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한
'혼자라서 다행이에요.'
“혼자라서 다행이에요.”
김은한은 인터뷰 내내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작, 연출, 배우를 혼자 하는 1인 극단이기에 기동력이 좋다. 다른 극단들은 연습하다가 중단되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큰 피해를 보지만, 자신은 본인만 괜찮으면 되기에 1인 극단의 장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연 연습을 하면서도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무게를 혼자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팬데믹 상항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다행이라고, 모든 것이 괜찮고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혼자 견뎌야만 하는 외로움도 있었다.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0
김은한은 2015년 서울프린지(이하 ‘프린지’)에서 데뷔했으며, 매년 축제에서 신작을 발표하고, 대부분의 예술가 동료를 프린지에서 만난다. 처음 프린지에서 작품을 발표했을 때,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그 동력으로 예술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김은한은 프린지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런데 올해는 프린지에서 참혹한 분위기를 느꼈다. 프린지에서 자원활동가들은 축제 운영을 지원하는 동시에 첫 번째 관객이 되기도 한다. 올해는 팬데믹으로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자원활동가들이 나오지 못하게 되니,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힘을 내려 노력했지만, 갑자기 하루에 여덟 작품이 취소되는 날도 있었다. 주변이 계속 흔들렸다. 8월 광화문집회 이후에는 매일 축제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출근해야 했고, 축제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팀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지 추이를 살피기도 했다. 축제 참가자들과 뉴스 기사를 얘기하고, 서로의 안부를 살피며 축제를 이어나갔다. 축제 주최 측이 축제를 이어나가겠다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불안에 떨었다. 모두가 ‘안전한 상황’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무력감이 심했다.
* 중단된 교류
프린지에서 다른 예술가와 교류하고, 극장을 벗어난 기발한 작품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번 해에는 다른 팀들의 피해 상황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축제 이외의 개인 생활에서도 최대한 다른 예술가와 만남을 자제하는 상황이었다. 김은한이 2020년에 가장 기대했던 일본 예술가와의 국제교류는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었으며,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 불분명했다. “언젠가는 해외에서도 공연하고 싶다. 해외 창작자들과도 교류하고 싶다.”고 밝히며, 해외레지던시를 알아보고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한국과 다른 외국에서의 작업방식을 들여다보고, 직접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가는 시간이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취소되거나 연기된 공연일정은 없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달라진 축제 분위기와 공연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취소된 일본 예술가와의 교류 행사는 김은한에게 ‘더 나아갈 데가 없다’는 막막한 감각을 만들어주었다.
* 새로운 방식
1) 연습을 줄이는 방법
최근 1~2년 동안 주변에서 번아웃을 겪거나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김은한이 보기에 연극 한 편을 만드는 데 너무 많은 힘을 들이고 있었고,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 프린지에서는 연습을 하지 않는 공연을 시도해봤다. 공연 내용은 축제참가작을 큐레이팅하는 렉쳐 퍼포먼스 같은 스탠딩코미디였다. 이미 창작활동에 힘을 가득 들이는 연극계에 코로나까지 불어닥친 현실에 대해 김은한은 ‘한 번 더 포기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우스갯소리를 헀다. 불안함을 안고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많은 인력, 시간,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했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은한은 ‘품을 적게 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했다.
현재와는 반대로 ‘저-퀄리티’를 지향하며, 연습시간은 줄이고, 공연횟수를 늘리고, 공연장소에 대한 제약이 적은 방법을 시도해보고 있다.
2) 영상화
공연을 영상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지만, 지원사업에서 영상화 비중이 늘어나는 것을 의식해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현재 일본의 라쿠고(落語,らくご)와 움직이지 않는 연극을 연구중이다.
김은한은 기술에서 벗어나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공연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으나, 영상화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자신은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만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영상화를 지원하는 사업이 많아질수록 ‘내가 점점 갈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영상에 적합하지 않은(어려운) 공연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지’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도록 하여, 억지로 기술을 받아들이게 하고, 기술격차를 만드는 현 상황에 대한 불쾌함을 표했다.
