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청주

어쩌면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오래 버티는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종수 시인을 인터뷰하는 내내 나는 원하는 답을 얻어내려 애를 썼다. 팬데믹 상황에서 창작자의 고약한 처지를 듣기 위해서였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일정한 급여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전업시인’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나? 잔인하게도 이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인터뷰에 임했던 것이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꽤 자주, 부정적인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으나 시인은 매번 질문을 비껴갔다. 심지어 시인은 이 시기를 매우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처음에는 질문을 회피하는 듯싶기도 하고 에둘러 얘기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시인이 나와는 다른 위치와 태도로 살아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렇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시인은 철저히 혼자 일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작품으로 자신의 성정과 사상 그리고 그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세계의 전언을 전달하는 매체이다. 고로 시인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일상을 뒤흔든 작금에 언중이 자주 쓰는 말로 표현한다면, 자가격리의 상황에 익숙하며 비대면으로 말하는 자이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생계 걱정을 하면서도 금방 현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고 있다고 자주 말했다. 위기의식을 늘상 품고 있으면서도 작품을 쓸 수 있는 상태, 즉 어느 때나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시인들 특유의 습성일 수 있고, 이종수 시인이 본래 지니고 있는 낙관적 성품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시인은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 할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특히 올해는 충북교육청의 ‘찾아가는 학교 독서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된 강연 프로그램에 자주 초청되어 학생들을 어느 해보다 많이 만났다. 그 외에도 도서관 프로그램 등 성인 독자를 만나는 자리도 많았다.

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문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그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이종수 시인은 데뷔 이후 세 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시집마다 작품의 변화가 눈에 띈다. 첫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2002, 실천문학사)은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서정성이 눈에 띄며, 두 번째 시집 《달함지》(2012, 푸른사상)는 현실의 이야기와 설화적 모티프가 결합하여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최근의 시집 《안녕, 나의 별》(2017, 고두미)은 그림시집으로 시인이 그린 그림을 적극적으로 시집의 구성 요소로 끌어들여 독자층을 좀더 확장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수많은 시인이 등단 이후에 경제생활 등 여러 이유로 작품활동이 뜸해지는 것과는 달리 이종수 시인은 남다른 성실성으로 독자를 만나왔다.

특히 데뷔 이전부터 동인들과 함께 펴낸 《월간 엽서시》는 시인 자신은 물론 동인들의 창작시와 그림을 엽서 형태로 발행하여 30여 년간 꾸준히 구독자를 늘려왔다. 요즘 말로 하면, 《월간 엽서시》는 구독 서비스를 접목한 독립출판 활동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해온 것이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 친화성을 획득해올 수 있는 것도 이렇게 꾸준히 독자와의 연결을 실천해왔던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시를 쓰는 일만으로는 생활하기 힘든 직업이다. 봉급생활자가 아니라면, 멀티 페르소나의 상태를 필연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종수 시인의 ‘부캐’는 작은도서관의 관장이다. 그가 운영하는 참도깨비작은도서관은 청주의 대표적인 베드타운 중 하나인 율량동의 LH 9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종수 시인은 ‘작은도서관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책문화 운동가이도 하다. 작은도서관 운동이 태동하던 1990년대부터 그 자신이 운영하는 참도깨비는 물론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을 설립하는 데 앞장서왔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여전히 수적으로 부족할뿐더러 수험생 중심의 독서실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공공의 빈틈을 민간에서 설립한 작은도서관이 메우고 있는데, 1990년대부터 촉발된 작은도서관 운동이 2000년대의 확산기를 거쳐왔음에도 운영상의 여러 문제로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책을 열람·대여하는 기능뿐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발히 지속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을 찾기가 힘든 현실이다.

참도깨비도서관의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반갑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도서관, 공공미술관 등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가장 먼저 폐쇄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참도깨비도서관은 중간중간 심각 단계일 때만 제외하고 문을 열어두었다. 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던 소규모의 문화 프로그램도 단절하지 않고 지속해왔다. 물론 10인 이상이었던 참여자 수를 5인 이내로 제한하고 방역지침을 준수했다.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기 힘드니 작은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도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이 채워주지 못한 독자들의 갈증을 민간의 작은도서관이 조금이나마 해소해준 것이다.

