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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기록

이나리메

'50대 여성 작곡가'

  • 인터뷰이 이나리메(작곡가)
  • 인터뷰어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 2020년 11월 13일
  •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567-29 학산빌딩 B1 녹음실

작곡가 이나리메 선생님을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음악계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공연장과 심사장에서 오며가며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확인하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아니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올해는 누구도 쉽게 만나지 못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얼굴을 마주할 대면의 기회들은 거의 사라졌다. 아주 가까운 사람, 만나지 않으면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들만 겨우 만났다가 황급히 헤어졌다. 그때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한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마음 역시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누군가는 소셜미디어에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말들은 마음 속을 떠돌다 사라졌다. ‘코로나19 문화예술현장 기록 및 연구’라는 기회를 얻지 않았다면 이나리메와 곁의 음악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버텼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물론 1시간 반 남짓 나눈 인터뷰로 지난 10개월의 모든 상황과 속내를 다 들을 수 있을 리 없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코로나를 겪는 10개월 째 되는 어느 하루 잠시의 기록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기록조차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오늘은 그 기록을 남기는데 집중하기로 한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물었을 때, 내심 얼마나 힘들었는지 묻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너무 상투적인 태도였을까. 그동안 할 일이 얼마나 없었고, 수입은 얼마나 줄었으며,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한숨을 쉬면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을 전시하듯 늘어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든 삶은 개별적이고 고통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들더라도 모두가 똑같이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힘들었다.


연극과 오페라 음악을 하면서 스튜디오에서 일할 뿐 아니라 심사와 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나리메에게 변화는 다채롭게 다가왔다. 공연 관련 일은 줄었으나 OTT 쪽 일의 양이 많아지면서 스튜디오 쪽 일은 다소 늘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이럴 줄 모르고 스튜디오에서 일해 왔던 이나리메는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동네의 공연장은 열리지 않았고, 도서관도 자주 문을 닫았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이들은 초토화 되었다. 특히 행사와 공연을 통해 자생적으로 음악을 해온 예술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일이 줄어드니 같이 일하는 가수들도 일을 찾는 마음으로 이나리메에게 예년보다 훨씬 자주 연락했다. 이나리메는 긴급지원 관련 심사를 하고 운동을 하면서 버텼다. 재충전을 하는 마음으로 세미나를 많이 하기도 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작업을 두문불출한 채 기를 쓰고 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고, 이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욕이 저하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환란 앞에서 한결같이 온전하게 버티기는 어려웠다. 살아오면서 쌓아온 사회적 관계와 정부의 지원, 개인의 의지와 주위의 응원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처음 경험하는 재난 앞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기는 불가능했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이 되긴 하겠지만 예술은 세상이 굴러가는 것에 비해 정말 하찮은 부분인 거였다.”라는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외로움과 단절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은 것은 이나리메가 예술가라서 더 예민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 누구든 품었던 생각이었다. 음악인들이 많이들 우울해한다는 전언도 자연스러웠다.


지난 10개월 내내 혹시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조심해야 할 뿐 아니라, 가족들을 걱정해야 하고 살펴야 하는 역할은 이나리메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자신이 해오던 일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공연들이 취소되었고, 일부 공연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공연장에 앉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공연을 보는 방식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온라인으로 공연을 보는 경험은 낯설었다. 이나리메는 “커튼도 닫고 공연장과 같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컴컴하게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공연을 안 보고 채팅창을 보고 있더라”고 고백했다. “공연을 보면 잔상이 남는데 채팅창이 뜨면서는 잔상이 안 남았다”. 결국 “온라인 공연과 오프라인 공연은 아예 다른 종류의 매체”라고 결론 내렸다. 이나리메는 “공연장 공연을 보는 게 아니고 모니터를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는데, 그가 온라인 시대에 성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10~20대는 상대적으로 온라인 공연에 대한 이질감이 덜할 수 있지만 이나리메는 수 십 년을 계속 오프라인 공연과 대면 접촉에 길들여진 세대이다. 게다가 온라인 공연을 관람할 경우 대부분 집중력이 떨어진다. 온라인 공연은 공연 이외의 컨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을 덧붙일 수 있지만, 공연에 집중하는 시간은 훨씬 짧아지기 때문에, 유튜브에서도 “긴 영상은 조회수가 높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비대면 시대의 교육과 공연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나리메의 예상처럼 “세계투어를 하는 예술가들의 숫자는 옛날보다 줄어들 것이고 로컬 단위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또한 무대에서 관객을 상대로 공연을 펼치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자기가 가진 예술성이나 음악성을 발휘해서 비대면 시대에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더 절실하게 공연을 보거나 공연을 보는 습관이 없어질 수 있다. 작품 경향이 바뀔 수도 있다. 이나리메 역시 혼자서 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온라인으로 음악을 발표하는 일에 더 몰두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 살아남아야 하고 음악을 계속 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이야기야말로 가장 정직한 현실이다. 살아왔던 삶의 경험과 의지가 적지 않음에도 무엇 하나 전망할 수 없고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불안감으로 멈추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불안감을 드러내는 일이고, 불안감을 인정하는 일일지 모른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일지 모른다. 모두의 상황이 다 똑같지는 않지만 같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던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때, 우리는 손을 잡을 수 있다. 조심조심 걸음을 뗄 수 있다.



