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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기록

이성희

'하고 싶은 예술을 하기 위해, 하면 좋을 예술들을 한다!'

  • 인터뷰이 이성희(극단배꼽 대표)
  • 인터뷰어 유병진(프로젝트궁리 협력연구원)
  • 2020년 11월 13일
  • 극단 배꼽 스튜디오(충북 증평군 증평읍 죽리)

하고 싶은 예술을 하기 위해, 하면 좋을 예술들을 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통화에서 이성희 대표는 자신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그 닥 할 말이 없다고 인터뷰를 망설여 했다. 그가 사는 충북 증평군은 지도를 찾아봐야 할 만큼 나에게는 생소한 곳이었다. 지금 코로나로 멈춰 밀렸던 공연과 교육들을 한꺼번에 진행해서인지, 약속시간을 잡기 쉽지 않을 만큼 그는 이러 저러한 일정들이 꽉 차 있었다. 오전 9시 인터뷰시간이 정해지고, 초행의 낮선 마을을 찾아 새벽부터 분주히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내려갔다. 한적한 농촌마을인 증평읍 중리에 도착하자, 마을 회관 가까운 곳, 농가주택이 있던 자리에 건축된 30평 규모의 눈에 띄는 노란색 스튜디오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 개조된 농가주택에 이성희 대표와 그의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성희 대표가 증평으로 이주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는 주로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처음 충주로 왔다. 이때 탈춤 동아리를 시작하며 예술에 입문한다. 예술공장 두레와 전통연희단 마중물에서 마당극 배우로 활동하며, 청주에 자리를 잡았다. 마당극 외의 다양한 연극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작업을 해보기 위해 인형극을 전공한 부인과 함께 극단 배꼽을 2011년 설립하였다.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창작 환경이 열악할 수 없어보였다. 작품을 보여줄 공간도, 관객도, 함께 작품을 만들어갈 동료도 모두 부족하다는 것을 그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의 지원금 규모와 비교해 지역소재 공공재단의 창작지원금의 규모가 작아, 지원금만으로는 완성도 있게 하나의 작품을 충분한 만들어 내기 어려워 보였다. 다시 말하면, 작품을 하나 제작하면, 개인의 부채가 그만큼 늘어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따라서 그는 본인이 감당할 부담의 수준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한 해에 한 작품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에 최선을 다해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작품을, 초대되기 좋은 작품을, 그러나 여전히 어디에 내 놓아도 세상에는 득이 될 만한 작업을 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예술교육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작업 조건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고, 예전에는 몰랐던 교육에 대한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고 있단다.


그가 청주에서 조금 떨어진, 그러나 여전히 청주를 오가며 작업이 가능한 증평에 자리를 잡은 이유 중 하나도 지속가능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이성희 대표와의 대화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그가 이곳 죽리의 스튜디오와 살림집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비록 대출을 받았지만) 구입했다는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것은 그 만큼 오랜 시간 이곳에서 머물며 작업하겠다는 큰 계획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심각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그의 공간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활동의 토대을 마련했기에, 그가 오늘 이곳에 쏟는 노력과 재화들이 그의 성과와 자산로 켜켜이 쌓아져 가리라 생각하니 기뻤다.


예산을 최우선으로 증평을 선택하고 이주했지만, 다행히 증평은 그가 예술공방 두레에서 활동을 하며 익숙했던 곳이다. 그는 마을과 커뮤니티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죽리에 자리를 잡고 아직은 마을 분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아티스트로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전에 주민으로서 마을의 일원이 되어 가는 기간을 갖고 있단다. 이 기간이 끝나면, 마을과 함께 예술프로젝트도 해보고, 마을사업도 벌여 보고자 하는 긴 호흡의 계획을 그리고 있단다. 증평읍내에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청년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도 조금씩 마련해 볼란다고 한다. 인구가 유입되는데, 문화가 함께 하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다시 인구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전망과 함께. 그리고 언젠가는 인근의 좌구산 휴양림에서 연극축제를 만들겠다는 얼핏 소박하지만 매우 도전적인 꿈이 있단다.


