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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마임축제

'춘천은 봄도 마임이고, 여름도 마임이고, 가을도 마임이다!'

  • 인터뷰이 강영규(춘천마임축제 총감독)
  • 인터뷰어 유병진(프로젝트 궁리 협력 연구원)
  • 2020년 11월 17일
  • 남춘천역 인근 카페

춘천은 봄도 마임이고, 여름도 마임이고, 가을도 마임이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 즈음, 8시 10분발 춘천행 ITX를 타고 남춘천역에 도착해 강영규 감독을 만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오후 12시를 조금 넘긴 점심시간이 되었다. 춘천은 그만큼 서울과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축제를 시작으로 예술활동을 시작한 나는 축제를 마음의 고향처럼 여겼지만, 정작 이제 축제를 열심히 찾아다니지 않는 게으른 관객이 되었다. 언제가 마지막 방문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만큼. 춘천은 가까워졌지만 춘천마임축제는 나에게 먼 곳이 되었다.

어느 시절인가 세금의 사용의 가치 기준이 효과와 효율이 되었고,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졌다. 예술을 바라보는 기준도 지원하는 기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세상의 폭풍은 춘천마임축제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예술의 난장이었던 춘천마임축제를 만들어 오던 예술가는 이러한 폭풍에 휩싸여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춘천마임축제는 표류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세상이 그동안 다시 바뀐 만큼, 팬데믹 닥치기 이전의 춘천마임축제의 근황이 궁금했다.

강영규가 춘천으로 돌아와 사무국장을 맡게 된 2015년, 춘천마임축제는 예산이 많이 삭감된 상황이었고, 축제의 주요 공간이었던 고슴도치 섬이 매각되어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축제를 이끌어 왔던 유진규 감독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험해 보며 축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려고 했다. 축제 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조직을 상근자 중심으로 이끌게 되고, 안정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다시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듯하다. 또한 춘천인형극제 이사장 출신의 시장이 당선되면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행정 기관의 기준이 바뀌고, 춘천의 문화예술 단체들과의 소통과 사업협력이 늘어나며, 환경과 여건도 많이 개선되어 축제가 다시 안정을 찾은 듯하다.

어느 정도 축제가 예전처럼 활력을 띄고 안정되던 시점에 강영규는 사무국장에서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총감독으로서 첫해에 코로나로 팬데믹을 맞은 것은 불운이라기보다는 도전으로 보였다. 더구나 조직이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들어와 팬데믹을 헤처나갈 기본 체력을 얻은 후 맞게 되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팬데믹으로 많은 공연과 축제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춘천마임축제도 시련이 있었다. 하지만 전면 취소가 되거나 불편하고 어색하게 공연을 영상으로 만들고 마는 흔한 대안은 피해갈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축제의 계획은 플랜A에서 플랜B로, 다시 플랜C로 변경되었고, 마침내 플랜D로 실행되었다. 플랜D를 실행하는 동안에도 계속 변수는 생겨났고, 생겨나는 변수만큼 사무국은 분주히 움직였고, 예술가들은 변경된 일정과 장소에 따라 발표형식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한바탕 쏟아내고 놀아보는 난장 형 축제는 팬데믹 시대에 맞춰 사람들에게 평화와 휴식을 제공하는 공원 같은 축제가 되었다. 위기에 대한 성찰, 대응이 가능했던 조직, 행정당국 및 예술가와의 소통 능력이 휴식 같은 축제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팬데믹이 앞으로도 지속되기 때문에 대안이었던 플랜D는 당분간 춘천마임축제의 플랜A가 될 것이다. 시즌형 축제로 당분간 춘천마임축제는 운영된다고 한다. 그러나 강영규 감독은 하루 빨리 예전의 난장을 펼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팬데믹에 지친 시민들에게 공원 같은 휴식을 주기 위해 어디든 누구에게나 달려가 일상의 공간들을 무대로 전환하는 춘천마임축제라는 장르를 만들 것이다.



춘천마임축제는 1989년 한국마임페스티벌에서 시작되어 1995년 ‘춘천마임축제’로 명칭을 바꾸고 오늘에 이른다. ‘마임’을 주제로 다양한 공연예술작품들을 소개해왔으며 ‘불’과 ‘물’을 주제로한 난장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축제에 여러 차례 선정되었다.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가 운영하고 있다.


