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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현

'전통예술단체 정가악회의 대표'

  • 인터뷰이 천재현 (사단법인 정가악회 대표)
  • 인터뷰어 설동준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사무국장)
  • 2020년 11월 14일
  • 정가악회 사무실

정가악회는 2천 년에 창단하였고, 올해로 단체 활동 경력이 21년이 되는 전통예술단체이다. 프로젝트팀 형태로 출발한 밴드 <악단광칠>은 이제 모태인 정가악회보다 더 많이 알려졌고, 기획업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상인 보부>도 내부 인큐베이팅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정가악회, 악단광칠, 보부가 따로, 또 같이 모여 대략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인증 사회적기업이기도 한 정가악회는 모든 직원을 전속 상근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매달 정해진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운영한 지는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공모사업이나 초청 공연 등,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연예술계의 흔한 조직 형태와 차이가 크다.


예술가의 생활과 창작환경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권장할 법도 한 이런 드문 운영 방식이, 역설적이게도 코로나로 인한 충격을 더 크게 만들었다. 정확히는 지원의 공백 속에서 짐을 온전히 떠안은 셈이 됐다.


“프리랜서 긴급지원 대출, 이런 거는 받지 말자. 그거는 프리랜서들 주려고 만든 거고, 우리는 월급 주는 곳이니, 아직은 회사에서 그 일을 할 테니까.”


회사가 그 일을 하기 위해 정가악회는 가용한 모든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가악회의 총부채 역시 적지 않았다. 전통예술 분야 섭외 몇 순위에 꼽히는 악단광칠의 활발한 활동이 부채 탕감에 큰 몫을 해주었으면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다. 천재현 대표는 대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내년 1월 정도까지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1월부터 대략 한 계절이 공연예술의 비수기다. 정책적으로 제공한 긴급대출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출 중 일부는 거치 기간이 상당히 짧아서 당장 내년 1월부터 원리금 동시 상환이 시작된다고 한다. 비수기부터의 급여 지급은 물론이고, 몰려오는 채무에 대한 대응도 녹록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정가악회(그리고 악단광칠)는 잘 되는 곳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다. 예를 들어 공연 섭외가 꽤 일찍 잡힌다. 축제나 공공극장 기획공연의 경우 이전 연도에 미리 일정을 잡기도 한다. 문제는 공공의 예산 구조가 1년 단위이다 보니, 미리 잡은 일정이라고 해서 계약금이나 선금을 받는 게 아니다. 당해연도 예산 편성 전에는 서면 계약도 거의 없다고 한다. 차라리 일정이 없었으면 다른 일이라도 미리 알아봤을 텐데, 시간을 저당 잡힌 것에 대한 보상은 달리 없었다. 단원 개개인의 생계 구조에서도 아이러니를 느꼈다. 전통예술 공연자 중 다수는 레슨(사교육 강사)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 정가악회는 (악단광칠과 합쳐서) 1년에 130회 내외의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휴무일을 제외하면 대략 하루걸러 하루 공연 일정이 있는 셈이고, 연습을 포함하면 연중 근무일이 풀타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렇게 바쁘게 공연을 다니는 팀이 되면서, 단원들도 공연과 레슨을 겸하는 것이 아닌 - 할 수도 없는 - 전업 밴드 활동 방식으로 라이프 사이클이 어느 정도 변한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코로나 상황에서는 공연은 멈췄고, 레슨 시장은 멈추지 않았다. 온전히 공연으로만 먹고 살던 유능함이 무능함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였다.