이나리메는 50대 여성 작곡가이다. 유학, 출산과 육아를 거쳐 1999년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해, 음악극과 연극, 애니메이션 더빙 분야의 작곡가와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소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서정민갑 : 예술 활동을 중심으로 본인에 대해 소개해달라는 질문이 첫 번째이다.


이나리메 : 조기교육을 통해 입문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예술학교로 다니고, 음악대학 졸업하고, 유학 가서 음악과 관련된 공부를 조금 했다. 유학 갔다 와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애니메이션 더빙하는 회사에서 통역을 시작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취업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많이 떨어졌다. 결혼하고는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전념하다 99년에 음악극을 하게 된 거다. 어릴 때 피아노 선생님이 ‘너는 연극 쪽이 어울릴 것 같아’ 하시고 연극 쪽으로 연결시켜주셨다. 그때부터 연극 음악을 하게 됐다. 남들이 하는 건 다했다. 레슨도 하고 시간강사의 문을 두드리면서 활동했다. 우연한 기회에 예술위원회라는 곳이 출범했을 때 예술위원회의 1기 소위원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예술의 공적 지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활동 범위와 관심을 확장시켜서 정책을 실행하실 때 도움이 되는 일을 좀 하고 있다.


서정민갑 : 올해 코로나가 터졌는데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활동해 왔나?


이나리메 : 공연과 스튜디오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 보통 뮤지션들이 스튜디오 작업을 하고 앨범을 기반으로 공연을 한다든지, 공연을 하고 나서 좋은 결과물을 기반으로 결과물을 만든다든지 하는데 나는 더빙을 한다. 스튜디오는 OTT 쪽 물량이 많아지면서 일이 좀 늘었다. 코로나라고 한가해진 것보다 오히려 일은 조금 많아서 분주하게 지냈다. OTT는 늘었지만 영화계 일은 좀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다. 지금은 무엇이라도 들어오는 대로 하면서 실력을 키울 때다 생각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공연은 저녁에 갈 데가 없다. 사실 연극은 3년 전부터 일이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 오페라는 하고 싶어서 위촉이 안 들어와도 자발적으로 했다. 그런데 3 ~ 4년 전부터 50대에 들어가면서 같이 작업을 하는 연출 선생님들이 열댓 살 많으신 분들인데 작업을 안 하시기 시작했다. 저도 따라 불려지는 횟수가 적어졌다. 그러니까 연극으로는 일이 들어오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내 언어로 내 곡을 조금씩 써보자고 오페라에 도전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고 갈 데가 없어졌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일의 총량으로 하면 옛날보다 75%, 80% 정도이다.


서정민갑 :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일이 조금 줄어들었나?


이나리메 : 공연이 없으니까 그렇다. 잡지에 공연 리뷰를 쓰는데 석 달이나 리뷰를 못 쓰고 수필 같은 걸로 때웠다. 글 쓸 일이 없어서 올해 스터디도 많이 했다.


서정민갑 : 일이 좀 줄어서 그 시간만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인가?


이나리메 : 그렇다


서정민갑 : 코로나를 거치면서 주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들은 게 있나?


이나리메 :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수업을 만드는 것 때문에 조금 피곤하다, 상반기에는 무관중 연주를 많이 했다. 지원금을 받으면 활동을 하긴 한다. 처음에는 충격에서 오는 피로도가 높았던 것 같고, 지금은 약간 무감각해진 것 같다. 다들 약간 넋을 놓고 있는 상태 같다. 아는 분 중 몇 명은 이직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연극배우들이야 옛날부터 투 잡 많이 했다.