유병진 : 춘천마임축제는 30년이 넘은 축제다. 오랜 기간 축제가 운영되면서 변화도 있었다. 현재 춘천마임축제의 특징은 무엇인가.


강영규 : 춘천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춘천을 닭갈비의 도시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일단 ‘봄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봄의 도시로서 춘천마임축제는 봄의 생명력을 전국에 보급하고 알리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이 고정적 미션이다. 코로나19로 다 얼어붙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희망을 제공해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미션이 생겼다.
지역청년들과 버려진 공간에서 축제를 만드는 것으로 ‘봄의 도시 물화일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 천자를 쓰는 물의 도시이기 때문에 아수라장 진행하는 것이고. 큰 스토리는 물의 도시 춘천을 봄의 도시로 피운 다음에 불의 도시로, 축제의 도시로 만들어 낸다. 이게 축제의 슬로건이다.

대부분의 축제들이 공식초청작, 자유참가작, 해외 참가작, 프린지 참가작으로 프로그램을 나눴다. 마임축제는 좀 다르다. 자체 제작하는 주제공연과 창·제작 프로그램이 있고, 아티스트와 함께 만드는 콜라보 프로그램이 있다. 그 외에 초청작 (해외, 국내), 프린지 참가작으로 나뉜다.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작업은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역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광대들끼리 모여서 작품 만들고 싶다, 불을 만들고 싶다’라는 제안을 하고 우리와 함께 만들어 간다. 그런 작품들이 두 가지 정도 더 있다. 체험이나 놀이프로그램은 아예 직접 만든다.

이런 일상 사업을 통해 창작이나 제작에 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다른 축제와는 다른 점이다. 아티스트 빌리지가 형성되고, 빌리지가 형성되면 깨비들(자원활동가)과 커넥션이 생기기 시작한다. 계속 보게 되니까. 깨비들에게는 스타공연자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아티스트 쪽에서는 할 맛이 난다. 자기 공연에 열광해주는, 순수예술가들에게 이런 지역의 팬덤은 흔치 않다.

빌리지 프로그램에서 광대들이 모여서 공연을 하면 후배 크라운들이 보러온다. 후배들은 선배들과 같이 무대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한 욕구가 크니, 배가 고파 푸드트럭에서 줄 서 있다가도 즉석에서 저글링같은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그러면 관객들이 박수치고 같이 논다. 예술가들이 축제 사이트 어디서든 춤을 추고 노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된다. 이런 것들이 2016년도 축제 때보다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그런 식으로 조금 차별화되고 있는 것 같다.


1. 플랜A B C D, 축제를 위한 대안적 아이디어들


유병진 :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많은 것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텐데 어떤가? 축제와 지금 이야기한 상설 프로그램들의 상황을 좀 알려 달라.


강영규 : 일단 3월에 해외 작품들의 초청을 모두 취소하게 되었다. 국내 공연팀만으로 난장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다. 직접 제작하는 시스템이니까 해외 팀이 못 들어와도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국내 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며 준비해 갔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멈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아서 4월 초에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2020춘천마임축제 1미터와 2미터 사이 어딘가’라는 플랜B 세웠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축제를 한다는 것이 전광훈 목사가 집회하는 거랑 뭐가 달라?’라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그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이럴 때일수록 어려운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드려야 한다’는 예술의 가치, 축제의 가치가 너무 관념적으로 공허하게 보였다. 희망과 용기를 시민들이 받고 싶어야 드리는 것 아닌가. 다 꽁꽁 걸어 잠그고 제발 하지마 라는 분위기인데 굳이 왜 축제를? 회의적이기도 했다가, 그러다가도 축제를 하고 싶었고 해야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4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께서 세월호 관련하여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세월호 참사를 겪었기에 코로나19를 더 잘 극복하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예술과 축제가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기억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대구 상황이 안 좋았을 때 많은 의료진들이 대구로 갔지 않는가. 본인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 곳으로 갔다는 것을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깨비들 200명과 아티스트 100명에 스텝들 막 붙여서 한 500명이 춘천시청에서 출발해서 공지천 공원까지 방역복 다 입고 500명이 거리를 방역하면서 행진할 것을 기획했다. 어떤 무대적 장치도 없이. 이 행진으로 아수라장을 대체하려 했다.