* 지원제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생활의 안정과 작업의 안정 중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김은한은 중장기발전이 가능한 극단에는 사업이 중요하지만, 개별 예술가에게는 생활안정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예술가에게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해주는 접근법이 작업형태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필요한 지원제도에 대해 묻자 예술가에게 기본소득을 주길 바란다고 밝혔고, 현행 코로나로 인한 긴급지원정책 중에 실효성을 느끼는 것은 없었다. 올해는 운이 좋아서 직접적으로 공연이 취소/연기되는 피해는 없었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서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연극 창작자이자 관객으로서 아쉬운 것은 코로나 이외에 다른 작법들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은한은 30대 연극창작자이다. 대학에서는 행정학을 공부하였으나, 연극동아리에서의 연극경험으로 졸업 후에도 연극을 하고 있다. 2015년 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연극활동을 시작했다. 작, 연출, 배우를 모두 혼자 하는 1인 프로덕션 형태로 작업한다.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고 있으며, 극단 매머드머메이드로 활동중이다. 연극 활동 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연재 : 일 년에 신작을 많이 발표하던데.
김은한 : 최대한 많이 만들려고 한다. 연극은 음원처럼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이 없으니 ‘일단은 계속 만들어보자’는 상태다. 다행히 별난 공연을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
김연재 : 올해는 어땠나?
김은한 : 2월에서 5월까지는 거의 집 밖으로 안 나갔다. 친구들과는 주로 통화로만 만났고, 요리를 이전보다 많이 했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 항상 은은하게 아프다. 좀 답답하고. 밖에 나오자니 사람들 마주치기는 싫고. 가계부를 보면 1년 생활 변화를 알 수 있다. 4월까지는 거의 아무것도 못 하는 수준이었다. 작년에 들어왔던 일이 있었기에 다행히 그것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웹진 ‘인디언밥’에 쓴 것처럼 매일 악몽 꾸고 죽을 맛이었다. 5월부터는 지원금이 조금씩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서 소비가 늘었다. 여러 재단에서 예술관련 지원사업이 많이 바뀐 덕분에 조금 수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괜찮았다. ‘333 희극희큭 낭독극장’이 비대면 공연으로 바뀐 것 이외에 취소・연기된 공연이 하나도 없다. 운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괜찮으면 괜찮고, 내가 아프면 그만둬야 하는 1인 프로젝트 팀이라는 특성도 작용한 것 같다.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까 여러 사람이 만나야 되는 부담도 없고, 제작비는 별로 들지 않고, 연습일정도 조정할 수 있다.1인 프로덕션은, 수명이 긴 공연자가 되기 위해 선택한 이유도 있는데, 프로덕션 참여 인원이 한 명이면 예산이 한 명으로 계산된다. 현행 지원제도 안에서 내가 여러 역할을 수행해내는 것에 대한 보상은 취하기 어렵다는 불편함도 있다. 그리고 좀 정신적으로 외롭다.
김연재 : 공연을 만들 때 봐주는 사람 없어도 괜찮나? 어떤 감각이 있나?
김은한 :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실패하는 감각 같은 거다. 누가 안 봐주고 그냥 하는, 해서 내가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게, 내가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일탈하는 게 전체적으로 만들고 싶은 그런 거다.
1. 코로나가 연극 제작방식에 미친 영향: 연습↓ 공연多
김연재 : 실험적인 형식이다.
김은한 : 이번 프린지페스티벌에서는 연습 안 하는 공연을 만들어보았다. 그냥 가서 하는 거다. 그냥 가서 해도 관객이 즐거우면 괜찮은 거 같다. 전날 봤던 공연을 소개하는 연극이라서 가능했다. 물론 플로우는 구성해서 갔다. 최소한은 준비한다. 공연 소개,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공연수법들 대공개. 이렇게 두 트랙으로 했었다. 공연 큐레이팅을 했다. 어떤 공연이 재밌고, 아쉽다. 재밌는 것을 발견하면 다 전해주고 싶은, 예술가는 관객에게 큐레이터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있다.
김연재 : 왜 그런 실험을 하게 되었는가.
