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기록

김운기 (b. 1937)

펴낸 기록
  • <대청댐, 그때 그 사람들> (1980)
  • <충주댐, 그때 그 사람들> (1986)
  • <소백산> (1994, 충청일보사)
  • <대청댐 수몰 20년, 그때 문의 사람들> (1999, 청원군·청원문화원)
  • <고향 이야기> (2005, 한국사진문화원)
  • <충북인의 기억이 머무는 곳> (2013, 충북학 연구소)
  •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 (2014, 눈빛)
  • <충북사진 80년 우당과 사진인(1933~2018)> (2018, 코리아 포토 원)
대표 기록 활동
  • 1958년 부터 충청일보 사진기자로 활동, 1960년~2010년 청주 시민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

    근대화로 사라져간 청주의 농촌 풍경부터 지금은 사라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청주 시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록하여 당시 청주인들의 삶, 문화, 사회, 정치, 경제, 환경 등을 알 수 있는 기록을 남김

  • 1980년대 소백산 도계(道界) 2년간 종주 및 사진 기록·취재 (1986)

    충청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 4개의 도계로 둘러쌓인 소백산을 2년 동안 사진기록과 취재를 함
    소백산 호휘총(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후 만든 무덤), 화전민 흔적, 영월 노루목 김삿갓 묘, 영동 옛 금광터, 문경군 무연탄광 등을 단순 사진 기록을 넘어 당대 남아있던 흔적들의 유래, 전설, 풍습, 생활상 등을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 취재를 통해 기록함

  • 대청댐, 충주댐으로 수몰 지역 사진 기록 (수몰사, 생활사, 민속사 등)

    1970년대 대청댐,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예정지인 옛 문의면 마을, 압실마을, 새터마을, 외덕마을 등 주민들의 마지막 장승제, 당시의 교통편이었던 가호리 선착장, 문의 대장간, 공동 우물, 초가집 풍경부터 주민들의 마지막 이사, 철거까지를 담은 사진기록으로 남김

  • 충북 사진 80년 역사를 책으로 <충북사진 80년 우당과 사진인(1933~2018)> 발간

    충북지역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217인을 총망라한 기록으로 청주에 사진을 전파한 선구자, 청주 최초의 사진관, 지역에서 가장 오래 활동해온 사진작가, 사진교육가, 청주 첫 사진인, 최근 사진 동호회 인물 등 청주의 사진 문화와 역사를 책으로 발간함

인터뷰글

충북 역사 기록의 산증인 김운기

50년 지역사 사진으로 기록, 카메라와 같이 한 인생

김운기하면 따라 나오는 별칭이 충북 기록의 산증인이다. 평생 신문사 사진기자로 재직하며 사진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50여 년 동안 지역사의 풍경, 인물, 민속, 사건사고 현장 등 많은 분야를 기록으로 남겼다.
작업을 보면 1960~70년대 수몰지역 사람들에 대한 사진 기록이 있다. <대청댐, 그때 그 사람들, 1980>, <충주댐, 그때 그 사람들, 1986>은 수몰지역의 집과 사람들을 사진집으로 엮었다.
<충북 사진 80년 우당과 사진인, 1933~2018>은 충북지역에서 활동하던 사진가들을 총망라해 기록했다. 청주에 사진을 전파한 선구자, 오래 활동해온 사진작가, 사진교육가, 청주 첫 사진인, 최근 사진 동호회 인물 등 충북 지역의 사진의 역사를 자료화했다.
그런가 하면 충북의 아름다운 소백산의 풍경을 담은 <소백산맥, 1994>, <고향 이야기, 2005>, <충북인의 기억이 머무는 곳, 2013>,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 2014> 등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서가 사진 속에 기록되어 있다. 방대한 양의 사진기록은 그의 역사가 되었다.

이처럼 평생을 카메라와 함께한 그는 여든이 훌쩍 넘었다. 약관의 나이로 군에 입대해 통신학교 교육생으로 뽑히면서 카메라를 손에 잡은 것이 평생의 일이 되었다.

“운이 좋았지. 군대에서 20명만 선발해 교육시키는 통신학교 교육생으로 뽑혔으니까.
사진에 관심이 많았는데 군대에서 사진기를 마음대로 만질 수 있었지. 사진을 찍어오는 숙제를 내면 내 사진보고 다들 놀랬어.
무엇을 하면 열심히 하는 편이라 사진도 남달랐던 것 같어.”

사진기 하나 갖는 게 소원일 정도로 귀했던 카메라는 운명처럼 그에게 기록이라는 사명을 안겨주었다. 군에서 익힌 사진기술로 자연스럽게 신문사 사진기자로 입사한 후 평생 직업이 되었다.

“군에서 제대 후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충청일보 사진기자로 일하게 됐지.
당시 필름 값이 비싸 마음대로 사진을 찍지도 못하던 시대였는데 기자였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는 일이 수월했어.
매일 사진이 바뀌니 신문이 살았지. 하도 사진을 찍으니까 회사에서 필름 많이 든다고 적게 찍으라고 하더라고. 사진기를 들고 충북의 곳곳을 다녔어.
해야 겠다 생각하면 하는 성격이니 쉬지 않고 일했어.”