당시 드라이빙 스루가 유행했던 시기였다. 춘천은 산책로가 참 잘 돼있다. 산책로에서 공연을 하고 거리두기 객석을 마련하고, 걷다가 공연을 보다가 다시 걷다가 아티스트들이 시민들과 같이 걷는 워킹스루 형태의 공연들을 생각했다. 그때 이탈리아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주민들이 함께 서로를 위해 연주를 하는 공연을 보고, 우리도 뭔가 집에 머물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공연을 생각했다. 도깨비난장은 이렇게 공연을 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자. 그리고 마지막 날 끝나는 날은 500명이 함께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청주로 가자. 그냥 거기 가서 그분들을 위해서 방역을 해주고 오자. 차를 백대를 빌려서 가는 거야. 별다른 연출력 없어도 쪽수는 된다. 준비하는 스텝들이나 깨비들한테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될 거야. 그런 것들을 준비하고 직접 경험하면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데 큰 전환이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준비하고 진행하다가 5월에 이태원 클럽 발 사건이 빵 터지면서 결국, 취소하게 됐다. 되게 억울하기도, 뒷 얘기도 많지만, 하여튼 결국 취소해야 했다.


2. 축제는 취소의 역사, 난장형 축제에서 일상형 축제로의 전환


유병진 :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방역복 퍼레이드랑 모두 무산 된건가? 그럼 플랜C도 취소된 것인데?


강영규 : 그렇다. 축제를 바로 취소하고. 고민이 많았다. 우리 계획은 안 위험 하다고 생각했다. 야외라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시청도 공유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위험한 시선으로 축제를 바라보고, 그냥 무조건 안 된다는 이 분위기는 뭘까. 그런데 비단 코로나19 사태에서만 축제들이 취소된 것은 아니었다. 천안함 침몰에도, 세월호 참사에도 축제는 취소되었다. 그렇다면 ‘축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도시에서 공원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아파트가 차지한 도시에서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게 공원인데, 도시에서 공원까지 가는 길은 멀고, 위험하고, 수는 부족했다. 스텝들에게 물어봤다. 우리끼리. 솔직히 마임축제는 클럽에 가까운 것 같나, 공원에 가까운 것 같나. 굉장히 많은 사람이 솔직히 클럽에 가깝다고 했다. 아수라장도 그렇고 도깨비난장도 그렇고 클럽에 가깝다. 지금의 시민은 공원을 요구하고 필요하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서 술 마시고 놀고 이런 것은 공포인 것이었다. 집합적인 것 일회성인 것, 소비적인 것, 향락적인 것들, 이런 것들을 바꾸는 개념이 필요했다. 축제를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일회성이 아닌 일상적인 축제들 이런 것들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다. 큰 공간에 2만 명이 모여 축제를 했다면, 그것을 100개로 쪼개서 프로그램도 100개로, 공간도 100개로, 일정도 100일로 다 쪼개서 해보자.

4월부터 계획이 자꾸 변경되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는데, 다시 스텝들과 가능할 공간을 찾아 나섰다. 기획실장은 막내들에게 공간을 찾으면서 왜 이 공간에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으라고 하더라. 공간을 리서치 하면서 7월 3일부터 일상축제를 한 번 해보자 했다. 우리는 사단법인이니까 총회에서 인준을 받아야 한다. 총회에서 우리의 계획을 듣던 이사 한분이 듣다가 ‘100개의 공간이면 너무 힘들고 비라도 오면 어떡하나, 차라리 예술축제니까 100개의 씬(scene)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다. 100씬이 언뜻 들으면 백신(vaccine)으로 들리기도 하고, 감성적인 백신을 만들자 이런 것도 되고, 너무 괜찮겠다 생각했다. 춘천의 하늘, 호수, 섬, 배,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의 옥상, 이런 모든 일상 공간에서, 공연, 전시, 체험, 워크숍 프로그램들을 ‘춘천마임100씬프로젝트(100Scene Project)’라고 해서 7월 3일부터 10월 24일까지 진행했다. 총 344회 공연, 전시, 체험 이런 것들 진행했는데 그중에서 317회를 대면으로 진행했다.

