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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기록

혜화동1번지

'여기, 사람이 있다'

  • 인터뷰이 김기일(혜화동1번지 7기동인, 혜화동1번지 극장장)
  • 인터뷰어 송김경화(낭만유랑단 대표, 연극연출가/극작가/배우)
  • 2020년 11월 10일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여기, 사람이 있다

코로나19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공연예술이 마치 제거 1순위의 대상처럼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매일 출퇴근 시간의 콩나물 같은 지하철 안에서,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마스크 벗고 수다 떠는 까페에서, 나는 늘 모순을 느꼈다. 대체 왜 극장은, 공연은 멈춰야 할까. 우리는 위험한가. 정말 위험한가. 왜 우리의 노동현장은 이렇게 쉽게 멈춰지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연과 극장에서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이 상황에 공연을 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들 사이에서 공공극장이 모두 극장을 닫고 있는 와중에, 여기, 공연을 하고있는 극장이, 멈추지 않는 극장이 있다. 그들은 공연 여부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창작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대화가 되기 위해 나누려고 노력했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보다 더 선제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물품을 구비하고, 연습현장과 공연현장을 점검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공연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무 자르듯이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선언하듯이 말이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동인제로 운영된다. 극장 자체 기획프로그램이 주요하다. 올해도 세월호 기획 공연은 4월 한 달 간 4개의 극장에서 동시에 공연이 올라갈 예정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1-2월에는 이미 프러덕션 기획이 완료되었고, 공연 연습에 들어가야 할 시기였다. 올리기만 하면 되는 공연들도 취소되는 와중에 공연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운영 주체와 창작자들의 부담감.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어떠한 선택이든 해야만 했고, 그 책임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었다. 당사자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그 무게를 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민간에서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비해야 했다. 실제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인터뷰에서 언급되지 못한 세세한 일들-예를 들어 사람들이 쉽게 만지는 공간을 수시로 소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언젠가 당사자들의 글로 어딘가에 기록될 수 있길 바래본다.



혜화동1번지가 먼저 매를 맞았지만, 이후 공연 일정 순서대로 극장마다 소위 ‘현타’가 왔다고 한다. 챙겨야 할 일도 준비해야 할 일도 많았다. 모든 것이 사람의 눈과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이니 대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에 먼저 고민한 동료들이 있었고, 동료들은 기꺼이 매뉴얼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열어줬다. 그렇게 계속 방법을 찾고, 방법을 나누고, 방법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민간극장은 대관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게 되었다. 올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보류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극장에서는 계속 공연이 올라갔다. 공연 중 창작자 혹은 관객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공연이 전면 취소된 사례는 1-2건에 불과할 정도로 민간극장은 창작자와 관객의 안전수칙과 방역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점은 우리 스스로 격려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 이후의 연극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지금의 흐름에서 공연성이란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는 김기일의 말은 다수의 공연예술인들이 마주한 질문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근원적 질문과는 다르게 비대면 온라인 영상을 제작/지원하는 사업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코로나는 우리 안의 모순을 계속해서 마주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 사유하기 이전에 온라인으로 공연성을 어떻게 확보하며 창작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일이 과제처럼 주어졌다. 거기 공연예술이라는 장르를 선택하며 종사해 온 사람들의 신념이나 가치는 삭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연극하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계속할 수 있는 것인가.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코로나 시대의 극장은 플랫폼으로서 여전히 유효한가. 온라인 컨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나. 그렇다면 극장은 이제 사라지는 것이 숙명인가. 차라리 뉴노멀에서 연극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옳지 않나. (올드노멀에서도 이미 연극은 심폐소생술 수준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연극을 만들어내고 있던 7기 동인과 동료 창작자들에게 내내 고마웠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이 계속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괜찮다고,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위로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의 시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일이 한 순간에 지워지는 경험으로부터 조금 해방될 수 있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와 극장장 김기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11개월간 내내 품었던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공연예술계의 미래에 대한 답을 구하는 시간보다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1995년에 개관한 가변형 민간소극장으로 연출가 동인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019년부터는 혜화동1번지 7기 동인(김기일, 송정안, 신재, 윤혜숙, 임성현)이 공동운영하고 있다. 동인들의 축제/기획공연을 우선하며, 그 외에는 심사 없는 선착순 대관 공연으로 극장이 채워진다. 2-30대의 젊은 창작자들, 동인들과 함께 동시대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창작자들이 극장을 이용하고 있다. 객석은 최대 80석까지 가능하다.