세 여인 장나들이, 1970년대, 문의 덕유리

당시야 국가도 가난하던 시절이니 내 돈 들이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한다.
신문사 사진기자라는 직업적 특성도 기록을 많이 남기는 요인이 되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충북 50년 사진기록들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정신과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건사고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70년대 초에 단양과 제천 지역에 큰 수해가 났어. 청풍호 수해 현장을 공중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촬영하다 비행기가 추락한 거야.
떨어지면서 세 동강이 났는데, 죽는 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주변이 다 자갈인데 비행기가 떨어진 곳만 모래였으니까.
기름이 흘러 비행기가 폭파할지도 모를 위급상황인데 카메라를 꺼내온 뒤 자갈밭에 꼼짝 못하고 누웠어. 태종학 충북도지사가 소식을 듣고 놀래서 1킬로미터를 달려왔더라고.
그 경황 중에 사진을 전송해야 한다고 빨리 가야한다니까 리어카에 밧줄을 메고 강물을 건네줬어. 그렇게 새벽에 관용차를 타고 집으로 오니 가족들은 죽은 줄 알고 통곡하고 있더라고.”

목숨과도 바꿀 뻔 했던 사진은 신문에 1면 톱을 장식하였고, 나머지 사진은 그냥 두기가 아까워 50장을 인화해 도지사를 찾아갔단다. 수해로 당장 먹을 것도 없는 단양 제천 사람들을 위해 수재의연금을 걷자는 제안이었다.

“사진을 전시해서 수재의연금 걷자고 했지. 수해지역 도민들은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도와줘야 한다고. 그렇게 설득해 전시를 열었는데 관람 온 사람들이 어마어마했어.
그때 신문사에 걷힌 수재의연금의 30%가 사진전에서 걷힐 정도였지.
다시 수해 현장을 찍으려고 단양을 방문했는데, 학교에서 노숙하던 도민들이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고 다들 박수를 쳐주더라고. 그날은 내가 마치 위인이 된 것처럼 뿌듯했어.”

그날의 수해현장 사진 기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사회 영향력이 기록의 힘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두 세배로 열심히 뛰는 그의 열정은 고령의 나이에도 변함이 없다.

“열심히 하는 것은 워낙 소문이 났지. 사진기자들은 취재 기자들과 달라서 열심히 일해도 명성을 얻거나 인지도를 높이기는 어려워.
묵묵히 일해야 하는 기자가 사진기자야.
가난하고, 볼품도 없고, 키 작은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학교 입학, 사명감과 책임감, 신문사에서 나를 인정해 준 것이 지금의 나를, 기록을 만든 거지.”

모든 일에 힘들지 않은 건 없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새로운 걸 많이 도전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고,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선 몸싸움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옛 충북의 문화와 풍경 사진은 그렇게 남겨진 기록들이다.

“사건 현장을 가서도 그냥 돌아오지 않았어. 주변을 꼭 카메라에 담았어. 대청호나 씨앗 시리즈, 우리의 살림도구와 같은 사진을 책으로 엮은 것도 좋아서 했던 일이야.
그리하다 보니 기록이 되었고, 사라진 것들은 사진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거지.”

사진 인생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지만 지금도 후회되는 게 있단다. 대청댐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진 마을의 모습이다.

초가집 마지막 밭갈이, 1978년, 문의면 압실마을

“70년대 수몰지역을 기록할 때 대청댐에는 유난히 초가집이 많았어. 초가집에 꽂혀 밤낮으로 초가집을 찍었지.
문의마을의 주민이 아예 방을 내주면서 수몰될 마을을 찍어달라고 했을 정도였지. 다른 지역에서는 초가집이 사라져가고 있었거든.
대청댐 주변도 당시 스레트 지붕으로 개량할 때였는데 나는 그 스레트 지붕이 마음에 안 들더라고. 지금도 그때 스레트 집을 찍지 않은 게 후회돼.”

아쉬움은 늘 또 다른 작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대청댐 수몰지역을 기록한 그의 자료들은 2019년 대청댐 수몰지역 50주년을 맞아 전시회를 가졌고, 남은 자료를 더해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한정판이지만 기록 자료로 묶일 수 있어 좋아. 옛날에 찍은 사진을 보니 500여장이 되더라고. 그중 좋은 것만 정리하니 150장 정도야.
수몰지역이라는 아픔이 있는 지역의 역사 기록이니 계속해서 회자되겠지. 지금까지 모은 사진자료를 전시회로 보여주거나 주제별 사진으로 엮어 책으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런 것들이 내 보물이야.”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은 잊혀지고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들이 그의 사진에 남아있다. 한 장 한 장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50년 세월이, 50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삶의 현장이 흑백 사진 속에 박혀있다.

글 | 연지민 충청타임즈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