서정민갑 : 음악인들에게 코로나가 영향을 많이 미쳤나?


이나리메 : 정신적으로 좀 우울해진 것 같다. 무대 공연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많이 우울해하는 것 같다.


서정민갑 : 생활이 어려워진 분들도 많으신가?


이나리메 : 어렵냐고 꼬치꼬치 물어보진 못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저희 나이 대는 코로나 때문에 어려울 사람이면 예술 다 포기했다.


서정민갑 : 일 년 동안 예술 쪽 활동의 변화가 더 많은가, 아니면 생활이 바뀐 게 더 많은가?


이나리메 : 생활이다. 패턴이 바뀌었다.


서정민갑 : 코로나 때문에 변화가 많을 텐데 예술가로서의 느끼는 변화가 큰가? 아니면 일반 시민으로서 느끼는 변화가 더 큰가? 둘 다인가?


이나리메 : 예술은 잘 못 하는데 예술가로서 자의식이 강한 편이라 예술가로서 느끼는 게 더 큰 것 같다. 연극이나 음악극하는 사람으로 ‘정말 이거 어쩌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이제 경음악, 이지리스닝 쪽으로 틀어야 되나? 계속 작곡을 할 수 있기는 할까? 생각했다. 쉰 넘어서 계속 자기 작업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이와 코로나하고 약간 맞물린 상태이다. 그것 때문에 6개월인가 주말에 밖에 안 나가고 발악하듯이 오페라도 썼다. 사실 갱년기까지 한꺼번에 왔다. 일을 받아서 곡을 쓰는 걸 좋아하지 자발적으로는 쓰기는 싫다. 기적적으로 <신의 아그네스>가 들어와서 재밌게 작업 했다. 내년에 또 그런 게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


서정민갑 : 올해 코로나 때문에 하기로 했다가 취소된 일이 몇 건이나 있었나?


이나리메 : 다행히 코로나 때문에 있었던 게 취소되지는 않았다. 보고 싶은 공연이 취소된 건 많다.


서정민갑 : 코로나 때문에 소통하는 방식이 바뀐 게 있나?


이나리메 : 이데일리에 국립오페라단 온라인공연에 대해 썼다. 실험적으로 공연을 하니 실험적으로 해보자해서 했는데 힘들었다. 음악적인 퀄리티를 그대로 전달하는 건 그냥 접어둔다. 그런 걸로 리뷰는 불가능하다. 몇 백억을 들여 오페라 라이브를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올해 중계방송 엄청 많이 봤다. 새벽 1시만 되면 클래식 공연을 많이 했다. 중계방송을 많이 틀어서 하면 보게 된다. 리뷰를 쓰려고 커튼도 닫고 공연장과 같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컴컴하게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공연을 안 보고 채팅창을 보고 있더라. 사실 공연장에 들어가면 폐쇄된 공간이 주는 매력과 밀도와 집중도가 중요하다. 보통 공연을 보면 잔상이 남는데 채팅창이 뜨면서는 잔상이 안 남았다. 온라인 공연과 오프라인 공연은 아예 다른 종류의 매체이다.


서정민갑 : 온라인 공연이 많아졌는데 보면서 어땠나? 계속 잔상이 남지 않고 채팅창이 신경 쓰였나?


이나리메 : 옛날 세대라서 그런지 온라인 공연은 공연장 공연을 보는 게 아니고 모니터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채팅창은 안 본다. 무관중 공연을 녹화한다거나 온라인 생중계를 하는 건 힘들다. 온라인으로 콘서트를 하는 건 괜찮은데 온라인으로 녹화해서 제출하라고 하면 자꾸 끊고 가더라. 그러니까 편집의 음악이 된다. 뮤직비디오랑 다를 게 없다. 생중계는 그냥 쭉쭉 가는데 큐시트 준비가 매우 필요하니까 그것도 방송이지 공연과는 완전 다른 프로세스이다. 그 프로세스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는 나는 공연이라고 인지하고 보느냐, 아니면 컴퓨터나 TV 콘텐츠라고 인지하고 보느냐가 다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인지하고 보는지 궁금하다. 나는 온라인 생중계라고 인지하지 공연장에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서정민갑 : 앞으로 비대면 예술활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데 어떻게 예측하나?