어찌 됐든 정가악회는 법인이고, 또 사회적기업이고 해서, 갚아야 할 돈이지만, 그래도 꽤 큰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10억 벌면 3억만 우리 돈이라 남 좋은 일 하려고 공연하나 싶었던 불만이, 우리가 3억 벌 때 나머지 7억으로 먹고살던 스탭과 감독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염려로 변했다. 외부 스탭들은 그나마 개인이라 대출 여건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대출받은 돈을 조금 헐어서 다시 외부 스탭과 전통분야 예술인 중 급한 사람들에게 일정 규모 필요한 만큼 빌려줬다고 한다. 정가악회는 단체의 미션이 ‘국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인데, 국악 또는 예술 생태계 자체를 자신들의 밭으로 삼고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정가악회 스스로가 져야 할 짐을 생각하면 아득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코로나로 기억될 올 한 해, 유독 많이 한 활동은 영상화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다수의 영상 촬영 작업을 진행한 천재현 대표와 정가악회는 그 영상이 올라가는 것이 도움이 아닌 초라함이 될까 염려하였다. 공연을 모르는 촬영자,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공연자, 올해 안에 써야 하는 공공 예산, 딱 공연 예산 만큼만 책정된 총비용 등이 만나, 모두가 양질의 영상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일당이라도 벌기 위해 촬영에 임하는 일이 된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거리에 풀을 뽑았다 심었다를 반복하는 공공근로와 비슷한 풍경인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기획팀도 있고, 촬영의 기회도 많은 정가악회와 달리, 젊은 예술가들, 젊은 단체들에게는 그런 영상화 작업의 기회와 감각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공공극장이 너무 없는 것이 천재현 대표는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억지 결과물이 아닌, 훈련과 성장을 지원하는 영상화 작업의 필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천재현 대표가 가장 크게 염려한 것은 예술의 물리적 지속성 그 자체가 아닌, 자폐화되는 예술가의 감각과 예술의 비전 부재였다. 특히 방콕와 유튜브, 넷플릭스 콤보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예술가의 삶을 폐쇄적, 자폐적 상황에서 옮겨, 새로운 생활, 공간, 삶터와 마주하게 하고, 예술의 감각을 깨우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였다.


정가악회의 미션이 그러하듯, 천재현 대표는 많은 상황을 농사에 빗대어, 농부의 마음에 빗대어 생각한다. 코로나의 상황 역시 큰 흉년으로 보고 있었다. 차라리 그렇게 바라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다고 했다. 농사에 흉년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 하지만, 혹독한 흉년이 올해만일까 하는 염려의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밀리고 밀려서 12월과 내년 초에 몰린 일들이라도 하면 그나마 보릿고개를 넘겠지 하는 마음인데, 인터뷰 중 몇 번을 들었던 천재현 대표의 호소가 쉬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격상은 안 돼. 그럼 이제 우린 다 죽어.”

천재현은 거문고 연주자이자 전통예술단체 정가악회의 대표이다. 국악을 전공하고, 2000년에 정가악회를 창단한 이후 현재까지 대표로 단체를 이끌어오고 있다. ‘국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 되기’를 단체의 슬로건이자 개인의 슬로건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창작 뿐 아니라, 예술가를 위한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고 있다.

1. 코로나로 인한 영향의 내용

설동준 : 코로나 때문에 이것저것 다 취소됐잖아요. 실제로 양상이 어떤지 잘 몰라서. 2월부터 깡그리 다 중단된 건지?


천재현 : 깡그리 다 중단됐지. 원래 1~2월은 공연이 없기는 한데, 하여튼 1월부터 4월까지 다 취소지. 그때 내가 농담 겸 사람들한테 하고 다녔던 얘기가 ‘700만 원 벌었다’였는데, 진짜로 보니까 700만 원을 벌었더라고. 4개월 동안 700만 원을 번 거는 우리한테는 안 번 거나 마찬가지지.


설동준 : 4개월이면 운영비가 한 1억 5천원 정도 들어가지 않아요?


천재현 : 그 정도 들어가는데. 그래서 이거 안 되겠구나 하고. 온갖 대출을 다 받았지.


설동준 : 그럼 4개월 동안 돈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급여는 어떻게 했어요?


천재현 : 그 전에 벌어놓은 것들이 좀 있었고.


설동준 : 이월금이 있어도, 공연 없는 것도 한두 달이라야 채우죠. 그럼 3~4월에는 단원들도 같이 허리띠 졸라맨 거예요?