이종수 시인은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의 국면에서 다른 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한 셈이다. 그가 2020년을 단절과 지연의 시간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다수의 문화예술인과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 시간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외부 환경이 변화되었을 때 그에 적응하기 위해 심리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것을 심리적 항상성이라고 한다. 그것이 깨질 때 불안이 엄습하고 일상이 흔들린다. 시인은 비대면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또한 멀티 페르소나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바뀐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자신이 하던 일을 지속하는 노력을 늦추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새로운 패러다임’ ‘언택트’ ‘완전히 새로운’ 등등의 수식어의 홍수 속에서 완전히 다른 방법을 요구받았을 것이다. 아마도 내년에도 그럴 텐데 딱히 뾰족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 때이다. 그럲다면 뾰족한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해오던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허락하는 선에서 하면 된다. 누군가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줄 때까지 오래 버티는 힘을 얻는 것, 이것이 시인이 입을 가린 상태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종수 시인은 1966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장닭공화국>이 당선돼 문단에 등장했다. 그동안 《자작나무 눈처럼》(2002)과 《달함지》(2012), 그림시집 《안녕, 나의 별》(2017) 등 3권의 시집과 산문집 《요놈이 커서 무엇이 될꼬》(2004)를 펴냈다. 데뷔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엽서시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무려 30여 년간 동인들의 창작 시에 그림을 담아 제작한 《월간 엽서시》를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는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작은도서관 운동가이기도 하다. 또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흥덕문화의집’ 관장으로 재직하며 다수의 문화기획과 사직1동 구술 자료집을 남겼고, <사직1동 닷컴>이라는 동네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1. 시인과 도서관

신헌창 : 인터뷰 오기 전에 최근 작품만 찾아봤는데, 1990년대 서정시의 맥을 이어오는 시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독자에게 접근하기 쉬운 작품을 쓰는 것 같다.

이종수 :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두 번째 시집 낼 때까지만 해도 서정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사람들 이야기라든가, 리얼리즘적인 측면이 강했다. 실제로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기 전까지는, 나만의 시를 썼다고 본다. 그런데 세 번째 시집《안녕, 나의 별》이 의외로 독자들과 소통되는 게 있더라. 아이들이 이해할 만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신헌창 : 시 창작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종수 : 일단 ‘엽서시’ 동인 활동이 있다. 《월간 엽서시》를 매달 발행해서 보내고, 동인끼리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시를 매개로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난다. 아이들과 시 공부하고, 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시 창작을 병행하며 여러 가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신헌창 : 《월간 엽서시》는 어떻게 발행하는가?

이종수 : 《월간 엽서시》는 한 번에 동인 7~8명의 시 작품을 한 편씩 싣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신헌창 : 구독료를 받고 보내는가?

이종수 : 자진해서 구독료를 내는 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우표를 받았는데, 이후에 회비를 내는 분들이 생겨 그걸 제작비로 사용했다. 요즘엔 구독료가 많이 들어와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헌창 : 시 이외에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종수 : 찾아가는 독서문화교실이나 학생문학상 강사와 멘토나 작은도서관 관련 행사나 문학 행사 등에 참여하고 있다

신헌창 : 문화기획 활동도 많이 하는가?

이종수 : 흥덕문화의집에 소속돼 있을 때는 문화기획을 많이 했다. 한 4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기획을 많이 하고, 구술작업도 많이 하고, 책도 펴냈다.

신헌창 : 생계에 관련해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종수 :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강사 파견 사업이나 작은도서관 문화가있는날 예술강사로 시 강의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신헌창 : 작은도서관 활동을 일찍부터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이종수 : 작은도서관 활동을 20년 가까이 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아지트다. 문학을 공부했지만, 뒤늦게 어린이문학, 그림책, 동화를 공부하다가 덜컥 도서관을 하게 됐다. 애초에는 학원식으로 운영해서 돈을 좀 벌어볼까 해서 몇 년간 친구랑 같이하다가 거의 말아먹고 나서 외부 강의를 통해 도서관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독서 토론학교 식으로 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 이른 시기에 시작했던 것이어서 안 먹혔다. 그래서 그 뒤로 도서관만 열심히 했다. 도서관에서 문학 교실 같은 것을 열어서 수입을 얻고, 책 사고, 집에도 갖다 주고 하는 구조로 근근이 꾸려왔다.

