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주
'무엇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가
현재 벨로주는 <벨로주 홍대>와 <벨로주 망원> 두 곳이 운영 중이다. 애초에 운영하던 홍대 벨로주를 접고, 처음 까페를 겸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벨로주로 돌아가기 위해 망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다른 운영자에게 인계한 홍대 벨로주의 운영이 힘에 부친다는 얘기에, 박정용 대표가 다시 맡아서 운영하면서 공간 2곳을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코로나의 부담도 2배로 크다.
공연 공간의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홍대 라이브클럽씬의 경우 아무리 잘 운영해도 최대치가 정해져 있다. “금‧토‧일, 금‧토‧일” 한 달에 공연을 채울 수 있는 날이 12일이 최대이다. 수익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일 대관료 단가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인디밴드의 사정을 뻔히 아는 입장에서 그러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라, 벨로주는 현재 박정용 대표 인건비는 안 나오지만 겨우 스탭들 인건비와 임대료를 맞추는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빡빡한 규형점에서 버티고 있던 벨로주의 발판을 코로나가 “쑥”하고 뺀 것이다. 취소 한 건 한 건이, 이익의 상실이 아닌 온전한 손실이 되는 구조다. 벨로주와 같은 공연 공간에는 코로나의 여파가 배가 되는 또 다른 독특한 구조가 있다. 코로나 단계가 올라가면 공연 취소는 즉각 실행되지만, 다시 단계와 완화되어도 재개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홍보, 예매 등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일상의 생활은 코로나 단계가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반응할 수 있지만, 공연 공간의 회복은 일상보다 한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하였다.
사실 올해 상황이 심각할 때에도 민간 공연장 운영은 법적 행정적으로 전면 금지는 아니었다. 50명 이내라는 수칙을 준수하면서 진행할 수도 있었다. 박정용 대표 본인도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방역 가이드를 지켜서 해내는 것이 공연의 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 중반에 줄 이은 공연 취소는 하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의 중압감 탓이 컸다고 한다. 일단 대관 공연의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취소되었고, 박정용 대표가 결정을 책임지는 벨로주 기획공연은 분위기에 따른 취소 없이 방역 가이드 내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공간 운영자로서 임대료는 당연히 큰 짐이었다. 게다가 벨로주는 공간을 두 곳이나 운영한다. 1년에 임대료로 나가는 돈은 1억이 조금 넘는데, 협의 끝에 할인받은 임대료는 연간 총임대료 지출에 비해 한 자릿수 퍼센트 수준이었다. 이미 공간 운영으로는 임대료 충당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박정용 대표는 외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임대료 부족분을 메웠다.
“무슨 중세시대 때 농노가 열심히 일 해가지고 지주한테 소작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아... 뭐지? 뭐지... 그러고 있는 거지.”
하지만 박정용 대표는 건물주보다 정부의 애매한 정책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불분명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에 대해, 차라리 공실로 놀리는 게 임대료 기준을 낮추는 것보다 나은 건물주들이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민간 끼리 사정하고, 사정 봐주고, 부담을 끌어안는 구조, 선의 외에 기댈 것이 없는 구조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굳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그간의 역사 때문도 아니고, 사명감도 아니고, 그저 (비록 밖에서 번 돈으로 채울망정) 대출 안 받고 아직은 근근이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년을 장담할 수 있는 공간은, 벨로주도 마찬가지지만,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박정용 대표의 전망이다.
인터뷰어 입장에서 이런 애매한 유지가 가장 큰 난감함으로 보였다. 차라리 애매한 상황이 아니면 포기든, 혁신이든 결정할 텐데, 운영만으로도 여력을 전부 탕진하는 마당에, 예측적 대응, 전략적 대응은 다음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럼 이런 불확실함은 온전히 바이러스 탓일까?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회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예측 가능성을 만드는 게 정부의 일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의 공백이 현장을 빠른 포기와 전환으로도, 혹은 혁신으로도 가지 못하게 발목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용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코로나 이후의 공연과 공연장이었다. 모든 전문가가 코로나 이전 시대로의 회귀는 없다고 하지만, 박정용 대표는 공연 문화는 코로나 상황이 지나고 나면 이전과 거의 비슷하게 롤벡(roll back)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아직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기준으로) 감각적 경험의 새로운 방식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온라인 영역이 커지는 것은 명약관화이고,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와 관객은 온라인에서도 참여와 소통의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예술단체와의 인터뷰와 달리 공간 운영자와의 인터뷰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예술가는 창작의 동료와 부대낌이라도 있지만, 공간 운영자는 그 공간 안에 홀로 우두커니 선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박정용 대표는 지나온 벨로주의 시간에 대해 후회가 없다고 한다. 비록 돈을 못 벌긴 했지만, 십수 년의 시간을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리스펙만 받으며 지내왔다는 것이다. 힘겨운 동네인 인디씬에서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리스펙을 해주는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것인데, 영세한 동네의 인지상정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 우리는 버티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 인터뷰 이후에도 길게 남았다.