어떤 때는 2단계, 2.5단계까지 올라가, 10명을 위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보이스씨어터 몸소리 <자장가 프로젝트>는 10명을 위한 공연으로 했다. 당시 심각한 단계라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나 했는데 관객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가장 매니아 관객이다. 이렇게 공연을 하다 보니까 딱 나뉜다. 정말 마니아, 좋아하는 사람들, 긍정적인 사람들과 부정적인 사람들. 부정적인 사람들은 오지도 않는다. 필터링 효과가 있기도 하다 그렇게 정리도 했던 것 같다.


3. 축제 조직의 힘


유병진 : 이야기를 듣다보니 다른 축제와 달리 춘천마임축제에서 이런 유연한 변경이 가능했던 것은 일단 사업예산을 제공하는 시청 등 공공기관들의 소통능력인 듯하다. 보통 예산을 주는 관공서가 굉장히 강력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관공서가 사실상 주최를 하고 주관만 민간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보니, 관공서가 결정을 해버리고 취소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는 축제를 운영하는 사무국의 힘이다. 잠깐 모여서 행사를 치르고 해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많은데, 춘천마임축제는 17명이라는 상근조직이, 물론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겠지만, 어쨌든 유연하게 위기에 대체해서 프로그램의 방향을 기민하게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영규 : 시청이나 행정기관은 당연히 현장을 우리만큼 알 수 없다. 예산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결국 현장을 알고 있는 전문가라는 이들이 파트너가 돼 줘야 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결정 못하니까 판단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논의의 파트너가 돼 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축제를 10월에 하면 대행사는 7월이나 8월에 결정되는 구조인데, 올해처럼 어떤 이슈가 생겨 3월이나 4월부터 대내외에서 쪼기 시작하면 당장 판단해야 하는데 판단할 수 있는 현장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결국, 그런 판단을 내릴 시점에 관공서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현장의 대안을 함께 만들어 가는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다. 올해 가능했던 축제들은 대부분 상근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축제들이었다. 시청과 이런 관계가 되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병진 : 이렇게 축제의 계획이 변경되면, 예산문제로 그만큼 프로그램의 규모가 줄어들거나, 부가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하려고 했던 것들이 어그러지면 다시 기획해야 하니까. 올해 예산관련 문제는 없었나?


강영규 : 우리들은 스텝들이 몸 고생과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을 뿐이지 예산이 크게 바뀌거나 모자라지는 않았다.


유병진 : 올해처럼 축제의 형태를 바꾸는 결정은 사단법인 차원에서 결정하면 되나? 예산을 제공하는 시청에서 동의를 했어야 할 것 같다.


강영규 : 대안을 세었다. 지자체나 재단의 다양한 축제나 공연 관련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4월 이후부터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제안된 민간사업에 대한 차가운 반응이 느껴졌다. 코로나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한 형태로 축제나 공연을 하겠다면, 이 큰 예산 들여서 고작 200명을 위해 하느냐는 반응이 있다. 반면 다른 곳에서 2만 명이 모이는 행사를 하겠다 하면, 코로나 시국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반응들이 동시에 나온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들은 대안을 갖고 하는 말인지. 시민의 세금이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넘어,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그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100씬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사실은 100이라는 숫자를 얘기를 했던 게, 얼핏 생각해도 양적으로 밀리지 않고,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의미적으로 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경제 효과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이정도면 다른 프레임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후배들과 모든 공연에 대한 1안, 2안, 3안을 다 세웠다. 344회에 대한 1안, 2안, 3안을 다 세웠다. 2단계로 어떻게, 사전 접수로 전환, 사전 접수 빼고 10명에 대한 것만, 정 안 되겠으면 유투브로 전환, 유튜브로 전환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키트 발송, 이런 식으로 대안들을 세웠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춘천마임백씬로젝트의 성과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직후의 일이었다. 춘천 애막골에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사람들 통행이 없는 골목길 하나를 공원으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청의 공무원이 전혀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시 이틀 전에 가서 ‘오늘까지 승인 안 해주면 행사를 못한다, 마지막으로 왔다’고 하니까, 그가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번에 축제 잘 해가지고 국무총리상 받은 곳도 있던데 그렇게 하지 그러냐’ 하더라. 그 상 받은 단체가 우리라고 했더니 승인해 줬다. 정말 씁쓸하게 그렇게 하나하나 버티면서 끝냈다. 올해 축제와 일상사업은 이 344회에 다 녹인 거였다. 축제 예산이 다른 축제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에 그 예산만으로 344회 다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 안에 다 융합했고 행정적으로 축제 예산, 일상사업 예산을 분리했다.