송김경화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 대해 소개해달라.


김기일 : 혜화동1번지 7기 동인이 운영한지는 만 2년이 되어가고 있다. 7기 동인 다섯 명이 다 같이 의논해서 결정하고 극장 관리/실무는 극장장인 내가 주로 맡아서 하고 있다.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기획공연이 1년에 두 차례 있다. 세월호 기획공연과 특정 주제나 키워드로 동인페스티벌이다. 신진,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혜화동LAB을 올해 한 회 했다. 3회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한 회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송김경화 : 이 공간을 주로 이용하시는 이들은 어떤 층인가.


김기일 : 7기 동인이 기획공연 하고 있기 때문에 각 동인들의 팀이이다. 그리고. 혜화동1번지 대관료가 저렴한 편이라 시작하는 팀들이 많이 이용한다. 20~30대가 많다. 대관 팀마다 다르겠지만 주 관객층은 동인 기획 공연은 연극인 관객이 많다. 오랫동안 연극을 보아왔거나 연극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이 주로 찾는 것 같다.


송김경화 : 자체기획프로그램이랑 대관프로그램의 비중은?


김기일 : 4:6 정도 되는 것 같다. 동인 기획이 10주에서 12주, 두 차례 있고 극장 점검기간 빼고 나머지는 다 대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관은 90%는 찬다.


송김경화 : 연간 운영 일수는?


김기일 : 갑작스런 대관 취소로 인해 비는 기간 빼고 한 320일 정도 운영한다.


1. 방역 매뉴얼 만들기


송김경화 : 2020년 극장을 운영을 돌아보면?


김기일 : 변수가 너무 많았다. 선택해야 될 것들도 너무 많았다.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모든 걸 다 판단해야 했다. 그 책임을 누구도 쉽게 질 수 없는 상태에서 다양한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극장을 열어야 되나, 우리가 관객의 안전을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문을 여는 것이 맞나, 공공극장들이 문을 닫은 걸 보면서 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면 과연 우리의 선택은 옳은가? 이런 질문들이 올해 내내 계속 따라 다녔다.


송김경화 : 극장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프로그램도 공동으로 협업하는 작업이 많아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선택지도 다양해서 어려웠을 것 같다. 2월에 대구 집단 감염으로 위기가 크게 다가왔는데 당시 운영은 어땠나.


김기일 : 1월까지만 해도 대학로에서 공연들이 올랐다. 내 기억에 거리두기 없이 마스크 끼고 공연 봤다. 자체적으로 방역수칙을 만들고 공연을 계속했다. 이렇게 매뉴얼 만들고 지키면서 공연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구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이미 예정되어있던 대관이 취소되고 대관 신청도 끊겼다. 자연스럽게 운영 중단이 된 거다. 단체에서 대관 취소했을 때 계약금 다 돌려줬다. 안전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대관 팀에서 계약금 때문에 공연을 진행하면 안 되잖나.

