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미
'익숙해질까 두려운 판데믹 속의 허둥지둥'
익숙해질까 두려운 판데믹 속의 허둥지둥
생각하는 바다 공간에서 부산에서 24년간 무용가이자 안무가, 무용과 몸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자로 활동해온 허경미 선생님을 만났다. 허경미 선생님은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예술인파견사업으로 생각하는 바다에 매칭되어 직원들의 몸풀기, 아동과 부모들이 함께 하는 몸워크숍, 청년들의 심신을 달래는 야외 몸워크숍을 함께 준비했는데 코로나로 함께 눈치싸움을 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도 있고, 아예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있다.
이 인연 이전에 선생님은 부산에서 오래전부터 내로라하는 부산의 춤꾼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다양한 공연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1년에 몇 개씩 창작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수년 전부터는 미디어 등을 결합한 실험적인 창작공연으로 전통적인 무용공연에서 확장된 실험적 공연을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던져왔다. 몇 개의 공연은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인 감만동 일대를 골목투어 무용공연과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적 방법의 아카이빙이자 공연을 시도했던 <감만기억>은 여러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었다.
코로나 시기를 예술가들이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기록해두는 아카이빙 작업의 인터뷰어로서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종종 만나왔어도 낮 간지러워 묻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굳이 물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잘 모르는 춤이라는 영역과 더불어 24년차 쉼 없이 달려온 예술가의 입장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화예술영역의 동료로서 코로나 시기를 함께 고민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상황이 모두에게 동일한 무게로 겪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다른 양상도 아닐 것 같다. 판데믹에 대한 우려 속에서 대부분 올해 상반기를 혼란과 미래에 대한 걱정, 일이 없는 상황에서 보낸 것은 대부분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겪은 공통의 경험일 것 같다. 허경미 선생님도 상반기 그런 시간을 보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쉬지 않고 달려온 지 24년째인 올해를 쉬어가는 해로 삼고자 해 창작, 지원 사업 등의 공모에 일부러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열심과 열정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 뭐라도 일이 주어지는 대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했을 텐데 코로나로 인해 정말 24년만의 휴식을 가져보게 되었다고 한다.
상반기 휴식과 코로나로 인해 밀린 일들이 하반기에 몰리고,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송출하는 정도의 급급한 임시방편의 시도 속에서 춤이 담보해야 할 현장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상황 속에서 활동의 빈도가 줄어든다거나 설 무대가 없어진다는 걱정보다는, 이런 상황에서 기술을 통해 적응하다 보면 춤이 담보해야할 현장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더 앞선다. 그리고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부분 설험이라는 것이 적극적인 실험이 아니라 허둥지둥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어찌 보면 오래 현장을 누비고, 멀티미디어를 결합한 실험적인 공연을 앞서 해왔던 입장이기에 더 적절하게 현 상황에 대해서 진단할 수 있는 것 같다. 영상으로 찍어 단순하게 송출하는 것은 작품의 질도 관객의 집중력도 떨어트리는 현장의 중요한 무엇이 빠진 것이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적응해보며 지나가지만 이것이 익숙해질 까봐 겁이 난다.
또 하나 코로나 시기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춤을 연습할 공간의 부족이었다. 공공의 연습공간은 조금만 심해지면 너무 쉽게 폐쇄되어 별도의 공간을 알아보고 대관하면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입주해 있던 레지던스 공간도 너무 쉽게 폐쇄를 통보받아 예술인을 지원하는 기관이 현장의 어려움을 수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던 한 해였다. 더불어 문화예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특별히 함께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 보이지 않는 유대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허경미는 (여성) 40대 후반의 안무가이자 무용가로 대학을 졸업했던 96년에 무용단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폭 넓게 창작하면서 안무가이자 무용교육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인도에 2년 가서 몸과 춤에 대해 연구하던 시간을 포함해 24년간 해오고 있다. 부산시립무용단을 포함해 무용단에 소속되어 활동한 시기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개인 안무가나 무용가로서의 활동과 프로젝트 팀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비슷한 비율로 뒤섞여 유연하게 활동하고 있다. 쉼 없이 무용가로서 활동해오던 지난 해 좀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2020년 공모 등 거의 진행하지 않았는데 마침 코로나 시기까지 겹쳐져 정말 처음으로 여유를 가져보는 시간을 보냈다.