코로나 상황으로 그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움은 경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실재 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과 두려움으로 읽힌다. 그는 아직 어떤 대안이나 이후의 삶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그의 전망은 이미 나와 있다. 도시가 아닌 농촌과 시골이 그의 예술작업과 삶의 태도이자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성희는 40대 초반의 연극인다.(남성). 대학에서 탈춤동아리를 통해 예술에 입문하였고, 졸업후 예술공장 두레, 전통연희단 마중물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단체인 극단 배꼽을 창단하여 마당극을 포함한 다양한 연극으로 활동을 넗히고 있으며, 최근 충북 증평군의 한 마을에 스튜디오를 짓고 이주하였다. 이 곳을 기반으로 지역과 마을에서의 다양한 예술활동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유병진 : 우선 본인과 단체 소개를 부탁한다.


이성희 : 충주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에서 탈춤 동아리를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2002년에 예술공장 두레에서 첫 작품을 발표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 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두레에서 전업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탈춤에서 전통연희로 또 자연스럽게 마당극으로 활동이 이어져다. 워낙 탈춤이 연극적인 요소가 많아서 연극에 관심이 생겨났다. 탈춤도 마당극도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가까운 곳에 예술공장 두레는 여기 증평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거기에서 한 5년 정도 단원으로 활동했다. 두레가 워낙 전문 마당극 단체라 거기서 많이 배웠다. 본격적으로 마당극을 배우면서 연기를 시작하고 2010년도에 나와서 전통연희단 마중물에서 단원생활을 했다. 지금도 그곳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병진 : 극단 배꼽은 언제 시작 했나.


이성희 : 배꼽은 2011년에 만들었다. 워낙 잡다하게 이 것 저 것 해보고 싶었다. 연극에도 장르가 많으니까. 나는 마당극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무대극도 해보고 싶었다. 극단 배꼽은 마당극만 하지는 않는다. 인형극도 하고 다른 연극들도 한다. 와이프와 둘이서 극단을 운영하는데인형을 전공해서, 인형극으로도 장르를 넓혀 가고 있다. 우리 활동이 주로 마당극인데 인형극도 하고 음악극도 하고 대사 없는 무언극도가 하고 장르를 넓혀가면서 하고 있다. 올해 4월에 증평으로 이사 왔다. 청주에서 10년 활동하다가 올해 4월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공간 만들었다. 활동을 하다 보니, 작품을 만드는 게 주업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조금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고 싶어졌다. 워낙 요즘 마을 사업이 많아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도 마을에 뿌리내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술로 무언가를 해 나가고 싶다. 증평이라는 곳이 문화적으로 불모지다. 예술가도 거의 없다. 여기서 한 번 40대 이후에 그런 꿈을 펼쳐보자 해가지고 왔다.


유병진 : 그런데 증평이 원래 고향인가?


이성희 : 경북 안동이 고향이고 대학을 여기 근처인 충주에서 다녔다. 졸업 후 활동했던 예술공장 두레가 증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증평읍에 단원들 숙소가 있었고, 북이면이라는 곳에 연습 공간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 증평에서 20대 중반의 5년을 보냈다. 그 후 청주에 나가 10년 활동하다가 다시 돌아온셈이다.


유병진 : 그럼 이곳 동네분과 많이 친한가?


이성희 : 아직 몇 개월 안돼서 친한 정도는 아니고 인사는 계속 드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 공간에서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못했다. 원래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여기 마당도 넓고 해서 축제처럼 공연도 하고 식사 대접도 하려 했는데 못하고 있다가, 저 번 주에 여기서 실내공연을 할 수 있었다.

1. 지역의 공연 창작 환경

유병진 : 충북이나 증평의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데 어디에서 주로 공연을 발표하는가?


이성희 : 지역은 작품 제작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싶은데 1년에 신작을 하나 정도 한다. 다만, 그게 4월이면 4월 딱 못 박혀 있는 게 아니고. 사정이 되면 1년에 하나 정도 계속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 4월에 증평으로 이주한 후, 아직 증평에서는 못 했다. 청주에 극단 새벽이 운영하는 소극장과 청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이 있는데, 무대 작품은 주로 이 두 곳에서 공연한다. 그 외에 ‘찾아가는 문화활동’, ‘신나는 예술여행’ 같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학교나, 아동센터, 노인대학 등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의 공연도 한다.