천재현 : 아니, 월급은 그냥 똑같이 다 줬어. 지금도 다 주고 있고. 이제 진짜 멈출 것 같아. 비수기가 오잖아. 그런데 월급을 안 멈추니까. 애들도 크게 감이 없는 것 같더라고.


설동준 : 어떻게 감이 없을 수 있지? ‘월급이 어떻게 나오고 있는 거지?’ 이런 질문을 안 하나? 내부 회의를 할 거 아니에요.


천재현 : “지금 대출을 얼마 했고, 버틸 만큼 버티겠다, 회사 차원에서 할 만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프리랜서 긴급지원 대출, 이런 거는 받지 말자. 그거는 프리랜서들 주려고 만든 거고, 우리는 월급 주는 곳이니, 아직은 회사에서 그 일을 할 테니까. 회사가 영 힘들면 그것도 받으라고 얘기할 테니까, 일단 날 믿어라.” 이렇게 얘기했지. 갈 때 까지 가보자.


설동준 : 어디 어디 대출받으신 거예요.


천재현 : ‘악단 광칠’로도 받고, ‘문화상인 보부’로도 받고, 사회적기업 대출에서 ‘정가악회’ 이름으로 대출받고. 못 받으면 큰일 나는데, 그러면서 막 열심히 해서 받았는데, “대표님, 대출 나왔어요.”하는 순간, ‘아 이걸 어떻게 갚지!’ 그때부터 걱정이더라고.


설동준 : 그러니까요. 그걸 다 어떻게 갚아요?


천재현 : 올해 말까지 계산해보면 전년 대비 ○억 정도가 마이너스인데, 12월에 일이 많이 들어오더라고. 밀린 일들이 들어오고, 또 악단광칠 새로운 일들도 들어오고. 그나마 (적자 폭을) ○억 정도까지…. 전체 빚이 ○억이고, 일단 1월 월급까지는 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다음부터 원금 상환하면서 해야 하는데 비수기 때 뭐가 되겠냐? 우린 몇 달 단위로 살잖아.


설동준 : 복안이 있으세요?


천재현 : 뭐 일단 해보는 거지. 그렇게 사는 사람 많잖아. 사업하다 망하고, 빚지고 갚고. 성공하면 <인생극장> 나오는 거고, 실패하면 <나는 자연인이다> 나오는 거고.

2. 공연 취소와 보상, 내년의 전망

설동준 : 취소되면 보상은 받아요? 계약을 당초에 했을 거잖아요.


천재현 : 그렇게 계약 안 하잖아. 다 만나서 쓰잖아. 미리 쓴 데는 20% 정도 주는 데도 있었어. 코로나 때문에 난리를 치니까. 국가에서 하는 기금사업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는 케이스가 있어. 그런데 20% 해봤자 얼마 되겠니? 그것도 우리한테 다 쓰는 것도 아니야. 무대감독, 조명감독 이런 사람들 있잖아. 이런 사람들 다 주고 나면 한 120만 원? 그것도 계약서를 썼을 때인데, 계약서를 쓴 케이스가 별로 없지.


설동준 : 그럼 취소되면 그냥 일방적으로 통보 오는 거예요? 상황이 이렇게 돼서 취소하게 됐다?


천재현 : 취소도 취소인데, 연기하다가 취소하는 때도 있고. 몇 번 연기하다가 “이 정도면 취소합시다.”해서 취소한 경우도 있고.


설동준 : 그럼 내년도는 좀 어때요? 내년 일은 좀 들어와요?


천재현 : 기금사업들이 어떤 것은 내년 6월까지 미뤄주고, 어떤 것은 내년 2월까지 미뤄주고 이런 상태야.


설동준 : 기금사업 말고는 내년 사업에 대해 연락 오는 게 없어요?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더라도 2021년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진 않지 않나요?


천재현 : 없는데? 걔네들도 모르겠지. 공공극장이 내년 계획을 세우는 거 봤어? 1~2월에 예산 들어와 봐야 아는 거 아냐. 구두로는 “내년에 축제 하나 있는데 시간 좀 비워두세요.” 이런 정도는 하지. 그런데 걔네들이 확실하게 계약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잖아.