1. 무용에 대한 생각
박진명 : 예술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은 제각각이다. 본인은 예술 활동을 어떻게 규정하나? 스스로의 예술활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허경미 : 일단 창작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끝없이 현장에서, 현장에 적응하려 애쓰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일단 몸을 매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내 몸뿐만 아니라 상대의 몸도 그렇고 작업을 통해 만난 몸도 그렇고. 교육에 담고자 하는 것도 그렇고. 끝없이 몸의 움직임을 포함해서 몸을 발견하려고 한다.
박진명 :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다. 몸을 쓴다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본인에게 매력이고 중요한 것인지?
허경미 : 한국무용 전공자들이 창작 활동하는 데 한계가 많다. 받아왔던 교육에서 몸의 움직임이나 정서가 정형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굉장히 한계가 많다. 일종의 클래식이다. 그것을 확장해서 창작 작업으로 가져오려고 하면 계속 개발하고 발견해야 하고, 나름대로 당의성도 찾아야 하고 남들뿐 아니라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반 안에서 개발해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나 같은 경우는 필요에 의해서 계속 개발하면서 컨템포러리 쪽으로 가고 있다. 컨템포러리는 움직이나 몸의 분석부터 시작하는 부분이 있다. 시작 지점이 한국무용이다보니 나의 기반에는 그런 부분이 약하고 또 늦게 시작했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조금 더 나에게 도전과제가 되기도 하고 아직까지 연구할 게 많고 재미있기도 하다. 정형성을 가진 춤이 배어 있는데다 심지어는 10년 동안 무용단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틀, 폼을 버린 순수한 몸의 움직임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런 것들을 계속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어는 정도 내가 조화를 가질 수 있느냐. 내가 가지고 있는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들하고 접목시키고 어떤 때는 놔야하고 어떤 때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받아들이고 정형성에 합류시키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게 되게 재미있다. 다른 동료들을 만나서 그런 것들을 설득해가면서 내가 만들어가야 하기도 한다. (콘템포러리) 전공을 한 친구들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현장에서 찾아가는 데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박진명 : 어쨌든 한국무용에서 출발해서 좀 더 확장하고 실험하면서 컨템포러리로 오게 되는 과정이라는 말씀인 것 같다. 무용단에 계실 때는 그럼 전통무용을 하신 건지?
허경미 : 부산시립무용단에 딱 10년 있었다. 거기도 기반이 한국무용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 춤이 참 애매한 것이, 한국전통춤을 기반으로 해서 창작 작업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자세는 한국 전통춤의 자세를 거의 다 했던 것 같다.
2. 코로나 시기의 변화들
박진명 : 본격적으로 올 한 해 동안의 활동에 대해서 죽 회고를 해 달라.
허경미 : 올 해 마침 쉬어보자는 희망을 가지고 지원사업 기획서를 거의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뢰가 들어오는 것들이 꽤 있으니까. 그 것도 추려서 하려고 했고 해야 될 이유가 정확한 것만 해야지 했는데 막상 지금 거의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다보니 내건 안 하고 있고 의뢰 들어 온 것만 하고 있다. 알다시피 코로나 때문에 특히 하반기에 요청이 많다. 내 작품까지 합쳐졌으면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코로나 대응하는 것은 주최 측에서 오히려 틀을 잡아서 의뢰하기 때문에 맞추면 되는 정도였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지속될지 모르고, 나는 예술분야에서도 특히 공연예술이라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완전 직격타를 맞고 있다. 공연예술은 현장성이 거의 다인데 현장을 떠나서라도 어떻게든 공연이나 사업이 진행돼야 하는 상태니까. 지금 임기응변으로 거의 다 온라인 송출로 공연들을 하고 있고, 소수 관객을 받아서 한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 의뢰를 받아서 하는 공연이나 작업들은 대체로 온라인 송출 아니면 소수의 관객인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댄스필름 같은 형태의 작업을 하게 되는데 지금과 같은 특수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서 하는 거지 정착된 상황으로 완성도를 담보해내기 힘들다. 완성된 작품을 한다기보다는 변형된 형태로라도 갈무리한다는 방향으로 올해는 가는 것으로 보인다.