벨로주는 2007년 홍대 앞에 문을 열었다. 당시 홍대 라이브 클럽은 록과 펑크가 주류였지만 벨로주는 크로스오바, 재즈, 월드뮤직 등 전문적으로 어쿠스틱한 음악이 정기적으로 공연된 홍대 씬 최초의 공간이다. 처음에는 카페와 겸해 1주일에 1번만 공연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프로젝트를 계기로 전문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온스테이지는 박정용 벨로주 대표가 제안하고 기획한 프로젝트로 대략 6년간 벨로주에서 공연과 촬영이 진행되었다. 현재 벨로주는 ‘벨로주 홍대’와 ‘벨로주 망원’ 두 곳이 운영 중이다.
2009.3.1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 시와' 공연을 첫 시작으로 디어 클라우드, 두번째달 바드, 3호선 버터플라이, 이승열,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윤석철 트리오, 김목인, 잠비나이, 박지하, 색소포니스트 김오키, 강태환 트리오, 선우정아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가진 음악가들의 공연이 자주 열리는 공간이자 인디 음악가들의 앨범 발매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유명하다. 2014년부터는 매해 1월 포크 음악가들의 축제인 '새해의 포크'를 2016년 부터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all tomorrow's parties'라는 시리즈 공연 등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설동준 : 벨로주 시즌1 오픈하실 때가 네이버에 있다가 최전성기에 나오신 거죠? 사람들이 “왜 지금 나가냐고?” 많이 그랬을 것 같은데.
박정용 : 나는 되게 오래전부터 ‘나이 마흔에 나가서 뭔가 공간을 하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고. 정확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음악 마니아고, 나의 일상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로 채우고 싶은 그런 목표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지. 제작을 하거나 이러기보다는, 음악을 틀고, 공연도 하고, 결국 음악과 관련된 대안적인 공간을 운영을 한다로 귀결이 됐었죠.
설동준 : 기획프로그램이랑 대관프로그램이랑 전체적으로 비율이 어느 정도 되요?
박정용 : 초기에는 기획이 훨씬 많았고, 지금은 대관이 많고. 근데 평균으로 따지면 대관이 60~70%, 기획이 30-40%, 그 정도.
설동준 : 벨로주는 관객에게는 대관과 기획이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
박정용 : 홍대에 있는 전문공연장들 중 꽤 많은 곳이 실용음악과 대관, 취미밴드 대관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벨로주는, 이게 잘났다가 아니라, 그런 대관을 안 받아요. 물론 그런 대관이 없어도 (스케줄이) 차기 때문에 안 받는 것도 있지만, 그런 대관을 받으면, 한 달 벨로주에서 받은 공연 리스트를 보면, 공간의 아이덴티티가 없어진단 말이야. 이게 좀 쌓이니까 역으로 어떤 게 생기냐면, 대관인데도 관객들은 벨로주에서 하는 대관은 벨로주 공연으로 인식을 하게 돼. 그걸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 있죠. 확실히.
1. 코로나19 이전, 코로나19 이후
설동준 : 그럼 몇 일이나 돌아가요? 코로나 이전 기준으로 얘기하면.
박정용 :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홍대씬은 너무 뻔한 게, 결국 “금·토·일”이다. 이게 문제가 뭐냐면, 코로나 이전의 벨로주는 그냥 풀로 돌아간다. 금·토·일, 금·토·일. 근데 그게 사실상 맥스인 거지. 평일 날 공연을 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한 달에 최대 12~13일인 거야. 대관료가 한번 할 때 평균 OOO만 원이니까, 결국 월 매출이 OOO만 원 인거지. 딱 그렇게. 그리고 월세 OOO 내고, 인건비 내면 끝.