김은한 : 코로나 시대에 ‘연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무력감이 반작용으로 커진다. 또한, 예전부터 연극인들이 너무 고생한다고 느꼈고, 고퀄리티의 연극 만들기에 힘을 너무 많이 들이는데 한편에선 번아웃(Burnout syndrome)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올해는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서 연습을 안 하는 공연을 만들었다. 계획했던 거긴 하지만 마음이 정말 편했다. 그것도 이전 작업에서 쌓아 올린 자신감이랄까. 이 정도는 해도 되겠구나, 라는 관객과의 감각이 있으니까 가능했다. 요즘 숨이 더 막히는 게, 코로나에 대한 불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김연재 : 어떤 노력들이 있나.
김은한 : 팬데믹 상황이 내게 명명백백하게 알려준 건 ‘혼자여서 다행이다’였다. 혼자인 것에 안도했다. 1인 프로덕션을 고수하되 앞으로는 ‘저퀄리티’ ‘다작(多作)’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작년부터 관심을 가졌던 ‘라쿠고(落語,らくご)’는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팬이 늘고, 하루에 여러 번 공연할 수 있더라. 장소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명인들은 1년에 600회 공연을 한다. 관객 수를 적게 받는 대신 저퀄리티의 공연을 여러 번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코로나 덕분에 나왔다. 저퀄리티가 뭔지 모르겠지만. 스테이지 수를 늘려서 공연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김연재 : 연습은 평소에 얼마나 하는가?
김은한 : 지금은 절대로 그렇게 안 하는데, 2년 전에는 하루에 리허설을 8번 했다. 이건 너무 심하다 싶어서 조정해왔다. 요즘 보통은 많이 해도 하루에 4번 정도 한다, 리허설은. 코로나는 내게 꽤 영향을 줬다. 공연을 올릴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에서 너무 많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너무 많은 타격을 준다. 스스로를 상처주지 않을 방안으로 ‘연습을 최소한으로 하는 제작방식’과 ‘난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3개월 열심히 연습해서 취소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취소되는 게 마음의 데미지는 덜하잖나.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품을 적게 들이는 게 좋은 것 같다.
2. 주변 상황
김연재 : 본인 주변은 어떠한가.
김은한 : 코로나 영향으로 사업이 몇 번 취소되고, 연기되다 올해 안에 사업을 끝내야 하니 하반기에 일이 몰려서 혼란을 겪는 예술인들이 보인다. 이미 번아웃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포기할 기회를 준 거다. 코로나가. SNS를 보니, 연극을 그만두는 분들이 꽤 많아졌다. 주업인 예술보다 생계를 위한 부업의 비중이 더 커진 분들도 있다. 안정감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는 식으로 부업이 다양해지기도 했다. 집에서 영상 작업하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한다. 돈을 잘 안 쳐주는데도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택근무이기에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동료 작가는 코로나에 대한 불안을 날려버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 편씩 희곡을 쓰고 있다고 한다. 철인 같은 마음으로. 그런 건 멋있다. 작품활동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동료들에게 문제가 생기니 코로나가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매년 참가하는 프린지페스티벌은 자원활동가들이 축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분들이 나오지 못하니 축제 자체가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여덟 작품이 취소되기도 했다. 축제를 즐기러 온 관객 수도 적었지만, 공연이 많이 취소되니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김연재 : 프린지페스티벌은 신진 창작자들의 축제이자 교류의 장인데, 힘들었겠다.
