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
'흔들리는 카메라'
1996년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로 데뷔한 이래 올해에만 <마지막 풍경>, <흔들리는 카메라>, <모호한 욕망의 대상>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응수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독립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공개된 영화들은 제작 지원·투자를 받지 않고 완성되었고, 극장 개봉 대신 영화제 상영 후 VOD, IPTV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작품들을 공개해온 감독은 올해부터는 신작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들어서 메일을 통해 신청을 받으면 해당 영화 파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영화를 직접 배급하고 있다.
제작 지원을 받지 않고 개인 자본과 소규모 인력으로 작업을 이어온 터라 코로나19에 별다른 변화나 피해가 없었다고 인터뷰 내내 수도 없이 강조했던 감독이지만, 피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응수 감독의 영화는 극장 개봉은 하지 않아도, 서울아트시네마 등 독립·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기획전 형태로 상영이 이루어졌는데, 올해는 극장 상영과 영화를 보러 해당 상영회를 찾은 관객 수가 예년에 비해 줄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급감하고 개봉을 준비했던 영화들이 대거 상영을 미루고 문을 닫는 극장도 발생할 정도로 영화산업과 극장가가 급격히 위축되긴 했지만, 독립·예술영화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상영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코로나19와 함께 급부상한 넷플릭스·왓챠 등과 같은 OTT, VOD 서비스가 기존 영화 상영의 대안이 된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도 사람들은 이미 넷플릭스, IPTV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있었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거나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독립·예술 영화는 후순위로 밀리거나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운 좋게 극장, 온라인 플랫폼의 선택을 받는다고 해도 정당한 수익 정산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단적인 예로 지난 8월 영화수입사배급협회가 왓챠·티빙·웨이브의 저작권료 배분과 정산의 불공정한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OTT에 협회 소속회사 영화 콘텐츠 중단을 결정한 바 있다. 일찍이 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공개해온 김응수 감독이 자체 배급을 구상·진행한 것 또한 기존 배급 체제 하에서 자신의 영화가 제대로 소개, 상영되지 못했고,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김응수 감독만의 독자적인 배급 방식은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지켜보고 관심을 가졌던 기존 관객층 외에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는데 있어 절대 유효한 방식이 되지 못한다. 감독이 이러한 배급 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응수 감독은 데뷔 이래 수십 년 가까이 그만의 독특한 영상 미학과 작품 세계로 평단과 예술영화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온 예술가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배급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이제 막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신인 감독이 이러한 배급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싶다.
예술인들의 고질적인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예술인 활동 증명의 어려움 또한 김응수 감독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술인들은 타 직업군과 달리 자신의 활동과 예술 활동을 통한 소득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 별다른 소득이 없음에도 재산(집, 자동차)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 사업에서 배제당하는 등 코로나19로 예술 활동 축소 및 수입 감소 등 피해를 입었음에도 소득 감소를 증명할 수 없어 각종 코로나19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례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대다수 예술인들의 현실을 깊게 고민하게 한다.
김응수 감독의 주장처럼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 간에 각자의 현실, 성향에 맞는 작업을 진행하고 발표하는 것이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최선의 생존법이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도 피력한 것처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드는 시각 예술이자, 대중 매체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도 대부분의 독립·예술영화는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갖지 못했고, 그나마 드문드문 있었던 상영 기회마저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위축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획전 형태의 독립·예술영화 상영은 조금 늘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팬데믹 이후 관객들이 예전처럼 극장을 찾지 않는 현실에서 독립·예술영화가 좀 더 잠재적인 관객층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보다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술인 성향을 고려한 활동 증명 간소화 및 현실적인 창작 지원, 복지 지원이 확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시대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예술가들이 다들 지치지 말고,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면 한다.
김응수는 50대 중반의 영화감독이다(남성). 1991년부터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한 감독은 1996년 데뷔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이후, <욕망>, <천상고원>, <과거는 낯선 나라다>, <물의 기원>, <아버지 없는 삶>, <물속의 도시>, <옥주기행>, <우경>, <초현실>, <오,사랑>, <스크린 너머로>, <모호한 욕망의 대상> 등 독특한 영상 미학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업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2020년부터는 온라인 자체 배급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권진경 : 96년 데뷔 이래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제작하신다.
