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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미술관

'어렵다기보다는 불편한'

  • 인터뷰이 김재관(쉐마미술관장,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
  • 인터뷰어 2창수(시방아트발행인)
  • 2020년 11월 20일 12:00~13:30
  • 누나와 동생 식당

어렵다기보다는 불편한

쉐마미술관은 김재관 관장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시작은 현대미술연구소 개념이었는데 친한 동료 교수의 운명으로 인해 위작을 100여 점 받는 바람에 미술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김재관 관장이 소장한 또 다른 작품과 자신의 작품 등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게 되었다. 미술의 사회 공헌은 관장 개인의 신념이며 이곳에 교육의 방향까지 활용 중이다.

코로나19는 어렵다기보다는 불편을 겪는 상황이다. 쉐마미술관장은 올해 1월 초,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코로나19가 확대되고 확산이 되었다. 사립미술관중앙회장인데 미술관 사무실을 오픈 안 하면 전국미술관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으므로 미술관의 문을 열게 되었다. 요즘엔 전자결제 시대라 타지에서 일이 있으면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므로 바른 대응을 위해서라도 미술관을 닫을 수가 없다. 정부의 주의가 있었으나 미술관 운영에 큰 장애는 없었다. 청주가 다소 코로나19로 인한 집단 발병이 거의 없었고 미술관 자체가 인원 왕래가 많은 곳이 아니다 보니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 제한이 있더라도 미술관 자체가 원래, 단체나 수십 명, 수백 명이 오는 데가 아니고 적은 숫자가 왕래 되는 곳이라 계속 오픈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은 “작품하고 대면하는 거지, 사람하고 대면하는 게 아니다”. 물론 방역을 위한 소독약이라든가, 열 측정기라든가 등등의 방역 도구는 보완해놓고 소독도 철저히 하고 미술관에서 감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미술관 운영에 뒤따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을 때 미술관의 운영에 전환점을 마련해야 했다. 미술관교육프로그램을 중단했다. 교육을 통한 전염은 만에 하나라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잘 따랐다. 쉐마미술관은 젊은 작가들이 많이 오고 특히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토요꿈다락, 유치원 위탁 교육 등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들이 미술관에 와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정규교육 수업을 미술관에 와서 하는 수업이다. 미술관 직원들이 학교에 출장 수업을 가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전염병 위험 단계가 격상되었을 때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쉐마미술관은 숲속에 있는 데다가 시내처럼 여러 공간과 시설이 밀집된 곳이 아니다. 미술관 자체가 오픈돼 있다. 그러므로 자체적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면 미술관의 자연환경에서 야외나 자연환경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운영하려 했다.

사립미술관은 비영리 기관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미술관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그 대상이 폭넓은 제2의 교육기관이다. 이번 사태처럼 미술관운영이 어려워질 때면 인건비에 대한 재정지원이 더욱 필요함을 느낀다.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사립미술관의 운영 인력지원에 자부담률이 너무 높다. 자부담이 30%, 40%씩 부담을 하고 있는데 미술관은 자체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자부담 비율을 운영이 가능하도록 상식적 선까지 낮춰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각 미술관에도 인건비, 시설비라든지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많다. 코로나 시대에 제일 시급한 것 중 하나가 인건비, 또 방역을 위한 시설 지원이다. 미술관은 비영리 교육기관이고, 문화예술 기관이다. 세계의 많은 미술관이 창의 기능보다 교육 기능이 더 높아지고 있다. 창의활동 인구의 숫자는 줄지만, 교육 인구는 점점 더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평생사회교육센터로서의 미술관은 활용장소로 좋다. 오늘날 사회가 너무 자본이나 경제 쪽으로 치닫고 있지만, 문화는 이런 모든 것을 포함시키는 일이며 보다 근원적 삶의 목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문화공간에서 하게 될 것이다. 미술관은 이런 삶의 근원을 시각적이며 감성적으로 전달을 시켜주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미술변화 역시 외향적인 형태에서 좀 더 내면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그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술은 정신적 성장, 그리고 지적 성숙의 예술로 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더 급격하게 액티브한 쪽에서 모든 게 이뤄졌는데 그게 아니라 더 숙성시키는 쪽으로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예술가라든가, 지역에 있는 시민이 팬데믹 이후 미술이나 문화 현상이 쇼로 이뤄지는 현상들을 버리고 내면적 성찰을 찾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다시 나를 보는. 새롭다는 것을 밖에서 찾았는데 안을 보며 나를 돌아다보는 새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를 돌아다보는 것은 작품 세계관을 다시 설정할 수 있는 계기도 되겠지만 인류의 성숙을 위한 행동이 될 것이다.