신헌창 : 도서관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이종수 : 학원강사 포함 별걸 다 했다. 어차피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를, 문학을 버리지 않은 거니까 잘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틈틈이 나가 아이들이랑 시를 같이 공부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그걸 글로 정리하면 이게 또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2. 코로나 시대의 작가생활

신헌창 : 코로나 대유행 이후 올 한 해 활동을 돌이켜본다면?

이종수 : 6명 대가족이 산다. 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처음에는 상당히 힘들었다. 아내가 공무원 생활을 하며 지원해주면서도 묵인해주었는데, 가끔 그만하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쉽게 얘기하면 강사가 되거나 취직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이게 돌이킬 수 없다라는 거, 그동안 해온 것들에 대한 어떤 인정, 이런 것들이 서로 좀 극적으로 화해가 됐다. 왜냐면 이제 건강한 게 최고니까. 코로나 초기가 제일 힘들긴 했다. 직업 특성상 3월부터 강의를 나가거나 했던 것들도 10월까지 다 밀리고. 행사들이 연기되고 이러면서 조급한 맘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재단에서 원고료 들어오는 일들을 한다거나 해서 근근이 이어갔다. 그나마 7월이 되며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일들이 더 생기더라. 문화가있는날, 작은도서관 예술강사 파견사업 같은 경우도 올해는 늦게 시작됐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었는데, 근근이 강연을 다니면서 그런 것들이 많이 상쇄됐다. 물론 대면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특성상 만나서 얘기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보니까 틈틈이 나가면서, 아주 잘 버틴 것 같다. 많은 독자를 만나고, 또 아이들에게 시를 써보게 하면서, 어느 해보다 수확이 많았다. 위험하면서도 많은 걸 얻은 한 해였다.

신헌창 : 비대면 강연이나 강의 횟수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인가?

이종수 : 대부분 그렇게 권한다. 그렇게 안 되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나 이런 데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니까 상관없는데 비대면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돼 있는 곳은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없어지고 다시 또 생기고를 반복한다. 그렇게 근근이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엄청 많이 만난 것 같다. 작년에 50명을 만났으면, 올해는 200~300명을 만났다.

신헌창 : 온라인 수업을 해서 그만큼 만났나?

이종수 : 온라인은 안 했다. 충청권 안에서, 일테면 제천 같은 곳에 가서 한 10명을 만나고 오는 식으로 일이 계속 이어졌다. 시골 학교는 전교생이 8명인 곳도 있고, 시내인 데는 100명씩 강당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는 그래도 나름 시를 써보고 시를 얘기하는 시간이 있어서 좋은 한 해였던 것 같다.

신헌창 : 어떤 이유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이종수 : 시는 나의 문학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쓰기도 하지만, 독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현장에 나가면,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자기 삶을 솔직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시가 나오도록 유도한다. 자기 삶을 시로 노래하는 학생들이나 일반인의 작품을 읽어주면서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가 되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직접 시를 쓰고 발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서 50~70대까지 했다. 여유만 되면 시집을 다 엮어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 생겼는데,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도 많이 배우게 됐다. 시를 더 읽어주면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들이 다가오는구나 깨닫기도 하고, 독자들이 읽기만 하지 않고 직접 시를 썼을 때 시와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어느 해보다도 풍족한 일년이었다.