박진명 : 코로나 시기라서 뭔가 새로운 출구를 찾아보게 되는 그런 느낌은 거의 없다는 건가?
허경미 : 개인적으로는 코로나에 적응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고집을 하고 싶은 부분도 크다. 왜냐하면 코로나 시기라서 굉장히 변수가 많다. 어느 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될 지도 모르고 회복될 수 도 있고 하니까 예측해서 뭔가 하기 애매한 상황이다. 초반에 코로나가 터졌을 때 나도 모르게 적응하겠지만 그 때 절대 적응하지 않을 거다 마음을 먹었다. 이 때 적응이라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서 ‘현장성’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 나의 연령, 세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싶었는데 의뢰가 오고 대충이라도 폼을 잡고 하는 과정에서 이미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정적인 적응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이다.
박진명 : 코로나 전후로 나눴을 때 가장 크게 체감되는 몇 가지 포인트는 어떤 부분이?
허경미 : 일단은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 올해 신작을 내지 않기로 했다.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커뮤니티 댄스 같은 것이고, 이번주에도 커뮤니티 댄스 공연하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댄스필름 상영회를 가진다. 그런 형태 말고 기초예술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용이나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은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불안요소가 많으니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되는지 근본이 흔들리다 보니까 완성도도 많이 떨어져 있고 좋은 작품을 보러 가야지 하는 기대심리도 예전만큼 없어진 것 같다. 이 기간에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 당연히 작업자들도 그런 심리적인 것이 작용돼서 작품에 반영이 됐을 거고. 이 불안요소 안에서 했을 때 기존의 형태도 그렇고 온라인 공연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의 경우 완성도가 있다 해도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정말 3분 이상이 안 봐진다. 심지어 코로나 시기 전에도 소셜미디어에도 작품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때는 참고삼기도 하고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적응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심리가 있어서인지 더 보기 싫기도 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온라인 송출의 경우 그에 맞는 준비와 기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온라인 형식에 맞는 공연이 올라오지도 않고 있다.
박진명 : 무용에 있어서도 온라인으로 하기 적합한 방식은 따로 있는 것인가?
허경미 : 그렇다. 따로 있다. 현장에서 있었던 것을 그대로 찍어서 송출하는 것은 정말 현장성을 하나도 담을 수 없는데다가 집중도도 떨어진다. 온라인에 맞게 하는 것은 반 정도는 촬영기법이나 테크닉적인 부분이 들어가야 하는 데 그런 준비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장면들도 조망하는 시선에서 봐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이 있는데 줌인/줌아웃 등 그런 연출적인 것이 안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없이 허둥지둥 한다고 실제로 잡아야 될 작품 완성도는 못 잡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박진명 : 또 다른 부분에서 전반적으로 놓고 봤을 때 활동의 빈도, 내용은 어떻게 달라졌나?
허경미 : 올해 자체 공연은 준비하지 않고 있어서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의뢰 들어오는 작업은 하고 있는데 그 횟수를 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상반기에 분명히 차이가 있었는데 아마도 지원금 예산으로 하는 사업들이 많다보니 상반기에는 못하다가 어떻게든 올해 안에 예산을 소진하려는 하는 상황일 것 같다. 상반기 못 했던 공연이 지금 막 쳐낸다고 난리일 것이다. 그래서 큰 변화는 자기 공연을 하는 사람은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했을 텐데 다행히 나는 내 공연이 없었기 때문에 그건 말하기 애매하다. 축제나 기획공연 같은 경우에는 피해가 많이 있을 수 있는데 올해 내 활동의 내용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박진명 : 수입이라든지 경제적 변화는 없나?