이나리메 :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멀티미디어, 미디어아트 장르에서는 비대면 상황이 많이 벌어질 수 있다. 국제교류를 동시다발로 한다거나 형식적인 변화로서 비대면 예술의 발전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공연 양식을 가진 공연들을 비대면 상황에서 온라인 중계방송으로 대체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회의적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한데, 그럴 때는 형식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온라인 라이브를 1악장, 2악장, 3악장, 4악장을 한 번에 다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는 15분 이상 앉아있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감금된 상태에서 억지로 보는 거다. 고전적인 예술도 아직 팬들이 있고 사람들은 그것도 계속 듣고 싶은데 공연장에 가둬놓고 갇혀서 연주하는 형식이 아닌 다른 형식이 나와야 될 것 같다. 요새 유튜브 보면 한 악장 한 악장 따로 나오지, 전체를 2시간씩 올리면 긴 영상은 조회수가 높지 않다. 쪼개서 하고 중간에 잡다한 설명들이 붙을 수도 있다. 아주 슬픈 얘기긴 한데 고퀄리티가 아니면 살아남기가 어렵겠다.


서정민갑 : 그러면 비대면 시대의 예술이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보나?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보나?


이나리메 : 반반 같다. 긍정적인 점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클래식음악은 파격적이지 않을지라도 다른 음악장르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비대면 시대는 오히려 생활예술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예술교육이나 도제적인 트레이닝은 비대면으로는 어렵다. 세계투어를 하는 예술가들의 숫자는 옛날보다 줄어들 것이고 로컬 단위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클래식계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난다. 유럽에서 돌아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30대들에게 40, 50대가 무대를 다 뺏겨서 세대교체가 좀 된 현상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서 피아노 배우고 자기 페이지로 들어오라고 해서 진도 커리큘럼 만드는 걸 관찰하는데 레슨의 대체가 가능할 것 같다. 아주 정교한 공연예술 아니고 아마추어의 예술로 그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정민갑 : 언제 코로나19를 가장 심각하게 느꼈나?


이나리메 : 2월에 오빠가 입원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또 4월에 입원을 하셨다. 그 때 병수발 담당이 되었다.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코로나 상황에 빠져 들어가 있는 거였다.


서정민갑 : 코로나 때문에 심각성을 크게 느꼈나?


이나리메 : 그렇다.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이 되긴 하겠지만 예술은 세상이 굴러가는 것에 비해 정말 하찮은 부분인 거였다. 그 때 우리끼리 위로를 하면서 한 말이 “예술가가 사회적 안전망이다.” “이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사회가 안전한 사회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직업을 바꾸면서까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어야지 좋은 사회인 거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기는 했는데 사느라고 바빠서 깊이는 못했다.


서정민갑 : 감염되거나 내 활동이 완전히 멈출까봐 두렵지 않았나?


이나리메 : 감염 위험은 언제나 있다. 평가 갈 때 지방에 많이 가는데, 운전 안 하고 기차를 타고 갈 때 계속 마스크를 쓰고 가야 한다. 4월에 평가를 갔던 지역이 있었다. 얼마 전 거기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더라. 그래서 ‘그래도 조금 위험을 무릅쓰고 한 거구나.’ 생각했다. 예민하게 조심한다. 사람도 웬만하면 많이 안 만났다.


서정민갑 : 코로나19로 인해서 변화가 생긴 영역이 있을 텐데, 어떤 변화가 가장 컸나?


이나리메 :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고민을 해야 될 것 같다. 제일 큰 변화는 야외 스포츠를 많이 하게 됐다.


서정민갑 : 음악활동 관련해서 수입이나 활동방식이나 인간관계나 작품을 만드는 경향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어떤 변화가 가장 컸나?


이나리메 : 외로움이다. 공연장에서 맨날 보는 사람들 있다. 로비스트들이라고 하는데, 로비스트들을 페이스북에서만 보는 거다. 묘하게 얼굴을 맞대니까 엄청 반갑더라. 그거 외로운 거 아닌가? 몰랐는데 얼굴을 맞대고 보니 반가운 걸 보니 외로움 말고 단절감이 컸나 보다. 단절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추석 때 정도부터다. 그전까지는 ‘이거 뭐지’ 였고, 여름 지나고부터는 ‘진짜 기네’. 그리고 내년 여름까지 재택한다는 얘기 돌았을 때는 SNS도 시들하게 되더라. 다 의욕 저하 상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덜 벌고 얼마나 더 벌었는지 모른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데 익숙하다.


서정민갑 : 코로나 이후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준 지원도 있었고, 예술가들에게 준 지원도 있었다. 혹시 신청하셨나?