당시 동인 기획 프로그램인 세월호 기획공연이 참여팀 섭외/극장 컨택이 끝난 상황이었다. 올해 세월호 기획공연은 네 곳의 극장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극장마다 공연 팀이 있었던 터라 여러 가지 합의하는 과정이 많았다. 우리 는 공연 여부에 대해 참여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기획공연이다 보니 엄청난 딜레마를 겪었던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에서 세월호 기획공연을 하는 것이 맞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이런 질문들.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원래 목표는 한 달 동안 여러 극장에서 동시에 공연이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극장과 팀 상황에 맞게 공연일정을 조정하며 진행되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극장 사용기간을 3개월로 늘리고 팀들이 원하는 기간에 공연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형창작극장이라는 지원을 받아서 임대료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안전관리위원회 같은 걸 만들었다. 극장 별로 한 명씩 담당자를 정해서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오는 자료를 참고하고 다른 극장/팀 매뉴얼을 참고해서 우리끼리 지킬 수 있는 방역수칙을 만들고, 각 팀에서 방역담당자를 지정하도록 했다. 체온계도 구해서 극장에 비치하도록 하고 팀내에서도 마스크 착용하는지 확인했다. 피디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에는 극장에서 마스크 쓰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걸 설득하고 매일매일 직접 나와서 체크했다. 기획단은 자체 방역수칙 만들어서 공유하고 지켜지는지 계속 확인했다. 새로운 지침이 나오면 방역수칙을 갱신하고, 공유하고, 실행하고.


송김경화 : 2~3월에 방역 수칙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나? 서울시 지침도 있었는데?


김기일 : 서울시 지침이 나왔을 땐 이미 우리는 방역수칙을 만들어 놨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2미터 거리두기를 해라 구상권 청구하겠다는 지침이 나왔다. 2미터 거리두기 재보니까 딱 8석 나온다. 그래서 문제제기를 했했다. 이 지침이 맞는 대안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차라리 공연을 하지말라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편할텐데 엄포만 놓았다.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게 하는 거다. 그 당시 좀 심적으로 되게 힘들었다. 공연하고 싶어 안달난 집단으로 프레임이 잡히는 거다. 이런 얘기해도 되는 건가?


송김경화 : 괜찮다.


김기일 : 서울시 지침에 대해 행정편의적 거리두기라고 트위터에서 문제제기를 했는데 조리돌림 당하는 것 같았다. 트위터에서 RT 당하는 거다. 연극하는 사람들 정신없냐, 막 이런 취급을 받았다. 그때가 올해 1차 멘탈붕괴였다. 발열체크, 마스크쓰기 등등은 서울시 지침 나오지 전에 이미 스스로 해왔다.


송김경화 : 관객들의 예매 등 반응은 어땠나?


김기일 : 최대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객석을 8석 오픈한 공연들도 세월호 기획에 있었고, 아무리 많이 해도 15석, 20석 정도였기 때문에 점유율로만 따지면 계속 매진이라서 관객이 많이 줄었다고 체감하기 어려웠다. 좌석 수가 이전과 같았다면 확인이 되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1~2월은 진짜 재난이었다. 지원사업이 선정되었으니까 제작비는 받을 수 있는 건지, 사례비는 줄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등등 화두였다. 연극이 뭐고 비대면 맞나 싶고. 이런 생각 이전에 체온계 빨리 구해야 하는데, 해외배송을 시켰는데 언제 도착하지, 이러고 있을 때였다. (웃음)


송김경화 : 그때는 마스크 구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김기일 : 맞다. 지금은 마스크는 각자 챙기는 것이 당연한데, 그때는 그게 아니었다. 스탭들 마스크까지 어떻게 준비를 하긴 했다. 진짜 고생 많이 했다.