설동준 : 뭘로 먹고 사세요?
박정용 : 벨로주는 어떻게 보면 무슨 사회적 기업처럼, 직원들 인건비 주고, 사실 (이익금이라 할 만한) 돈이 나오지는 않는 거고. 그러다가 평일에 만약 좀 있으면 그때부터 좀 플러스가 되는 구조. 그리고 12월은 좀 벌죠. 12월은 보통 평일에도 거의 공연이 있으니까. 한 이십몇일 공연을 한다. 그러면 12월에 수익이 OOO만 원 정도 생기는데, 그게 사실은 약간의 유지보수비, 이런 식으로 들어가는 케이스.
설동준 : 그러면 어차피 더 채울 수도 없는 건데, 코로나로 그마저도 날린 건가요?
박정용 : 코로나 때 그랬지. 정확히 2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두 달 반 정도 공연이 제로. 그다음에 다시 회복해서 하다가, 7~8월 그때부터 9월 중순까지 두 달 정도가 또 제로. 공연은 갑자기 취소할 수는 있지만, (상황 완화돼서 재개하려면) 다시 한 달은 준비해야 하니까 회복이 늦게 오는 거지. 공연은 한 달 전에 예매하고 계획을 해야 되니까.
설동준 : 그럼 다시 대관이 잡히고, 어느 정도 공연 운영이 될 수 있었던 게 언제부터였던 거예요?
박정용 : 10월부터? 연 중반에는 간헐적이었고. 10월 정도 되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학습이 됐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학습이 됐고,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학습이 됐고. 근데 문제는 그게 결국은 다 거리두기 한 거라, (객석의) 절반만 받는 거다. 오지랖인가 싶기도 한데, 벨로주 같은 경우는 대관료를 할인을 해줬거든. 관객이 절반인데, 그렇다고 50% 할인을 해줄 수도 없고. 25% 이렇게. 결국 한 달에 12번이 다 차도 25%가 빠지는 거야.
설동준 : (대관료 할인은) 누가 결정한 거예요?
박정용 : 내가 결정해서 그렇게 했는데 이제 와서 바꾸는 건 좀 웃기고. 됐어 그냥. 올해까지는 가보는 거지.
설동준 : 벨로주는 기획공연도 한 달에 공연하는 12일 중에서 하는 거죠?
박정용 : 그렇지. 금토일, 주3일. 요즘은 그래서 기획공연을 목요일에 좀 많이 하지. 목요일이 옛날처럼 평일이 아니라 약간 주말 같은 느낌이 살짝 나는 평일이기 때문에.
설동준 : 근데 원래 인디음악 씬이 그런 거예요? 클래식 같은 경우에는 평일 공연도 많이 하거든요. 물론 클래식도 티켓 세일즈를 해야 되는 스타 연주자가 나오는 공연은 주말에 하지만.
박정용 : 여기(홍대 음악씬)는 초대권 공연이 아니라서 그래요. 결국 아무리 적게 오더라도 인디 쪽은 세일즈거든. 그게 되게 크다. 인디 쪽은 기본적으로 지원금으로 자기 창작을 유지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씬. 어떻게든 나의 목표는 빨리해서, 좀 더 유명해져서, 100석 가고, 다음은 200석 간다. 목표가 되게 분명한.
2. 임대료, 감액과 지원
설동준 : 임대료 할인은 받았어요?
박정용 : 장문의 메일을 보낸 끝에 2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20% DC를 받았죠. 그래서 OOO만 원씩 해서 총 OOO만 원. 그 뒤로는 없었다. 근데 이게 나는 결국 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해. 임대인들을 욕할 게 아니야. 나라에서 대줘야 할인을 하지. 무슨 세금 감면하고 이런 걸로는 아무도 안 움직이지.
설동준 : “민간에서 누군가 선의를 가지고 끌어안아라” 이건 좀 아닌 거 같다. 코로나19 관련 공간 관련된 지원금은 있었나요?
박정용 : 모든 자영업자들이 받는 100만원? 150만원? 공연장, 문화공간에 대한 거는 없고.