신헌창 : 코로나19 이후 문학교육이랄까, 문학 강연을 포함한 창작의 수요가 높아졌다고 봐도 될까? 문학으로 지금의 위기와 고통을 견디는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이종수 : 의외로 위기 상황인데도 많이 그랬다. 그런데 수업을 하면 마스크를 착용해서 그런지 실제로 감정 변화가 안 느껴진다.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눈으로는 다 확인할 수가 없다. 눈을 보고 대충 웃고 있다 어떻다 느끼기는 하지만, 이번에 새삼 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크에 가려져 뭔가를 얘기해야 하는데 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정말 잘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어떤가라는 것조차 얘기하지 못하는 상태랄까. 학교 현장은 더하다. 아이들의 꿈이나 진로나 어떤 문제에 있어서 선생님들도 방치하고 있는 느낌이고. ‘그냥 이렇게 수업을 했으면 됐지, 뭐.’ 이러면서 근근이 이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엔 수업에서 아이들도 대답이 없고,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그러다 시들을 마중물처럼 읽어주고 얘기를 하면 아이들의 말이 봇물 트듯이 나오더라. 몇 학년이든 상관없이 다르지 않았다. ‘문학이라는 게 결국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 결국 스스로 자기 삶을 말해야 된다’, ‘시는 자기 삶을 얘기하는 방식’이라고 얘기를 해주면 향유층에서만 머물던 사람들이 시에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물론 수업이 일회성으로 끝나니까 ‘계속 쓰세요’라고 말하고 올 수밖에 없지만, 그런 반응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중에 정리하면 나름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떤 게 될 듯하다.

신헌창 : 코로나가 창궐하고 활동 공백기가 많았을 것 같다.

이종수 : 공백기 때는 이대로 조용히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변에 공연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 나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나마 근근이 일이 몰려들거나 다른 것들을 통해서 살아남은 것 같다.

신헌창 : 주변의 다른 동료, 시인이라든지 예술가들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가?

이종수 : 우리 단체에 소속된 작가들은 다 어렵다. 교사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새삼 직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처지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함을 표할 때가 많았다. 시간강사를 하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공연자들은 일단 공연 취소가 많았다. 실제로 3월부터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마 청주시에서 코로나 예술지원이라든가 대출 등과 같은 지원을 받았다. 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하다가 비대면 공연이라든가, 유튜브를 활용하는 등의 형태가 활용되면서 그나마 버티게 된 거다. 그것조차 없었다면 활동이 아예 없었을 거다. 우리 단체도 10월에 전국문학인대회를 몇 주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비대면으로 전환해 유튜브를 활용했다. 새삼 유튜브, 온라인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걸 통해 소통되는 또 다른 것들을 보게 됐다. 그것마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다.

신헌창 : 다른 시인들도 문학교육 활동을 많이 하는가?

이종수 : 충북 진보교육감 임기 동안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지역작가를 활용한 학교 현장 교육 등이 많아져 자연스레 수요가 늘어난 거다. 전업작가들이 4~5명씩 하나의 그룹을 이뤄 각자 희망 학교로 가는 방식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지역작가가 있는지조차 몰라 유명한 선생님들 모셔다가 특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지역작가와 협업해서 가는 방식으로 정착됐다. 작년부터 생긴 학생문학상, 충북도 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멘티-멘토를 맺어 진행하는 시 대면 지도, 작가와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원작 읽기 등 작가와 밀접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기존에는 일반인 대상 강좌만으로 근근이 버티던 동료들이 대부분 학교 현장에 나가면서 생계 문제가 조금 해결됐다.

신헌창 : 특히 올해 코로나 상황에서 작년과 다른 정책적 실행이 있었나?

이종수 : 그렇다. 올해 이런 프로그램을 정착화하자, 연례 프로그램으로 하자는 흐름들이 생겼다. 선생님들도 처음에는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적극적이다. 처음에는 기대를 안 했다가 몇 년 해보니까 성과가 좋다고 느끼는 것 같다. 교육의 성과를 적극 이야기하며 좀 더 기회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하는 데도 많다. 그런 반응들이 생긴 것들은 확실한 변화다.

신헌창 : 정책적 공백이 생기면서 기존에 해오던 사업의 긍정성을 새삼 확인하게 되고, 예년과는 다른 변화가 생긴 거라고 보면 되는가?