허경미 : 3년 간 지속되는 교육사업을 맡으면서, 조금은 안정적인 재원구조가 생겼다. 그 사업이 지금 2년차다. 그 사업이 없었으면 올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 같은 경우는 그런 사업이 있어서 예외적인 사례일 것이다. 일정하게 진행되지는 못했고 미뤄지거나, 일정이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교육 사업을 맡으면서, 그것 때문에 큰 힘듦은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오히려 모두 멈춘 상반기 땐 문제였다.
박진명 : 상반기는 외부에서 요청 오는 작업 자체도 없었고, 하반기 와서는 몰려서 1년 치를 보면 어쨌든 비슷하다는 것인가?
허경미 : 상반기에는 아예 없었다. 빈도는 하반기로 다 몰린 거다. 하반기로 몰리다 보니까 무용 교육도 주 2회 할 것을 3회 몰아서 하기도 해서 그것조차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3. 코로나 시기 공간에서 겪는 어려움
박진명 : 공간이나 이런 것도 관계있겠나? 공공시설의 연습실이나 무대?
허경미 : 그건 타격이 컸던 게 나 같은 경우도 레지던스 입주 작가로 올해가 3년차였다. 입주작가에게 가장 큰 혜택이 뭐였냐면 연습 공간 사용이었다. 그 것 때문에 들어간 측면도 있었고. 입주 작가는 혜택이 연습 공간 신청을 하게 되면 1순위로 해준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공시설이 코로나19를 명목으로 운영에서 1순위로 제재를 받다보니까 연습실을 아예 못 쓰게 되었다. 아예 막혀버려 연습실 찾아다닌다고 굉장히 힘들었다. 연습공간이 없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아마 개인 연습공간이 없는 사람은 다 비슷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공연을 진행해보고 해보려고 했던 이들도 연습 공간이 없거나 구하기 힘들어서 굉장히 타격이 컸다. 연극 같은 경우 보통 극단이나 극장 안에서 연습을 해서 극장 자체가 연습실이기도 한데 무용은 그렇지 않다. 전부 사비 내고 연습실 찾아다니면서 공간 대여하거나 해야 했다.
박진명 :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기관의 일관성이나 기준 같은 게 따로 있다고 느껴지셨는지?
허경미 : 입주 작가로 있었는데 코로나 터지자마자 그날 저녁에 문자로 바로 짐 빼라고 연락이 왔다. 아예 출입 차단이 바로 됐다. 완전 분개해서 그날 저녁에 바로 물어봤다. 거기 직원들도 (우리처럼) 지금 그러냐.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입주 작가라고 불러놓고 완전 외부인 취급하는 거다. 끝까지 싸울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 코로나가 악화되면서는 국가 정책에 반감을 가지면 물의 일으키는 분위기가 있어 가지고 말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만 쓰는 것이 아니고 기관 직원들도 쓰고 있었고, 물론 직원들도 반 이상 재택근무로 돌렸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자세한 설명 없이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빼라고 해서 개인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고 문제가 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반기에 한 번 더 터졌을 때 볼멘소리를 하기는 했었다. 예술가 입장에서 봤을 때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선, 더군다나 예술가를 지원해 주는 기관에서 그냥 예술가를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이나 그런 것들을 조정한다거나 이해를 할 수 있게 설득을 한다거나 합의를 한다거나…. 어느 선까지 이런 일들을 해 줘야 하고, 그런 방향을 잡아줘야 되는 곳이라 생각을 하는데 그냥 하달만 하는 거다. 하달 조직이 아니지 않냐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도 했었다. 강하게 이야기도 했는데 나중엔 입주작가들도 지치기도 하고 또 몇 개월 되니까 약간은 적응이 돼 버리더라. 몇 개월 사용하지 못 했기 때문에 유예기간을 주겠지 생각했는데, 유예기간 없이 나 같은 경우는 3년차라 (공간에서) 나가야 한다.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이 문화예술에 공헌하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곳이라면 개별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설득이 안 된다면 설득을 하는데 최소한의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변화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현장성이 사라진 무용에 대한 걱정
박진명 : 다른 동료들은 이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가?