송김경화 : 극장 안전수칙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김기일 : 세월호 기획공연은 공연 팀이 지켜야 할 것, 극장이 지켜야 할 것, 기획단이 해야 될 것, 그런 식으로 나눴다. 극장 작업 전후에는 발열체크를 실시한다. 발열체크 했을 때 어떻게 어떻게 대처해라. 그리고 작업 중에 손소독제 비치 및 마스크 착용은 팀에서 한다. 만약에 구비가 어렵다면 기획단에 요청하면 주겠다. 그리고 각 팀 내 안전관리자를 한 명 정해서 발열체크, 손소독제 비치, 기획단과의 공유를 맡아서 해달라고 참여팀에 요구했다. 극장은 시설책임자가 있으니까 무조건 1일 1회 방역 소독을 해라. 24시간 간격으로 장비도 극장에서 확보해 주면 좋겠지만 어려우면 기획단에서 구비를 돕겠다. 극장이 시설책임자로서의 대응책을 마련해라. 극장 폐쇄의 기준은 극장이 마련해서 공유한다. 기획단은 관객 마스크 착용 안내, 관객 관련한 입장 제한, 객석간 거리두기 확보가 되었는지 등등을 확인했다. 각 극장이나 참여팀에서 손소독제나 마스크, 체온계 구비가 어렵다면 그것을 수급하도록 노력하고, 작업기간 중 극장 참여팀이 안전수칙을 지키는지 모니터링을 할 의무, 문제가 생겨 관객에게 컴플레인이 있을 경우 대처 등을 기획단이 맡았다. 확진환자 발생 시 대응은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따랐다. 공연 참여자 중 확진환자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공연을 중단한다. 관객 중 확진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확진환자 소식을 전파할 의무가 우리한테 있고 바로 보건당국에 알려야 한다. 이런 수칙들이 있었다. 이후 두 차례 정도 질본에서 나온 지침을 갱신해서 발송했다.


2. 공동작업의 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하고 조율하기


송김경화 : 코로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극장에 변화가 있나.


김기일 :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객석. 객석 수가 적어졌다. 서울형 창작극장 지원을 받은 게 좀 컸던 것 같다. 극장의 생존을 위해 큰 변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재정적으로는 안정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큰 변화라기보다 극장에서 신경 쓸 게 많아지긴 했다. QR체크, 출입자 관리, 1일 2회 소독 등등. 변화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났다.


송김경화 :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일부 변경되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김기일 : 기획팀과 각 공연 팀들이 조율을 하는데, 먼저 공연팀 내 합의가 있어야 한다. 팀 내 합의를 갖고 참석해서 서로 협의하며 몇 가지 룰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존중하는 것은 팀 내 결정이다. 팀 내 결정이 민주적이었나? 폭력적이지는 않았나? 확인할 수 없지만 민감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연팀이 계속 인지하도록 한다. 그런 과정을 세월호 기획공연에서 거쳤다. 정부지침 거리두기 단계라던지 확진자 추이 같은 게 반영이 되었다. 우리 나름대로도 안전도를 체크를 한다. 이제 거리두기가 5단계로 세분화되었는데, 어긋나지는 않는지 검토한다. 취소 변경 등은 기획 프로그램에서는 팀간 합의, 팀내 합의, 기획 전체 합의 이렇게 결정이 되었다. 우선순위는 (1)팀내 (2)팀간 (3)기획 이다.


송김경화 : 대관취소는 면면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취소의 사유에 어떤 것이 있나?


김기일 : 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팀 내에서 연습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 자체적으로 방역수칙을 잘 만들수록 연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섭외가 펑크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던 것 같다. 초반에는 진짜 말 그대로 연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었다. 중반 넘어가면서는 스케줄이 다들 엉키기 시작했다. 미뤄왔던 걸 하게 되고. 각자의 우선순위가 다르니까 못하게 되는 공연이 생겼다. 시기마다 대관취소 이유가 달랐던 것 같다.


송김경화 : 대관을 취소했을 때 계약금을 다 돌려주었다고 했는데, 코로나19 긴급상황이어서 그런 건가. 원래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김기일 : 월간 『한국연극』에서 극장 운영자들 간담회 때 나왔던 이야기가 계약금을 돌려주는 마음도 알겠고 안 주는 마음도 알겠다 였다. 혜화동1번지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공공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극장이 아니다. 만약에 우리가가 재정난이 있었다면 고민을 한 번 더 했을 것 같은데 서울형창작극장 지원으로 월세를 못내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걸 돌려준다고 극장이 경영악화에 빠지고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또 단체들에 대한 독려차원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1인 민간극장 운영자는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각자의 고민이 있었다. 우리는 운영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다시 돌려주는 선택을 했다.