설동준 : 그런데 이상한 게, (임차인들) 임대료 이슈가 크다는 건 연중 내내 나왔던 얘기잖아요? 근데 왜 공간에 대한 (코로나 관련 지원) 생각을 못했을까?
박정용 : 한국사회에서 공간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임대료 지원한다라는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임대료를 지원한다, 그러면 잘 모르는 시민들이 봤을 때는 약간 배임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왜 임대료를 대줘?” 이렇게 된단 말이지. 창작을 지원하면 모르겠는데. 공간을 지원하더라도, “니네 공간에서 뭔가를 만들어”,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이런 개념이에요.
설동준 : 대출도 받았나요?
박정용 : 아니 대출은 안 받았어. 딴 거 해서 벌잖아. 내가 지금 되게 다행이면서 열 받는 게, 올해 여기저기 선곡하고 뭐하고 해서 버는 돈을 매달, 그걸 월세로 넣는 거잖아. 빚을 안 져서 다행이긴 한데. 무슨 중세시대 때 농노가 열심히 일해서 지주한테 소작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아…. 뭐지?’ 그러고 있는 거지. 짜증이 확 나지. 저 공간에 벨로주가 기여한 게 만약에 90%라면 건물이 기여한 건? 10%? 그런데 왜?
설동준 :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낯선 이슈가 아니잖아요. 장기적으로 보증이 안 되거나 자기 공간이 아니면, 축적되는 형태의 작업을 안 하더라고요. 팝업스토어처럼, 딱 치고 빠지는 작업만 하는.
박정용 : 결국에는 안정적인 공간이 있어야지 씨앗이 내리고 자라는 건데. 너무 슬픈 거지. 공간이 되게 중요한데, 공간이 없어지면 진짜.
설동준 : 요즘엔 유휴공간이라고 해도 거기에 활동의 내용을 뭘 채울 건가보다, 지금 시대의 아젠다는 그 공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체계를 협의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내용만 채우고 사람들 팽하는 거는 사람을 자원으로 동원하는 거고.
박정용 : 정확한 지적이고 일리가 있는데, 그 결론까지 오기가 쉽지 않지.
설동준 : 대표님은 공간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예요?
박정용 : 나는 뭐, 사명감은 아니고. 어차피 벨로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박정용’ 개인이기도 해서. 충분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어서. 냉정히 얘기하면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 공간을 접을 수 있어요. 공간은 접지만, 나는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 공간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지하지만, 그것 때문에 ‘벨로주를 계속 유지해야 돼’라는 강박은 없어요. 아직까지는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고. 하지만, 금전적 기회비용, 잃는 것과 보람·만족을 얻는 것에 대한 플러스마이너스. 다 누구나 계산하지 않나? (벨로주는) 플러스는 아니지만, 어쨌든 마이너스가 아니고, 순간순간 거기서 나오는 보람과 만족이 있으니까 유지를 하고.
3. 코로나와 일상, 팬데믹의 의미
설동준 : 개인적으로 일상이 변한 게 있어요?
박정용 : 크게 바뀐 건 없는데. 메꿔야 되니까 일을 좀 더 많이 하는데, 어쨌든 고마운 거는 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니까.
설동준 : 벨로주의 “공간 용도에 대해 확장된 상상을 해 봐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박정용 : 못했지. 무언가 새로운 방향으로 돌파할 여력이 없지. 지금은. 유지에 모든 여력을 다 쓰고 있으니까. 너무 절박하고 안 돌아가면 접던가, 완전히 바꾸는 돌파구를 찾든가 할 텐데, 지금은 어떻게든 기존 시스템대로 유지하면서 돌아간단 말이야. 그러니 그다음 단계를 시도해 볼 생각은 못 하고 있지. 그런데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겠지. 공간일 수도 있고, 레이블이나 회사들일 수도 있고. 임계점에 와있는데. 계속 위기를 뒤로 유보하고 있는 듯한. 근데 나는 제일 중요한 거는, 지나고 나서, 이야기를 많이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코로나 때문에 뭐가 가장 취약했는지, 어떤 걸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이런 게 다 드러났다고 보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이야기를 해 봤으면 좋겠다 싶은 거지.
설동준 : 지금 이 인터뷰가 그런 일의 일환일 거예요. 그래서 이 인터뷰가 ‘현장의 기록’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요.