김은한 : 코로나는 나에게 심각한 문제다. 언젠가는 해외에서도 공연하고, 해외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유럽은 한국보다 어려운 상태니까. 앞으로 교류가 어려울 것 같다. 4~5월에 일본 연출가가 한국에 레지던시로 와서 대담을 진행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완전히 취소됐다. 큰 타격이었다. 외국에서의 작업방식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나아갈 데가 없다. 올해 아르코에서 내년 3~6월에 해외 레지던시를 진행한다는데, 이게 되나 싶다. 무력감들이 심각하다. 무력함이 강했던 시기가 프린지페스티벌 1주차가 끝나고 8월 15일 광화문 시위가 있었다. 그때 2주차 공연이 진행되나? 매일 ‘오늘 축제 하나? 안 하나?’ 확인하고, 다른 공연팀 공연 여부 확인하고, 사람들 얼굴 살펴보고 뉴스 기사 얘기 서로 하고. 그러니까 진짜 힘들었다. 축제 주최 측이 그만두지 않겠다고 얘기는 하는데, 안전한 상황을 누구도 보장하기 어렵지 않나. 뭔가 더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뭔가 자꾸 밉고 많은 것들이, 일테면 신파조로 얘기하면 ‘나를 몰라주는 재단 사람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지하철에 있는 무례한 사람들까지. 원래 그랬지만 더 막 화가 났다. 우리 힘든 때인데, 다들 마스크도 좀 쓰고 손도 잘 씻고 그럼 얼마나 좋나. 이런 생각을 했다.
3. 창작자와 관객
김연재 : 관객과의 관계변화를 느끼나?
김은한 : 4월에 일대일공연 <오문오방 : 무릉도◌>을 공연할 때는 1:1 방식이었고, 관객과 거리를 굉장히 많이 두고 하는 공연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클린룸> 오프라인 공연을 했을 때는, 관객들이 너무너무 무거웠다. 왜냐면 마스크 쓰고 떨어져 앉아 있으니까. 막 같은 게 있었다. 관객 반응을 볼 수가 없었다. 이제 공연자가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두 가지. 어깨의 위치랑 목의 각도. 처음에는 그게 꽤 어려웠다. 스트리밍으로 공연을 관람했을 때도 화면 안에 관객이 조금씩 보이는데, 정말 무겁게 느껴졌다. 발랄한 톤의 연극이었는데, 관객이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관객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지금은 다들 익숙해진 것 같다. 관객으로서는 양옆에 빈자리가 있으니 너무 편하다. 그리고 ‘조금 더 반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평소같은 반응이면 무대에 잘 전달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클린룸>이나 ‘333 희극희큭 낭독극장’에서 참여를 유도한 것은 관객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상연자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공연도 많이 보게 됐는데, 조금 더 열심히 본다. 왜냐면 관객 없는 공연의 마음을 너무 알고, (자리를) ‘채워줘야지’라기보다는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지’ 뭐 그렇게 바뀌었다. 올해 들어서 특히 더 그랬다. 좌석이 많이 비고. 텅텅 비고 그렇게 되니까. 창작자로서, 관객으로서 아쉬운 것들이 있다. 벌써부터 코로나 팬데믹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동시대를 반영한다는 작업들이 모두 다 코로나 얘기들만 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는 거. 나도 거기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다. 내 공연에는 잡담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도 결국에는 코로나 얘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은 조금 나에게는 아쉽다.
김연재 : 공연을 하거나 보면서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김은한 : 전염병에 대한 불안은 항상 있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집 다음으로 극장이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4. 지원사업 – 기본소득, 영상화
김연재 :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있었으면 하는 지원사업이 있나?
김은한 : 기본소득 같은 게 주어지면 좋겠다. 기본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생활이 빈곤해지면 창작 여력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지는 못해도 수입이 있으면 안정감이 있다. 작업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볼 수도 있고, 장막희곡을 구상하거나 지원사업을 준비할 수 있다.
김연재 : 최근 정부에서 티켓판매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김은한 : 내 경우에 티켓판매 지원사업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요즘엔 거의 구글폼으로 관객과 만나기 때문인데, 인터파크를 통해야만 정부가 지원을 해준다.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해주고, 인건비가 많아지면 좋겠다.
김연재 : 연극을 영상화하는 지원사업도 많아졌다. 지원했나?
김은한 : 영상화 관련 사업은 지원하지 않았다. 사진촬영도 필요하니까 하는 정도다. 공연장에 온 사람만 공연을 보면 좋겠다. 아직 내게는 영상화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나는 영상화를 하진 않겠지만, 제한적 유료 스트리밍은 긍정적이다. 그리고 ‘영상화만이 답은 아니다’라고 부정하기보다는 바로바로 전환하는 흐름도 적극적으로 일어나길 바란다. 일본 같은 경우, 영상화가 빨리 이루어져 온라인극장이 있더라. 극장에서 갖고 있는 콘텐츠가 올라와있고, 온라인으로 구매하여 볼 수 있다. 한국은 LG아트센터나 SPAF에서 이제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늦었지만 잘 하고 있다. 땅 이외에 새로운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바뀔 수 있다.