김응수 : 다큐멘터리 외에도 극영화 또는 비디오아트, 에세이필름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권진경 : 영화 작업 외에 또 다른 활동 분야가 있으신지?
김응수 : 없다. 오직 영화만 작업한다.
1. 영화 제작·배급
권진경 : 코로나19 이후 창작·상영 활동에 있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응수 : 코로나19로 달라졌다기보다는, 지금까지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영화를 공개해왔는데, 몇 년 전부터 내가 개인적으로 배급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만든 방식이 있다. 영화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들어서 해당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메일을 보내면 편당 만원 이상 받고 영화를 보내는 구조인데, 내가 다른 영화처럼 대량으로 유통시키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들에게 직접 영화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메일링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그게 우연히도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코로나 때문에 극장개봉을 안하니까 영화를 온라인으로 배급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불합리한 영화 배급 구조에서 발생하는 터무니없는 비용 때문에 몇 년 전부터 구상했던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거나 활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면 확실히 극장 상영이 좀 줄었다. 극장 상영 대신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고, 극장 상영을 해도 사람들이 예전처럼 오지도 않는다. 내가 온라인으로 독자적으로 배급하는 구조랑 상관없이 코로나 때문에 영화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권진경 : 코로나19 이후 진행했던 예술 활동이 무엇인가?
김응수 : 코로나 이후에도 나는 예전처럼 별반 다를 바 없이 영화를 계속 찍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영화가 큰 제작사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아가지고 여러 스태프를 모아서 단체로 움직여야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분히 개인적인 작업이고 필요한 경우에 소수의 인원이 각 단계별로 함께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어도 극장 상영 때 사람이 오지 않고 그 상영기회마저 축소되니까 고민은 많이 된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건데, 그런 점에서 확실히 위축되었다.
권진경 : 그러니까 감독님은 코로나19 이후 창작활동 자체에 변동이 있다기보다는, 상영 축소, 극장가 위축에서 오는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다는 말인가?
김응수 : 그렇다. 내가 대규모 제작사가 아니니까 만드는 거는 코로나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유통, 상영 문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봉착해있는 것 같다. 영화제를 하는 사람도, 극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어렵다고 하는데 왜나면 일단 영화 상영 자체가 수익이 나지 않고 정부에서 보조를 받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으로 현상 유지만 시켜주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온라인 상영이 대안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이미 대규모 자본이 온라인 시장을 다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고민이 크다.
2. 코로나19에 대해
권진경 : 감독님은 코로나19로 인한 변화가 예술가로서 더 크게 느껴지시는가 아니면 시민으로서 더 크게 느껴지시는가?
김응수 : 예술가로서는 난 별반 차이가 없다. 상영회 때 관객수에 따라 상영료를 더 받고 덜 받는 것도 아니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공개했을 때랑, 자체 배급으로 버는 수익도 별 차이가 없고, 늘 하던 대로 영화를 만드니까 그걸 잘 체감을 못하겠는데, 주변 동료들이 다 위축되어 있는 것 같으니까 나도 덩달아서 같이 위축되는 것 같다. 예술가보다는 시민으로서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지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서울에서 충주 작업실로 놀러오는 사람도 있었고, 일적으로 서울로 올라갔을 때 겸사겸사 사람들도 만났는데, 이제는 그런 활동이 다 없어지니까 느끼는 고립감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만날 즐거운 일만은 아니고, 동료 혹은 주변인으로부터 받은 위안, 동질감 같은 것이 다 없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영화 제작, 상영 외에 영화제(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심사를 두 건 진행을 했는데, 두 영화제 모두 온라인으로만 영화를 보고 심사를 해야하니까 기존 오프라인 상영 때보다 두 배 더 힘들게 느껴졌다. 특히 심사위원들 간에 비대면으로 합평할 때 언어·기술적인 문제로 의견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서로 만나서 얼굴보고 이야기하면 두 시간 만에 끝날 이야기가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것 같아 더 어려웠다. 비대면 소통방식이 마냥 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권진경 : 올해 오랜만에 단편영화를 영화제에 몇 군데 상영을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상영 소식을 알리는 자체가 민폐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는 독립·예술영화 상영기회가 더 많이 줄어들 것이고 극장은 위기 상황이고, 0TT가 과연 영화 상영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일단 감독님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코로나19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람 간의 접촉이 필요한 커뮤니티 네트워크 활동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코로나 때문에 상영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경우는 있었나?