유병진 : 축제가 시민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무대이기도 한데, 올해 축제에 초대되었거나 참가하기로 했던 예술가들이 그 과정에서 모두 함께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강영규 : 해외 팀말고 국내 팀은 결과적으로 다 참여 했다. 아무래도 도깨비난장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은 쇼 형식도 있다 보니 규모가 큰 공연도 있었다. 100개로 쪼갰을 때, 작은 일상 공간에 들어가기에 안 맞는 공연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예술불꽃 화랑이나 악단광칠이 도저히 작은 크기가 안 나왔다. 우리가 찾은 공간 중에 두미르아파트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화랑의 불 공연으로 개막 공연을 했다. 이탈리아의 베란다 공연처럼 두미르 아파트 주민들을 향해서 이사짐 사다리 차량을 애용해서 하늘로 베란다 앞으로 올라가 바이올린 공연과 버블 공연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좋아하더라.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로맨틱한 풍경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세레나데를 넣어서 빨간장미 세레나데라고 붙였다. 그 아파트 앞 잔디광장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에어리어 공연이 진행됐다. 악단광칠의 공연은 도깨비난장처럼 마지막 폐막으로 400명 정도의 관객과 함께 진행되었다.

마임프린지라는 새로운 광대들의 등용문인 프로그램이 있다. 344회 중에서 이 마임프린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돌발 상황이 생겨, 여러 차례 공연 일정이 미루어졌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공연팀에게는 개런티를 주는 것도 아닌데 계속 일정이 미뤄져서 너무 미안했다. 8월에 취소할 때가 세 번째 일정 변경이었다. 8월에 광화문 태극기 집회 발 확진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9월에 프로그램을 예정만큼 많이 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거나, 일부는 10월에 몰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우리 스텝들의 업무도 과부하 되었다. 스텝들에게 세 번까지 취소한 상황에서 할 만큼 했다 마임프린지는 취소해야겠다 했더니 기금 사업인데 안 쓰고 반납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공연자들 위해서 해야 된다고 했다. 정말 후배들이 고마웠다. 프린지 공연이지만 소정의 개티를 지급했다. 끝까지 모든 예산을 다 썼다.


4. 코로나 긴급지원 사업


유병진 : 코로나19 관련 긴급지원 사업이 많았다. 춘천마임축제도 긴급지원 사업에 참여했나.


강영규 : 사무국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진정될 기미가 없고, 이 상황이 내년까지 계속될 것 같은데 이대로 가면 예술계에서 몇 퍼센트나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무너지는 것 아닌가, 딴 일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고 되게 무기력해졌다. 예술가들에게 힘이 될 만한 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 춘천문화재단에서 문화도시 추진 차원에서 춘천 중도라는 섬에서 축제를 기획해 보자고 했던게 생각이 났다. 중도에서 판타스틱한 축제를 해보자 설계를 해놓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된 상황이었던 때다. 춘천문화재단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지금 상황이 아티스트와 현장 인력에게 너무 절망적이다. 어떡하든 사업을 해서 아티스트에게 공연료를 지급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멈춰있던 중도 행사를 추진했다. 중도에 레고랜드가 들어오면서 80%정도의 땅은 공사로 파헤쳐놓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20%는 아직 자연 그대로 보존된 지역이다. 보존된 지역으로 가려면, 파헤쳐진 곳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이곳을 지날 때 사람들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숲에서 정령들이 튀어나오는 이런 축제를 해보면 어떨까. 춘천에서 11명의 아티스트가 각자 중도의 장소를 골라서 짧은 공연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하여 짧은 영상을 모집하는 전국 공모를 띄웠다.


유병진 : 전국 공모를 띄운다는 것은?