김연재 : 연극을 영상으로 보면 차이가 있지 않나.
김은한 : 영상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새로운 관극 문화를 만들 수도 있다. 낯설 뿐이다. 훈련하면 된다.
김연재 : 영상 쪽으로는 전혀 진출할 생각이 없나.
김은한 : 영상화의 영향으로 (배우로서)‘나도 오디션 같은 거를 봐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해야 하니까. 나는 고집 같은 거는 없다. (창작자로서) 노출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기술의 접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창작자로서 내가 지금 택하고 있는 선택지는 오히려 기술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정점 카메라로도 모든 공연을 파악할 수 있는 형식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있다.
김연재 : 내년 계획이 있는가.
김은한 : 나는 올해 운이 좋았다. 주변의 상황을 보면 괜찮지 않다. 다만 내년까지 생각해볼 시간을 벌었다는 정도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언제까지 여유로울 수 있을까. 내년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영상화가 정비되고, 추진되면서 점점 내가 갈 곳이 없어질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다. ‘아트 머스트 고온’ 같은 지원사업도 아예 영상화를 염두에 둔 공모였고, 다른 곳에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테니까. ‘영상에 적합하지 않은 공연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지’라는 생각도 한다. 영상에 뭐가 적합하고 안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영상화를 위해 드는 비용이 상당할 것이며, 기술이 너무 부족해서 불안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하던 것을 진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것들이 정말 많다. 아카이빙도 하고 정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한다. 현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변화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
김연재 : 초반에 괜찮다고 말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김은한 : 우리가 이 상황에서 서로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어쩔 수 없다. 계속 (연극)하려고 하는데. 나는 연극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이직을 하더라도 연극은 무조건 같이 한다는 입장이다. 연극을 하면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 있다.
김연재 : 김은한 작가가 작업을 계속하는 동력은 사람과 새로운 시도인 것 같다. 코로나 이후를 생각해보았나.
김은한 : 해외여행 가고 싶다. 1.5단계 상황이다 보니까. 삶이 꽤 돌아왔다. 도서관이 열려있고 책을 10권씩 빌린다. 축제도 가고 싶다. 록페스티벌도. 코로나가 있다가 없어졌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만날 것도 아니고, 다른 주거 환경에 있을 것도 아닌데, 지금은 그렇게 달라진다는 경험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대신 위생관련 좋은 습관들은 계속 남겨놔야겠다. 코로나가 아닌 것이 왔을 때의 감각 같은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습관이 관성이 돼서 별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은 든다. 사람들끼리 적당히 거리를 두니까 좋다. 훨씬 마음이 놓인다. 부모와의 관계도 훨씬 좋고 친구와의 관계도 훨씬 좋은 것 같고. 내게는 (거리두기가) 훨씬 좋은 것 같다.
김연재 : 마지막으로 코로나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
김은한 : 세상이 이미 내가 원하는, 어떤 내가 좋아하는 연극예술계와 세상이 이미 격리되었다는 것을 다시 알려주는 지표였던 것 같다. 어쩌면, 정말 그런 것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방해하고 비대면이라는 이유로 기술을 계속 받아들이게 하면서, 억지로. 그러면서 거기서도 기술격차를 만들어내고 너무 화나게 만든다. 그래서 내용 측면에서 코로나 역병 이외의 어떤 작법들을 선뜻 진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고. 근데 이것도 삶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걸 통해서 특수를 얻는 사람도 당연히 있고. 나는 올해는 좋았다. 내년에는 올해만큼 벌지 못할 수 있다. 형편없을 수도 있다, 뭐.
▲ 김은한 인터뷰 워드 크라우드
김연재 (작, 연출, 드라마터그. 월간 ‘한국연극’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