김응수 :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고 연기된 것은 없지만, 아예 기획, 진행 자체가 되지 않았던 상영회는 꽤 있었던 것 같다. 작년만 해도 상영회 때문에 많이 바빴는데, 확실히 예년에 비해서 상영회가 많이 줄긴 했다.
권진경 : 예술활동 하면서 코로나19를 가장 심각하게 느낀 때는 언제였는가?
김응수 :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데 사람이 없다.
권진경 : 왜 심각하게 느껴졌나? 더 이상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러오지 않는다 그런 건가?
김응수 : 내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다 보다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안 보게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위기감이 컸다.
권진경 : 예전에 비해 극장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기도 했고, 주변만 봐도 극장이 사라질 수 있겠다하는 위기를 느끼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 일상생활에서의 심각성은 느꼈나?
김응수 : 코로나19로 사람들을 덜 만나고, 추석 명절에도 가족, 친지끼리 모이지 않고, 공개된 장소에서 밥 먹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꺼려지게 되고
권진경 : 그래서 감염에 대한 공포가 더 컸나? 활동중단에 대한 공포가 컸나? 예를 들어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안 보고 나도 영화일을 더 이상 못할 것이다 같은?
김응수 : 감염에 대한 공포는 있지만, 활동중단에 대한 공포는 별로 없었던 게 나는 어떤 구조에 얽매어 있거나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가진 건 없어도 자유롭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 방식이나 유통 시스템도 그렇고, 어디에 종속되어 가지고 저들이 나를 써주지 않으면 활동을 못한다 그런 건 없다. 나는 예전부터 나 혼자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활동중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한 번도 예술 창작 활동에 대한 정부지원을 받은 적도 없다.
권진경 : 감독님이 좀 많이 특이한 케이스이긴 하다.
김응수 : 그렇다. 그래서 코로나와 관련해서 내가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
권진경 : 피해를 받은 게 없으면 없는 대로 다양한 사례가 있으니까. 그런데 감독님은 메일링을 통해 영화를 직접적으로 배급한다고 해도 극장에 사람이 오지 않으면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김응수 : 당연히 문제다. 극장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나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나와 연결되어있는 상영 시스템하고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걱정과 불안이 있다. 그 쪽이 망하면 나도 안 되는 거니까.
권진경 : 코로나19로 감독님의 활동에 가장 영향을 미친 변화가 있다면? 일단 수입면에서는?
김응수 : 수입 면에서도 나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왜나면 내가 누구한테 월급을 받거나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고 독립적으로 작업해왔기 때문에 큰 지장은 없다. 다만 작년에 비해 상영 횟수가 반토막이 나서 상영료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긴 했다.
권진경 : 코로나19로 작품 경향이 바뀌었나?
김응수 : 코로나라는 이 상황을 어떻게 영화로 반영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미 반영이 되고 있고, 내년쯤 공개되는 영화들은 이런 고민들이 많이 반영이 되어서 나올 거다.
권진경 : 활동방식에 대한 변화도 딱히 없을 것 같고, 인간관계가 좀 문제겠다.
김응수 : 인간관계도 이렇게 비대면으로 사니까 그냥 또 살게 되더라.(웃음)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나. 그렇다고 서로 모이자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서로 민폐니까.
권진경 : 코로나19 이후 감독님의 작업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어떤가?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상영이 취소되고 축소되니까 앞으로도 영화 일을 계속 할 수 있느냐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김응수 : 나는 늘 하던 대로 작업하고 있고, 주변인들도 이에 대해서 별 말 하지 않는다.
권진경 : 코로나19 이후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변화 혹은 본인의 활동과 연관된 변화가 있다면?
김응수 : 내가 특별히 이 지역 사람들과 뭔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작업만 하다 보니 잘 모르겠다.
3. 예술인 지원, 복지 제도
권진경 : 그런데 창작활동이라는게 원래 다 같이 모여서 하는 일들이 많다보니까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유독 큰 것 같다. 그럼 감독님은 예술인 지원 정책 신청한 적이 있나?
