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남아있는 청주의 뒤안길 ‘수동’ 여행을 위한 감상문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쉽게 가능한 상황이 아니지만
해외여행이 활발하던 시절에 우스갯소리로 종종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한국인들은 가장 먼저 일어나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 숙소에 들어온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여행을 가보지 못해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유럽대륙의 경우 며칠 사이에 유명한 관광지를 소화해 내기 위해서
빽빽하고 촘촘한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많은 관광지를 다녀올 수 없다고 한다.
아마 한국인처럼 바쁘게 사는 민족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최근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을 겪는 직장인, 과도한 스펙 경쟁으로 지친 학생,
일과 육아 사이에서 슈퍼맨과 슈퍼우먼이 된 부부, 노후대책으로 인해 여전히 일하는 중장년층 등
우리 사회가 가진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진짜 ‘휴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곳을 오래 보는 ‘정주’하는 여행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주하는 여행은 화려한 관광지를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이면 속 사람들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여행이다.
그렇기에 이런 여행은 다녀온 이들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들린
음식점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오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커피숍에서 꽤 괜찮은 커피와 빵을 먹기도 하고,
오래 봐야만 찾을 수 있는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발견
하는 여행가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누군가가 청주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수동’을 다녀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우암산 자락 아래 위치한 ‘수동’은 청주의 달동네로 시작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고,
벽화마을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더니 현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커피숍과 각종 레스토랑으로
그 일대가 밤낮없이 분주한 청주의 ‘핫’ 플레이스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수암골로 대표되는 청주의 커피숍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수동에 대한 여행기다.
당신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수동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차가 아닌 도보로,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오길 바란다.
수동의 매력은 아파트단지로 둘러 쌓인 빽빽한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 사이를 누비며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첫 시작은 김수현드라마아트 홀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 작가의 고향이 청주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작가의 고향이 ‘청주’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는 청주는 ‘이야기’의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드라마 아트홀을 다 관람하고 나와 드라마 길을 쭉 걷다 보면
계단을 올라가야 만나는 경로당, 덩굴이 감싸고 올라간 전신주,
편의점이 아닌 슈퍼가 지키고 있는 골목길, 대봉감이 수북히 열린 감나무,
중간중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등을 만나며 걸을 수 있다.
나는 이 골목길을 걸으며, 골목길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해 봤다.
오래된 동네만큼 오래된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이 동네가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은 경로당에서 민화투를 치며 여가를 보내지만 젊은 한때는 늦은 퇴근길 슈퍼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사서 귀가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었을 그 누군가를.
혹은 손자. 손녀들과 함께 감전지를 이용해 저 감을 따는 주말을 보내는 노부부의 일상을.
혹은 벽화를 그리는 젊은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집을 가만가만히 들여다보는
동네 주민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꽤 재밌고 유쾌한 일일 것이다.
고 사진가 김기찬은 70~80년대 서울 골목길 사진을 통해
서울의 골목길이 가진 풍경과 이웃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작가가 주목했던 골목길은 현재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사진을 통해 내가 본 서울 골목길의 모습은 정서적 유대감과 소통의 또 다른 창구처럼 느껴졌다.
나는 수동을 걷는 모든 뚜벅이 여행자들이 수동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그 이야기들을 옆에 있는 누군가와 소통하며, 마음이 따뜻한 여행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수동의 구석구석이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자 기록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작은 동네 수동에는 절대 작지 않은 도서관이 있고,
청주의 다양한 인쇄소들이 밀접해 있는 청주의 인쇄 거리다.
어떤 시간에 인쇄 거리를 지나치게 된다면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그 인쇄에 담긴 이야기들까지 상상하다 보면 수동에서의 여행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청주의 뒤안길 ‘수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이 여행을 응원한다.