3. 단체와 구성원들의 분위기에 대해

설동준 : 분위기는 어때요? 나와서 일이 없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요.


천재현 : 그럴 때는 얘들을 못 나오게 했고, 집에 있으라고 했지. 심할 때는 2주씩 몇 번 쉬었어. 근무할 때는 한 3일만 근무하고. 나와서 뭐해? 그리고 그때는 코로나가 시작단계니까 무서워가지고, 우리도 겁나니까. 우리 같이 밥 먹고 뭐 하는데, 코로나 걸렸다. 그러면 “문화예술단체가 연습하고 밥까지 같이 먹었다.” 뉴스 나올 거 아니야.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낫지.


설동준 : 그러면 2주씩 그렇게 쉬고 나서도 일이 없으면 어떻게 했어요?


천재현 : 나와서 연습하는 거지. 각자 연습하고 곡 만들 게 있으면 곡 만들고. 악단광칠은 올봄에는 2집 녹음하는 게 있어서 그것도 하고.


설동준 : 그렇게 하는 거면 처음부터 안 쉬고 그냥 나와서 해도 되는 거 아니예요?


천재현 : 그냥 해도 되긴 하는데, (코로나가) 심할 때는 상황이 너무 심해지기도 했고. 그것도 있었지, 고용유지 지원금. 2주 쉬면 6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더라고. 단체 차원에서. 그래서 차라리 2주 쉬고 600만 원 버는 게 낫지. 그렇게 두 번인가 받았어.


설동준 : 상황이 그때랑 비슷하네요. 2015년에 모아 놓은 돈도 다 써가고 그랬을 때, 장부 다 까고, “8월 까지 밖에 급여 못 준다. 퇴직 원하는 사람 얘기해라, 퇴직금은 줄게.”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는 거잖아요?


천재현 : 우린 괜찮아. 얘들은.


설동준 : 상상이 참 안 되네요. 괜찮다는 게. 어떻게 괜찮은 건지, 왜 괜찮다는지?


천재현 : 얘네는 잘 모르지. 얘네들도 요즘 방송 많이 나가. 돈 안 되는 거. 애들이 방송도 가고, 잡지도 가고, 촬영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이날치, 악단광칠 몇 개가 뜬 거야. 그 안에 있잖아. 조금 업(up)돼 있지. ‘나도 뭔가 되는 건가?’ 이런 상황에 있지. 심지어 12월에는 스케줄이 꽉 차 있어. 그것만 보면.


설동준 : 그것만 보면 메이저네요.


천재현 : 어. 그런데 우린 1월까지밖에 돈이 없어.


설동준 : 1월 넘어가면 힘들다는 거 애들도 알아요?


천재현 : 너도 나랑 (단체 운영) 해봐서 알겠지만, 정말 안 될 때 알려야지. 지금부터 애들을 걱정하게 해서 뭐하냐?


3. 영상화 작업에 대해

설동준 : 올해 영상 작업도 많이 했죠? 그거 작업하고 나면 저작권은 어떻게 해요?


천재현 : 대부분 “양쪽에서 갖는다. 사용권을 같이 갖는다, 협의한다.” 이런 정도로만. 그런데 저작권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온스테이지 같은 데는 걔네가 다 가져가. 100%. 그런 데도 거기는 크고 유명하고 거기 가는 게 나으니까. “네” 굽신 거리고. 딴 데 가서는 “왜 거기는 저작권을, 어쩌고 저쩌고.” 이건 좀 우습다.


설동준 : 영상으로 수익이 생기는 경우는 없죠? 촬영 참여 게런티 정도 외에.