강영규 :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아티스트의 작품을 공모한다는 발신이었다. 3분 정도의 영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작품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공모였다. 당신의 방이든 공원이든 창문이든, 외로움이든 우울함이든 일상적인 몸부림이든, 어떤 내용이건 상관없으니 보내 달라. 100여 편의 영상을 선정하여 50개 모니터에 영상을 담아 중도에 설치하고, 춘천의 몸 움직임 아티스트 11명이 이 영상 철치물들 사이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프로젝트 이름을 ‘스위치온’이라 지었다. 아픔의 몸짓을 하고 숲으로 들어가면 숲이 따뜻하게 빛을 발산하면서 품어주는, 숲으로 관객들이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 50개 모니터와 11명의 예술가들이 공연하는 그런 식의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유병진 : 그럼 별도의 긴급지원은 받지 않은 것인가? 올해 역량강화나 언택트 공연 같은 긴급지원 사업들이 많았는데.


강영규 : 긴급지원 공모사업에 좀 불만이 있다. 예술가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시행됐으면 좋겠다. 진짜 영세민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복지제도를 확실히 만들던가 해야 하지 않나. 이름은 긴급지원이라고 하고, 심사해서 떨어뜨리고, 차등지원 하고. 어쨌든 내 생각에는 아티스트는 작품으로 지원했으면 좋겠다. 대신 지원 조건은 확 넓히고. ‘스위치온’에서 우리는 100개의 작품을 선정할 때 기준은 신작이어야 한다는 하나의 조건만 달았다.


5. 코로나 이후 전망


유병진 : 마지막 질문은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내년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아직 코로나 시대가 끝난 건 아니지 않나? 또한 코로나시대19가 끝나도,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세상과 그전의 세상이 다른 것처럼,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바뀔텐데, 앞으로의 춘천마임축제와 예술계는 어떨 것 같나?


강영규 : 올해는 플랜B, 플랜C가 ‘1미터와 2미터 사이가 어디인가’였거나 ‘100씬 프로젝트’ 같은 일상 축제였고 플랜A가 기존의 난장 형태의 축제지만, 내년에는 순서가 바뀔 것 같다. A가 일상축제가 될 것이고, B, C가 난장 축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난장형 축제로 돌아가는 날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단 내년에는 시즌형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이라는 시처럼 봄도 마임이고 여름도 마임이고 가을도 마임이다. 시즌형 축제를 기획하면서 과제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이분법적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융합된 모델이 필요하다. 오프라인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온라인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오프라인에서 하는 하이브리드형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온라인이 가상의 세계라고 하는데, 예술은 사실 그 자체가 가상의 세계이지 않는가.

공연을 단순히 영상화 하거나 온라인화 하는 것 말고, 실재하는 것을 가상의 세계에 직접 만들어 보는 것, 미디어와 플레이어가 같이 콜라보하고, 공간 자체를 가상의 세계로 꾸미고, 공간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러면서 조금씩 형상화되는 작업을 상상해 본다. 너무 일방향적인 온라인화는 아닌 것 같다. 송승환 연출이 얘기했던 것처럼 회를 통조림에 넣어서 팔수는 없지 않는가? 순수예술이 대면을 포기한 순간, 모든 예술이 산업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대중적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면 그중에서도 예산이 정말 많이 들어가거나 기괴했거나 이런 것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어쨌거나 대면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가상의 세계와 제3의 세계를 만들어 내자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100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온라인에서 ‘100씬’이라는 것을 진행해보면 어떻겠나. 100일 동안 3분짜리 씬들을 계속 유튜브에 올리는 거다. 예전에도 온라인이나 영상을 활용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만 여력이 없어 못했는데, 올해 이렇게 많이 이야기 되고 있으니 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지 않겠나.

올해 축제를 전환하는 데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축제를 취소하자마자 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이 “춘천마임축제는 춘천의 산이고 강이고 하늘이고 어디든 달려가 일상의 공간들을 무대로 전환하는 춘천마임축제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올해는 비록 무언의 함성을 들을 수 없지만 그 무언의 함성이 오히려 더 큰 마임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글을 써 줬다. ‘어디로든 달려가’라는 말이 주문처럼 들렸다. 폼잡지 말고 어디든 달려가, 이런 것처럼 들렸다. 그게 되게 필요할 것 같다. 그동안 의도치 않게 축제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이 많이 있다. 축제를 보기 싫어서 오지 않는 이들은 어쩔 수 없는 거고, 보고는 싶은데 접근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장애라든지, 병환이라든지 이런 걸로 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고민들을 계속 가져가야겠다.