이종수 : 현장에서의 반응이 달라졌다. 보통 교사들의 대응이 ‘작가가 오는가 보다’ 하고 들여다보지도 않고, 학생들 통째로 맡겨놓고 가는 식이었다. 지금은 확실히 준비 과정부터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기회가 없었지 않나? 오로지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교과서로 배우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교과서 너머의 이야기를 지역작가들과 호흡할 수 있다.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강의를 들은 것 같다고 쪽지를 써서 보여주는 아이들도 있고, 혼자 글을 쓰던 아이들이 좀 더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계속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오는 친구들도 있고, 진짜 시인이나 작가를 지망하는 쪽으로 가려고 공모에 참여하거나 게시판에 올리는 일들도 생긴다.

신헌창 : 팬데믹 이후에 문학 수요자들이나 예술 수요자들이 그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있는가?

이종수 : 일단은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체크면서 여러 가지로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밀접한 소통에 대한 요구가 강력해졌다. 흔히 말하듯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되 마음의 거리는 가깝게 되기를 서로 원하는 거다. 작가들도 뭔가 듣고 싶어 하고, 학생들도 바깥 세계에 대해서 자기도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보니 더 끈끈해진 것 같다. 어떤 분은 줌 화상 강의에서도 다른 때와는 다르게 끈끈함을 느꼈다고 한다. 비대면이냐 대면이냐를 떠나서, 관계의 밀도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헌창 : 지금 이런 상황에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들이 좀 더 발생한다고 보는가?

이종수 : 그렇다. 초등 5학년, 6학년 아이들이 교실 뒤에 ‘우리의 꿈은?’ 이렇게 붙여놨는데, 다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유튜버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작가의 자질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얘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것들을 공유하게 되더라. 실제로 아이들이 코로나 시대에 자기 진로가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알고 있다. 결국에는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고, 많은 직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같은 활동들이 각광받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 정서들이 있다 보니 결국은 말하기, 글쓰기라는 것들에 다가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헌창 : 미디어의 변화로 글쓰기가 위축되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나 보다. 아까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는데….

이종수 : 복화술을 하는 거다. 사람의 음성과 얼굴을 매치하기 어렵다. 가령 랜선으로 얘기할 경우에도 마치 복화술처럼 더빙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 말이 진짜일까 싶은 거다. 게다가 시차도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청각이든 뭐든 조금 소실되는 느낌이 든다. 학교 현장에서 얘기를 하고 있으면 전달이 잘 안 되는 느낌을 받는다. 질문을 들을 때도 더 바짝 가서 들어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 입을 볼 수 있을 때는 금방 알아듣는데, 그게 좀 어려운 부분이다.

신헌창 : 마스크를 쓰는 게 필수적인 시대인데, 일단 얼굴 전체가 아닌 눈만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 아직은 어려운 거 같다. 나중에는 인류가 그렇게 진화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종수 : 희한한 경험 중인 거다. 지금은 마스크 탓에 사람을 못 알아보겠다는 게 크다. 자주 보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얼추 봤거나 ‘저 사람한테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관계에서는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 못 알아보는 것을 두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표정이 감춰지는 것에 대해 안도감 같은 것도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못 읽는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도 있지만, 포기하게 되면서 오는 안도감이나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신헌창 : 비대면 예술 활동의 긍정적 미래, 부정적 미래가 있다면?

이종수 : 공연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직까지 관객들은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공연 중 마스크를 절대 벗으면 안 된다. 반면, 공연자는 마스크를 쓰고는 안 된다.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면 특히 그렇다. 공연자만 마스크 안 쓰고 하는데, 좀 어색한 거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피드백을 하는 건데 그걸 할 수 없으니까. 사실 시험단계 같다. 어떤 공연장에 가면 공연자나 관객이나 할 거 없이 다 쓰고 있다. 그러면 마치 라디오로 청취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거다. 본연의 감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죽은 듯한 느낌도 들고. 모든 것들이 유튜브 방영이 되다 보니까 틀어 놓고 본다고는 하지만,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확실히 근근이 어떤 걸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지 예술 자체의 본질은 사라진 느낌이다.