천재현 : 그런 거지. 방방곡곡 같은 게 있잖아. (잡혀있던 게 있는데) 공연을 못 하잖아. “촬영만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돈 받고 촬영을 하는 거지. 그런 예산에서 얼마나 좋은 퀄리티의 영상이 나오겠냐? 공연비 벌려고 하는 거고. 공연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거지. 연습도 없이, 카메라워크라는 게 그렇게 그 순간에 한다고 돼? 여기서 노래하고 있는데 쟤 찍고 있고, 막 이런 상태로 실시간 편집을 하니까. 그런 걸로 영상을 내보내면 우리 입장에서는 안 내보내는 게 낫지. 서로 돈은 억지로 쓰고…. 그래서 안 될 것 같아서, 우리도 나름 작전을 짜서 좀 퀄리티 있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설동준 : 어떻게요?


천재현 : 스코어 리더처럼 내부에서 촬영맨 옆에 앉아서, “다음은 얘입니다.” 이렇게 해주고. 우리는 많이 해보니까. 그런 감각이 생긴 거고. 그래서 나는 “국악원이든, 돈화문이든, 남산이든, 어디든, 애들한테 이런 경험을 좀 하게 해 줘야된다” 이러는 거지. 우리는 경험을 많이 하니까. 어떻게 될지 대충 알 것 같고. (하지만) 처음 해보는 애들은 기획자도 없고, 그러면 작업을 못 하는 거야. 자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거지.


설동준 : 온스테이지 작업물 말고, 영상 자체로 팀 입장에서 “잘 나왔네!”라고 할만한 그런 촬영이 있었어요? 돈 벌 수 있을 만한?


천재현 : 그 영상을 팔아서 돈을 벌 순 없지.


설동준 : 영상화 사업이 공연 예술가들한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프로모션을 위해 만든다고 하면 공연을 잡아야 프로모션인 거잖아요. 그런데 정작 공연을 할 수 없는 형국이니.


천재현 : 그런 거야 지금 상황은. 그걸로 몇 푼이라도 주니까,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건데. 그거 만들어서 어디다 보내서 뭐가 돼? 프로모션용으로 만들든 아니든 퀄리티가 좋아야 하는데 퀄리티가 좋지도 않고. 누가 좋아하겠어? (팔리는) 뮤직비디오는 한편에 1억 정도 든다고 하는데, 그런 정도랑 7백만 원 생중계 들여서 한다는 데, 그거랑 어떻게 비교하니.


4. 예술가로서 코로나 시대에 대한 적응

설동준 : 어쨌든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코로나 시대니까 거기에 맞춰서 창작의 방식도 바꾸고 해야 한다. 정가악회나 악단 광칠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천재현 : 해야지. 그게 찾아졌으면 고민 안 하겠지. 근데 찾긴 찾아야지. 요새 유튜브든 뭐든, 영상 이런 것들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좀 절실하게 만들어준 건 있지. 근데 대안은 잘 모르겠고. 내가 생각해도 대안은, 접을 수 있는 사람은 빨리빨리 접게 하는, 새 삶을 살게 하는, 뭐 그런 대안이 중요할 것 같다. 지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시골 가서 공연 없을 때는 농사 짓고, 공연 있을 때는 공연하고, 이런 거? 강화도에서 연극하는 그 팀 모델이 되게 좋은 거 같아.


설동준 : 수레무대요?


천재현 : 나는 그게 좋은 모델인 것 같은데. 농번기 때 일하고, (농한기에) 지금부터 우리는 연습한다, 이렇게 하더만. 그래야 될 거 같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요즘에 다른 애들한테 하는 얘기는 “직업이 몇 개 있어야 돼.” 어쩔 수 없이 공연 못 할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될 것 같아. 한동안은 내가 농촌 알바를 알아봤는데, 그쪽 농번기랑 우리 농번기랑 너무 겹쳐서. 어쨌든, 직업이 몇 개 있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아.


설동준 : 그런데 정가악회가 전속 단체, 상근 구조를 유지하는 건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니었어요? ‘국악의 밭을 일구는 건강한 농부’가 되는 미션을 위해서 모여 있자라고 한 건데, 직업이 여러 개가 되고 역량이 분산되면 미션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천재현 : 내부 직원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예술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얘기를 하는 거고. 아까 얘기했잖아. 내가 어떻게든 책임을 질 테니까. 우리는 간다. 월급 안 깎고 갈 테니까 지금은 쉬자. 뭐 그렇게 하는 거지.