김응수 : 예술인 지원 정책 어디서 소식을 들어서 찾아봤는데 너무 복잡하더라. 내가 지원 대상에 해당되는지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예술 활동을 증명해야하는지도 힘들고.
권진경 : 특히 예술인이 활동 증명하기가 애매하다. 나는 작년부터 예술인 복지재단 활동 증명 받고 올해 창작지원금도 받았는데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김응수 : 예술인 복지재단 창작지원금은 나도 알아봤는데, 재산이 많아서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는 지금 집도 임대고 내 명의로 된 재산도 거의 없고, 기껏 오래된 차 한 대 가지고 있는데 재산이 많아서 못 받는다고 하니, 한국의 예술가들이 이렇게 가난한 건가?
권진경 : 나는 차가 없다(웃음) 대신에 원고 집필료, 영화 상영회 진행으로 받은 수입이 소득으로 잡혀서 프리랜서 자격으로 긴급고용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었다. 감독님 말씀대로 대다수 지원 정책은 소득 혹은 활동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위기 이후 자신의 생활과 창작활동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
김응수 : 지원 받은 적이 없어 모르겠다. 나는 내 힘으로 계속 살았고 국가가 예술 활동에 대해서 지원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국가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그 구조 속에서 일을 하게끔 만드는 건데 극장, 배급 종사자는 그게 가능해도 창작자는 그 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본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처럼 국가에서 특정 예술인을 공인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면 모를까 지금 이 시스템 안에서 창작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설문지 질문 내용도 그렇고, 코로나 위기 시대에 예술가들이 어떻게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지원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은데 나는 애초 지원을 받은 적이 없기에 잘 모르겠다.
4. 코로나19 이후 예술 활동
권진경 : 감독님은 예술 활동에서 팬데믹 이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응수 :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비대면과 온라인 위주로 가지 않을까. 사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온라인 시스템 체제로 변한 것 같지만, 이미 구글 같은 IT 회사에서 비대면이 가능하게끔 기술적인 혁신을 이뤄놓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바꿔나가는 거 아닌가. 코로나가 비대면 시스템을 활성화시킨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이 비대면으로 간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권진경 : 영화만 해도 코로나19 이전에도 넷플렉스와 같은 OTT가 인기를 끌고 있었고 IPTV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다만 코로나 이후로 극장을 가는 빈도가 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장 상영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팬데믹 이후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김응수 :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게 코로나로 어떻게 되던 나는 내 방식대로 가는 거니까. 나는 누구한테 종속되거나 목을 매 달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안 해주면 내가 죽습니다’ 식으로 살아 본 적이 없다.(웃음) 인터뷰이를 잘못 만난 것 같다.
권진경 : 감독님 같은 사례도 나름대로 필요하다. 감독님 말씀대로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 그런데 지금은 저도 감독님처럼 제작 지원 받지 않고 혼자 작업하고 있지만, 이런 작업 방식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극영화도 찍고 싶고 아주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상업영화도 해보고 싶고. 다른 대부분 감독들도 비슷한 생각일거고.
김응수 : 나는 영화를 통해 부와 명성을 누리겠다는 욕심이 별로 없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즐기면서 하는 것뿐이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독립적 시스템도 다 갖췄고. 그래서 별로 아쉬울 것도 없고 국가에 바라는 것도 없고 내가 영화 만들어서 직접 팔아서 그냥 자체적으로 계속 재생산해 나가면 되는 거지.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대학원생이 자기가 쓴 논문이라고 메일을 보내줬는데 내가 지금 하는 자체 배급 방식을 코로나를 예견하고 한 것처럼 보더라.(웃음)
권진경 :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다. 허나 아는 사람들은 감독님이 지금 방식으로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는데 다만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뿐이다.