미술관은 사람들의 내면을 강화시키고 감성을 성숙시키는 역할의 공간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이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대세라 유행처럼 비대면의 예술표현 방식이 진화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표현이라는 것은 아직 과학기술로 극복 못 하는 한계가 있다. 표현하는 예술가 역시 조잡한 방식의 표현으로 자신 역량을 제시하긴 어렵다. 비대면 예술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 지금의 제일 난관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이런 시대적 환경을 일부나마 대체하는 방편은 될 수 있지만, 비대면 VR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술은 시설을 보완하고 시스템을 개조하더라도 실제 현장성을 가지고 보고 즐겨야 하지, 영상매체나 컴퓨터시스템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쉐마미술관은 인류의 새로운 위기 순간에 인류가 가진 근원을 정리하고 발현할 미술연구소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쉐마미술관은 청주대학에서 30여 년간 재직했던 서양화가 김재관 교수가 2009년 6월 26일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충청북도 제2011-01호) 김재관 관장은 청주가 고향이다. 쉐마미술관은 한국박물관협회, 한국과학창의재단,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박물관, 미술관 창의체험프로그램 우수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다. SCHEMA는 “격”, “짜임”, “계획”이라는 의미로 기하학적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김재관 교수의 작품과 그 맥을 같이하며, 미학적, 종교적 의미로서의 SCHEMA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다”라는 의미가 있다. 현대미술 활동을 하는 관장 개인의 미술관이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철학과, 신념을 기본으로 하여 지역사회, 미술계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현대미술의 지역 거점 공간, 평생교육의 거점 공간을 지향한다.

쉐마미술관 이사회로 운영되고 있으며 4대 보험 가입자 현재 총 6인이다. 청주 국제현대미술전(2020년 현재 제7회 개최), 지역 청년작가 기획전 (매월 5월~6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유아문화예술교육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0년 12개 기획 전시와 2건의 협력전시를 진행했다. 연간 운영 일수는 2020년 315일이다.


1. 청주 내수에 자리를 튼 쉐마미술관


이창수 : 청주에서 대학에 재직하였고 또 작업실도 운영해왔다


김재관 : 80년대에 14년 만에 고향을 다시 왔다. 그때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되었고 작업의 열정을 해소할 작업장으로 쓸만한 공간이 없었다. 건물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심천 변에 마침 2층에 35평 정도 되는 건물이 있어서 그리로 처음 세를 내어 들어갔다. 1, 2년 지나서, 한동안 연구실 작업하다가. 자꾸 살림살이가 늘어나 견디질 못해서 작업장을 옮겨야 했다. 그 당시 청주는 신도시 계발로 봉명동 시대가 열렸다. 그때는 흔적도 없을 동네에서 신식건물들이 새롭게 짓고 있었고 신도시가 생겼다. 현재 청마루식당 건너편에 신도로가 생겨 거기 3층 건물에 40평짜리 새로 들어갔다. 완벽한 신식건물에 간 거다. 봉명동에서 6년을 있고 다시 이사 간 곳이 휴암동에 갔다. 그때 이사 간 동기가 전세 2000에 있었는데 그 건물의 전셋값을 올린다는 거다. 2500을 달라는 하는 거다. 신도시가 되고 건물세를 올리니 그 세를 이용하여 개인 주택을 사서 작업장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옮긴 곳이 휴암동 작업장이었다. 휴암동은 요금소 청주 들어오는 가로수길에 있는 곳이다. 충북 적십사 뒤 그 일대가 다 휴암동이다. 건물은 25평 정도인데 터가 150평이니까 아주 적은 건 아니었다. 뒤에다 컨테이너도 짓고 작업장도 만들었는데 그래도 적은 거다. 휴암동 작업장은 일반 한옥 개량 주택이었다. 기와지붕 밑 천장 삼각형 공간을 수장고로 사용을 하였는데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나면서 시멘트 기와지붕이 주저앉았다. 그 안에 작품들이 젖고 썩어서 손상되어 중요한 작품을 많이 버렸다. 집의 반지하공간도 있어서 반지하공간은 그 공간대로 물이 차올라 또 다른 작품과 자재가 손상되었다. 작업장의 견고성 및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겠지만 작은 규모의 공간은 해결이 어렵다. 공간 확보와 작품에 지속적 손상을 끼치는 습도조절은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창수 : 소전리 폐교에서도 활동했다