5. 정가악회라는 단체 운영의 특수성에 대해

천재현 : (작년) 전체 매출이 100%면, 30%가 우리 거야. 나머지는 어디에 들어가는 지 봤더니 제작비가 40% 들고, 외부인력 인건비가 30% 들었더라고. 처음에 이게 너무 억울했지. 돈을 벌어서 우리는 ○원 월급 받고 하는데, 따지면 딴 사람들, 감독비나 이런 걸 더 준 것 같은 거야. 이게 뭐지? 이러고 있는데, 코로나가 탁 터졌잖아. 일이 없잖아. 우리가 그 30%를 못 벌면 나머지 70%가 안 움직여지는 거야. 70%로 먹던 사람들이 줄줄이 뭐가 없는 거야. ‘이것도 골 때리네.’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 감독들은 감독이라고 쳐. 스태프들은 더 어렵지. 다른 감독들한테 “뭐해요, 그 사람들(스탭들)?” 그랬더니. 지방 가 있고, 택배하고. 그래서, (그때는) 10월까지는 좀 나아질 거라 보고. 스태프들한테, 감독들한테 우리가 미리 선지급한다는 개념으로, 나중에 어차피 공연할 거니까. 정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100만 원 정도를 꿔주겠다고. 주변 예술가들한테도 그렇게 얘기하고. 10월이면 공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했고, 다행히 10월에 공연이 좀 생겼잖아. 애들한테 돈 꿔주고, 애들이 다 갚았더라고.


설동준 : 예술 분야 그라민은행이네요. 요즘 단원들은 레슨 해요? 정가악회 단원들도 레슨을 하긴 했었잖아요. 그런데 악단 광칠 때문에 바빠지고, ‘지난 3~4년 사이에 멤버들의 삶의 방식도 좀 바뀌었겠구나. 전업 밴드처럼 그런 라이프 사이클을 갖게 된 게 아닐까? 그런데 오히려 코로나가 되면서, 레슨이 아니라 공연만으로 바삐 움직여야 할 만큼 인정받았던 사람들이 더 타격이 크겠네.’ 싶더라구요.


천재현 : 그렇지. 레슨도 그렇고. 코로나로 무슨 지원금? 그런거 주잖아. 프리랜서 뭐 이런 거. 우리는 오히려 그런 거에 대해서, 역차별까지는 아니고, 우리를 생각해 줄 만한 데는 없는 거야.


설동준 : 단체가 다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천재현 : 이런 식으로 해줄 수 있는 단체도 없으니까, 이걸 살펴줄 만한 게 공공에도 없는 거지. 그런 거야, 지금.


설동준 : 대표님은 좀 쉬세요?


천재현 : 월급 주는 단체가 아니면 쉬지. 월급을 줘야 되니까 못 쉬는 거지.


설동준 : 어쨌든 월급 주는 단체의 대표로서 여전히 입장은 같은 거죠? 작년 초에 인터뷰했을 때, 나라가 예술가들의 삶의 안정을 챙겨주지 않으니 그런 걸 하는 단체가 민간에서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천재현 : 하나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몇 개 있어야 “아, 얘네들도 엄청 힘들구나” 이럴 수 있지.


설동준 : 어디 가서 설명할 때 참 곤란하시겠어요. 비슷한 케이스도 별로 없고 하니.


천재현 : 뭐, 물어보지도 않아. “요즘 월급 어떻게 주세요?”하면 “어, 힘들어요.” 더 이상 뭘 설명하냐? 어디 읍소하기도 그래. 지금 악단광칠은 나름 방송도 나오고, 뭐도 하고. 다른 애들보다는 잘 나가고 있잖아. 힘들다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거야. 다른 단체들이 보면. 걔네들이 더 힘들지.