박정용 : 중요한 것 같아. 지원사업을 설계하든, 국가 정책에서든, 이런 팬데믹은 현대사회가 겪을 수 있는 전쟁만큼의? 최대치일 것이잖아요. 전쟁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모든 것을 재건설해야 하는 거지만, 이거(코로나 상황)는 기존의 체제가 유지된 상태에서 가장 취약한 영역이 어딘지 드러내는 거거든. 근데 잊으면 또 빨리 잊고. 사람이란 게 그럴 수 있단 말이지. 근데 뭐가 위기인지 데이터가 나왔기 때문에. 그게 뭔가.
설동준 : 교육 분야는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가 없다라고 말을 해요. 공연도 그럴까요?
박정용 : 공연은 다시 롤백(roll back)할 가능성이 되게 높죠. 공연이야말로 감각이기 때문에. 그동안 쌓였던 욕구를 충족하며, 대리만족하며, 공연도 매우 열심히 볼 것 같고, 그렇게 할 거야. 물론 과거처럼 온몸을 부딪치는 공연에 대한 약간의 장벽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습된 게, 이렇게 방역하고 뭐 하면, 공연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4. 공연 취소와 가이드
설동준 : 올해 계획된 공연 취소가 많이 됐잖아요. 취소에 대한 결정 과정은 어떻게 되요?
박정용 : 대관공연은 대관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거고, 기획공연은 내가 결정하는 거고. 이게 문제가 뭐냐면, 초기 때 4, 5, 6, 7, 8월 때, 공연이 되게 많이 취소된 것 중에 서로 그냥 취소를 해야되는 분위기에서 취소를 한 게 너무 많아. 공연을 할 수 있는 기준을 맞추면 어떻게든 하는 게 더 책임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런 게 아니었고. 그냥 막 취소를 했지. 대관한 사람들이. 내가 한 기획공연은 그렇게 취소한 경우는 없지. 그때 당시 50명밖에 못 받는다면, 방역규칙 지켜서 딱딱딱 하는 거였고.
설동준 : 분위기상 취소해야 하면 속상한 일이겠네요?
박정용 :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해도 되는데 그냥. 10월, 11월 오면서는 그렇지 않지.
설동준 : 취소, 환불 등등 가이드는 언제쯤 정한 거예요?
박정용 : 5~6월쯤?
설동준 : 분위기상 공연 취소 많이 되던 시기, 뭔가 룰(rull)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정한 거예요?
박정용 : 그렇지.
설동준 : 그렇게 보면, 공연장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방역에 대한) 가이드가 불분명하다라는 이슈보다, 사회적 압박이 더 큰 이슈였네요?
박정용 : 둘 다이다. 지금은 학습되고 (가이드도) 좀 있기는 한데, 2월부터 거의 8월까지는 가이드가 없었다고 봐야지. 문체부에서도 정확하게 공연을 해도 되는지, 한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계속 왔다갔다했거든. 지금은, 물론 비합리적 가이드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가이드가 있으면 지킨단 말이야. 50명 이하, 이런 거는 있었지만, 정확히 거리두기는 몇 미터인지, 의무인지 권장인지 등등. 이런 형태의 팬데믹이 오든 뭘 하든 했을 때, 가이드가 빨리 나오면, 비록 그 가이드가 비합리적이더라도 예측 가능해지면 서로 학습해서, 관객도 그렇고, 아티스트도 그렇고 된단 말이지. 너무 잘 알잖아? 예를 들어 페스티벌을 과연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답을 아무도 못 내려주는.
설동준 : 엄밀히 말하면 가이드가 없다는 건 공적 책임의 방기죠. 민간에 떠넘기는 방식이죠.
박정용 : 이제는 9개월 지나면서 학습이 되니까, 가이드가 있거든, 나름은. 그걸 좀 명문화하고, 조금 더 다듬고. 가이드가 나와서 다 같이 지켰는데도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으로도 (가이드를 만든) 그 공공기관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지켰는데도 사고가 생겼네.” 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이 가이드를 이제 어떻게 (더 보완을 하지?)”, 이 단계로 가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그게 아니잖아요. 공공기관이 가이드를 냈는데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생길 수 있으면, “아, 나는 문제 되기 싫어.” 이렇게 되는 거고, 사회적으로도 “왜 이런 시기에 그런 공연을 하라고 해서” 이렇게 얘기되니까. 사회적 성숙도가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가이드를 잘 못 내놓는.