이나리메 : 심사를 많이 했다. 심사 비수기에 심사를 했다는 건 다른 거다. 평가는 계속 없었고, 영상 제작지원, 긴급지원 심사를 계속했다. 모든 문화재단 심사를 할 수 없지만 몇몇 군데 했다.


서정민갑 : 개인적으로 지원 신청 안했나?


이나리메 : 지원을 신청하려고 예술인복지재단을 봤다. 그랬더니 돈을 빌려주는 거더라. 내가 대출에 익숙하지 않았다. 급하면 가족들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경기도니까 경기도에서 기본적으로 주는 거는 받아서 잘 쓰고 신청 안 했다.


서정민갑 : 예술인에 대한 지원사업들이 당사자들에게 어떠했다는 얘기를 들은 게 있나?


이나리메 :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내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에 너그러운 심사를 했던 것 같다. 이것은 재난상황에 나가는 거지, 이 사람의 역량과 기량 때문에 지원되는 기금은 아니지 않나. 예술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다. 예술인복지재단이 있음에도 행사를 많이 하는 단체들, 어느 정도 수입이 있으면서 자생하려고 하는 단체들은 행사들과 공연이 없어지니까 정말 타격이 컸다.


서정민갑 : 이런 시간을 일 년 가까이 버티는데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어떤 건가?


이나리메 :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굉장한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한데 어찌됐거나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조금 늘어났다. 건강을 보살필 시간도 늘어났다. 좀 많이 불안하고,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앞으로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작업들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은 할 수 있는 것 같다. 비대면 시대에 사회참여를 하는 음악이랄까, 내 음악으로 사람들과 나눈다는 것에 대해서 옛날부터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자기 곡 만들어주기 작업을 하고 있다. 만나가지고 인터뷰를 하면서 로직으로 30초짜리 음악을 만드는 걸 도와주는 거다. 샘플링을 해주고 설문을 하면서 대면으로 한다. 지금까지 9명 만났는데 죽기 전까지 100명 만나는 게 목표다. 그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 다시 틀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아닌 새로운 방법들을 비대면 시대에서 언택트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정민갑 : 경제적인 피해에 대해 얘기를 하다 말았다. 경제적인 변화에 대해 생각나는 게 있나?


이나리메 : 자가가 아닌데, 우리 동네 집값이 왜 올랐는지 모르겠다.


서정민갑 : 정말 생활이 어려웠던 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셨다고 한다.


이나리메 :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가수들에게 안부 문자를 많이 받았다. 연락을 많이 받는다는 건 그들이 일이 없다는 걸 반영하는 거다. 바쁠 때는 감독한테 연락 안한다. 보통 감독한테 전화를 하는 건 일을 달라고 전화를 하는 거다. 다른 해보다 그런 연락을 자주 많이 받았다.


서정민갑 : 본인의 피해가 엄청 크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나리메 :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스튜디오 일을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피해는 5월 가봐야 안다.


서정민갑 : 예술가들이 힘들다는 걸 다들 알텐데, 본인의 예술활동과 생활에 대해 주변 사람들 생각이 바뀐 게 느껴지나?


이나리메 : 그렇다. 걱정해준다. 자기 동생이 음악을 하거나 음악 하는 게 어려운 거 아는 친구들이 어려운 시기에 잘 지내고 있냐고 카톡 같은 게 온다. “꿋꿋하게 잘 살고 있지”라고 답한다.


서정민갑 : 집값이 올랐다고 했는데 살고 있는 동네 쪽에서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있었나?


이나리메 : 애들이 학교를 안 가서 시끄럽다. 층간소음이 많아졌다. 그래서 동네가 북적북적 하더라. 도서관이 쉬고 책도 안 빌려주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좀 어려웠다. 동네에 아람누리가 있고 공연 몇 개 보려고 해놨는데 다 문 닫아 동네에서도 공연장을 못 간다. 동네에서 음악학원 하시는 분들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아는 선후배들은 많이 우울해 하시더라. 공적인 공연을 하고 지원을 받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지원과 관계없이 음악활동을 영위하는 사람들한테 굉장히 타격이 컸다.


서정민갑 : 코로나 펜데믹 이후 예술활동이 어떻게 달라질 거라 보나?