3. 방역지원과 네트워크


송김경화 : 코로나19 긴급지원 받은 것이 있나.


김기일 : 극장인력 지원, 방역지킴이 활동 지원을 받았다. 관객 맞이하는 것부터 추가 인력이 필요했다. QR체크해야 되고 체온도 재야 하고. 그리고 1일 2회 소독, 부분소독까지 해야 되서 극장 입장에서는 인력지원이 꼭 필요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동료 둘이 하고 있다.


송김경화 : 지원이 없었다면 운영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김기일 : 거꾸로 말해서 지원을 받으니까 인력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알게 된 것 같다. 올해 다들 피로했던 것이 작업을 해도 3배 이상의 공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송김경화 : 긴급지원 외에 공공지원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나.


김기일 : 취소 없이 다 진행했다. 서울문화재단과 아르코에서 각각 세월호 기획공연과 가을페스티벌을 지원받았다. 계획 변경은 있었지만 취소 없이 진행했다.


송김경화 : 코로나 19 위기에서 극장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김기일 : 심적으로는 가이드라인 혹은 매뉴얼. 차라리 하지 말라고 정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가이드라인도 없고 답도 없고 그랬던 상황. 초반에 정말 절실했었다. 그 다음에 필요한 거는 예산 안정. 추가비용이 계속 발생한다. 방역용품 등등. 또 선정된 지원사업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압박이 있었다. 가이드라인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예산안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송김경화 : 작업기간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김기일 : 맞다. 적은 보상이라도 서로 나눠가면서 할 수 있었는데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 한 달을 약속했던 기획이 3달로 늘어난다고 3달치 인건비가 나가지 않는다. 예산이 불투명하다면 더더욱 어렵다.


송김경화 : 온라인 컨텐츠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극장과 플랫폼 운영에서 필요했나.


김기일 : 여력도 안 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극장을 찾아오는 관객이 그걸 기대하고 오는 게 전혀 아니기 때문에.


송김경화 : 운영진의 안정이 앞으로 필요한 것 같다.


김기일 : 초반에 서울시에서 일주일에 한번 방역팀을 보냈다.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방역지킴이도 도움이 되었다. 극장 인력이 부족한데 매일매일 소독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인력지원이 있어서다. 이런게 안정인 것 같다.


송김경화 : 운영진의 안정도 필요하지 않나.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든가.


김기일 : 심리상담? (웃음) 동료들이 있으니까 다행이었다. 같이 고민할 동료들이 있으니까. 세월호 기획공연 준비할 때가 초반이었는데, 먼저 직격타를 맞았다. 마침 나희경 피디가 페미니즘 연극제를 준비하고 있어서 매뉴얼을 공유해줬다. 그때부터 서로서로 방역 매뉴얼을 찾기 시작하고.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이 극장은 많은 주체들이 같이 하는 극장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계속 이야기하지만 개인 극장운영자였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송김경화 : 동료가 필요하다.


김기일 : 그렇다. 같이 선택하고 책임져줄 사람이 너무너무 필요하다. 만약 이걸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송김경화 :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되었나.


김기일 : 제일 처음에 필요했던 게 매뉴얼이었고, 그걸 해결해 준 게 네트워크다. 인적 네트워크가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되었고 정보공유를 엄청 활발하게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로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어떤 판단들을 내리는 지 이런 것들. 이런 동료 네트워킹이 도움이 컸다. 이 어려움을 나 혼자 겪고 있지 않다는 것. 공공의 매뉴얼이 없으니까 우리끼리 매뉴얼 만들고 공공의 수칙이 없으니까 서로 하는 거 물어가며 만들어갔다. 그때는 서로 같이 책임지고 나누고 했던 것이다. (웃음)


송김경화 : 운영에 가장 영향을 미친 변화는?