김재관 : 지역 군소학교 폐교가 진행면서 흉물로 방치되던 시기였다. 청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소전리에 폐교가 나온다 하여 소전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소전리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한지를 만드는 곳으로 지금 문화활성화사업이 하는 곳이다. 당시는 어린 학생이 사라지고 인근에도 어린 학생이 없어져서 학교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폐교가 되었다. 인근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가 있고 동막골이라고도 불릴 만큼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화전민들이 만든 마을이라 불리던 마을이니 두메산골에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소전국민학교는 차량 진입이 쉽도록 도로변에 있었다. 청주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이다. 이곳을 교육청에서 문화공간으로 사용한다는 서약서, 계약서를 내고 매입했다. 이곳에서 10년을 있다 나왔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장소를 확보했지만,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그리고 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수리와 보수에 계속 돈이 들어갔다. 운동장에 잔디를 깔고 건물 곳곳에 창틀 및 누수에 대한 수리 난방에 대한 문제 해결 등 잡다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갔다.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 활용에 어려움도 있지만, 이용자의 접근성에도 문제가 되기에 활발한 활동이 어려웠다. 작품활동이 활발한 시기였으나 거리는 불편함을 주게 되고 이것은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로 남았다.


이창수 : 청주 내수에 자리잡게 된 이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업장의 접근성, 공간의 확보, 시설의 현대성이 필요했다. 새롭게 짓는 방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다. 청주 내수는 일가가 있는 동네이다. 2009년 쉐마미술관 개관이 될 즈음 청주와 청원의 통합논의가 있던 시기였으며 곧 통합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늘 보아오던 고향의 산자락에서 보이는 상당산성이 마주한 자리다. 2월에 계약했다. 겨울 하늘이라는 것이 맑잖아. 나무도 하나 없고. 산성이 다 보이는 거다. 내가 어려서 놀러 다니던 산성인데 여기서 내가 고향을 바라보고 지키면서 내 인생 마지막을 가게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서 여기에 온 거다. 이것이 이제 11년, 12년 된 거다. 11년 전에 와서 1년 동안 미술관 만들고 그다음에 올해 햇수로 13년째 된 거다. 나는 유서도 벌써 써놓았는데 자기의 마무리를 자기가 준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휴암동에서 10년, 소전에서 10년, 여기서 10년도 넘었지. 앞으로 10년을 더 간다면 여기서 더 이상 움직이는 건 어렵다. 처음엔 현대미술연구소 같은 개념으로 하려다가 친한 동료 교수의 운명으로 인해 위작을 100여 점 받는 바람에 미술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개인이 소장한 또 다른 작품과 나의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미술관을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수장돼 있던 작품들을 이사하려고 꺼내 보니 보관장소가 습해서 무지하게 썩었다. 작품들이 많이 손상됐다. 10년 만에 꺼내놓으니까 너무 많이 상해서 버린 작품도 있고 해서 미술관 수장고와 보존 처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고 포장을 잘해 놓는 것을 넘어 작품을 공개의 방법을 고민하게 되어 미술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미술의 사회 공헌은 전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오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오다가 지금의 쉐마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 시작은 미술관을 짓는다는 생각보다는 개인 작업실 겸 연구공간, 현대미술연구소와 같은 개념의 공간을 만들려고 시작하여서 간단한 법리적인 공간 구성도 특별히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정화조 시설은 개인 공간이기에 2톤이면 되었지만, 미술관으로 만들려고 생각을 달리하면 10톤으로 바꿔야 하는 것처럼 다양한 설계변경이 필요했다. 단순 전시실뿐만이 아닌 수장고, 교육실 등과 같은 부대 시설을 만들고 운영에 대한 계획까지도 생각해야 했다. 쉐마미술관은 수장고가 3개나 있는데도 좁아졌다. 미술관이 11년이 되니까 수장시설을 더 늘려야 되는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작업을 크게 하다 보니 생겨나는 문제도 있고 다른 작품이 보관에 대한 어려움도 있다. 처음 계획과 달리 계속해서 수장작품이 늘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체계적 관리 방안이 필요하며 활용에도 더욱 체계적인 것이 필요하다.