유병진 : 그럼 작품 발표는 주로 공공기관의 지원금 또는 보조금을 지원받아서 하고 있나?


이성희 : 그렇다. 아무래도 제작비 마련을 위해 지원금이 있어야. 초반에 극단 배꼽을 처음 만들고 의욕적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마당극을 10년 이상 하다보니까 다른 장르들도 해보고 싶었다. 지원금을 그 때 400만원인가 받았는데 만들다보니까 제작비가 1000만원을 넘어가더라. 그래서 거의 사비로 충당하곤 했는데, 아무 생각 안 하고 계속 했더니 나중에 빚이 몇백만원이 생겨 있더라. 일년에 한 번씩만 제작 하면 10년 하면 1억 넘게 빚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작 발표는 지원 사업에 선정이 되면 그걸 밑자금으로 해서 개인 사비를 조금씩 보태고 해서 제작 한다.


유병진 : 올해 그럼 작품 발표할 기회가 있었나?


이성희 : 11월에 공연이 있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11월 27일, 28일에 신작을 발표한다.


유병진 : 어떤 작품인가?


이성희 : 청주는 기록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청주에 있는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과정으로 해서 공연 지원사업에 선정 되었다. 그래서 청주에 있는 문화재나 지명, 사람들이 예전에 살았던 이야기를 한다. 청주 최초의 사진사분이 계셨는데, 1920년, 30년도 정도에 사진관을 여셨다. 그 사진관이 아직도 있다. 그 분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청주의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재라든가 그걸 가지고 마당극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유병진 : 마당극은 주로 어떤 분들이 많이 보는가? 마당극이라기보다 배꼽의 작품은?


이성희 : 마당극이라고 해서 그렇게 나이 드신 분들이 보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다. 심오한 작품도 있겠지만, 마당극의 장점은 쉽고 재밋고 누구나 보기 편한 특성이 있어서 아이들도 잘 보고, 다양한 연령대가 볼 수 있다.


유병진 : 지역의 공연 환경은 어떤가?


이성희 : 서울 정동극장 작품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거기 작품은 가능하면 굳이 안따지고 거의 다 본다. 그런데는 홍보도 잘 되고 홍보물도 잘 비치돼 있으니까. 다음 작품으로 뭐가 올라가는지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가? 여기는 뭐 전혀 그런 환경이 안 돼 있다.


유병진 : 창작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교육처럼 관객을 찾고 만들기 위한 활동들도 있다. 어떤 형식의 활동에 더 관심이 가는지 궁금하다.


이성희 : 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해서, 물론 가끔 가다 진지한 내용도 해보고 싶고 그렇긴 한데, 기본 베이스가 유쾌한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마당극이 나한테 잘 맞는다.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고, 물론 수요자한테 전적으로 맞추지는 않는데 그 것도 배려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생계도 중요하고 다른 일 안하고 예술로 먹고 살면서 작업을 이어가야 되니까 그걸 무시할 수 없더라. 두 개를 구분하여, 수요자들이 찾을 만한 작품은 그 것대로 만들고 그걸 하다가 경제적으로 좀 뒷받침이 될 때, 내가 해보고 싶은 작품들을 한다. 활동을 구분해서 한다. 그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착하며 만들고 망한 작품이 많다. 지금도 성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려 다니는 작품이 있고 몇 번하고 사장되는 작품이 있는데, 예전에는 사장되는 작품 많았다. 근데 그걸 구분을 하니까 괜찮더라.

2. 지역사회와 예술 공동체, 마을의 일원이 되어 가기

유병진 : 학교나 지역사회에 장기적으로 협업이 가능 한 파트너들이 있는가?


이성희 : 교육사업에도 관심을 갖으려 하고 있다. 백프로 공연만 하면서 살수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올해 증평으로 옮겨오면서 충북문화재단 교육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고, 인근 학교에서 인형극 수업을 하나 진행했다. 물론 공익적인 목적을 아예 배제안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회에 비빌 언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이 공간도 그런 근거지로 만들어서 마을기업까지는 아니라도, 이 마을과 함께 할 일들을 하나씩 시작하고 실험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가까운 증평 읍내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들도 생각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증평에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에 비해 문화 프로그램이 군청 주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약간 천편일률적이다. 관 주도의 프로그램과 조금 다른 문화도 만들어내고 싶다. 이 마을에서 제가 제일 젊다. 시골 마을들이 점점 없어지는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 거기에 예술이 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사는 마을을 그리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마을을 위한 예술교육 같은 것도 필요하겠다. 나는 원래 교육에는 일도 관심 없었다. 나는 교육과 맞지 않는 편이어서 연극 수업을 한 번 했다가 나랑 맞지 않음을 알고 10년 동안 아예 안 했는데, 올해 다시 아이도 키우면서 나이를 먹다보니까 교육이 재있어 졌다. 그래서 예술교육도 필요한 것이구나 느끼며 예술교육 하고 있다.