김기일 :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해도 안 만들어졌던 내규가 생기는 것. 운영 지침들이 생길 것 같다. 그리고 예산이든 기간이든 여유분 확보를 하게 될 것 같다. 방역용품도 계속 구비해야 하고. 극장 입장에서는.


송김경화 : 사람 중심으로 조금 더 변하게 된 거다.


김기일 : 코로나19로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 생존에 직결된, 안전에 직결된 문제다. 그래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코로나19로 운영상 피해는 있다. 연말에 정산을 해봐야 된다. 피해가 얼마나 될지.


4. 팬데믹 이후, 극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송김경화 : 코로나 19 이후로 이 극장에 대한 주변의 인식 변화가 있나.


김기일 : 매진이 잘 된다 (웃음) 쇼머스트고온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민주적 합의를 통해 공연을 계속 해왔다는 거.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하냐 마냐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시작했지만 그러면 안전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게 양립 불가능한 거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이 발전까지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안전관리단이라는 걸 조직을 하고 규칙을 만들었던 것 자체가 변화다. 민간에서는 계속 공연을 했다. 민주적 합의의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혜화동1번지 성격은 7기 동인만으로 구축된 게 아니다. 6기 같은 경우는 블랙리스트 사태 때 극장을 닫아버리기도 했었다면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닫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이 극장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가치들이 있고 그 가치는 사실 우리가 우리 작품만 만들자가 아니라서, 함부로 닫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공공극장은 문을 다 닫는데 문을 열고 있는 민간극장 중에 하나였다 생각할 수 있다. 인식변화라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주는 것 같다.


송김경화 : 문화예술활동에서 팬데믹 이후란 무엇인가?


김기일 :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걱정이 좀 많은 것 같다. 팬데믹 이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했을 때 (웃음) 개인적인 생각인데 팬데믹 전이라고 변화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연극계는 계속 변하는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팬데믹으로 뭔가 다 씻겨 나간 듯이 펜데믹 이후가 담론이 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예를 들면 블랙리스트, 미투 혹은 그 전부터 있었던 누적됐던 문제들에다가 팬데믹까지 더해져서 사유된다기보다는 진공상태로 펜데믹 이후를 얘기하는 게 좀 어렵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연극에는 투여되는 자본이 없기 때문에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내적 변화는 생길 것이다. 예를 들면 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던지 아까 얘기했던 작업환경의 변화라던지. 약속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좀 더 리스크를 대비하는 방식으로 작업자들이 움직일 수 있다.

연출 김기일로서는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기획 혹은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더 한다면 나는 오히려 팬데믹이 되니까 극장성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냥 공연을 하고 관객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공간에서 약속을 하고 만나서 이 공연을 준비하고 누군가 뭔가를 만들어 오고 누군가 같이 웃는데 이 만남을 왜 우리는 원할까? 뭘 보고 싶어서 극장에 올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서로 얼굴을 확인한다’는 거다. 코로나19 상황이다보니 대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온라인으론 죽어도 못하는 걸 더 하고 싶다. 그게 나를 옛날부터 극장으로 끌고 왔었던 것이고 지금도 공연 만들면서 가끔 숨 막히는 순간이고 물리적 공간에서 만난다는 극장에서의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게 된다. 이걸 좀 플랫한 말로 바꾼다면 오히려 연극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공연, 공연성을 오히려 더 준비하는 것 같다.