2. 전시는 지속, 교육프로그램은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김재관 : 코로나 19는 어렵다기보다 불편을 겪는 거다. 올해 1월 초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이 됐는데 만장일치 추대를 받아서 하게 됐다. 출마해서 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코로나가 확산이 되었다. 내가 회장인데 미술관을 오픈 안 하면 전국미술관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으로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바른 대응을 위해서라도 미술관을 닫을 수가 없었다. 미술관의 직원들, 스텝들이 내가 회장이 되면서 보좌할 일들이 많이 생겼다. 고생들 많이 한다. 그래서 문을 닫을 수가 없더라. 한 번도 쉰 적이 없고 정기 휴일 매주 월요일 쉬는 거, 그때하고 공휴일 말고는 쉰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집합 제한이 있더라도 미술관 자체가 원래, 단체나 수십 명, 수백 명이 오는 데가 아니고 적은 숫자가 늘 2, 3명씩, 10명씩, 많아도 20~30명 안에 왕래 되는 데라 계속 오픈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작품하고 대면하는 거지, 사람하고 대면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작품하고 대면인데 비대면은 무슨 비대면이냐. 그런 걸 떠나서 작품하고 인간하고의 관계지, 인간과 인간하고의 관계가 아니므로 절대 문 닫지 말라고 했다. 소독제라든가, 열 측정기라든가 등등의 방역 도구도 준비하고 공간 소독도 철저히 했다.


이창수 : 사립미술관에 대한 별도의 지침은 없었나.


김재관 : 사립이건 국립이건 정부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 특히 이번과 같은 팬데믹 사태에서는 사립미술관도 예외는 없다.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이 같은 것처럼 미술관도 사립이나 국공립이냐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립미술관은 국립미술관과 달리 자유의지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립미술관은 장기적인 안을 가지고 진행하기 어렵다. 관장의 임기가 계약에 따라 수년으로 제약이 되기 때문이지만 사립 같은 경우 관장의 역량에 따라 수십 년씩 원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미술관의 관장은 봉사직이다. 작년에 내가 파리를 가서 한 달은 있었는데 파리의 미술관계자들이, 작가들도 마찬가지고 사립미술관 관장이라고 하니까 열 번을 악수한다. 예를 들어서 국립미술관 관장들은 2년, 3년 하면 계약직이니까 다 바뀌는 거다. 사립미술관은 그만큼 재산이 엄청나게 많은 거로 볼 수 있다.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립미술관에서 10년, 20년, 많게는 30년씩 관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존중을 해주는 거다. 사립미술관에 장기적 활동에 대한 예우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창수 :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졌을 때는 운영이 어렵지 않았나.


김재관 :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을 안 했다. 만에 하나라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잘 따랐다. 쉐마미술관은 젊은 작가들이 많이 오고 토요꿈다락이라든가 유치원 위탁 교육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각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들이 미술관에 와서 교육을 받는다. 정규수업을 미술관에 와서 하는 수업이다. 미술관 직원들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교육프로그램은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졌을 땐 중지했다. 부득이하게. 쉐마미술관은 숲속에 있다. 시내처럼 유동인구가 많고 여러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 자체가 오픈돼 있다. 야외 교육장도 있고, 보통 일반 미술관들처럼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미술관 주변환경이 오픈되어 있어서 불편을 전혀 안 느낀다. 되도록 야외, 자연환경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운영했다.


이창수 : 사립미술관에 필요한 공적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재관 : 사립미술관은 민간이 운영예산을 감당해야 한다. 사립미술관은 사립학교처럼 민간이 운영하지만 비영리 기관이다. 영리를 위해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한다. 또 교육도 이루어진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교육이 이루어지는 제2의 교육기관이다, 미술관은 갈수록 교육 기능이 높아지고 있다. 그에 대한 재정지원을 해줘야 한다.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사립미술관 운영 인력지원에서 자부담률이 너무 높다. 자부담 비율이 30%, 40%인데 미술관은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입장료 수입은 아주 적어서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자부담 비율을 두지 않거나 상식적으로 10% 정도까지 낮춰야 한다. 그게 제일 시급한 문제다.


이창수 : 전국에 있는 사립미술관이 같이 겪는 문제인가?


김재관 : 똑같을 거다. 올해 청와대를 몇 번 갔다. 비서실장 만나러 갔었고 사회문화수석 면담도 두 번 있었고 몇 차례 갔는데 사회문화수석한테도 얘기를 했다. 문체부에 그렇게 지원할 수 있도록하라고 한 것으로 아는데, 문체부가 지원사업을 하려려면 기재부에 예산 증액 요청을 해야 한다. 문체부가 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 의원들이 미술관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식이 약하다. 사립미술관은 점점 교육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좀 도와줘야 한다.


이창수 : 코로나 위기에서 공간 지원은 어떤가.