허경미 : 저는 무용수들과 작업을 하는데, 거의 비슷한 것 같다. 특이했던 점은 올 4월에 ‘신인춤제전’이라고, 졸업하는 신인들에게 무대를 열어주는 장이 있었다. 그게 2, 3번 연기가 됐다. 오디션으로 그 친구들을 뽑았는데, 본인들도 연습공간도 부족하기도 하고 공연하려면 사람 모이기도 힘들고 해서 중도 포기자들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의욕 있게 준비를 하고 어느 해 보다 풍성하게 진행이 됐다. 관객을 50명으로 제한해서 받긴 했지만, 그 현상을 보면서 특이하다 생각했다. 벼랑 끝에 서 있다 생각해서 그런 반작용이 있었던 것인지…. (웃음) 어려움에 처해있는 무용장르의 지역상황에 대한 표출일 수도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기는 했었다. 그게 상반기 4월이었다.
박진명 : 상반기에는 활동들이 별로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닌가?
허경미 : 상반기는 개인활동에 있어 시즌이 아니기는 하다. 다른 공연이 없어서 이 공연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공연자체를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오히려 힘을 더 실어준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연령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 여유 있게 지켜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대상들이 젊은 친구들이어서 이런 현상들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박진명 : 코로나 시기에서 심각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허경미 : 공연예술계 사람으로서 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심각한 거다. 이게 뭐 대처를 하고, 새로운 관람의 형태들이 나올 수도 있지만 (현장성에 기반한 춤) 이건 나름대로 문화적으로 축적되어 온 형식인거다. 하루아침에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뿐더러, 이 장르의 가장 큰 특수성이기 때문에 진짜 큰 위기인 것 같다.
박진명 : 개인적으로 활동의 중단이 위기일 수도 있는데, 말씀하신 것은 ‘장르가 가진 성격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를 말하는 것 같다.
허경미 : 그렇다. 활동중단 부분에 대해서는 불안이 덜 했던 게, 좋은 대안은 아니나 지원을 통해서든 공모를 통해서든 어떻게든 다른 형식으로 진행은 할 것이라 예측되는 부분이 있다. 공연내용이나 질, 관람형태에 대한 걱정은 되더라도 공연기회나 기획들이 사라질까 걱정은 크게 많지 않았다. 실제로 상반기 이후에는 뭔가 또 계속 만들어 냈다. 지원형태들도 조금씩 코로나 관련이거나, 온라인 관련 사업들이 나왔고. 그 내용들이 조금 불만이긴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활동이 중단된다는) 걱정은 많지는 않았다.
박진명 : 올해 공연을 하면서 이전에 했던 것과 바뀌었다고 느낀 점이 있나?
허경미 : 당연히 있다. 고백 아닌 고백인데…. 개인 플레이어(player)로서 온라인 공연 송출을 벌써 3개 했다. 내가 봐도 온라인 공연이 집중도가 없다는 것을 내 스스로 체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하는 입장, 공연을 대하는 태도 등에 차이가 확 생기더라.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연행을 해야 하니까. 스스로 태도가 바뀌는 느낌. 치러 내는 느낌. 문제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
5.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기 위한 노력
박진명 : 올해 코로나 때문에 생긴 지원사업 어떤 것에 참여했나
허경미 : 하나는 지원했는데 떨어졌는데…. (웃음) 신청했던 사업이 공연물이나 컨텐츠를 기록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공유하는 취지의 사업이었다. 이전에 진행했던 작업들 중 미디어와 협업했던 작업들이 좀 많았다. 몇 년 전부터 미디어와 협업하는 작업을 좀 하고 있었다. 새 작품을 만든다거나 관객과의 소통의지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을 자체 아카이빙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 보려고 지원했는데 떨어졌다.(부산문화재단 사업)
박진명 : 지원사업 아니라도 코로나 상황이라 진행된 일들이 있으실 것 같다.