5. 위기와 관계의 힘
설동준 : 올해 공연장 운영하며, 심적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이 된 적이 있어요?
박정용 : 그런 게 별로 없었죠. 라이브클럽협동조합도 라이브클럽데이라는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라이브클럽데이를 아예 못 했으니까. 거의 모이지도 못했고.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하는 서울라이브, 그 멤버들은 홍대 생태계를 중심으로 사업기획을 하잖아요. 그거 할 때는 좀 힘이 되지. 공간에 도움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이야기한다던가 이런 건 없었지만. (이 씬 안 있는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그런 건 도움이 되지.
설동준 : 그렇게 보면 공간 운영자로서는 고독한 입장이네요.
박정용 : 공간이란 건, 코로나 아니어도, 뭐. 라이브클럽협동조합 만들어지는 것도 그런 고독함 때문에 같이 뭘 해보자도 있었지만, 결국 매월 라이브클럽데이 행사를 중심으로 모였던 거여서. 거기에서 각각의 공간이 갖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기회는 별로 없었던 거 같아. 공간마다 고민의 내용이나 수준도 다르고. 생각해보니 고독한 거네.
설동준 : 그럼 대표님은 음악씬, 혹은 공연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멤버십? 동료의식? 그런 것들로(살아가시는 거네요?)
박정용 : 그게 제일 크고, 가장 큰 가치죠. 예를 들어 얼마 전에도 술 마시다가 “그 좋은 직장을 왜 나와서?” 그 얘기를 했는데, 난 후회가 없는 게, 돈을 못 버는 것 빼놓고는 지난 십 몇 년간 온통 리스펙만 받으면서 살았어. 나쁘지 않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나름 재미있게, 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리스펙을 받으면서. 이게 이 씬의 특징이기도 해요. 인디펜던트 하고 어렵다 보니 열심히 하면 서로 리스펙해주는 문화가 있기도 하거든. 후회 없어.
설동준 : 그러면 뭐가 제일 두려우세요? 예를 들면 저는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고요. 공동사회가, 암묵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토대로서의 공동사회가 무너지는 상황들이 저에게 두렵더라고요.
박정용 : 나는 공연장 대표로서 인터뷰가 아닌 개인, 박정용으로서는 지금 동준씨가 말한 거랑 굉장히 비슷한 두려움이. 그러니까, “사회가 어렵게 어렵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라는 믿음으로 20대 이후로 지난 20~30년 살아왔는데, ‘어, 아닌 것 같네.’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 요 몇 년. 이건 개인인 거고. 공연장 운영자로서 뭐가 두렵냐 하면, 공간이 닫히거나 이런 건 별로 안 두려운 것 같아. 나는 냉정히 얘기하면 은퇴할 시기가 오면 은퇴한다. 너무 이르기는 하지만. 공간의 운영자로서 “벨로주를 30년까지 유지시킨다” 이런 목표는 없어요. 역할이 다하면 종료가 되고, 마지막을 잘 페이드아웃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딱 하나 두려운 거는 다음 세대, 인디씬이 되게 건강하게 멋있게 재미있게 지속가능해지는 게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좀 있어서.
6. 공연영상화
설동준 : 마지막으로 궁금한 건, 영상화 지원사업, 혹은 영상화 이야기를 진짜 많이 하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본 거는 영상문법과 공연문법의 결합이 한두 번 시도해본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제 주변 공연 제작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이걸 더 이상 영상 하는 사람을 섭외해서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배워서 직접 해야 하나?’ 하는 거예요.