신헌창 : 비대면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객의 카메라 밖으로 사라지는 것에 있는 거 같다. 그러면 갑자기 혼자서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종수 : 그렇다. 토론, 세미나를 비대면으로 해보면 서서히 집중도가 떨어지더라. 발제자나 토론자가 각자 자기 분량 하고 빠지고, 갑자기 딴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줌 같은 경우 다른 소리가 나면 그게 잡히기도 하면서 혼선된 느낌이 들더라. 또 끝까지 앉아 있어야 된다는 피로감도 있다. 나중에 카메라를 돌려놓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집중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강연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이번에도 특별강연 한 꼭지를 비대면으로 했는데, 앞에 운영진과 카메라는 있지만 마치 허공에 대고 하는 것 같았다. 피드백이 없으니까.

신헌창 : 비대면 강연을 할 때, 이걸 처음 접하는 강연자는 끊김 없이 가다 보니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는 거 같다. 그러니까 대면 강의 때보다 같은 시간 대비해서 더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또한 현장에서는 청중의 숨소리와 같은 소음들이 전달해주는 의미가 있지 않나. 강의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같은… 그런데 그게 없으니 조바심 같은 게 생긴다고 하더라.

이종수 : 그런 게 없으니 조용하다. 갑자기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말 좀 하라, 그러면 더 안 하는 것 같다. 닫힌 느낌이다. 그래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조금씩 적응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헌창 : 비대면 활동에서 겪는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예술 활동에 변화가 있나?

이종수 : 창작이나 예술 자체가 변한 건 아니다. 형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가령 공연자들은 특히 비대면으로 하게 됐지만 실제로 그 자체가 바뀐 건 아니다. 다만,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비대면 활동이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들이 크다고 본다. 대면했을 때에 느꼈던 감정 변화라든가 호응에서 느껴지는 차이에서 오는 변화가 크다.

신헌창 : 시인은 창작 활동을 개인 작업 위주로 하니까 큰 변화가 없었을 것 같다.

이종수 : 그렇다. 개인 작업에서 큰 변화는 없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들이니까. 부가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은 크지만, 그래도 더 나빠지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3. 문화공간 운영에 대하여

신헌창 : 앞서 코로나19 이후에 취소된 일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결정들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이종수 : 참도깨비도서관의 경우는 아파트단지 내에 있어서 입주자협의회에서 문을 닫으라고 하면 닫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서 연기나 취소를 한다. 대부분은 협의 과정 없이 이루어지는 편이다.

신헌창 : 대부분 공동체 또는 기관장의 결정에 따른 것인데,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했던 경우도 있나?

이종수 : 시립도서관을 포함한 공공도서관은 그때 단계에 따라서 일시 폐쇄하고 문 닫아걸고 드라이브스루 등으로 간다. 그런데 우리 같은 작은 도서관은, 어차피 코로나 상황이 길게 갈 거라고 본다면, 방역 대책을 세워서 계속 소규모로 모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를 했다. 공공도서관들은 닫아걸고 연기하면 끝이라고 하지만, 우리 같은 현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그런 것들로 5월, 6월 경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작은도서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대면하자, 문을 열되 방역을 잘하자는 입장이다. 살균기 등 장비를 설치해 달라고 시에 요구를 하기도 했다. 조금씩 조건이 맞춰지면 문을 열어 대출, 반납하고, 그전에는 10명씩 모아서 하다가 5명만 오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규모 강의를 비롯한 활동을 이어 왔다.

신헌창 : 지자체에서 설립한 도서관들이 모두 폐쇄를 해서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었을 것 같다.

이종수 : 그런 것도 있다. 공공도서관들은 드라이브스루 같은 식으로 소화한다고 하지만, 아파트 도서관 같은 경우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나는 끝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심각할 때는 닫았다. 근데 책을 빌리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까 멘붕이 와서 제발 좀 열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졌다. 그래서 대책을 마련해 가며 틈틈이 여는 경우가 많았다.

신헌창 : 참도깨비도서관 이용객이 다른 때보다 늘었겠다.

이종수 : 꾸준히 이용객이 늘었다. 지금은 작은도서관 장서 시스템이 공공도서관하고 연동되기 때문에 어디 어디에 책이 있다는 걸 검색할 수 있으니 여기로 올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종종 멀리 사는 사람이 오기도 한다.