이나리메 : 장르마다 다르긴 할 텐데, 시각이나 작곡은 집에서 혼자 하는 개인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가중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작곡은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 쓸려면 많이 쓰고 만들려면 많이 만들겠지만 공연장에서 재현되는 것들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연주 특히 성악이나 관악 같은 경우는 국공립단체 아니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국공립단체는 예산이 있고 월급이 나가야 되니까 거리를 띄우고 마스크 쓰고 연습하고 동영상을 만든다. 이번 달에는 조금 연주가 가능한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단체는 손 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원금으로 1년을 운영할 순 없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예술가들은 설 곳이 많이 없어졌다. 새로운 예술의 방향성도 제시할 수 있지만 설 곳이 많이 없는 사람들이 예술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 전직을 한다는 게 어디까지 가능할지 굉장히 고민이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무대에서 관객을 상대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예술성이나 음악성을 발휘해서 비대면 시대에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에게는 굉장히 요원한 일이 될 수 있다. 이제 많은 토대들이 조성되고,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좋고, 시민들도 향유하면서 자극을 받고 생활의 변화를 주는 일들이 이제 막 시작된 시기이다. 그런데 펜데믹이 온 거다. 지원금에 의존하지만 공연이 불투명해졌을 때는 공연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지금 공적지원은 공연이나 작품 발표에 지원금을 쓸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 생산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로 포커싱이 바뀌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예술을 그만둘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기 어렵다. 그렇다면 공연 생태계가 아니고 교육이라든지 커뮤니티 활동이라든지 비대면 원거리지만 뭔가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을 머리 맞대고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서정민갑 : 관객들은 어떻게 변할까?


이나리메 : 절실히 원하는 사람과 습관이 없어지는 사람 반반일 것 같다. 인터파크에 들어가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습관이고 루틴이다. 6~7월에 어떤 현상이 있었냐면 좌석에 거리두기를 했는데 매진되는 공연이 많았다. 좌석수가 한정이 돼 있으니까 50%인데, 충성도 있는 관객들은 계속 온다는 거다. 더 절실하다는 얘기다. 고선웅 연출 <조씨고아> 앵콜도 조기매진 돼서 못 봤다.


서정민갑 : 작품 경향이 바뀔 수도 있을까?


이나리메 :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작품 경향은 많이 바뀔 수 있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세계대전 이후에 모던이 들어오면서 현대음악의 조성 체계가 무너졌다. 1차, 2차 대전 때문에 음악가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대편성이 없어지고 소편성 음악으로 개편되면서 유럽의 음악은 엄청 변화했다.


서정민갑 : 본인의 작품에서 변화는 있을까?


이나리메 : 작품을 덜 쓰고 활동을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품 경향이 바뀔 정도로 테크닉은 없다.


서정민갑 : 본인의 예술 활동이나 클래식 분야에서 펜데믹 이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어떤 부분일까?


이나리메 : 펜데믹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전자음악이나 혼자서 할 수 있는 EDM을 합성한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시간이 많으니까 로직도 자주 켜게 되더라. 연주자가 없어도 되기 때문이다. 펜데믹 때문은 아니더라도 변화는 언제나 있는 거다.


서정민갑 : 펜데믹 이후의 상황을 겪고 나서 내년에는 보험에 들듯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겠는 생각이 있나?


이나리메 : 급작스러워서 아직까지 생각 중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닥치면 아무 계획을 못 세운다. 지금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다들 뾰족한 수 없이 계속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단계인 것 같다. 온라인공연으로 돌리고 중계를 하는 건 차안이지 대안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는 방식이 펜데믹 이전부터 온라인 시대로 들어가면서, 특히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생기면서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맨날 유튜브만 보는 게 좀 불만이긴 했다. 저도 ‘라떼’다. 변화가 가속화되겠다는 생각은 든다. 개인적으로는 외로움에 익숙해지겠지만 준비하고 싶지 않다.


서정민갑 : 펜데믹 이후를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활동은 뭐라고 생각하시나?


이나리메 : 어떻게든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되지 않겠나. 살아남을 방법은 있나. 음원 제작에 신경을 쓸 수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 진출할 생각을 더 많이 할 것이다. 연극 같은 건 더 못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제작 환경이 열악해지면, 일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많이 줄어들면 많이 슬퍼지겠다. 아직은 적응하는데 급급하다. 지금은 카드 돌려막기 상황 같다. 마치 전쟁을 하는 상태. 살아남아야 한다. 음악을 계속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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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연출/평가도 병행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를 썼으며,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는 함께 썼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 인터뷰』, 『레전드 100 아티스트』, 『음악과부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한국대중음악명반 100』도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