6. 먼 미래에 대한 상상, 혹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설동준 : 그건 어떠세요. 2021년은 사실 그림이 잘 안 그려질 수 있잖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면 2025년은 그림이 그려지세요?


천재현 : 굳이 내가 그리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도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 정리하고, 다음 사람한테 넘기려고 했었고. 근데 기회가 안 만들어졌고. 20년째 될 때까지만 하겠다고, 이 안에서 대표를 뽑고 그래야 하는데, 아무도 이 지랄(대표직)을 안 하니까. 어영부영 이 시간(코로나)을 맞았으니까. 지금 그만두는 거는 개새끼잖아. 호시절을 만들어야 그만둘 것 같은데. 근데 이제 돈까지 꿔놨으니. 돈 꿔놓고 상황은 어려울 때 나가? 그럼 완전 개새끼고. 완전 망해서 정리를 하든가, 이걸 복원시켜 놓고 호시절을 만들어놓고 그때 나가는 거, 둘 중 하나지.


설동준 : 예술가로서의 은퇴를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정가악회에서 대표를 그만한다고 하더라도.


천재현 : 뭐해? 그냥 농사지어야지. 며칠 전에는 표고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한참 알아봤는데. 산에 가면 산사태가 걱정이고 바다에 가면 태풍이 걱정이고. 어디 안전한 데가 없을까?


설동준 : 좀 상상이 안 되네요. 정가악회 대표를 그만둬도 예술가로서의 천재현은 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천재현 : 사실 올해 봄에 코로나 될 때 파업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어. 예술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예술 안 한다.” 선언하고, 이때는 다 딴 거 하든, 농사를 짓든. 예술이 뭐라고. 예술 하는 이유가 있었잖아. 사람들과 나누고 즐기려고 하는 건데,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잖아. 지금은 예술가들이 자기 먹고 사는 것만 포커싱이 돼가지고, 이런 얘기가 안 풀리는 건데. 예술의 목적이 그런 게 아니었잖아? 내가 살자고 예술을 한 건 아니잖아?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조건이 돼버렸으면, 1~2년 안 한다고 뭐가 돼? “내가 왜 예술을 하지?”라는 것의 근본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 힘들다는 것 때문에. 자꾸 그렇게만 몰아가고 있는 거고.


설동준 : 보조금들이 더 몰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천재현 : 보조금이건 뭐 건. 한 번만 돌이켜 생각하면, 상황이 안 되면 안 하는 게 맞잖아? 마치 내가 살아야 되니까, 나를 살려달라고 이런 식으로 가니까. 그러면 “니네만 힘들어?” 이렇게 되는 거지. 자영업자들 계속 돈 못 벌고. 우리가 특별히 더 그런 것도 아니잖아. 힘든 건 다 마찬가진데. 그러니까 본래 목적을 생각을 해줘야 될 것 같아. 그게 나는 비전인 것 같은데. 올해 망한 거라면, 그 비전에 맞게 사고하면 되는 거잖아. 예술 하는 애들이 자기 기술만 자꾸 생각을 하고, 내 기술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걸로 먹고 살아야 되는데, 이렇게만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음악을 나누는 게 비전이었으면 음악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면 되는 거고. 음악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됐으면 그걸 인지하고 잠깐 딴 거 하면 되는 문제지. 제일 안 풀리는 문제가 그 부분이 없다는 거야. 사업가 마인드? 비전? 이런 거 있잖아. 기술자의 마인드는 다 있어. ‘내가 이걸 잘 해서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재밌어하겠지?, 사람들이 잘 해주겠지?’ 이건 기술자 마인드지. 예술가들한테 제일 없는 게 이 부분인 거야.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를 자꾸 안 해.


설동준 :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게 없긴 하죠.


천재현 : 그런 상태에서 창업을 하면 망하는 거지. 조그만 밥집 하는 사람도, 예를 들어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와서 밥 먹는 게 좋아 보이고 해서, 하다 보면 성공도 하고 그러는 거잖아. 그 할머니는 비전이 그런 거잖아. 따뜻한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자.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게 없는 거 같아. 정년하고 치킨집 하는 사람이 비전으로 치킨집 하는 게 아니잖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자기 기술로 떠보려고 그러잖아. 음악 하는 사람도 그런 거야. 대학교 졸업하고 나와서 치킨집 차리는 것 같아.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거였었으니까. 예술 하는 사람 중에서 치킨집 정도 생각을 하는 게 많아서 그래.