신헌창 : 이런 상황에서 참도깨비도서관 같은 경우는 폐쇄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끌고 가서, 기존의 도서관 이용자들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던 것인가.

이종수 : 처음에는 문 닫고서 잠깐 놀아보니까 편하긴 하더라. 일정이 없으니까, 혼자 어디 다니고 그러니까 편하긴 하던데, 좀 지나니까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기도 해서 열고 운영하고 또 닫고, 그랬다.

신헌창 : 코로나 19를 가장 심각하게 느낀 때와 이유, 코로나 19로 활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이종수 : 이게 오래가면 정말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되는가라는 위기의식을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근데 그걸 조금은 내려놓게 되면서 조금 할 일이 생겼다.

4. 펜데믹 이후의 예술활동

신헌창 :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코로나19 긴급지원금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원을 받았나?

이종수 : 자격 조건이 안 돼서 받지 못했다. 나중에는 시에서 50만 원씩 예술가들에게 긴급지원금으로 편성을 했는데, 그것도 시립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은 포함이 안 됐다. 아예 그런 소득이 없는 사람들만 해당되는 거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시립도서관 강의를 하는 건데, 그게 소득으로 잡혀서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

신헌창 :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종수 : 그 대신 강의 등으로 좀 혜택을 본 것은 있다.

신헌창 :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보면 되는가?

이종수 : 그전에도 사실 소득이 적어서….

신헌창 : 코로나19 위기에서 생활과 창작 활동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종수 : 현장에 나가 대면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일정들이 빠듯해도 다니면 편하고 그랬다.

신헌창 : 코로나19 이후에 동료예술가와의 만남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 같다.

이종수 : 많이 줄었다. 행사를 해도 비대면으로 소수만 하는 방식이다. 문학제를 하더라도 이전에는 많이 모였어야 되는데, 지금은 랜선으로 하거나 소규모로 모이거나 하다 보니까 실제로 행사 규모도 줄고, 만나는 횟수가 그만큼 줄었다.

신헌창 : 소설가는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지만, 시인은 그렇지 않은 편이지 않나? 그래서 장르에 따라 지금 시기를 대하는 것이 다를 것 같다.

이종수 : 소설가는 창작하는 시간, 엉덩이로 앉아서 쓰는 시간이 많아서 두문불출한다. 시인들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필요한 편이긴 하다. 그런 면이 좀 줄어들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신헌창 : 코로나 시기에는 만남이 줄어드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생겨서 작품의 양적 변화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이종수 : 그런 변화는 크게 못 느끼겠다. 왜냐면 어떤 상황이라도 쓸 때는 쓰고 안 쓸 때는 안 쓰고, 그런 패턴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창작을 더 하는 것은 아니다. 좀 빈둥거리고, 멍 때리고, 자기 혼자 어떤 공간에 가거나 하는 것들이 많아진 것뿐이다. 창작을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신헌창 : 어떤 소설가가 그러더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앉아 있는 게 앉아 있는 게 아니라고.

이종수 : 맞다. 앉아 있는 게 앉아 있는 게 아니다.

신헌창 : 올해는 뭐든지 계속 시행착오의 연속인 것 같다. 팬데믹 이후 예술 활동을 어떻게 보는가?

이종수 : 일단 이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될지 우리가 어느 정도 짐작은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 않나. 당장 이게 언제까지 갈지, 백신으로 마스크를 벗게 될지도 확실치 않다. 삶이 재편될 거라는 생각은 한다. 가령 익숙하던 것들을 못 하게 되는 상황, 만남이 특히 그렇다. 직업에 대해서도 이걸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지금 근근이 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이어질 거라는 예상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 의해서 안 될 거라 생각하면, 그럼 뭘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예술가들은 자녀의 등록금이나 아이들 집 얻어 주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 다들 ‘어떻게 하지?’ 하면서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식이다. 각자 불확실성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궁리는 하지만, 실제 그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저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다.