또 장애 예술인 교육 사업을 맡아 팀장을 하고 있다. 2년 연속 사업인데, 올해 초가 1년차 마무리 시점이었고, 올해 가을이 2년차의 마무리 시점이었다. 마무리는 쇼케이스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2번 모두 못 하게 된 상황이었다. 아예 공연을 열면 안 되니까. 교육은 했는데 결과를 못 내게 된 거다. 소수 인원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아예 ‘진행불가’ 방침을 잡았다고 하더라. 당연히 지원은 없고. 그런데 그걸 다 떠나서 교육생들과의 관계가 있고, 그 분들과 마무리로 뭔가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다. 그래서 온라인 송출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끼리 강사비를 십시일반 모아서 자체적으로 영상촬영 조건을 만들어서 작품을 만들고 촬영했다. 상영회도 보호자분들 모시고 상영회도 했다. 작은 규모 행사로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규모가 커졌다. 그런데 현장에서 멋있었던 공연이 영상에 담기니 전달이 되지 못했다. 이게 너무 안 맞아서 오신 분들한테 저 혼자 얼굴이 빨개져서…. (웃음) 영상으로 담으니 너무 한계가 많았다. 이 활동은 자발적으로 진행한 거였다. 또 이번 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커뮤니티 댄스가 있다. 원래 2달 정도 진행되는 사업이었다. 주1회, 약 2달 동안 워크숍을 진행하고 마지막에 작품을 만들어 올리는 과정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든 진행은 해야 하니 이 과정을 하루로 몰았다. 하루에 2시간해야 하는 것을, 하루로 몰아서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워크숍을 진행했다. 코로나 때문에 변형된 형태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좋았다 나빴다’를 떠나서 그런 의외성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커뮤니티댄스는 본질적으로 관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하루 밖에 만나지 못하니까 유대감을 만들고 관계성은 약했는데, 또 거기에 맞는 뭔가가 나오긴 나오더라. 희한했다.
박진명 : 그럼 코로나와 관련된, 코로나 때문에 만들어진 문화쪽 사업은 진행하지 않은 건가?
허경미 : 코로나 때문에 만들어진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예 지원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맞춰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박진명 : 문화 쪽 지원 말고 생계지원 같은 일반지원은?
허경미 : 보통 일반시민들 받는 가구별 지원금 정도.
6. 돌아보기 좋은 시간, 뭔가 하기엔 허둥대는 시간
박진명 :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는데 도움이 되는 혹은 도움을 주는 상황들은 뭐가 있을까?
허경미 : 새로운 실험들을 해 보는 경험들은 분명히 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작업방식이나 관람형태, 연행예술이나 기초예술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측면들이 굉장히 훼손은 많이 되는데 그걸 내려놓고 살펴볼 수도 있다. 새로운 방식을 찾는 부분들은 지금은 실험단계라고 본다. 안착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릴 것이고, 적응하기도 힘들 거다. 일단 시도해보는 기회 정도는 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한참 뒤겠지만 그런 실험과 시도의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비슷한 질병의) 대유행이 없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사람들 심리가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괜찮아지고 나면, (진행되던 실험이) 안착될 때까지 계속 진행되는 게 아니라 중단될 것 같아서 그 지점이 애매한 것 같다.
박진명 :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이 있을까?
허경미 : 지금 예술인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작업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상반기에는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예술인들은 일과 자기 생활과 거리두기가 잘 되지 않는데 올해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활동도 소수로 하게 된다. 몇 종류 되지 않지만 현재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소수를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서,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측면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권장사항 때문이기도 한데 2단계 때는 진짜 집에서만 있어야 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특별하게 자기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기간들, 작업하고도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기간들이 있었다..
박진명 : 주변의 관계변화 같은 건 어떻게 느끼나?
