는 활동 할 수 없게 됐다.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이면 큰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서로가 너무나 잘 알다 보니 아는 만큼 갈등 등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군요. 더는 시너지 효과가 나지가 않더군요(웃음).”

 

 

한 씨는 공황 상태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리로 근근이 연극 활동을 이어 갔음에도 희망의 끈은 좀처럼 다시 보이지 않았다. 계속된 악순환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한 씨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원인을 찾고자 ‘명리학’에 대해 공부했다.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저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더군요. 아직은 시기상으로 때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는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안무 스승이었던 예술공장 두레 대표는 한 씨에게 극단에서 객원구성원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청주에 수차례 내려 오다 보니 도심의 장점에 매력을 느껴 결국 정착가게 됐어요.” 그가 청주에 정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3년 전이다.

 

예술공장 두레에서 연극 활동을 하면서 연기의 폭을 많이 넓혔다는 한 씨는 본래 하고자 하던 꿈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교를 꾸며 자신만의 ‘극단’을 만드는 것. 바로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일종이다. “한번은 일본 연출자와 워크숍을 했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무대에서 무엇이든 안되는 게 없다. 안 되는 건 배우 자기 자신뿐’이 말이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저를 깨우치더군요.” 그러다 두레에서 약 3년간 활동 후 독립해 총 3명이 지금의 ‘온몸뮤지컬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중 한 명은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절 알게 된 동료이면서 지금의 부인이다.

 

 

한 씨는 연기함으로써 감동을 받는 건 진실 된 순간을 접할 때 그 한순간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순간을 위해 사는 직업이기에 때로는 허망한 순간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해 도전하고, 이 삶을 영위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을 가릴 정도로 충분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극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음악극 ‘뜨란지트 1937’이라고 했다. 이 작품으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한 씨는 “좋은 작품은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바라는 게 있다. 온몸뮤지컬컴퍼니를 통해 배고프고 가난한 연기자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것. “밥, 세끼를 먹으면서 연기를 하는 것과 밥, 세끼를 고민하면서 연기를 하는 것은 틀립니다. 연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연기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늘 배고프고 가난한 ‘배우’라는 직업의 틀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휴대폰 메시지 한 통을 보낸 한 씨는 이렇게 말하며 수줍어 한 듯 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제 꿈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마음껏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전용극장을 건립하는 것이에요(웃음).”

사진 발행일 제작/출처
오홍지 서근원 2017.11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