유병진 :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단계인가?


이성희 : 그렇다. 그런 밑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쌓여야지 되겠구나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도 요즘은 공연만 하면 지원사업에 선정이 잘 안 된다. 체험 프로그램이든 교육 프로그램이던 공연과 접목되어야 된다.


유병진 : 지역의 학교나, 군청 등 행정기관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나?


이성희 : 군청은 제가 내년정도에 접촉해 볼 생각이다. 원래는 올해도 좀 뭔가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코로나 때문에 뭔가 할 수가 없었다. 내년에 군청에 기획서를 들고 찾아가보려 지금 계속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여기 근처에 좌구산 휴양림에 ‘별천지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아주 좋은 곳인데 아직은 아무것도 없고 군에서 거기를 활성화시키려다 보니 건물만 자꾸 짓고 있다. 문화공간으로 가능성이 있는 곳 같은데, 거기서 공연축제를 해보고자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유병진 : 이곳 스튜디오 공간을 어떻게 찾았는가?


이성희 : 처음부터 증평으로의 이주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청주 인근에 둘러보다가 워낙 땅값이 비싸서 내가 갖고 있는 돈으로 도저히 안 되더라. 점점 청주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다가 이곳과 가까운 초정약수가 있는 내수라는 곳까지 왔었고, 거기도 비싸서 계속 멀어지다가 이곳으로 정하게 되었다. 초정에서 언덕 넘으면 증평이다. 이왕 어차피 초정까지 오면 언덕 하나 넘자 그래가지고 넘었더니 땅값이 확 떨어지더라. 거의 배 가까이.


유병진 : 그래서 구매를 한 것인가?


이성희 : 대출받아서 샀다. 여기가 서울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다. 서울 방 한 칸 값이면 여기에선 가능하다. 지난 10년간 월세를 내고 살았다. 어차피 월세가 은행 이자보다 비싸니까 그냥 대출받자 해가지고 샀다.


유병진 : 이 스튜디오를 지을 때 동네분들이 관심을 갖거나 경계를 하지는 않았나?


이성희 : 동네 분들이 되게 좋으시다. 어머니들이 다 얼굴이 환하시고 좋으시다. 시골가면 텃세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연세 있는 어르신들이 많아 막 적극적으로 다가 오시지는 않아도 다 멀리서 지켜보신다. 삼삼오오 모이셔서 같이 담소 나누시는데, 보면은 다 지켜보고 계신다. 그래서 저번 공연했을 때 안 오실 줄 알았는데 거의 다 오셨다.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 나도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그래도 3년 정도 시간을 갖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싶다. 확 가까워지는 것 보다. 어르신들 청소하라고 가끔 부르신다. 새벽 5시 반에 마을 방송을 하면 나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 전날에 청소할테니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날 새벽 5시 반에 청소할 거니까 나오라고 방송하면 나가서 청소한다. 너무 먼저 다가가 이 사업 저 사업 하자고 하기 보다는, 어르신들 청소하라고 부르면 가서 같이하고 천천히 알아가면서 차차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고 싶다.


유병진 : 그럼 주거도 이 근처에서 하는가?


이성희 : 저기 옆 건물이 우리 집이다. 저기 오래된 집.

3. 코로나 시대의 예술 활동

유병진 : 코로나로 인한 영향이 있는가?