허경미 : 약간 동지의식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동병상련의 어떤 그런 것들이 생긴 것 같다. 아픔을 같이 겪거나 본격적으로 막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 않았지만, 멀리서 보면서 고개 끄덕끄덕 하는 지점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유대들이 생긴 것 같다.
박진명 : 부산, 예술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 사회의 변화는 어떻게 보시나?
허경미 : 없다. 그냥 다들 허둥지둥 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가까이 있는 문화 관련 기관에 일하는 사람들도 진짜 안쓰러울 정도로 엄청 고생을 하고 있다. 밤늦도록 일하는 모습을 보면 불평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렇게 뭔가를 고생하는 만큼 허둥대는 느낌이다.
7. 어떤 준비 필요할까
박진명 : 이후의 예술 활동에 대해서 그려지는 게 있는지?
허경미 : 경력이 25년차 될 텐데, 무용이기 때문에 계속 플레이어의 활동에서 조금씩 옮겨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계속 무대에 서고 싶지만 분명히 한계도 있고 해서 고민의 과정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당장 플레이어보다는 조금 더 넓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 이 상황 때문에 다양한 임기응변의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거나 안정될 때까지 미루고 있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당분간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앞서 말한대로 다행히 올해는 개인 작품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과 맞물리게 현장에서 플레이어로의 활동이 조금씩 좁혀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예술가들과는 입장 차가 좀 있다. 지원 내용은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나처럼 꽤 활동한 예술가들도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고, 한편으로 적응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데 바뀐 지원에 잘 적응하는 것과 그 작업을 잘 수행하는 적응 둘 모두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원에 대한 실험도 많아지고, 실패도 많이 할 거고.
박진명 : 무얼 준비해야할까?
허경미 : 지금 작품을 해야겠다는 의욕은 엄청 많이 꺾였다. 작품을 해봐야 온라인 송출인데 이 상황이라면 그렇게 해서 작품을 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본업이니까 창작욕구나 공연 욕구가 터져서 해야겠다고 할지는 모르겠는데 기존의 형식을 온라인송출의 형식으로 바꿔서는 욕구라 줄어든다. 안 할 것 같다. 온라인은 지금은 거의 급하게 대처하는 정도다. 지금의 지원으로는 안 된다. 급한 상황 속에서 현재의 지원은 실험하기에도 엄청 적은 액수로 (온라인 콘텐츠화 등을) 하는데 그것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온라인에 한번 올려봐라 수준이었다. 제대로 할 것 같으면 플랫폼도 만들고, 세부적인 계획 속에서 실험하게 해야 한다.
박진명 : 미디어를 활용해서 작업을 많이 해오셨다. 결과적으로 미디어를 무용에 결합해도 현장성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인가?
허경미 : 어떻게 보면 나같이 미디어 작품 많이 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적응하기 좋고 앞서간 거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아니다. 그 작업도 그 자체로 콘텐츠로 남기는 것이긴 한데 출발점이 현장성이다. 현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영상으로 남겨놓고 사이드로 남겨놓는 거지 영상으로 남겨놓기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다. 그건 다른 것 같다. 오히려 온라인으로 작업하든 대안으로 작업하고 있는 댄스필름이라든지 이런 거는 작업 여건은 다른 사람보다 잘 갖춰져 있다. 그런 작업자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잘 갖춰져 있는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근데 또 변할 것이다. 이렇게 큰 소리쳐놓고 (나중에는) 하고 있을 줄 모른다.
박진명 : 시민, 세계의 일원으로서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허경미 : 요즘 선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 자주 들린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 정도 영향력을 추구할 수는 있다. 특히나 예술 하기 어려운 이런 시대에, 특히나 무용은 실존을 추구하는 예술이니까 작업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지금 본격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 순하게 예술 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아닐까.
▲ 허경미 인터뷰 워드 크라우드
박진명
문화기획자. 생각하는 바다 대표. 딸아이의 언어생활탐구 저자. 지역 운동가와 예술가의 사이쯤에서 읽고, 쓰고, 실행해오면서 최근 나 스스로의 생애주기에 맞는 문화적 형식과 실천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