김재관 : 제일 시급한 것이 인건비와 시설 지원이다. 미술관은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미술관은 교육기관이자 문화예술 기관이다. 지금 세계의 모든 미술관이 창의 기능보다 교육 기능이 더 높아지고 있다. 창의 활동 인구의 숫자는 줄지만, 교육인구는 점점 더 늘고 있다. 그러니까 교육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미술관은 어린이 교육, 노년 교육, 젊은이 교육, 청년 교육 모두를 다한다. 평생 사회교육의 센터가 되고 있다. 33년 동안 대학에서 20세부터 20세 후반까지 젊은이들만 가르쳤는데 미술관에서는 4살, 5살 먹은 어린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가르친다. 운영이 안 되는 곳은 페널티를 줘야 하겠지만, 잘 하는 곳은 더 잘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국가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코로나 이후의 변화에 대해


이창수 : 쉐마미술관이 청주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재관 : 대학에서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지식만 넣어주는 것만 생각했는데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청주에 있는 미술관이니까, 청주지역의 생태계와 미술관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생각 하게 된다. 미술관과 미술이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게 하고 싶고 지역 문화에 대한 애정도 갖게 된다.


이창수 : 문화예술 활동에서 코로나19 이후 문화 전반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김재관 : 외향적인 형태에서 좀 더 내면적인 미술문화 쪽이 더 이제 성장하는 그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창수 : 예전에는 무조건 대면하다가 이제 인터넷 비대면이 일상화가 되어간다. 미래 작가가 생각해야 할 것은?


김재관 : 전시한다는 거를 쇼라고 하잖아. 쇼라는 게 뭔가? 보여주고 드러내고 하는 거 아닌가. 비대면은 쇼가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내실 있게 하는 쪽, 정신적 성장, 그리고 지적 성숙을 더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액티브한 쪽에서 활발했는데 그게 아니라 더 숙성시키는 쪽으로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화가들, 나는 이제 화가니까 물론 입체도 하고 설치도 하고 하지만 회화가 가지고 있는 근본 바탕에 본질이 있다. 회화는 평면 예술 아닌가? 유일하게 2차원의 예술인데, 2차원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요즘 내가 다시 생각하고 있다. 지난번 서울에서 7월, 8월에 한 달 넘도록 통일화랑에서 초대전이 있었는데 그때 전시의 주제를 관계에서 큐브를, 큐브에서 관계를 이 두 개를 했다. 지금까지 관계라는 거는 평면 관계부터 이루어지는 것을 입체로 오는 작업을 했던 거다. 해체적인. 그런데 다시 큐브에서 관계로 다시 들어오는 옛날에 숙성시키지 못하고 지나쳤던 거, 그때 봤던 평면과 지금의 평면이 다른 거다. 옛날에는 관계를 그냥 개념적 관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의 작품에서의 정체성이 되는 거다.


이창수 : 코로나 이후에 예술가라든가, 지역에 있는 시민이 팬데믹 이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김재관 : 너무 쇼 적으로 이뤄지는 현상들을 버리고 내면적 성찰을 찾는 기회가 돼야 한다. 이제는 다시 나를 보는, 밖을 봤는데 안을 보는, 나를 돌아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를 돌아다보는 것은 작품 세계관을 다시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창수 : 코로나19로 비대면 전시가 시도되고 있다.


김재관 : 비대면 예술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어려운 시대적 환경에 대응하는 방편은 될 수 있지만, 이 자체가 해결이 될 수 없다. 그건 자신 있게 얘기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술은 시설을 보완하고 시스템을 개조하더라도 실제 현장성을 가지고 보게 되고 평가하게 되고 즐겨야 한다. 영상매체나 컴퓨터 시스템을 가지고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현 상황에서 필요는 하겠지만 교육을 한다든가 할 때처럼 꼭 필요하고 가능한 부분들도 있지만, 예술은 절대 이런 비대면이 아니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 쉐마미술관 인터뷰 워드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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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
쉐마미술관 관장. 청주대학 응용미술과,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독자적인 기하학적 추상화 세계를 구축한 50여 년 현업작가이다. 2012년 제11회 ‘문신미술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화업 50주년을 기념전시회를 ‘영은미술관’에서 개최했다. 2009년 개관한 쉐마미술관 관장으로 지역문화를 일구고 있다.

이창수
화가. [시방아트] 발행인. [시방아트] 발행을 통해 지역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시간만 보내게 된 사람. 개인전 15회의 화가이고 조잡한 글쓰기 취미가 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청년이 고픈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