극장 운영자로서는 아까 말했듯이 방역관리를 어떻게 할 것이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프로그래밍을 할 때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고, 우리가 작업자로서 부담을 덜 받는 방향으로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이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게 산업논리에 가까운 건데. 실질적인 부분에서 해야 될 것에 더 집중되었으면 좋겠다. 고민의 여력이. 팬데믹 겪으면서 사유한다는 게 대면 비대면을 못 벗어나는 수준에서 무슨 비전을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우리가 재난을 더 앙상하게 만들고었으면 만들었지 풍성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거 끝나고 누가 떠날까 제일 걱정이었다. 지금도 좀 그렇다. 심리적으로 제일 안 좋았을 때 가만 있어도 떠오르는 문장이 있었다. “나를 두고 가지 않을까.” 그게 제일 컸다. 특히 대면 비대면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어떤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사라져갔던 동료들이 있다. 팬데믹으로 사라지는 동료가 생길 거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이 생각도 많이 했다. 팬데믹으로 드러난 문제들이 분명히 있는데 왜 계속 오지 않은 미래만 이야기하지?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5. 온라인 유료 상영에 대해


송김경화 : 플랫폼 운영자로서 온라인 유료화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기일 : 비대면 예술활동의 긍정적 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면 온라인제작 지원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제작지원이 그럼 우리 예술가들한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 걸까? 우리가 온라인 제작 역량을 갖추게 되는 것이 목적인 걸까? 영상 제작하는 영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투입이 되고 그 사람들을 육성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나? 더 나아가서 온라인 유료화가 가능할까? 규모 자체가 다른 산업인데. 수익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이야 많이 보겠지만 근데 도대체 누가 계속 볼까? 유투브만 틀어도 무료로 엄청나게 많은 영상들이 쏟아지는 데. 자본주의적으로 봐도 수익이 안 날 것 같다. 온라인 상영하고서 ‘야 극장에서 400명이 보는 공연을 4000명이 봤어’ ‘어... 와’ 하는데. 많이 본다는 게 연극에서 중요할까? 어떻게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온라인에서 유료화 하려고 하는데 4000명이 많아? (웃음) 그래서 난 사실 좀 부정적이다. 기간 한정적인 시도 같다고 느낀다. 온라인이라면 우리 파이가 좀 커지나? 연극은 더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나로서는 지금의 논의들이 이해가 안 된다. (웃음)

“코로나 이후 새로운 비전”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생존을 모색하는 거다. 생존모색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를 거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더 힘들었으니까 우리 어떻게 생존해야 될까? 라고 하면 착시현상이 줄어들 것 같다. 이런 말들이 착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늘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처럼 프레이밍이 된다. “팬데믹 이후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이고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능동적인 말인 것 같은데 현실을 교란시킨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방향은 되게 자본주의적이고 경쟁구도에서 생존 문제/고민으로 할 법한 얘기다. 거꾸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뭘 해야 될까”라고 한다면 대면 비대면이 아닌 다른 상상력을 자극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연극만의 어떤 걸 찾아야지 라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변화는 올 건데 그건 연극계만 오는 게 아니라 인류 자체가 변화할 건데 우리는 좀 다른 것 같다 결이. 결국은 뭐 생존의 문제인데. 연극으로 밥벌이 어떻게 할래 라는 것과 똑같은 수준의 문제를 지금 미래에 대한 비전처럼 얘기하는 게 좀 이상하다.


송김경화 : 동료로서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연극은 하지 말라고 하는 세상에서 최대의 최선의 최소의 안전을 어떻게든 보장해 내려고 애쓰면서 하는 혜화동1번지 동인들의 모습이 되게 고마웠다.



▲ 혜화동1번지 인터뷰 워드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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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일
연출.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극장장. 2015년 연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주로 젊은 창작자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을 오가거나, 기획해가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공연, 극장, 플랫폼 등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순간과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라는 비대면의 시대에 깨닫고 있다. 현재는 엘리펀트룸이라는 팀에서 활동 중이다.

송김경화
극작가, 연극연출가, 배우. 낭만유랑단 대표. 2004년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시작했으며 혜화동1번지 6기동인으로 활동했다.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으로 등단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섹스인더시티>, <신의 입자>, <체체파리>, <제12장 불완전성정리>, <프라메이드>, <백한덕브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