박정용 : 정답이다. 백프로 공감한다.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 박다울(거문고 연주자)은 얼마 전부터 현대카드에서 ‘적재’라는 기타리스트를 섭외해서 기타 챌린지를 해요. 적재가 코드 잡아서 여기에 맞춰서 같이 기타 잘 치는 사람한테, 그걸 유투브에 올려. 미친 듯이 인기예요.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이 다 올린단 말이야. 거기에 그 친구(박다울)가 거문고로 “이 G는 기타의 G가 아니라 거문고의 G입니다”라고 거문고로 일렉 (기타) 치듯이 두둥 두둥 영상을 올렸어. 반응이 크게 있진 않아. 어쨌든, 결국은 영상에 맞는, 그게 어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그걸 찾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그런 시도가 가능한 유튜브만이 아닌 플랫폼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바람인데. 그 단계로 가야 유료화도 되고 시장도 생기고. 공연을 다 온라인으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공연 뒤에 나중에 영상을 올리든, 영상으로 공연 홍보를 하든, 분명히 온라인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너무 명백하잖아요. 우리 애는 공연을 안 봐. 음악, 영화 모든 게 다 유튜브야.
설동준 : 올해 영상화지원사업이, 하반기에 미친 듯이 풀리고, 또 그게 올해 안에 사업 끝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평생 연극 연출하던 사람이 어느 세월에 카메라를 잡고 배워서 하겠나? 결국 다 외주를 줬잖아요. 그러니까 경험치가 안 쌓인다는 생각인 거예요. 그래서 ‘지원사업 구조에서 이건 에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고. 그리고 코로나와 무관하게, 아이돌이든 뭐든, 영상 문법이 이미 산업화돼서 발전된 영역이 있잖아요. 이 영역의 세련미를 따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싶어요. 게다가 복제 가능한 산업의 규모가 다시 자본 투자를 만들어내잖아요. 그렇게 해서 생기는 세련미는 이제 넘사벽이다 싶어요. 그래서, 감상으로서의 문화예술은 이제 거의 온라인으로 가겠구나.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초예술이라는 영역은 대부분 다 참여적 구조를 가지는 형태로 가게 될 텐데, 이걸 개념화시키면 근본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이네 싶은 거예요. 그렇게 문화예술교육이 기초예술 전체를 포괄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박정용 : 그런데, 모든 예술은, 기초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내가 만든 공간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에. 이것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퀄리티의 영상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게 하고 싶다는 거는 여전히 숙제지. 그리고 분명히 온라인에서 접근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라는 거지. (기초 예술이 참여 구조로 가고, 영상화와 다른 길을 갈 거라는 거는) 좀 이른 판단인 것 같은 게, 보는 사람들도 그렇고 예술가들도 그렇고 감각들을 쌓으면, 내가 구현하고 싶고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그 영상 안에 담는 방법도 발전할 거라서. 궁극적으로 (예술의 모든 경험적 요소를) 다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너무 일찍 선을 긋기는 조금 무리다. 참여라는 단어의 뉘앙스도, 너무 일찍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 같아. 온라인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오프에서 경험하지 못한 (참여를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애들은 다르단 말이야. 우리 애들만 해도 오프에서 참여하는 거를 어렵고 어색해한단 말이지. 그런 애들한테 “야, 니네가 경험을 못 해봐서 그래. 경험해봐!”, “이게 진정한 참여야.” 이런 식의 꼰대로 갈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 그런 애들한테는 공연을 다 즐기면서, 그 안에서 그 애들의 어법대로 훨씬 참여하게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하나도 없단 말이지. 현재로서는 예술가들이 경험치를 못 쌓은 거는 문제지만, 그게 쌓이면 젊은 예술가들은 젊은 관객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거라는 거지. 절대 온/오프를 그렇게 나눌 수 없고. 우리 시대는, 나는 빨리 은퇴하면 되고, 동준 씨도 빨리 포기해야 되는 게, 점점 이 시대가 변하는 게 빨라지기 때문에 젊은 예술가와 관객이 소통하는 방식을, 나는 당연하고 당신도 예측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
▲ 벨로주 인터뷰 워드 클라우드
박정용
홍대의 라이브클럽 중 하나인 벨로주의 대표이다. 한겨레문화기획학교의 간사를 했었고, 네이버에서 뉴스 및 콘텐츠 파트를 총괄했었다. 현재는 홍대의 라이브클럽들과 함께 <라이브클럽데이>를 만들고 있고,
설동준
학부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했지만, 어쩌다 들어간 동아리가 인연이 되어 전통예술 분야 친구들을 많이 얻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삼십 대에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보통 문화기획자라 소개하지만, 정확히는 변해가는 시대, 혹은 다가오는 시대의 풍경을 미리 보는 관찰자의 역할을 좋아하며, 사람의 성장에 관한 관심이 있어서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