이성희 : 많다. 엄청 많았다. 공연에도 영향이 많았다. 국가가 주는 재난지원금 말고도 예술가들에게 지원되는 공공 지원 사업이 꽤 있었다. 이런 지원이 없었으면 올해 거의 못 버텼을 것 같다. 한참 심할 때 6월 즈음에는 7, 8월에도 코로나 사태가 안 풀려서 공연이나 일을 못하면, 진짜 배달 알바나 택배라도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알바라도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7월에 지원사업이 조금 풀리면서 공연을 조금 하게 되고 지원금이 나오면서 버텼다. 안 그러면 힘들었을 것이다.


유병진 : 어떤 형태의 지원인지 조금 더 설명해 달라.


이성희 : 공연을 지원하는 것도 있었고. 수도권은 잘 모르겠지만. 지방 쪽은 비슷하다. 지역 문화재단에서 온라인으로 공연을 발표하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올해 1차, 2차, 3차까지 있었다. 충북문화재단에서의 지원사업이 있었고, 중앙의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창작 준비금도 도움이 되었다. 선정이 돼는 해도 있었고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 올해 다행히 선정되었다. 이를 통해 온라인으로 공연 발표하는 비대면 공연을 두 번 정도 했었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에 선정되었던 공연 지원사업이 있는데 코로나 위기가 3, 4월부터 심해져 못하고 있다가 장기화되어 결국 비대면 공연으로 전환되었다. 지연되었지만 비대면으로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어 지원금으로 버틸 수 있었다.


유병진 : 원래 공연 창작지원으로 받았던 것은 미뤄져서 진행하게 된 것인데, 이로 인한 피해는 없었나?


이성희 : 미뤄졌다기 보다 원래는 공연장에서 해야 할 공연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것이다.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지원된 것도 있고 원래는 공연 창작 지원사업인데 비대면 온라인공연으로 전환된 것도 있고.


유병진 : 그러면 취소 된 것은 없었나?


이성희 : 충북문화재단 사업 중에 교육사업이 하나 있는데, 학교의 교․강사가 같이 연구를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사업인데 그게 취소될 위기에 있었다.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라고 해서 멘붕이 왔다. 연극 수업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하지? 코로나가 심해지니까 학교 측에서 대면 수업을 막았다. 사업을 포기해야 되나 하다가 어떻게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 영상 촬영을 하고 이렇게 진행을 하고 있는데 그 것도 거의 못할 뻔 했다. 수업도 뒤로 밀리고 밀리다가, 학교수업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바로 취소하는 것은 아니고 기한을 둬서 이때까지도 코로나가 심해지면 그때는 어쩔 수없이 수업이 취소가 되는데, 그렇게 취소될 뻔한 게 있었다.


유병진 : 온라인으로 공연을 하거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낯설다.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안 해봤던 것을 해야 되니까 막막함도 있을 것이고,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대면방식과 비교하여 그만큼의 성과를 못 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어떠했나?


이성희 : 일단 나는 공연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비대면은 할 짓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올해 2월에 터지고서 이거 얼마 가겠어 했는데 점점 심해지는 것 보고, 다 막히면서 5월 말쯤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미술이나 음악 같은 여러 장르의 예술이 있지만, 연극은 정말 이러다 진짜 없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을 영상으로 찍어서 전달이 될까? 실제로 영상으로 찍어서 올린 연극들을 봤는데 저게 가능한가? 물론 뭐 나름 재미가 있기는 한데 연극을 실제 보는 것하고 완전히 달라서. 온라인 지원사업이 되어 영상으로 찍기는 했지만, 일단 하는 사람 입장에서 재미가 없고, 공연에서만 가능한 관객과의 소통도 전면 차단되니까. 더구나 마당극은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기도 하고. 그래서 연극은 아마 미래에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비용적인 면에 큰 차이는 없었다. 영상을 찍는 대신 팜플렛을 안 찍으니까,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예산에는 별 차이 없었다. 대면으로 관객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의 차이가 컷다. 연극 작품이 갖고 있는 미덕이 영상으로 전달이 안 되겠구나, 사람들이 이런 콘텐츠를 보려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요즘 워낙 유튜브나 자극적인 콘텐츠들도 많고 거기는 오로지 재미를 추구하니까. 물론 나도 유튜브를 본다. 재밋으니까. 그것과 연극 영상과 같이 놓으면 연극 영상을 사람들이 봐줄까? 그러면 예술가들이 영상을 고민해야 되는데 그러면 연극도 그거에 맞춰서 변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4.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생각

유병진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것 같은데, 요즘 워낙 영상 콘텐츠가 주도하고 있다. 물론 현장의 미덕이 있겠지만, 영상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이 워낙 커지다 보니 무대예술 그대로를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 매체에 맞는 어떤 것들 많이 고민하게 된다. 코로나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앞으로의 어떤 세상이 될 것 같나?