신헌창 : 세계가 바뀌기 때문에 내가 어떤 대비를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비를 해야 될지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종수 : 그렇다. 나는 건강문제를 그동안 생각을 안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덜컥 감염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혹은 우리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다 걸릴 텐데? 이런 것도 은연중에 있다. 또 가족 구성원에 대한 걱정들도 있을 테고. 하지만 드러내놓는 건 아니다.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거지.

신헌창 : 코로나19 이후에 온라인으로 하는 게 많아졌다. 온라인 제작지원, 온라인 상영 등등.

이종수 : 강사설명회, 결과보고회도 2시간짜리로 유튜브에서 어제 했다.

신헌창 : 창작자로서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종수 : 의사소통 면에서는 아직도 답답하다. 결과보고회나 토론회를 한다고 했을 때 원활하게 안 이루어진다. 즉석에서 해결하기 힘들다. 물론 댓글로 한다고 하는데, 그냥 읽고 그만이다. 지금은 그렇게밖에는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적응이 안 됐다. 댓글로 의견을 달기도 하지만, ‘누구누구 의견 냈어요.’ 정도지 쌍방향이 되지 않는다. 댓글을 올리며 ‘누구 선생님 어떠세요?’ 하면 ‘그 의견에 동감’으로 마무리된다. 피드백이 없다. 서로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고. 저 사람은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신헌창 : 온라인 강의 같은 게 점점 많아지는데, 지원사업 말고 자체적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해서 유료화하고 수입을 얻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령,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려도 우리가 다루는 내용이 다수가 관심이 많은 분야가 아니라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조회 수를 만들어내기 힘들 거 같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자극성이 높은 게 조회 수가 많은 거 같고.

이종수 : 지금 진행되는 걸 보면 유료화는 아직 요원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에 돈을 내고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갖춰지지 않았다. 지원사업이 대부분 무료다 보니 사람들이 으레 그렇다고 생각을 하지 않나. 특히 도서관 같은 경우는 대부분 비용을 받지 않는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굳이 돈을 내고 참여할까 싶다. 물론 독립적으로 어떻게 해볼까 생각은 해보는데, 꼭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독창적 콘텐츠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확실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유튜브에서 조회 수를 높일 수 있을 텐데… 조금씩 유료화를 추진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법이든 자기 콘텐츠를 유료화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금 그렇게 가고 있기도 하고.

신헌창 : 그 밖에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로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종수 : 앞서 말했지만, 크게 고민은 안 한다. 요즘에는 강의에서 쓴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직접 현장에서 아이들하고 시 작업을 하니까 실제로 어른들이, 교사들이 바뀌어야 되겠더라. 코로나를 핑계로 손을 놓을 수 없는 거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거나, 어른들은 취업전쟁으로만 몰아가지 말고… 이 시기에 서운한 것들이 많다. 가령 시 읽기를 하는데 다 알만한 분들이 시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석을 해달라고 하면 솔직히 부아가 난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 아는 얘기를 내가 꼭 설명해줘야 됩니까, 라고 일부러 대놓고 얘기를 할 때도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그런 게 늘어났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시가 아니라, 자기 시가 되고 자기 삶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다 보니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늘 내뱉었는데 좀 더 내 시의 완결성이나 그런 것들을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비장해진다. 다음 시집을 어떻게 준비할까 남모를 긴장도 하게 되고. 그게 불편하지는 않다. 당연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신헌창 : 코로나 이후에 접촉이 많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예상되고, 어느 순간에는 아예 다 봉쇄될 가능성도 있는 시대이다. 특히 선생님의 작품과 활동은 독자와의 거리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이종수 : 올해가 그 시험대였다. 세 번째 시집으로 그나마 많이 소통하는 기회였고, 그러면서 조금 제약된 상황에 놓이고 그랬다. 근데 책을 읽든 수업이든, 아주 봉쇄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하면, 충분히 어떤 것들은 해결 방안이나 돌파구들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걱정은 안 한다. 왜냐면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나고 서로 소통도 하고 확인을 하고, 내가 어떻게 가야 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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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창 : 서점인.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 공공기관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2016년 광주에 독립서점 ‘책과생활’을 열고 책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해오고 있다. 2018년 함께읽는책의해 ‘심야책방의 날’ ‘캣왕성 유랑책방’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