한림대 총장님이 우리 법인의 이사장이다. 이분이 “코로나 상황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들밖에 없다. 당신들 같은 현장 전문가들이 대안을 만들어야지 누가 만들겠나. 공무원들 못 만든다. 만들어라” 했다. 하지마라가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다. 그분은 또 언택트는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택트시대가 아니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규정했다. 미래는 분명히 2020년과 2021년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은 수업을 잃어버리고, 직장인들은 직장을 잃고, 소상공인들은 가게를 잃었다. 예술가들은 무대를 잃었고. 잃어버린 시대라고 기억할 것인데, 이것을 회복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술은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있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대면무대를 잃어버렸다. 예술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명확하다. 그럼으로써 시민들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시대 예술의 가치, 덕목,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너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라서 실제로 사람들에게 피부로 잘 안 와 닿는 것 같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찾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골목은 사라지고 전부 아파트로 변하고 있다. 춘천은 골목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뭔가 그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남아 골목에서 계속 플레이해보는 것도 중요하겠다. 아티스트들이 춘천의 동네에서 2, 3일 정도 머물면서 공간을 탐색해서 작업하는 공간특정형 레지던시 같은 것을 많이 해보고 싶다.

춘천 같은 소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는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예술가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 많지만, 10년 정도 하게 되면 계속 지원을 받기 어렵고, 신선하지 않다고도 하고, 더이상 불러주지 않는다.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로 가는 상황이 된다. 더구나 춘천에는 아티스트들이 타도시에 비해 많은 편이다. 창작자들을 조금씩이라도 지원하고, 중도 같은 곳에 작업실을 만들어 머물며 작업하게 한다면, 춘천마임축제는 그들과 결합해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이러면 도시의 예술 수준이 정말 달라질 수 있다.


유병진 : 마임축제에 오는 예술가들 중 강원권의 예술가들은 얼마나 되는가?


강영규 : 올해 작업했던 시각작가들은 다 지역작가들이고 퍼포밍 아티스트들은 한 20명 안쪽이다. 마임하는 광대들이 춘천으로 안 내려온다. 경기도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 중의 핵심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공간을 제공하고 지원하다면, 이들이 내려오고 이들을 좋아하는 광대 후배들이 모일 것이다. 시너지가 크다고 설득을 많이 하고 있다. 시청도 조금씩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병진 : 지역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강영규 : 예전에는 축제를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도시에 중심 축제 하나 정해놓고 거기에 20~ 30억씩 투자하고 단기간에 결과 뽑고, 이런 게 효율적인 도시 마케팅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 상황을 통해 그런 방식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매머드급으로 만들어놓은 축제나 예술은 그 규모를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일상적으로 인프라를 키우지 않으면 어렵다.


유병진 : 그러면 예술가들도 일상으로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커뮤니티를 자기 작업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강영규 : 100개 공모를 했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영상 중 하나가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창렬 씨가 공원에서 자기 딸과 춤을 추는 것이었다. 딸이 아빠 공연을 많이 봐서 할 줄 알더라. 같이 춤을 추는 것으로 3분을 만들었다. 너무 예뻤다. 저게 코로나19를 이겨나가는 예술가들의 방식의 단면일 수도 있겠다. 그런 작업들이 많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 춘천마임축제 인터뷰 워드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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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1997년 극단 우금치의 배우와 기획실장으로 예술에 입문하였고, 2008년 춘천마임축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후 2009년부터 12년까지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2013년과 14년은 춘천을 떠나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 PD, 하이서울페스티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2015년 다시 춘천마임축제로 돌아와 사무국장으로 일했으며, 2019년에 총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올해 2020년 축제가 총감독으로서의 첫 축제였다.

유병진
독립 프로듀서, 연구자, 공연예술 관련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를 시작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프로젝트 프로듀서로 일했다. 현재는 프로젝트 궁리 협력연구원이자, 코끼리들이 웃는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