김응수 : 오히려 나는 내년부터 나오는 영화에 반영되는 화두가 뭐냐면 코로나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떨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코로나 이전에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었다’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바이다. 이미 비대면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었고, 비대면 기술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코로나 이전의 삶 어쩌고 하면서 마치 옛날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면서 살았던 것처럼 이야기 하던데, 우리는 이미 5~10년 전부터 비대면으로 살고 있었다. 단지 코로나가 예전부터 이미 살았던 비대면 시스템을 합리화시켜줄 뿐이다. “아 어차피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봐” 하고. 그래서 나는 백신이 나온다 해도 절대로 옛날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권진경 : OTT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극장에서 관객들이 함께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화 산업의 가장 주된 구조였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극장이 문을 닫는 현실이다. 앞으로는 이런 걸 다 염두에 두고 제작 및 배급을 해야 하는 터라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김응수 : 코로나가 우리의 생활에 큰 타격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우리는 이미 온라인, 비대면 삶에 천천히 익숙해져왔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지금과 비슷한 기조대로 살 것이다.
권진경 : 극장을 기반으로 영화보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김응수 : ‘극장을 기반으로 영화보기가 힘들 것이다’라고 단언하기보다는 이미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영화 보는데 익숙해져있고,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해’ 식으로 목숨 걸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권진경 : 물론 성수기나 명절에만 극장에 가는 관객들이 대다수겠지만, 극장에 가는 그 자체가 취미이고 일상인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김응수 :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현실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질 거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한테는 별 차이 없는 것이 극장에서 영화보는 거랑, 집에서 큰 티비 놓고 영화 보는 거랑 뭔 차이가 있는가?
권진경 : 아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다. 스크린, 사운드 몰입감 부터가 다르다. 제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감독님 영화 같은 걸 극장에서 몰입해서 봐야지 하는 문제인데...
김응수 : 나도 내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은데 여건이 뒷받침 되지 않는데 어떡하나.
권진경 : 그러니까 코로나19로 영화 제작 방식이나 환경이 달라진다기보다는 관객의 변화가 가장 큰 것 같다. 예를 들면 저나 주변 영화인들 대다수가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느냐. 이런 사람들은 영화를 넷플릭스로 보긴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는 극장에서 꼭 봐야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코로나 이후로 그런 기회가 제한되고 축소되니까. 감독님이 최근에 발표한 <스크린 너머로>는 서울의 극장에서 볼 기회가 서울아트시네마 상영밖에 없었다.
김응수 : 그렇다. 서울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만 잠깐 상영했었다.
권진경 : 감독님 영화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상영을 놓치면 극장에서 볼 기회가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코로나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극장에 가던 사람들이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이는 등 관객 수가 줄어드니까 극장 운영하는 사람들도 힘들고 상영 기회 축소 박탈은 고스란히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는 관객이 보라고 만드는 건데 이러한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김응수 : 그런데 항상 우리가 최상의 어떤 상태를 자꾸 기준으로 두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뭔가를 아쉬워하고 막 그러는데 그런 영화로운 시대나 그런 것들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그리움이나 그런 거로 남아있는 거지 그게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딱딱 맞춰가지고 그렇게 영화로운 시대는 잘 오지 않는다. 그냥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누구는 뭐 그냥 뭐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미 시간은 저 앞질러서 가버렸는데 자꾸 옛날 얘기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권진경 : 그렇다면 비대면 예술활동의 긍정적 미래는 무엇인가?
김응수 : 비대면의 미래도 자본에 종속되어 있으니까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미래도 없는 것 같고, 다만 그 상황에 완전하게 종속되지 않고 자기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방법을 찾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권진경 : 코로나19에 관련된 질문과 별개로 감독님은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
김응수 : 나는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못 사는 사람 같다. 이불 뒤집어쓰면 스크린이 보이고, 영화를 만들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잠에 들어도 마무리 지을 시간에 맞춰서 저절로 일어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만 작업했는데 이제는 모든 신체 리듬이 영화 만드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해야 할까. 영화를 몸으로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해야지 머리로 계산하고 억지로 의도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권진경 : 이번 인터뷰의 결론은 어떻게 낼 수 있을까?
김응수 : 어떤 현실이던 각자의 상황에 맞는 돌파구를 자기가 찾아간다는 것 같다.
▲ 김응수 인터뷰 워드 크라우드
권진경 (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오마이뉴스>, <미디어스>, [독립영화] 등에 영화 칼럼을 게재하고 ‘인문상상시네마’, ‘스크린에 펼쳐진 문학, 비평으로 다시 쓰다’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2020년에는 에세이 영화 <남산(타워)>를 발표했고, 한국 현대사와 여성에 대한 영상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