이성희 : 지금 연극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장르 전체의 위기인 듯하다. 풍물하는 친구들이나 민예총 안에 미술이나 서예 같은 여러 장르의 동료들이 있어 이야기 해보면, 공연 장르들의 고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까 연극, 풍물, 무용 이런 장르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가 하는 행위를 그대로 찍어서 올리는 것은 사실 진짜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딱히 대안을 모르겠다.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차라리 영화를 찍는 게 맞는 것 같고, 사실은 영상은 영화니까. 연극을 그대로 하는 건 안 되니까 그래서 고민스럽다. 영상화 작업에 대한 요구사항도 점차 많아지는 것 같다. 올해 온라인 지원 공연사업이 3차까지 떴는데 1차, 2차 때는 복지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해오던 공연을 송출하게 하고 처음은 찍은 것 녹화한 것을 유튜브에 올리면 되었다. 두 번째는 실시간 스트리밍 조건이 추가되었고, 세 번째에서는 비대면 상황에서 어떻게 공연을 사람들이 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다들 지원서 쓸 때 고민을 엄청 많이 했다. 더 이상 영상화 자체를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라서. 지원기관도 특별한 대안이 없으니까 예술가들한테 좀 고민을 해라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쪽으로 방향이 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정된 작품들을 보면 대단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고민하다가 QR코드를 제작해서 사람들이 찍으면 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것도 대안은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직 고민은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특별히 대안은 찾지 못했다. 있으면 의견을 주시길 바란다.


유병진 : 나의 경우 유튜브를 볼 때 재밋다고 생각하는 콘텐츠 들은 무대 공연을 그대로 찍어 올린 영상들이 아니다. 영상매체의 관객이 본다는 것을 전제로 편집한 것은 그나마 볼만하다고 해도, 40분 이상 시청하는 것은 쉽지 않더라. 유튜브 자체가 공연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가 되기보다는 공연을 확산시키는, 또는 창작자와 관객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소통의 매체로 접근했을 때는 괜찮은데, 전막 영상은 안 보게 된다.


이성희 : 진짜 관심 있는 작품은 필요해서 본다. 연극은 어쨌든 기본이 기승전결이 있고 마지막의 클라이막스에 사건을 해결하고 이런 과정에서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유튜브나 인터넷은 담아낼 수가 없다. 요즘 워낙 다 짤이거나 길어봐야 10분짜리 영상에 웃기는 것이나 자극적인 것, 먹방 같은 것들이니까. 그런 영상들이 기획 단계부터 엄청 공을 들여 만든다고 하더라. 나는 그냥 가서 찍는 줄 알았더니 아이디어 회의하고 공들여 촬영하고 편집하고 엄청 복잡한 과정이 있더라. 연극은 전체의 과정을 느끼면서 봐야지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데, 영상은 10분 안에 또는 한정된 시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러면 자극적이거나 예능적인 게 많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유병진 : 사실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는 드라마의 캐릭터는 재미없다. 그냥 이성희라는 실재하는 인물의 캐릭터가 재미있을 수 있다. 보통 실재하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유튜브를 보게 되더라. 이성희 대표가 이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게 사실 재미있지, 연극 작품을 틀어주는 건 사실은 별로다.


이성희 : 나도 유튜브는 전원일기 컨셉으로 여기서 내가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남기 이런 콘텐츠를 생각하고 있었다.


유병진 : 그런 건 너무 잘 찍어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유명 콘텐츠 유튜버처럼 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이성희 : 그 사람들은 거기에 매진하더라. 그게 직업이 돼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편집하는 사람 따로 있고 어마어마 하더라. 그게 다 돈이니까 어쨌든.