설동준 : 문제는 비전을 세우는 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천재현 : 딴 건 모르겠는데, 교육을 그렇게 안 받아본 거지. 그런 얘기를 안 해본 거고. 일단 너무 어릴 때 음악을 하거나 예술을 한 얘들은 이걸 왜 하지, 이걸 할까말까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지. 부모님 손 잡고 어영부영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비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비전이 있는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지. “내 음악을 듣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것 때문에 해.” 그런 애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설동준 : 일전에 강원도에 레지던시 할 공간 찾으신 건 수레무대 같은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얘기하신 거예요?


천재현 : 그런 게 좀 있어야 될 것 같아. 이럴 때 서울에 있으면 돈만 들어가고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강원도 혹은 시골)에 예술인들을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 좀 있었으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없잖아? 그렇게 피난 갈 수 있는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거기서 쉬면서 할 수 있는 일,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공간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다르니까. 그런 게 인연이 돼서 예술을 남기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 좋겠다는 이런 생각을 해봤고. 공간이 좀 필요해, 예술 하는 사람한테는. 예술적 상상력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봐야 하는데, 자기 방에서 유튜브나 보고 앉아있으니까. 얼마 전에도 연극 연출하는 사람하고 “예술가의 감각들을 다시 깨워야 된다.” 이런 얘기 하면서 워크숍 얘기를 했거든. 요새 예술가의 감각이라는 게 자폐적인 감각이 되어 버려가지고, 유튜브에 갇혀있고. 몸만으로도 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예술가 재교육이 다시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정가악회)가 예전에 했었던 작업들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고.


설동준 : 과거에 했었던 예술가 재교육이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필요한 거네요.


천재현 :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 그런 걸 만들어볼까 싶어. 무슨 시가 있잖아. “한 사람이 오는 것은 한 세계가 오는 거다.” 그걸 받아주고 넉넉하게 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한 예술가의 마인드도 훈련이 돼야 하고. 한 사람을 받아준다고 말을 해도, 사실 한 사람의 세상을 받아줄 수 없는 예술가이면 아무 소용없으니까.


설동준 : 타자를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인데.


천재현 : 훈련도 해야 하고. 상주단체 프로그램에서 한 사람하고 10분 동안 마주 앉아서 연주해주는 거. 그런 정도.


설동준 : 비슷한 거 예전에 미술관에서도 했었는데. 행위예술가가 마주 앉아서 바라보는.


천재현 : 음악도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작업들. 그게 딱 코로나 상황 안에서는 적절한 포맷인 것 같고.


설동준 : 그야말로 예술가적 훈련이라는 게 남달리 필요한 일이긴 하네요.


천재현 : 음악뿐 아니라 공간 디자인도 같이해서.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거리와 태도와 이런 것도 있겠고. 그게 난 진짜 풍류인 것 같은데, 그런 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야. 20년 하고 나서 그만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다가, “그래 한 번 더 해야 한다면 뭐할까?”라고 생각했을 때, 이 작업 한 번 해보고 싶은 거. 그게 다음 목표가 됐어.


설동준 : 유의미할 것 같네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술가 재교육, 풍류의 의미나 사상, 현대적인 풍류방.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 천재현 인터뷰 워드 크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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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준
학부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했지만, 동아리가 인연이 되어 전통예술 분야 친구들을 많이 얻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삼십 대에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문화기획자라고 소개하지만, 사실은 변해가는 시대의 풍경을 미리 보는 관찰자의 역할을 좋아하며, 사람의 성장에 관한 관심이 있어서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것이 현재의 주업인데, 음악에 대한 이해보다 좋은 동료들과의 유대가 일의 더 큰 동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