유병진 : 주변 사람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이성희 : 지역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올해 지원 사업이 많았다. 원래는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특별한 상황이니까 많았던 것 같고, 아마 내년에는 온라인 3차 지원 사업이 뜬 것처럼 뭔가 대안을 내놓으라는 조건의 지원이 많을 것 같다. 올해 10월에 신나는 예술여행 지원사업 떴는데 거기도 없던 문항이 생겼더라. 코로나가 심해져 비대면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 구체적으로 기술하라더라. 이 것을 쓸려고 며칠을 고민했는데도 대안이 없더라. 그래서 결국은 형식적으로 쓰긴 했지만.


유병진 :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아직 대안이 없을 것 같다.


이성희 :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직은 나도 주변 사람들도 버틸만한데, 만약에 길어졌을 경우에 우선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계가 1번이니까 어떤 다른 일을 하면서 공연일을 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코로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감기처럼 되어 계속 될 것 같다. 그러면 대면 공연은 계속하기 어렵지 않을까. 결국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있다. 현재로는 버틸 만 하지만 미래가 문제다.


유병진 : 이 상황에서 누구도 대안은 당장 없는 것 같은데, 분명 어느 순간 누군가는 발견할 것이라 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극복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성공하면 그건 좋은 일인 것 같다. 그게 다른 사람의 방법도 될테니.


이성희 : 빨리 발견해야 할 텐데.

5.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들

유병진 : 3년 동안 이 마을과 시간을 갖고 나면 그 때부터는 마을과 긴밀하게 활동을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거나 기대하고 있는가?


이성희 : 계속 지역의 인구가 줄고 있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계속 줄고 있다. 청주 같은 경우에는 연극영화과, 무용과 같은 예술학과를 학교에서 없애버린 곳이 많다. 서원대학교는 무용과를 폐지했다. 지역에서 문화와 예술이 생겨나야 젊은 사람들도 들어오고 지역사회가 살지 않을까. 특이하게 증평은 10년 만에 돌아와 보니 젊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읍내에 신도시처럼 아파트도 생겨나고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그래서 증평이 지역색이 많이 연해졌다. 전국에서 다 모이니까 이런 곳에서 문화를 만들어내면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마을에 젊은 사람이 살지 않을까. 거기에 예술이 디딤돌이 되고. 이상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한 5년 계획으로 봤을 때는 혜화동의 마르쉐 장터 같은 것이 생기면 어떨까. 아무 지원 안 받고 어떻게 이런게 되지? 여기서도 뭔가 직거래 장터라든가 이런걸 하면서 뭔가 문화가 결합되는 그런 프로젝트를 생각을 해봤다. 전국에 있는 공동체마을, 문화공동체나 이런 것도 견학을 가보려고 한다.


유병진 : 귀촌 인구가 늘어나 젊은이들, 예술가, 시민 운동하던 사람도 많아, 커뮤니티가 잘 활성화돼 있다고 들었다. 분명 증평에도 그런 커뮤니티가 있을 것 같다.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형성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니까.


이성희 :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거기는 잘 되고 있으니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 생각한다. 홍천에 가면 ‘밝은누리’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공동체가 형성돼 있는데 학교가 너무 좋더라. 학교 수업 과목이 아이들이 1년 동안 집을 짓는 거다. 그런 걸 하고 아이들이 직접 농사짓고, 물론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는데, 사는데 필요한 교육을 하더라. 거기에 여러 가지 문화들이 형성되어 있으니까 거기를 갈까도 했는데 생각을 바꿨다.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니까. 그런 공동체가 장기적인 목표다. 우리 마을에 소세지 체험장이 있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러 찾아온다. 이장님이 재주가 있으셔서 소세지 체험장에 일 년에 몇 천명이 넘게 찾아온다. 단기적으로는 이 마을에서 공연도 하고 마을의 사업에 보탬이 되고 싶다. 너머의 별천지공원에 일단 공연 축제 만들어서 관이 주도하는 것 말고 자유롭고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서, 증평에도 이런 데가 있구나 만들어 보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


유병진 : 마지막으로 충북문화재단,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증평군 등 지역의 공공 기관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어떤 것이 새로 생겼으면 좋겠다든지, 어떤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든지.


이성희 : 어려운 질문 같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



▲ 이성희 인터뷰 워드 크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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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진 : 독립 프로듀서, 연구자, 공연예술 관련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아시아문화원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프로젝트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는 프로젝트 궁리 협력연구원이자, 코끼리들이 웃는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